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6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62화
30장 동면에서 깨어나는 곰
니콜라이와 합쳐진 후 두 번째로 맞는 새해 당일, 내가 가장 먼저 서명한 서류는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를 차르 직속의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칼루가에 있는 학교의 평범한 수학 교사인 그는 현대 항공학과 로켓 과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재작년에 발표한 유선형 형태의 금속 비행기와 관련된 논문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이미 1882년에 러시아 물리화학 학회의 일원으로서의 자격요건을 충족한 데다가 그동안 발표한 다양한 논문들이 있었기에 별다른 논란이 생길 일은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의 공업력으로 그의 이론을 실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지금부터 기초를 다져놓는다면 원 역사처럼 항공기 엔진이나 동체를 프랑스나 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 치올콥스키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공학자라 할지라도 개인인 이상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건 분명했으니까.
1차 세계대전의 항공전에서 필수적이었던 싱크로나이즈 기어¹ 개발은 치올콥스키와는 관련 없는 분야인 걸 감안하면 차후 보완책을 마련해야 했다.
게다가 나로 인해 역사가 뒤틀리기 시작한 이상 내가 알고 있는 대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거란 확신도 할 수 없었다. 당장 청일전쟁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2년이나 일찍 그것도 다른 양상으로 일어났으니까.
원 역사와는 달리 일본이 황해에서 피로스의 승리를 거둔 이후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유는 서로 양국의 본토를 공격할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나라는 자신의 남해안과 북방 지역에서 무력시위 중인 열강 병력을 견제하면서 일본을 침공할 능력이 없었다.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을 핑계 삼아 한반도로 진출한 일본군이 연합함대와 함께 위해위항과 뤼순항을 점령하면서 청나라의 항전 의지를 꺾었지만, 지금의 일본엔 그럴 능력도 한반도로 육군을 보낼 명분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황해 전투 이후 사실상 임무 수행 능력을 거의 잃어버린 해군을 보내 중국의 해안선을 포격할 수도 없었기에 청일전쟁은 전쟁이지만 전투는 단 한 번만 벌어진 기묘한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조만간 일본에서 중재를 부탁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이만하면 쓸만하지 않냐고 묻는 전보가 올 테니 그때 가서 우리에게 배정된 몫을 취하면 그만이다.’
지난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회담의 결과 이번 전쟁이 끝나고 우리 러시아가 얻을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만주 지역에서의 철도부설권과 같은 경제적 이권의 확보.
둘. 두 나라가 평화로운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중개비용으로 청나라에 받아낼 은 5천만 냥.
물론 이 모든 사항은 청나라와 일본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은 말 그대로 열강 간의 밀실협약이었다.
청나라가 자신들은 결정적인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협상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컸지만, 이 밀실협약으로 이득을 볼 나라는 우리 러시아만이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도 한몫 끼고 있는 상태에서 청나라가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이를 위해서 영국은 자신들의 함대 중 일부를 중국의 남해안에 위치시켜 놓은 상태였고 우리는 군대의 탈을 쓴 사냥꾼들의 무리를 청나라의 머리맡에 보내놓은 후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러한 움직임에 들어가는 비용 중 일부를 제공하고 있었다.
미국 또한 당시 협상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지만,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으로 인해 이번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각자 어느 정도 투자비용이 들어간 만큼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청나라에 자비를 보이지 않을 거란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또한 어느 정도 콩고물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돌아갈 몫 중 대다수는 다시 우리와 영국의 호주머니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거의 소멸 상태에 빠진 해군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다시 돈을 빌려야만 할 테니까.
“전하, 영국으로부터 전문이 왔습니다. 제목은 ‘사냥개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입니다.”
“좋아. 즐거운 수금 시간이 돌아왔군. 청나라에 전문을 보내게. 우리 러시아를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가 신사답게 양국의 충돌을 대화로 풀어나갈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이야.”
