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48)
이토에게 작년 6월부터 오늘까지의 나날들은 마치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오쓰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마쓰타카의 뒤를 이어 총리대신에 취임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이토는 자신이 있었다.
영국이 자신들을 극동지방에서 대영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챔피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일본의 목에 걸린 교토협약이라는 족쇄를 풀어주지는 않더라도 숨통이 트일 정도로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국을 등에 업고 이 위기를 극복해낸다면 자신은 일본제국의 역사서에 모두가 절망하던 때 혜성처럼 등장한 총리대신이라 기록될 거란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우리의 뒤통수를 쳐?’
이전과는 다른 영국의 태도로 인해 그가 상상한 장밋빛 미래는 산산조각이 난 지 오래였다.
이토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타국에 비해 우월한 조건으로 영국으로부터 차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영국이 보이는 태도가 달라졌으니까.
별다른 조건 없이 받을 수 있었던 차관에는 어느 순간부터 몇 가지의 선행 조건이 붙기 시작했으며 0에 가까웠던 이자율이나 무기한에 가까웠던 상환 기간도 이전과는 다르게 말 그대로 차관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었다.
‘차라리 영국보다는 미국에게 차관을 요청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또한 최근 경제 사정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공화당 출신의 해리슨 대통령이 밀어붙인 매킨리 관세법과 셔먼 독점 금지법으로 인해 내수 시장이 나빠진 결과로 불황이 찾아온 상태였으니까.
이토는 미국 대사와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안타깝지만, 귀국이 원하는 조건으로 차관을 빌려주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지난번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의석을 2/3이나 내준 이후로는 대통령께서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어느 정도 돈을 쓰겠다.’라는 말만 꺼내도 당나귀 친구들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으니까요.’
미국이 일본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물론 대통령 각하께서 해군력을 중시하시며 태평양 일대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신 만큼 상황만 좋았다면 서로 간에 이익이 되는 협정을 맺을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불독 친구들은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바라지 우리의 영향력이 귀국에서 커지는 걸 바라지는 않는 모양이더군요.’
다시 말해 일본이 현재 영국에게 있어 계륵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말과 동일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들이 돈을 쏟아부으면서 키워줄 만큼의 매력을 더 이상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묵인하기에는 아까운 나라.
“이런 망할 자식들 같으니! 감히 우리 대일본제국을 그따위로 생각해!”
이토는 분을 못 이기고 고함을 지르며 책상을 내리쳤다.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산업화와 군제개혁을 위한 자본을 수급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민간은 물론이고 군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나마 육군의 경우에는 자신들과 같은 번 출신의 총리를 배려해주자고 말하는 여론이 주된 의견이었기에 현재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지만, 문제는 해군이었다.당장 자신이 총리대신에 취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전임 총리인 마쓰카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면서 그와 같은 번인 사쓰마 번 출신 인사들에게 연대 책임을 물게 만든 것이었으므로 사쓰마 출신 구성원들이 대다수인 해군으로서는 이토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쪼들리는 재정으로 인해 건조될 예정이었던 군함들이 줄줄이 계획이 연기되거나 취소가 되자 해군성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사격 연습의 표적지가 이토의 사진으로 변경되었다는 소문마저 돌 정도로 현재 일본의 내부사정은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가 총리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독이 든 성배도 아닌 독주를 자진해서 마시겠다며 나서는 인물이 그 말고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본의 부서와 기관 간에 복잡하게 얽힌 교통을 정리해줄 천황은 지난 러시아 황태자와의 면담 이후로 대외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생각 같아선 나도 이만 사퇴하고 고향으로 낙향해버리고 싶군.’
그나마 이토가 가지고 있는 국가에 대한 책임감과 최근 들어 어느 정도 재정적인 측면에서 트인 숨통이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발걸음을 붙잡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파견된 이들의 눈을 필사적으로 피하거나 때로는 매수를 함으로써 각 광산에서 생산되는 광물의 양을 속이고 민간회사로 위장한 첩보원들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분기마다 광물과 판매 대금을 수령하는 관료들을 매수하는 등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이룩한 쾌거였다.
이중장부라 할 수 있는 서류를 살펴보며 이토는 다짐했다.
‘비록 돌아가게 되었지만, 대일본제국은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고 비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야.’
“총리대신 각하! 큰일 났습니다!”
그의 다짐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도 수많은 시련이 남은 것 같았지만.
—
“이게 무슨 소리야! 그동안 구축해놨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 측 선이 죄다 잘려나갔다니! 그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갔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이토의 분노를 직면하고 있는 비서는 그저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잘못이라곤 극동에서 방금 날아온 급보를 가져왔다는 것뿐 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하급자의 슬픈 숙명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도대체 종무원장이라는 작자가 어떻게 알아차렸다는 말인가!”
