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6)
조선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결정의 판단 근거를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한시라도 빨리 다가오는 미래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악천후로 인한 기근은 올해 1891년 러시아를 덮쳤다. 이 기근의 원인은 물론 자연적인 것도 존재하지만 내가 살던 21세기에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진 재앙의 주된 이유는 바로 인재(人災)가 더 큰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지난겨울 눈이 별로 오지 않아 묘목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봄과 여름 동안 건조한 날씨가 파종된 씨앗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오렌부르크¹에서는 무려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1891년의 흉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에는 인민들을 충분히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이 있었다. 단 그것이 실제로 올바르게 배분됐다면 내가 이렇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크기는 그 자체로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러시아의 영토는 넓었다. 너무나도 광활한 영토는 각 지역 간 불균형 및 21세기까지도 포장된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지역이 존재할 만큼의 교통의 불편함을 초래했고 상황을 인지한 정부가 도로를 건설 및 보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 작업은 1892년 가을이 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도로 작업의 책임자인 안넨코프 장군의 잘못된 조직 구성 및 관리와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내려온 명령으로 인해 진정으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지원이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낭비된 예산으로 인한 재정 적자만 해도 400만 루블이 넘는다고 하니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국가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지.’
또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에 근대적인 교육시설을 갖춘 농업학교는 모스크바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사실도 현장에서의 선제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이 광활한 땅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행위를 단 하나의 학교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정신력만으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여기는 정신력 신봉자들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게다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20세기가 코앞인 현실에서 중세시대나 다름없는 나무쟁기와 나무 낫을 사용하는 원시적인 농사만을 구사했기에 가뭄과 같은 기후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보급되던 인산염과 같은 새로운 비료의 존재조차 러시아의 농민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낙후된 농업기술과 필요한 곳에 지원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저질스러운 교통망 이것만이 문제였다면 좋았겠지만.’
당시 러시아 중앙정부는 사태를 파악하는 것조차 매우 느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가을까지도 지방에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농업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고 보고를 해야 할 실무진들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보고만을 올리며 중앙정부의 눈을 가렸다. 단적으로 당시 재정부에서 세금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지리놉스키는 8월까지도 아무 문제 없으며 수확을 기대해도 될 것이라는 보고를 차르에게 올렸다.
이러한 보고만을 믿고서 중앙에서 부과한 세금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파견된 세금 징수원들은 당장 가을도 버티기 힘들 지경에 처한 농민들에게 곡식이 없으면 가축으로 대신 납부하라 하며 소나 말 같은 가축들을 압수해 가져갔고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한시라도 빨리 곡물 수출을 막고 인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부족한 식량을 배급할지 논의해야 할 정부는 8월까지도 곡물 수출량을 늘려나갔으며 심지어 지금 재무부 장관이라는 자리에 올라있는 이반 비시그라드스키는 8월 이후 건의된 외부로의 곡물 수출 제한에도 반대 의사를 밝힐 만큼 당시 상황이 일반 인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정부조직을 설득하고 이끌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나라의 식량이 필요한 곳 중 제대로 된 도로도 없는 곳은 도로를 깔면서 혹은 수로를 이용해 식량을 배급하고,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면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피해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쟁기나 나무 낫으로만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근대적인 농업기술을 전파해야 하고, 구호 과정에서 발생할 인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자로 자신의 잇속을 차릴 기회를 노릴 부패한 관료 및 상인도 잡아내야 한다 이거지? 너무 쉬운걸?’
그나마 내가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소위 말하는 불지옥 급 난이도에서 ㅂ 정도는 뺄 수 있다고 느꼈겠지만 지금 나는 황제가 아닌 황태자였다. 그것도 아직 러시아의 국무 회의라고 할 수 있는 장관 회의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는 절반 짜리 황태자.
‘이번 성과를 토대로 장관 회의에 배석하거나 혹은 내가 직접 주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너무 늦게 된다.’
나는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동서고금 이래로 승리한 사람이 매우 드문 힘든 싸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슬슬 단상에 오르셔야 합니다. 연설 준비는 다 되셨는지요.”
“알겠네. 곧 가지.”
다만 시간과 싸우기 이전에 난생처음 해보는 군중 앞에서 연설부터 해야 했지만.