미래의 역사서에 포함될 제국주의 시대의 수탈이라는 챕터에 이번 조약이 들어가겠지만, 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도덕 외교를 주장한 글래드스턴과 같은 고귀함은 분명 이런 시대이기에 더욱 빛을 발하겠지만, 러시아에 철도를 건설하고 공장을 세우며 농촌을 개혁하는 데 필요한 빛은 고귀함이 아니라 은과 금이었으니까.
‘역사책에서 내가 어떻게 기록될지가 궁금하군.’
아마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라 적히지 않을까?
* * *
홍콩에서 열린 협상장에 모인 5개국 인사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이번 조약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엿볼 수 있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러, 영, 프의 대사들과 그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일본대사 그리고 혼자서 외로이 서 있는 청나라의 대사는 이 협상이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누구나 예상했듯 청나라는 4개국이 내밀은 협상안에 서명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내 은근한 회유와 약간의 과장이 함유된 협박이 더해지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지금은 19세기였고 말과 논리보다는 총과 칼이 더 가까운 시대였으니까.
나가사키에서의 폭력 행위로 전쟁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청나라는 전범국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원래라면 나가사키항 폭동사건의 최종 책임자인 정여창의 처벌도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지난 황해 전투에서 전사했기에 관련 재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홍콩 조약의 결과로 유럽 3국이 얻어낸 것은 막대했다.
러시아의 경우 동청 철도 부설권을 비롯한 만주 지역에서의 개발 및 탐사와 같은 활동을 받아낸 데다가 빈약한 재정에 보탤 은 5천만 냥을.
영국의 경우 장강에서 버마까지 이르는 구간의 철도부설권과 장강 유역에서의 명목상 청나라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지 않는 배타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프랑스는 앞으로도 이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막는다는 명목으로 산둥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자오저우만의 조차권과 상하이 내에 프랑스 조계지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지난번 나가사키에서 탈취한 2척의 군함에 대한 배상금 면제와 나가사키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위로금 명목으로 은 7천만 냥을 얻어냈지만, 이 중에 과연 얼마나 일본의 호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상환기간이 다가온 차관과 러시아에 분기마다 보내야 하는 돈부터 처리해야 했으니까.
이 중 대부분이 명목상 일본에 청나라가 지불해야 할 배상금에 대한 차관 공여를 핑계로 얻어냈다는 것을 고려하면, 말이 청일전쟁의 종식을 위한 협상 자리지, 사실은 이를 계기로 청나라의 곳간을 한층 더 털어먹겠다는 목적이 뻔히 보이는 조약이었다.
이 조약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차후 극동지방에서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해 열강에 진입할 나라가 사라졌다는 것만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물론 열강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냐에 따라 청나라와 일본뿐 아니라 조선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챔피언을 찾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었으니까.
극동에서 위 세 나라가 이런 눈부신 성과를 거두자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독일의 빌헬름 2세가 길길이 날뛰었다고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나간 후였다.
이 협정의 결과로 이득을 본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독일이 구축한 삼국동맹에 대응할 연합의 가능성을 서로 엿볼 수 있었으며 이미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 프랑스-러시아 간의 상호 방위 조약도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협상이 타결된 후 열린 만찬에 청나라 측 인사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빈자리에 서운해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연회는 승리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원 역사에서의 삼국 간섭과 다른 것은 조약에 끼어든 나라가 독일이 아닌 영국이라는 것과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본래 청일전쟁은 한반도에서도 벌어졌지만, 이 전쟁 동안에는 단 한 번의 해전만 발생했을 뿐이었으니까.
홍콩에서 신년 맞이와 더불어 자신들의 성과를 자축하는 파티가 열리는 동안 나는 뭘 했냐고?
나는 작년 가을에 전국 각지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불러들인 스탈린과 아직도 러시아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인 국가주의 연설을 통해 데려온 트로츠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의 이유를 듣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는 우수하지만, 가정 사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을 함으로써 충성심 극대화와 능력 증진을 통한 미래의 관료들을 육성이라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는 차후 이루어질 개혁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만들라는 내 명령에 의해 서로 편을 갈라 진행하는 토론 시간이 존재했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인 만큼 국정에 반영될 만큼의 아이디어나 보완책이 나올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주입식 교육만 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의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기르는 과정도 필요할 거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보통 한 쪽이 다른 쪽의 논거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하면서 끝났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 모양이었다.
