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6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63화
기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우리가 미르 해체로 대표되는 농촌 개혁을 서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그동안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항상 걸림돌이 되었던 재원이 이번 홍콩 조약을 통해 어느 정도 확보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은 5천만 냥이라는 숫자가 어마어마해 보였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개혁을 동시에 추진할 수는 없었기에 가장 시급하다고 여겨지는 농촌 개혁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미르를 해체해야만 자영농을 육성할 수 있고 자영농의 육성은 그 자체로 러시아의 구매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호무역만으로는 산업화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전하.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은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국가 내부에서 소비해줄 수 있어야 걸음마 단계라 할 수 있는 공업 분야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농촌과 관련된 개혁을 어째서 최우선으로 시행하는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19세기 말임에도 러시아 제국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농부였으니까.
물론 도시 지역으로 올라오는 농부들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지만, 아직까지 러시아 제국의 근간은 농민들이었다.
“게다가 역설적이지만, 기근이 끝나가는 이 시점이야말로 개혁을 추진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지.”
“맞습니다. 전하께서 재작년부터 보여주신 모습과 빠른 대처 덕분에 농촌 지역에서 제국 정부에게 보내는 신뢰와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전과는 달리 미르가 아닌 정부가 자신들이 힘든 시기에 도와준 것을 경험한 이들은 미르가 해체된다는 것에 그다지 큰 불안감을 나타내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의 전통 중 하나가 인명 경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러시아의 정부는 인민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무관심하거나 대의를 위해 희생하라는 태도를 자주 보여왔다.
그리고 그 모습은 농부들의 뇌리에서 자신들이 의지할 곳은 정부가 아닌 당장 옆에서 존재하고 있는 미르라는 인식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이번 기근에서 우리가 보여준 모습은 이전과는 달랐다.
강력한 수출 위주 정책을 펼치던 것을 중단하고 러시아 수출 품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곡물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내리고 황태자를 위시한 로마노프 황가의 일원들이 기근 극복을 위해 바자회를 여는 등의 노력을 했다는 것을 신문과 문맹인 농민들을 위해 톨스토이 운동가들을 통해 퍼뜨린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톨스토이 운동이 아나키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다행히 톨스토이 백작님이 협조적으로 나와주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 또한 전하의 설득이 아니셨다면 힘들었겠지요.”
“못 본 사이에 아부가 늘었군.”
“저는 사실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어느샌가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한 모습은 사라지고 속세에 찌들어 능글거리는 스톨리핀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었다.
스톨리핀은 과장된 몸짓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인 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것을 제외하더라도 미르는 없어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공동 경작은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현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모습에는 그나마 있는 장점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되지 않는 장로들이 시키는 대로 과거 중세시대부터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구시대의 경작 방식을 행해야 하며 그나마 남들 보다 깨어 있는 사람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려 해도 공동 경작이라는 특성상 새로운 농업 방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집단, 어느 나라를 살펴보더라도 가장 보수적인 집단은 다름 아닌 농부들이었다.
과거부터 내려져 온 최소한의 수확을 보장한다고 검증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쉬웠으니까.
게다가 러시아의 현 농촌은 공동 농업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로운 경작법이 퍼지기 어려운 풍토였다.
개인의 땅이라면 본인이 선택한 것에 본인만 책임을 지게 되겠지만, 공동으로 경작하는 땅에 어느 한 사람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자고 한다면 다른 이들이 뭘 믿고 그런 방법을 하냐고 따지고 들 게 뻔하니까.
선택의 결과가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그 마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현 제도하에서는 절대로 선진적인 농업 방법이 보급될 수 없었다.
“게다가 토지 재분배 업무를 미르에서 도맡아 진행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도 막대합니다.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불모지를 경작해 농지를 늘린다 하더라도 그 늘어난 농지를 압수해가 다른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니 어느 누가 의욕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토지 분배 기준이 가정 내 인원 숫자인 것으로 인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인구로 인한 압력이 재정에 악영향을 주기 이전에 해소해야 합니다.
1861년만 하더라도 농촌 인구가 5,000만 명이었지만, 인구 증가 추세로 본다면 지금은 7,500만 명은 될 겁니다. 경작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만 늘어나니 이미 열 가구당 한 가구는 토지를 분배받지도 못했으며 세 가구당 한 가구는 농업에 필요한 말 한 필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웃긴 일이었지만, 소련이 초기에 시행한 공동농장의 안 좋은 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미르라는 존재였다. 공동소유 공동분배라는 명목은 좋았지만, 그로 인한 구성원들의 의욕저하와 생산성 저하가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보유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을 늘릴 방법이 아이를 낳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인구의 증가가 곧 국력의 증가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구 부양력이 모자란 상태에서의 과잉 인구 성장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단 하나밖에 없던 농업학교가 4개는 더 설립되었고 그 학교에 입학하는 이들에 대한 병역 면제를 통한 부농 자제들의 입학 유도 및 농업 아카데미와 학회들과의 연계를 통해 선진적인 농업 방식을 전국에 보급할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바실리 도쿠차예프를 위시한 토양학자들을 통한 러시아 지역별 토양에 따른 농업 방식에 대한 연구와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 있던 메치니코프를 데려옴으로써 농작물의 병충해를 예방할 방법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새로 설립된 농업학교는 아직은 별다른 성과를 보이기에는 일렀지만, 앞으로 2~3년만 지나더라도 졸업생들이 러시아 각지로 진출해 구시대적인 농업 방식을 가장 앞장서서 없애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단 그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이 모두 즐거운 것만은 아닐 거네. 그것은 이미 알고 있겠지?”
