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70)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71화
32장 성전
5월 말 안디잔의 공기는 뜨거웠다.
페르가나 계곡에 위치한 이 도시는 최초의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가 태어난 곳이며 1800년대 코칸드 칸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유서 깊은 장소였다.
안디잔은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기만 한 도시는 아니었다.
동서양의 교류를 상징하던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큰 규모의 도시이기도 했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지만, 여름에는 35도가 넘는 폭염을 나타내는 지역이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처럼 단단해질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바위보다 더 강인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바위는 이 지역에 얼마 내리지 않는 빗물이 틈새로 스며들기라도 하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으니까.
땀을 식히기에는 모자란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에는 토지를 달구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움을 내뿜고 있는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 어느 정도 이동하면 마적 떼가 돌아다닐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이었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일은 특이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사내들의 무리는 무언가 이상했다.
마적 떼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리라기엔 규모가 너무 거대했으며 그렇다고 마적단들이 뭉쳐 대규모 약탈을 벌이기 위해 모인 거라기엔 그들의 무장이 이상할 정도로 통일되어 있었다.
“염병할, 엄청나게 덥군.”
두만은 터번을 쓰고 있음에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분명 더운 날씨지만,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두만이 이 정도 더위에 적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말 고삐를 강하게 움켜진 손, 태연한 척하지만 떨리는 눈동자가 그가 흘리는 땀에는 긴장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엄청난 규모야. 이 정도로 사람들이 모일 줄은 몰랐는데.”
옆에서 이름 모를 사내가 두만이 중얼거린 말을 들었는지 감탄사를 자아냈다. 얼핏 봐도 3,000명은 넘어 보이는 남자들이 말을 타고 한 장소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관이었으니까.
“그만큼 우리의 대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아니겠나.”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둘 사이에 공유되는 무언가가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있었다.
총독은 니콜라이에게 보낸 전문에서 키르기스스탄 지역에서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 판단은 틀린 모양이었다.
군대나 경찰도 아니지만 모여 있는 무장이 통일된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러시아 내에서는 여름에 눈이 오는 일도 정상적인 일의 범주에 들어갈 테니까.
이는 근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낳은 오류였다. 현대처럼 위성 감시나 감시카메라가 없는 시대에서 모든 정보가 사실일 수는 없었다.
부정확한 목격담, 왜곡된 기억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정보원, 정보를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과정에서 유실되는 조각들.
알렉산드르 총독은 분명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이런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오류로 인해 아직 튀르케스탄 총독부는 키르기스스탄에 위치한 안디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니콜라이만이 중앙아시아의 물 밑에서 자라나고 있는 불온한 움직임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 그의 움직임마저도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러시아 제국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만과 얘기를 하던 사내는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걱정이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어오던 지원이 끊겼다고 하던데. 이거 한시라도 빨리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본래라면 저번 주에 이미 인도 북부를 통해 이번 달 분량의 총기나 탄약 등이 넘어왔어야 하지만, 오늘까지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지원을 해주는 주체가 자신들에게 접촉할 뿐 그들에게 접촉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이 무리의 지도층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 일이 생겼다고 추측할 뿐.
“총기야 그렇다 하더라도 식량이나 탄약이 제일 걱정이야. 이 정도 규모의 군대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차라리 자네 말대로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네.”
두만도 걱정 섞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 중 하나인 생산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급이 끊기면 그 자체로 와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당장 최근 나오는 배식을 생각하면 아무리 길어야 한 달이었다. 그것도 주변의 부족으로부터 조금씩이나마 지원을 받는다는 가정하에서 내린 추측이었기에 실제로는 더 짧을 수도 있었다.
우려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두만은 자신의 친우가 생각났다. 젊은 시절에는 같은 길을 달렸지만, 오늘날 자신과는 다른 길을 택한 친구는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박힌 가시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두만을 더 가슴 아프게 하는 점은 자신의 친구처럼 러시아에 협력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현실이었다.