격렬한 말다툼이 이어지다가 이내 주먹 다툼으로까지 발전한 상황은 평상시라면 둘 모두에게 체벌과 차후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프로그램에서 탈락 처리를 할 거라는 경고로 끝이 났겠지만, 이 싸움의 당사자가 주가슈빌리와 브론시테인이라는 게 문제였다.
두 명 다 평상시 내가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진 학생들이라는 것이 프로그램의 명목상 최종 책임자인 내 책상에까지 10대 청소년끼리의 싸움이 적힌 보고서가 올라오게 된 이유였다.
“그래서, 둘이 어느 주제로 얘기하다가 싸운 거라고?”
나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리해야 할 서류가 아직도 많이 남은 상태에서 팔자에도 없는 선생 역할을 하는 내 처지가 우습기도 했지만, 둘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은 내 책임이었기에 나는 위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
관련 프로그램의 실무책임자를 맡고 있는 스톨리핀은 이런 문제로 내게 심려를 끼친다는 것이 송구스럽다는 듯 조심스레 얘기하기 시작했다.
“토론 주제는 조만간 이루어질 미르 개혁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만약 미르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조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겠느냐는 주제에 대해 브론시테인 군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실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주가슈빌리 군은 일정 지역에서의 사전 시행 이후 경과를 지켜본 뒤 차츰 확대를 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웃음이 나왔다.
마치 러시아에서의 공산 혁명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나라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영구 혁명론을 주장했던 트로츠키와 소련에서의 공산 혁명을 완료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일국 사회주의를 주장한 스탈린의 모습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자 스톨리핀은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토론이 격해지자 주가슈빌리 군이 상대방을 향해 ‘이 유태인 놈아!’라고 소리쳤으며 그 소리를 들은 브론시테인이 주먹을 날린 이후 서로 간에 난투극이 벌어진 게 사건 요지입니다.”
“자네도 팔자에 없는 보모 노릇을 하느라 고생이 많군.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누가 더 잘못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까?”
“아니, 그것 말고 토론 주제 말이네. 자네는 누구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군.”
내 질문을 들은 스톨리핀은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시행을 해야 합니다. 전하도 이미 동의하신 내용 아니었습니까?”
그의 말대로 조만간 이루어질 농촌 개혁에는 미르의 해체와 미르를 대신할 농업 조합의 설립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르의 해체와 관련해서는 여론이 극명하게 갈릴 것이 분명했다.
미르는 농민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멋대로 가져가 분배하는 족쇄이기도 했지만,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회적 안정망이기도 했다.
부농들의 입장에서는 미르가 해체되는 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었지만, 대다수인 빈농과 소작농들은 자기들이 의지할 대상이 사라지는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사실 미르의 존재는 러시아가 급격한 인구성장률을 보일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다.
미르에서 토지를 분배하는 기준은 부양가족의 숫자였으니까.
농민들은 힘들여 농업 기술을 발달시키고 더 부지런히 일하는 것보다 더 쉬우면서 겸사겸사 쾌락도 느낄 수 있는 길을 택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미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국가가 농민들을 통제하기 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공동체에 소속되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활한다는 점 자체가 그들이 반정부적 운동에 나서는 것을 억제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농노 해방 이후로도 미르에 소속되어 있는 농민이 다른 도시나 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여권이 필요했는데 이 여권을 발급해주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도 재정에 일정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매력적인 세수원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미르가 가진 장점은 다양했지만.
“미르는 해체되어야 합니다. 러시아 전역에서 즉각적으로 말입니다.”
#작가의 말
싱크로나이즈 기어¹ : 프랑스의 파일럿이었던 롤랑 가로스가 발명한 기계장치입니다. 돌아가는 프로펠러 사이로 총을 발사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장치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기어를 가장 먼저 잘 써먹은 나라는 독일이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