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5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57화
28장 타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들
응접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손님을 위해 준비된 소파에 앉아 있는 영국대사 로버트 모리에¹경 이었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 작년부터 별로 좋지 못하던 건강이 더 악화한 것 같았다.
잔기침과 기침 속에서 들려오는 가래 끓는 소리가 이 몸의 주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외치는 듯했다.
“이것 참, 대사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오신 김에 제 주치의에게 진료라도 한번 받아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저와 대사님 사이 아닙니까.”
“쿨럭, 쿨럭. 크흠. 괜찮습니다, 전하. 제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8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몸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후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주치의 말로는 기후가 따뜻한 로마로 가면 나을 거라고 하더군요. 조만간 이동하기 좋은 계절이 되는대로 로마로 갈 예정이니 아마 이번 일이 제가 대사로서 진행할 마지막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부담 갖지 마시고 잠깐 진료만 보고 가시지요. 제 성의입니다.”
“크흐흠……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한다면 도리가 아니겠지요. 알겠습니다.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가 원래 역사에서 로마에 가지 못하고 건강 악화로 인해 스위스에서 사망한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이 정도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모리에가 대사로 취임하자마자 발생했던 펀자브 지방에서의 영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충돌 위기를 외교적인 노력으로 해결한 데다, 러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인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할 이유는 충분했다.
“아직까지는 대사님만 오신 것 같군요. 역시 영국의 정보력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레이트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러시아의 패배가 훨씬 많은 싸움이었다.
심지어 러시아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영국에게 정보력이 밀린 사례가 차고 넘쳤으니까.
“과찬이십니다, 크흠. 그건 그렇고 축하드립니다. 최근 프림로즈 총리와 전하 사이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 다행입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악순환을 단숨에 해결하신 전하와 같은 분이 앞으로 러시아를 이끄신다고 생각하니 아국과 귀국 간 관계가 더욱더 발전해 나가겠군요.”
“모든 건 저만의 공이 아닌 제 아래의 실무진들과 대사님 같은 이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걸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식으로 평가해 주시다니 부끄럽군요.”
안색이 파리한 대사였지만,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공치사가 끝나자 퀭한 눈빛에는 투지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 또한 외교관인 만큼 지금부터 이루어질 대화는 전장에서 총과 칼 대신 말과 논리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로세움 경기장에 나가기 전의 검투사가 장비를 정비하고 의지를 다시금 세우듯, 지병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모리에도 자신의 내면에 아껴두었던 힘을 외교적인 협상을 앞두고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제대로 된 합의는 프랑스 대사까지 도착해야 할 수 있겠지만, 나도 대사의 행동에 맞춰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프랑스가 끼어들기 전에 무언가 거래를 진행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아무래도 대사님이 뭔가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 모양이군요.”
“쿨럭, 크흠. 예, 맞습니다. 현재 저희는 교토조약에 우리가 참여하자마자 그것을 악용한 일본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의원은 일본이 아닌 청나라를 지원해 감히 대영제국을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알려줘야 한다더군요.”
“화끈하군요. 하지만 그런 행동에 나설 정도로 대영제국이 감정적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내 말을 들은 대사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뒤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어디까지나 ‘유감’이니까요. 다만 감히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을 우습게 본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처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처벌 말씀입니까?”
“받아낼 돈이 있는 동안의 채권자는 채무자가 계속해서 돈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지요. 물론 채무자가 정상적으로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일해서 상환할 수 없다면 세간살이라도 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샌가 자신들도 일본의 채권자라 나서는 대사를 보고 있자니 괜히 제국주의의 시작이자 끝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이 제공한 차관을 생각하면 채권자라 자칭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들의 논리는 교토조약과 관련된 내용이었으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신사인 데다가 정치성향도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모리에 대사도 결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국주의적 행보를 보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으니까.
‘뭐, 나도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기는 하지.’
잠시 씁쓸한 상념을 마치고 나는 대사를 한번 떠보기로 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이번 사태에서 청나라와 일본 둘 중 어느 곳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실 생각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일본의 편을 들어줄 필요도 없지만요. 기왕이면 채무자가 새로운 채무자를 데리고 오도록 하는 게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래도 저와 생각이 같으신 것 같군요.”
영국도 나처럼 이번 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바라는 모양이었다.
청나라가 아무리 유럽 열강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해도, 지난번 청불전쟁에서 자신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까.
원 역사에서는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맛집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은 열강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대륙으로 진출하려 했지만, 이 시점에서 청나라는 그 정도로 전락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무리 낙후되었다고는 해도 덩치에서 나오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재 열강이 청나라에 가지고 있는 인식이었다.
게다가 근래에 진행된 양무운동을 비롯한 근대화 운동에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지난 아편전쟁과 청불전쟁보다는 강해졌다고 보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물론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거나 다름없는 결과가 나타났지만.’
