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64)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65화
“조선계 러시아인들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들이 저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까요?”
비테는 내가 준비한 계획이 아무래도 걱정되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지. 민족주의라는 사상이 구체화 되고 광기로 치달은 것이 20세기였을 뿐 이미 유럽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보편화 된 지 오래였으니까.
아무리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할지라도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마저 능가할 정도로 우리에게 충성을 바치냐는 것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리란 예상에는 근거가 존재했다.
1889년 당시, 조선 관리들이 극동지방으로 이주한 한인들에게 돌아오라는 요구를 했다가 거절당했고, 그렇다면 조선의 현재 상황이 어려우니 조선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돈이라도 달라고 하자 화난 이주민들이 자신들은 이미 러시아 사람들이니 조선과는 상관이 없다며 쫓아낸 일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올해에서야 극동지방에 이주한 한인들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누그러졌지만, 극동지방에 대한 내 관심과 명령에 따라 이미 작년부터 1884년 이전에 이주한 한인들에 대해서는 토지분배와 함께 러시아 국적 취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로 고향을 떠나 연해주 지방까지 간 이들에게 생계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 준 러시아는 단순히 살아가는 땅의 주인이 아닌 자신들이 믿고 의지할 나라로 여겨질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재무장관은 작년에 내가 했던 연설을 벌써 까먹은 모양이군요. 민족과 종교에 상관없이 차르에게 충성을 바치면 러시아인이다. 재무장관은 저들이 러시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내가 날카로운 어조로 얘기하자 비테는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전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만에 하나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전하.”
“재무장관의 그런 꼼꼼함이야말로 우리가 일을 추진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신중함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사실 원 역사에서 연해주에 이주한 한인들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한인들에게서 러시아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청나라나 일본과 전쟁이 났을 시 그들에게 간첩으로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무르 원정대로 대표되는 현지에서 직접적으로 한인들과 만나고 어울린 이들은 한인들이야말로 중국인들과는 달리 러시아에 빠른 속도로 동화되며, 오히려 자신들의 정착촌을 통해 극동으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이라 평가했었다.
‘양측 모두가 한인들이 근면 성실하며 검소하다는 점은 동의했다는 게 재밌긴 하지.’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이런 한인 공동체들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의 움직임이 일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조선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고, 조선계 러시아인들이 계속해서 러시아를 자신들의 새로운 조국이라 생각하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조선에서도 본다면 앞으로도 적은 인구 때문에 골머리를 썩일 시베리아 개척을 위한 인력 수급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
또 이를 통해 최재형 선생으로 대표되는 한인회에 대한 도움도 줄 수 있을 테고.
비록 이 세계에서는 최재형 선생과 같은 이주 한인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몸을 투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들은 이런 대접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스스로 한 말에 대해 모순된 행동을 취한다면 어찌 인민들이 우리를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재무장관. 앞으로는 스스로의 언행에 대해 조금은 주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나는 비테의 대답을 듣고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극동지방의 한인들을 통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인물에게 연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럼 이제 얼마 전 우리에게 큰 선물을 전달해 준 스승님에게 전문을 보내야겠군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극동을 총괄하는 직책인 프리아무르 총독은 두호프스키였지만, 조선과 맞닿아 있는 연해주의 중심인 블라디보스토크를 통제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포베도노스체프이었다.
아직은 정식으로 부임하지 않고 블라디보스토크의 상층부가 통째로 사라진 특수한 상황에서 임시로 시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나는 그에게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맡길 생각이었다.
지난 사건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면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 종무원장 직함으로 나에 대한 충성 성명마저 발표했으니까.’
설사 그가 다른 마음을 품는다 하더라도 척박하고 인구마저 적은 연해주의 특성상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나마 주의해야 할 점이라면 이전처럼 외국과 결탁하는 상황일 텐데, 그 누구보다 러시아주의자인 종무원장이 외세와 협력한다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외무성을 통해 베베르 영사에게 어디까지나 그대는 러시아의 외교관이며 본분을 잊지 말라는 전문도 보내도록 하세요. 당분간 영사를 바꿀 생각은 없지만, 어느 정도 경고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과 같은 돌발행동이 국익에 항상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지난 홍콩 조약과 관련된 사항을 그가 조선 국왕에게 귀띔해 줬다는 정황마저 있는 상황이니 이쯤에서 그가 어느 나라에 소속된 사람인지 일깨워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극동에서 온 전문에 대한 행동 방침을 정한 뒤 나는 비테를 돌려보냈다.
이번 일도 중요하긴 했지만, 진짜 빅 이벤트는 조만간 찾아올 농촌 개혁이었기에 이와 관련된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날짜로서의 새해는 이미 밝았지만, 러시아에게 있어 진정한 새해라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1893년 1월 중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 있는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연신 이마에 나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고, 어떤 이는 근심과 걱정으로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또 다른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으며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오늘 이후로 닥쳐올 일들에 대한 긴장감과 비장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은 다양했지만,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머릿속에 품고 있는 생각은 같았다.