아무리 개혁에 최적화된 시기라 하더라도 모든 개혁에는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농민들뿐만 아니라 아직도 농촌에 막대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귀족들이나 미르가 해체됨에 따라 자신들의 특권을 잃어버리게 될 장로들은 이번 개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물론 이미 알고 있습니다. 비테 재무 대신과도 이미 그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대책을 세워둔 상태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보수파 귀족들은 지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종무원장이 일으킨 일 이후 보인 태도를 보고 아직도 몸을 숙이고 있는 상태였다.
극동 지역의 통제권을 획득한 종무원장이 재차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러시아의 귀족이라면 마땅히 황태자 전하에게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으니까.
그들로서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대립하던 관계의 종무원장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기에 더더욱 두려워하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미르를 통제하는 장로들과 그들에게 동조할 농민들이었다.
누구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던 특권을 가져간다고 한다면 반발할 게 뻔했으니까.
“달리는 기차 위에서 물이 가득 찬 컵을 들고 있으면 흘러나가는 물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흘러나간 물을 주워 담으려 애쓰는 것보다는 컵 안에 남아 있는 물을 신경 쓰는 게 더 현명한 사람이 취할 태도겠지요.”
반대파에게 불행한 일은 농촌 개혁을 도맡아 진행할 비테와 스톨리핀이 그다지 유약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비테는 실제 역사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지자 당시 황제인 니콜라이의 앞에서 권총을 들고 자신이 내민 개혁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자살해버리겠다는 행동을 할 정도로 터프한 인물이었다.
더불어 스톨리핀도 개혁으로 설립된 두마(국회)가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협조적이지 않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에게 협조적인 인물들로 두마를 재구성할 정도의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대로 컵에서 튀어나가는 적은 양의 물방울마저도 감싸 안고 달려나가기엔 러시아가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었다.
농촌 개혁이 중요하긴 해도 앞으로 시행될 개혁안들을 생각하면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그나저나 비슈네그랏스키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 따지고 보면 그가 재무장관에 재직할 당시부터 검토된 미르 개혁안의 완성본이 이번에 시행될 정책 아닌가? 이번 개혁에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다는 걸 알면 자네와 비테가 숟가락만 얹었다고 화내지 않겠나?”
비테의 직책이 재무장관으로 변했다는 것에서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비슈네그랏스키는 재무장관에서 벗어나 루블화에 금본위제를 도입하는 작업을 전담하는 화폐개혁 위원장으로 직책을 옮긴 후였다.
본래라면 자신의 직위가 낮아졌다는 데에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업무가 줄어든다는 것에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브이시네그랏스키 위원장이 그럴지는 의문입니다만…… 최근 뵀을 때는 얼굴에 활기가 넘치시더군요.”
스톨리핀이 부럽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별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군. 마지막까지 시행 준비에 힘써주게. 일주일 후면 시작이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긴 인내였다. 자그마치 2년 동안 문제와 해결 방법을 알면서도 상황이 맞지 않아 방치하는 세월이 계속됐으니까.
‘하지만 그 인내도 이제는 끝이다. 이번 정책의 시행은 속이 곪아가던 상태로 잠을 자던 불곰이 자신의 환부를 도려냄과 동시에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움직임이니까.’
그리고 이번 개혁에 대한 반발은 나에게 닥칠 외부가 아닌 러시아라는 나라 그 자체에서 온 첫 번째 도전이었다.
국가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게 분명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데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떤 문제 말인가?”
“주가슈빌리와 브론시테인 사이에 있었던 싸움 말입니다. 주가슈빌리에게 자네가 토론에서 패배했다고 전할까요?”
아, 그러고 보니 둘 사이의 싸움과 관련된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거였지.
나는 과거 조상들의 지혜 중 하나를 빌리기로 했다.
“둘 모두에게 따로따로 너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전하게. 비록 정책의 시행 방향은 브론시테인이 맞췄지만, 주가슈빌리의 생각도 논의 과정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었던 방향이니까. 다만 주가슈빌리에게는 이전에 내가 말한 내용을 잊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고. 차르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들은 모두 러시아인이니까.”
황희 정승님, 감사합니다.
스톨리핀이 내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 괘씸죄로 인한 업무 추가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도록 하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 뒤 잠깐의 휴식을 만끽하려던 나였지만, 극동에서 베베르 영사가 보내온 전문을 보자 하늘에 내가 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