중국의 노력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번에 청나라의 가장 강력한 함대이자 열강들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으로 여겨졌던 북양함대가 나가사키에서 보여준 추태로 인해 다른 나라들도 어느 정도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겠지만.
“그래서 저희 영국은 전하에게 이번 전쟁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중립자세를 취하는 걸 제안합니다. 서로 절박한 이들끼리의 싸움이 길어지면 우리가 얻어낼 것도 많아질 테니까요. 여유로운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조건도 필사적인 사람들은 받아들이게 마련입니다. 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저희는 청나라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간지럽힐 생각이고요.”
다시 말해 일본을 도와 청나라를 직접 군사적으로 공격하거나 일본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것 대신, 청나라가 자신에 앞에 서 있는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을 하자는 얘기였다.
영국은 자신들의 함대 중 일부를 중국의 남부 해안 지방으로 진출시키는 무력시위를 통해 지난 청불전쟁 이후 소멸한 거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남양함대와 같은 북양함대 외의 청나라의 해군 전력을 묶어두는 역할을 이행하고.
“우리 러시아에서는 극동지방에 최소 10만 이상의 병력을 전개할 준비가 되어 있소.”
거짓말이었다.
아직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완공되지 않은 데다가 끝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기근은 대규모 출병을 하지 못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0만 이상의 육군 병력을 극동지방에서 청나라의 시선을 분산시킬 용도로 전개할 수 있다는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충성스러운 코사크 사냥꾼들과 모피 사냥꾼들과 같은 시베리아 개척민들의 존재였다.
그들을 긁어모은다 하더라도 5만 이상의 숫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실질적인 전투력을 바라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상을 알지 못하는 청나라로서는 어느샌가 자신들의 사상적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만주 위에 대량의 러시아군이 출현했다는 사실에 경악할 것이 분명했다.
“10만이라니, 러시아 제국의 저력은 알면 알수록 놀랍기만 하군요.”
모리에 대사는 어느 정도 알아차린 모양이었지만, 그도 이런 자리에서 거짓말하지 말라며 분위기를 깰 만큼 눈치가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게다가 실제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예정이었으므로 우리가 얘기한 병력의 질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청나라도 일본과 전면전에 돌입한 상태에서 영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적으로 돌릴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그들은 아직 일본만큼 절박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아직 잃을 게 많은 청나라로서는 일본처럼 막 나갈 수가 없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실제로도 청나라는 청일전쟁 직후부터 3년간 무려 23척의 군함을 추가로 외국에서 구매 혹은 예약할 정도로 돈이 많은 나라였다.
“그럼 어느 정도 양국 사이에 의견은 조율된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웃으며 손을 내밀자 모리에는 내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다만 프랑스 대사인 몬테벨로 경과도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야겠지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최근 프랑스가 우리 러시아에 짝사랑을 보내고 있으니까.”
실제로 짝사랑까지는 아니었지만, 프랑스가 독일이 자신들을 겨냥해 만든 삼국동맹에 대항할 자신들의 동맹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접근한 입장인 만큼,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우리와 의견을 같이할 가능성이 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극동지방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러시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유럽 대륙에서 든든한 동맹국이 생긴다고 한다면 기꺼이 그리 행동할 테니까.
프랑스는 아직도 지난 시절 비스마르크에 의해 유럽에서 자신들이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결과 중 하나로, 삼제동맹으로 대표되는 독일, 오-헝, 러시아 사이에 맺어졌던 방위조약이었고 삼제동맹이 베를린 회의로 깨진 이후에도 재보장조약으로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불가침 조약이 존재했었으니까.
유럽 어디를 둘러봐도 전쟁이 일어났을 시 자신들과 함께 독일과 싸워줄 동맹국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을 프랑스로서는, 야심만만한 빌헬름 2세로 인해 재보장조약이 파기된 지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러불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프랑스가 러시아에 제공한 막대한 차관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이 됐었으니까.
“……그렇다면야 다행이군요. 몬테벨로 대사를 설득하는 일은 전하께서 맡아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영국 또한, 위대한 고립 정책에서 벗어나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함께 대응할 동맹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와 독일 사이에서 어느 쪽과 동맹을 맺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지를 가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비록 빅토리아 여왕이 빌헬름 2세에게 호의적인 입장이라 하더라도 빌헬름 2세가 앞으로 연달아 자살골을 넣을 거라는 점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종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드는 독일보다는 우호적인 관계로의 발전을 원한다고 지속적으로 표현을 한 우리 러시아에 손을 내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청일전쟁은 단순한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앞으로 불어닥칠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시대의 폭풍에 대비를 해야 했다.
다가오는 폭풍에서 내 가족과 러시아를 지키겠다는 맹세는 나와 니콜라이 사이에서 맺어진 굳건한 약속이었으니까.
#작가의 말
로버트 모리에¹ : 1884년부터 1893년까지 러시아 대사로 있었던 외교관입니다. 능력이 좋은 외교관이었기에 비스마르크도 그를 경계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