이제는 멈출 수 없다. 총알은 폭음과 함께 총구를 떠났고 이는 더는 돌아올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뿐!
오늘날 이 공간에서 열릴 회의가 끝나고 러시아 제국에게 일어날 일은 단순한 총성이 아니었다.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물건이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지난 농노 해방령과 유사할 정도의 핵폭탄이 떨어지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미르 해체로 대표되는 농업 개혁안을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극렬한 찬성과 반대가 공존할 내용으로 가득 찬 물건이었다.
지난 2년 동안의 준비 기간과 그 이전부터 논의되어 온 사항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사회의 근간이 되는 제도에 대한 개혁이 잡음 없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것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개혁안 말입니다…….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아직 기근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전하께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시면서 추진하시는 개혁안이니…….”
목소리는 작았지만, 조금씩 들려오는 말들의 대부분이 걱정 섞인 우려였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이번 개혁안의 총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비테와 그의 보좌관인 스톨리핀을 향했다.
분명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집중된 시선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 둘의 태도는 당당했다.
마치 이번 개혁이 성공할 것이라는 걸 미래에서 보고 온 것처럼 행동하는 두 사람을 보는 이들은 의아했다.
개혁을 시행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막대한 권한을 손에 쥔다는 것도 의미했지만, 만약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얼마든지 꼬리 자르듯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으니까.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들의 의아함은 근위병의 말과 함께 표정 아래로 사라졌다.
그들 또한 귀족이었으며 위정자인 만큼 자신들의 감정을 주군 앞에서 숨기는 것에 익숙했으므로.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모여 있는 이들이 기립함과 동시에 이번 개혁안의 최종 책임자이자 러시아 제국의 후계자인 황태자가 들어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가 장차 국가를 무난하게 운영할 만큼의 능력을 지녔다는 것에 더는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지만, 이런 대규모 개혁을 성공시킬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심을 가진 사람들은 황태자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눈을 피하는 이들을 보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은 앞으로의 러시아 제국을 결정짓는 날이 될 것입니다.”
황태자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자리를 지나쳐 러시아 제국의 상징이 새겨진 단상 뒤로 가더니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히 선언하겠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오늘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다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인내해왔습니다. 유럽에서, 북미에서, 중동에서 그리고 극동에서. 물론 때로는 크림반도에서처럼 실패하기도 하고 또 베를린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정당한 대가를 비열한 수작에 의해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러시아 제국은 더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이 우리가 확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하고 무시하는 사이 우리는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겁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날. 세계는 목격하게 될 겁니다. 곪아가던 환부를 도려내고 상처를 치유한 곰이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 지 그들은 똑똑히 알게 될 것입니다.”
황태자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그를 비추기 시작했다.
일조량이 적기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이었지만, 마치 하늘이 황태자가 연설하는 모습을 더 잘 보기 위해 구름을 치운 것처럼 느껴졌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직도 이번 개혁안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직 국가 내부에 해결되지 않은 위기가 존재하는데도 너무 서두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한 발자국을 옮기려 할 때 두 발자국을 내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부끄럽지만, 아직 저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이 러시아를 비웃을 때 우리가 묵묵히 나아간다면 어느새 저들은 깨달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한 발자국은 자신들의 열 발자국과 버금갈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를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이 유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이들 중 일부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꿰뚫어 보듯 황태자가 연설을 이어나가자 몇몇 이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고개를 들어 정당한 제국의 후계자를 바라봤을 때의 표정에는 망설임이나 의구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개혁에 반항하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어떤 지방에서는 반란마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방해를 가차 없이 분쇄하며 전진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해서가 아닌 그리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곰이 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듯 우리 러시아도 목표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이 여정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들에게 다시금 묻겠습니다.”
여기까지 연설을 진행한 황태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장갑을 벗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차르의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러시아 제국의 고귀한 피, 그리고 앞으로 제국을 바꾸어나갈 최전선의 병사들인 그대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최대한의 노력과 충성을 바치겠는가?”
황태자의 격정적이던 연설이 끝나고 적막이 흐르던 그때 누군가 부르기 시작한 러시아 제국의 국가인 ‘신이시여, 차르를 보우하소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단상에 마치 거상처럼 서 있는 황태자를 향해 손을 내밀며 국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은, 러시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성가대처럼 보이고 있었다.
#작가의 말
사실 주인공이 마지막에 한 연설 내용 중 러시아는 계속 인내해 왔다는 건 사실과 다르긴 합니다 ㅎㅎ;; 러시아가 계속 인내했다면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오늘 마지막에 한 연설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표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앞서 언급된 연해주 지방으로의 한인들의 이주와 관련된 내용은 ‘한민족의 노령 이주사 연구(1863~1917)’라는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무너져 가는 나라와 망한 나라의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잘 나타나 있으니까요.
또 최재형 선생으로 대표되는 러시아계 조선인들의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지원도 한 번쯤 찾아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