긴급 전문이라 이름 붙어있는 서류에 적힌 내용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작지 않았다. 일본이 지난가을부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라인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이토가 또다시 빈약한 재정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 싸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호…혹시 러시아 측에서 저희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황태자가 자신의 측근인 종무원장을 파견한 것이 아닐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분명 종무원장은 황태자에 의해 밀려난 자인데…잠깐 설마?”
처음에는 비서의 말이 당황한 나머지 되는 대로 나온 것이라 여긴 이토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이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종무원장이나 되는 자가 그렇게 순순히 물러난 것도 그렇고 이전의 황태자와 종무원장 사이를 고려해본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토는 몸에 전율이 이는 기분이었다. 비록 정황증거와 그것만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추론이었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은 앞으로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다.‘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교토 조약의 허점을 파헤치리라는 것을 예상한 황태자가 종무원장과 비밀리에 공조해 그를 극동지방으로 쫓아낸 것으로 위장해 파견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모든 게 말이 된다. 본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구축한 선을 통해 분기마다 지불해야 하는 액수 중 일부를 빼돌리는 것에서 나아가 러시아의 극동지방에 존재하는 이권들을 뽑아먹으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 모든 게 우연이란 말인가? 그것보다는 황태자의 생각이 여기까지 닿아있었다는 게 더 말이 된다.’
“허허…허허허…허허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토는 힘없이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양인들이 믿는다는 신이 러시아를 굽어살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토로서는 차라리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만약 신의 은총이 아닌 황태자가 가지고 있는 본인의 능력이 이 정도라면 일본의 미래는 다른 식민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국에게 우리가 아직 쓸모 있는 패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대로 가다간 사냥에 나서기도 전에 솥에 들어간 사냥개로 전락할 뿐이야. 영국에게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 앞으로 있을 러시아의 움직임을 막아줄 방패로 사용해야만 한다. 자신들이 쓸모없다고 여긴 개를 다른 사람이 패는 것은 신경 쓰지 않지만, 본인들이 아끼는 개를 타인이 건드린다면 가만있지는 않겠지.’
이토는 일본이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하면서도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젊은 시절 자신이 꿈꾸던 대일본제국의 미래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으니까.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가 이 정도로 전락했단 말인가.’
이토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쥐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까지 일본의 총리대신이었다.
—
“방금 뭐라고 했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종무원장이 뭘 했다고?”
나는 마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생일이 겹쳐 항상 선물을 하나만 받다가 올해는 2개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로 부관이 내게 전해준 소식은 뜻밖의 것이었다.
“예, 전하. 종무원장이 보내온 전문에 의하면 극동 지방에서 전하께서 내리신 명에 따라 노역자들을 위로하고 인민들을 돕던 도중 들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생한 러시아 제국의 금고를 갉아 먹고 적국과 내통한 이들을 적발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민간기업으로 위장한 일본의 첩보원들과 계약을 맺고 교토 조약에 따라 지불해야 할 금액을 속였으며 심지어 우리나라의 극동 지방 이권과 관련된 권리도 넘기려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프리모스키예 주지사와의 연관은 없었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시장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보고입니다.”
와우, 이 정도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선물이었다. 러시아가 가진 고질병 중 하나인 너무나도 넓은 영토로 인한 빈약한 지방 통제력과 그로 인한 부정부패를 한 번에 해결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종무원장이 그렇게 자세할 정도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던 거지?”
“전문에 의하면 블라디보스토크의 현지 관료들이 종무원장을 포섭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전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그들이 생각한 모양이라 적혀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극동 지방에 있는 이들은 이번 기회에 그를 포섭해 더욱더 은밀하게 일본과의 거래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
종무원장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와의 충돌로 인해 좌천된 거나 다름없는 만큼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한 포베도노스체프가 자신들과 협력할 거라 여겼겠지.
‘하긴 나도 그가 이런 식으로 행동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들의 판단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다만 그들과 내가 간과한 것은 종무원장이 가지고 있는 러시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인 모양이었다.
“우선 알겠네. 앞으로 추가적인 소식이 들어온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부관이 나간 뒤 나는 어떻게 하면 이번 일을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슬슬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시기였기에 육군의 극동 지방으로의 이동은 처음부터 논외였다.
‘그렇다고 해군을 보내 무력시위를 하기에도 부담이 되는 상태인데.’
작년부터 이어진 기근의 마지막 고비인 겨울을 앞두고 대규모로 재정이 소모되는 군사행동을 나서기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게다가 영국놈들도 최근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고는 하나 우리가 추가적인 군사 위협을 통해 극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묵시하지는 않을텐데…잠깐, 영국?’
그때 내 뇌리에 현대자본주의의 정수라 칭해지는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가 직접 움직이기 힘들다면 아웃소싱을 통해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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