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6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66화
1893년 1월 말, 올해도 여전히 농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거기에 무적으로만 보이던 나폴레옹의 대육군(Grande Arm e)를 잡아먹은 추위는 그 명성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이들을 힘들게 하는 주된 요소가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당장 창밖에서 불고 있는 바람만큼이나 강렬하게 전국을 강타한 하나의 발표였다.
기후 이상으로 인해 농사가 실패했어도 재작년에 설립된 구호위원회의 지원은 러시아 전역에서 발생하는 사망자의 수가 평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막고 있었으니까.
이들이 살아가는 마을 또한 작년에 땅에 묻은 주민들의 숫자가 재작년보다 늘어나긴 했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숫자였다.
장례를 치르고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팔 사람조차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으므로 거친 동토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작년은 그럭저럭 살 만한 해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렇게 무난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근을 넘길 수 있었던 것에 황태자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농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비로운 로마노프 황가를 찬양했지만, 올해 1월부터는 여론이 차츰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금년 1월 20일을 기해 미르를 해체하고 그 권한과 책임을 행정구역별 농업 조합으로 넘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이고, 이 무식아! 지금 우리가 소속된 미르를 해체하고 그걸 대신할 새로운 기구를 만든다는 것 아니여! 아니, 잠깐. 미르를 해체한다고?”
여느 때처럼 곡식과 물자를 나누어주기 위해 마을로 온 구호위원회 소속 인원들이 가져온 소식은 러시아 전역에 있는 농민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미르가 해체되고 그 자리를 젬스트보가 기반이 된 정부 소속 농업 조합들이 메꾼다고 했으니까.
그들에게는 지난 시절 알렉산드르 2세가 시행한 농노 해방령에 버금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농노 해방령은 처음에는 열광적인 반응이었으나 후에 그들이 기만당했다는 실망감에 평가가 갈렸지만, 이번 미르 해체령은 처음부터 격렬하게 여론이 나뉘었다는 점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게 분명하네. 미르를 해체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우리가 없어진다면 무슨 수로 농민들을 관리하시려는 건지 모르겠군.”
“그뿐만이 아니네. 안 그래도 요새 공산주의다 인민주의다 하며 헛바람이 들어간 젊은 놈들이 종종 생기는데 우리가 아니면 누가 그 애송이들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겠나. 전하께서 우리가 바치는 충성을 아는지 모르시는지 원…….”
“농지 관리는 또 어떻고! 저 관리 놈들이 농지를 제대로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은가? 보나 마나 뒷돈을 받은 놈한테는 규정보다 많이, 호주머니에 넣어줄 동전 하나 없는 이들에겐 원래라면 받아야 할 만큼 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가정별 사정을 훤히 알고 있지도 않고 담당 마을에 발 한번 들이밀지 않으면서 서류에 도장이나 찍을 치들을 우리보다 더 신뢰하신다는 말씀이신 건가?
게다가 새로운 농업 방식을 보급하겠다니! 아니, 검증도 안 된 방법으로 농사를 짓다가 한해 수확을 다 망치면 그건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이야! 전통적으로 증명이 된 방식으로 밭을 일궈야지 어디서 이상한 것만 배워온 놈들을 어떻게 믿나?”
황태자가 발표한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이들은 지금껏 미르를 운영해 온 장로들과 그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동조하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중장년층들이었다.
미르란 자신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했고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존재했던 그들에게는 자연물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도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미르에 직접적인 이권 관계가 얽혀 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수십 년간 살아온 사회가 갑자기 사라지고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게 달갑지 않았으니까.
반면 이번 조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농업학교를 이수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이들이나 자신이 힘들여 개간한 땅을 미르에 강제로 빼앗긴 경험이 있는 농민들, 어느 정도 먹물을 먹었거나 황태자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게 아니겠냐며 받아들이는 이들도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이번 미르 해체령은 우리 러시아 제국이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저 장로라는 자들이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저들은 족쇄라고 할 수 있다. 옆집 이고르가 농업학교에서 배워온 대로 농사일을 지으려 하자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르르 몰려가 그의 집을 때려 부수고 가족들을 모욕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또 저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땅을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남들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 주도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다시금 땅을 나눠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공평한 배분이라 할 수 있다.”
“나무 쟁기가 아닌 강철 쟁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집을 불태운 이들을 나는 기억한다. 흔히 쓰는 퇴비가 아닌 질산염을 밭에 뿌렸다는 것 때문에 몽둥이찜질을 당한 사람을 나는 기억한다.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우리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농부들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사용하는 물건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하는 저들은 정상이란 말인가? 우리가 곡물 시장에서 미국에 밀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우리는 변해야만 한다!”
“저는 미르 해체니, 조합 설립이니 배운 게 없어 잘 모르겠구. 그저 재작년부터 저희가 배를 곯지 않게 해주신 전하께서 하신다는 일이니께. 그게 맞는 것 같아유.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굶는 일은 없지 않겠슈?”
한가지 장로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재작년 겨울부터 이어진 정부의 모습을 본 농민들이 생각보다 정부의 발표에 동조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기껏해야 한 줌의 소위 머리에 먹물이 물든 놈들이나 미르 해체령에 동의하리라 생각했던 그들로서는 의외로 팽팽하게 갈린 여론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건방지게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아무래도 오늘 네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겠다!”