이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시베리아 철도 기공식에 대한 알렉산드르 3세의 관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수도에서 수천 킬로나 떨어진 이곳까지 황태자를 보낼 만큼 횡단 철도는 러시아 제국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기공식에서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음향장비가 없는 지금 내 목소리로만 수많은 군중들에게 전달되도록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질 지경이었지만 막상 단상 앞에 서니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내 몸에 남아있는 니콜라이의 경험이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교육받은 사람처럼 오히려 군중들을 바라볼수록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머나먼 극동에서 차르의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을 치하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연설문이 이미 존재했지만 나는 다른 내용을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러시아 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대들과 같은 무수히 많은 충성스러운 인민도 가지고 있지.”
내가 말을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 하나만을 바라보며 숨죽이는 것이 느껴졌다.
“저 멀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곳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올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이번에 이곳에 오기 위해 이용한 방법처럼 바다를 통해서 올 수도 있고, 혹은 이미 그대들도 익히 알다시피 코사크 사냥꾼들처럼 이곳까지 이어진 강줄기를 따라 오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이곳까지 철로를 연결하려 하는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데다가 척박하기까지 한 이곳 말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극동지방이야말로 우리 러시아가 주목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을 따라 이곳까지 오는 것은 겨울이면 불가능해진다. 바다를 통해 오는 것은 너무나도 오래 걸리지. 철로를 통한 연결이야말로 이 극동지방에 우리 러시아 제국의 힘을 쉽게 그리고 강하게 투사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에 차르께서도 나를 이곳에 보내 여러분을 치하하라 명하신 것이다.”
실제로도 이미 17세기 중엽 러시아의 모피 사냥꾼들이 이곳까지 진출해 청나라와 자주 마찰이 빚어지자 맺어진 네르친스크 조약이 존재할 만큼 러시아의 극동으로의 진출은 역사가 이미 오래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대들이야말로 러시아 제국의 미래를 빚어내는 영웅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이루어낼 과업이야말로 앞으로 우리 러시아가 세계 최강국이 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폐하를 필두로 한 우리 황실은 여러분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향후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곳을 지켜낼 것이라는 걸 약속하겠다. 이유는 이곳이 중요해서만은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영웅들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의 미래를 건설하는 그대들에게 영광 있으라! 러시아 ура²! 차르 ура!”
“러시아 ура! 차르 ура!”
연설을 끝마치자 군중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며 호응했고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러시아 제국 및 그대들에게 영광 있으라!”
“만세! 하느님이시여 차르를 보우하소서!”
“황태자 전하에게 영광을! 축복받으소서!”
열광적인 반응을 받으며 나는 단상에서 내려왔고 내가 단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한동안 만세 소리는 이어졌다.
—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는 연설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바로 돌아가야겠다고 얘기했고 수행원들의 설득 및 반대와 마주칠 수 있었다.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로 돌아가시겠다니요. 아직 입으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오랜 시간 배를 타신다면 몸이 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2주일가량 휴식을 취하다가 가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전하. 비록 전하의 강건한 육체와 젊은 나이 덕분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럴 때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아버지께 말씀드릴 내용이 있는데 이곳에서 쉴 시간이 어딨나. 모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수행원들이 기공식이 끝나자마자 출발하자는 나를 만류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과는 다르게 강을 따라가기 때문에 시간이 더 단축된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마음을 굳혔소. 이틀 뒤요.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하고 바로 출발한다는 걸로 알고 있으시오. 이건 명령이니까.”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내일 출발하고 싶었지만 동행하고 있는 수행원들이나 선원들의 피로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틀 뒤 출발이라는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나가보시오. 이틀이요! 이틀!”
마지막까지 나를 설득하려는 사람들을 방 밖으로 내보낸 뒤 나는 어떻게 하면 돌아가자마자 아버지를 설득할지 고민했다. 내게 권한이 없다면 권한이 있는 사람을 움직이면 되지 않겠는가?
“후계자 교육도 받지 않은 아들이 다짜고짜 곡물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힐텐데…”
앞서 말했던 현재 재무부 장관이 곡물 수출 금지령에 반대했던 것은 그가 무능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시그라드스키는 유능한 행정관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수출품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곡물이었고 이를 통해 재정을 꾸려나가는 재무부 장관으로서는 현장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잠자기는 글렀구만.”
밤이 깊어질수록 내 고민도 커져만 갔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