“구시대의 유물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언제까지 행세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텐가? 몽둥이도 들기 힘들 정도로 노쇠한 이들의 공격 따윈 두렵지 않다.”
이런 양측의 대립은 필연적으로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작년부터 전국에 뿌리내린 구호위원회의 연결망을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간 미르 해체령은 러시아 전역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원래대로라면 각지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겠지만.
삐이익-! 삑-!
“해산해라! 해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에는 미리 배치해 둔 경찰력과 헌병의 존재로 충돌이 일어나는 일은 최대한 막을 수 있었다.
비록 경찰력의 한계로 모든 폭력 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대규모 유혈사태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도 불씨는 자신의 몸집을 키울 땔감을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르의 장로를 맡아 하던 이들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론도 생각보다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으며 국가 권력이 추진하는 일을 그들만의 힘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극단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미르가 해체되고 상황이 이전보다 나아진다면 지금은 우리를 따르는 저놈들의 칼이 언제 우리를 겨눌지 몰라!”
그들로서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기득권을 잃는다는 문제가 아닌 지금까지 자신들이 일반 농민들을 기만해왔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발전과 진보를 중요시하기보다 사회 유지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더 추구한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일놉스키, 네놈은 미르 해체령이 공표되자마자 가장 먼저 미르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 어때, 이제는 좀 후회가 되나? 응?”
“제발 제 가족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십쇼! 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장로님…….”
그들은 밤을 틈타 정부 정책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인 농민들을 린치하거나.
“모두 불태우고 밭은 싹 다 갈아 엎어버려! 감히 전통을 버린 놈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똑히 알 수 있게 해줘라!”
미르가 아닌 정부가 정해준 대로 배분된 농지를 받은 농민들의 집을 불태우거나 보리를 재배하려던 밭을 갈아엎는 등의 폭력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광활한 토지로 인해 공권력은 멀었지만, 이웃집은 가까운 러시아의 특성상 이런 식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다시금 자신들이 국가의 눈을 가리고 마을의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바노비치, 네놈을 방화 및 폭력 그리고 국가 정책에 대한 반역행위로 체포한다. 순순히 따라 나오도록.”
이전에 있었던 일로 황태자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플레베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내무부 부장관에서 오흐라나 국장으로 강등당했지만, 그가 가진 능력은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신출귀몰하던 인민주의자와의 싸움으로 단련된 플레베에게 궁지에 몰려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미르의 장로였던 이들은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감히 전하가 베푼 은혜에도 불구하고 전하가 발표하신 정책과 국가 방향에 송곳니를 드러낸 데다가 적극적으로 사보타주를 한 놈들이다. 체포과정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질 테니 자비를 보이지 말도록!”
이번 일을 앞두고 인민주의자들에 대해 배정된 비밀경찰들마저 농촌을 감시하는 데 돌렸지만, 넓디넓은 러시아 전역을 빈틈없이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플레베는 오흐라나라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한껏 이용하기로 했다.
땅은 거대했지만, 그 땅을 거니는 소문이라는 존재의 속력은 순식간에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에 충분했다.
어디 어디 마을의 장로들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더라, 자신의 가족들에게만 불평을 털어놓은 사람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다는데, 오흐라나 놈들은 10명을 체포하면 그중 5명은 재판에 넘기지도 않고 자기들이 씹어먹는다더라.
과장된 소문이었지만, 플레베는 이런 이미지가 가져오는 공포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을 더욱 부추기고 확산시켰다.
무지한 이들이 퍼뜨리는 소문은 공포를 불러왔고 공포는 그 자체로 물리력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을 들은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농민들이 이탈하자 미르의 장로들이 가진 힘은 나날이 줄어갈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전역에서 불타오를 것만 같던 불씨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감시로 인해 산을 집어삼키는 산불이 아닌 기껏해야 모닥불 정도의 화재만 불러일으키며 사그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체포된 이들은 넘겨진 재판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시포프로 대표되는 젬스트보의 자비를 바랐지만, 그 또한 한낱 희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피고들의 죄질과 행동이 극악한 것을 고려해 피고 전원에게 시베리아 유형을 통한 속죄를 명한다. 그대들은 앞으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비롯한 노동으로써 자신이 지은 죄를 씻어내야 할 것이다.”
황태자 덕분에 젬스키 나찰니크로부터 빼앗겼던 권한의 대부분-재판권과 같은-을 되찾아온 그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며 시포프와 같은 온건 개혁파 또한 철저하게 차르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잡음들에도 불구하고 개혁이라는 이름의 열차는 멈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장애물을 모조리 들이받아 부숴 버릴 기세로.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눈이 녹고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3월 말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작중에 등장한 나무쟁기가 아닌 철쟁기를 사용했다고 린치를 당한 일이나, 장로가 시키는 대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행위를 당한 일은 실제 벌어진 일보다 더 순화해서 표현한 서술입니다.
공동경작과 낙후된 농업 방식의 콜라보는 러시아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큰 장애물이었으니까요.
또 실제 1900년대에 스톨리핀 개혁으로 미르가 해체되자 미르에서 벗어난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 또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