이번 기근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주는 배급에 의존하며 종교도 다른 압제자에 대해 인식을 바꾼 이들에게 총독부가 시키는 대로 목화 농사를 짓자 점점 더 살림이 나아져 간다는 소문은 기꺼이 러시아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아직도 러시아를 믿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부족 간에 충돌도 차츰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말다툼이었지만, 점차 주먹 다툼에서 총알과 화살이 오가는 유혈사태로 발전해나가는 것을 보며 두만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들끼리 싸우는 것이야말로 러시아 제국이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두만은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타고난 통찰력으로 황태자가 한 연설 또한 그들을 분열시키는데 한몫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 지난번에 이루어진 부족 간 모임에서도 황태자의 연설에 대해 의견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을 정도니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것을 생각하면 가증스럽기만 한 니콜라이가 퍼뜨린 독은 중앙아시아에 더 많이 스며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독이 퍼지면 퍼질수록 두만과 같은 이들이 설 자리는 좁아지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일이 자신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기 전 할 수 있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 두만은 이가 악물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언가 성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군사적인 성과! 저들이 그렇게 의존할 만큼 강하지도 않으며 믿음직스럽지도 못하다는 걸 알려야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순간 저들은 우리의 땅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우와 총을 겨누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두만은 각오를 다졌다.
어쩌면 그의 친구도 상황이 바뀌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모두 정숙하도록. 셰이크께서 그대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신다!”
두만의 상념은 들려온 고함에 의해 멈추어졌다. 그들이 이곳에 모이도록 하고 군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자신들에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스피커 같은 물건이 없음에도 수행원이 내지른 고함은 무리 전체에 들릴 정도로 거대했다.
함성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걱정 섞인 말을 주고받던 웅성거림은 빠르게 잦아들었고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조용함이 감돌았다.
간혹 말들이 투레질을 하는 소리를 제외하면 어떠한 소음도 나오지 않는 모습은 그들의 지도자가 얼마나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침묵 속에서 한 사내가 말을 타고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 마달리. 키르기스스탄 말로는 덕치 이샨이라고도 불리곤 했다.
“형제들이여!”
마달리는 추종자들을 한번 둘러본 뒤 소리쳤다.
“우리는 지금껏 저들에 맞서 침묵을 지켜왔다. 예언자를 신으로 모시는 가증스러운 이교도들이 멋대로 초원에 말뚝을 박고 자기들의 땅이라 주장할 때도 침묵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말과 종교를 강요할 때도, 우리 성직자들의 권리를 빼앗아 갈 때도, 저들이 본인들의 법과 규정으로 우리를 심판하겠다 했을 때도 우리는 침묵했다.”
두만은 마른침을 삼켰다. 태양 빛이 강렬해 마달리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제 저들은 같은 종교를 믿는 형제들 사이마저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리 나약해졌단 말인가. 과거 선조들이 잡아다 노예로 팔아넘기던 러시아인들에게 별다른 반항도 하지 않고 굴복할 정도로 우리가 약하단 말인가?
아니. 이제 저들은 그동안 침묵해 온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강함을 확인한 형제들은 다시금 굳건하게 뭉쳐 이교도들에게 대항할 것이다.
형제들이여! 일주일! 일주일 후에 안디잔을 공격해 함락시킨다! 그리고 안디잔을 기점으로 저들은 이 땅의 주인이 누군지 깨닫게 될 것이다! 알라는 위대하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시다!”
/“!الله اکبر”/
/“!الله أكبر”/
계곡 사이로 신은 위대하다는 그들의 외침이 퍼져 나갔다. 성전이 시작된 것이다.
* * *
‘온몸이 쑤시네. 이미지가 뭐라고 하아…….’
나는 절찬리에 출발할 당시 내가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황실 전용 열차 대신 군용 열차를 타고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만큼 황실 열차와 군용 열차를 따로 운용하는 건 비효율적일 테니까요. 게다가 병사들에게 나의 명령대로 러시아 제국의 이름 아래에서 싸우라고 말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 이동이라도 그들과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히 허세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 같네. 내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락함에 젖어 있었나 보군.”
아무도 없는 객실 안이었기에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빠른 병력 투사와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고초를 듣는 황태자라는 이미지를 한 번에 잡기 위해 고집을 부려 군용 열차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내 예상보다 이 시대의 병력 수송 열차는 훨씬 열악했다.
황태자라는 직위상, 일반 병사들이 묵는 객차가 아닌 장교들이 묵는 객차였음에도 딱딱한 침대와 맛없는 식사는 그동안 황궁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 항의를 하기에 충분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 러시아를 잇는 철도인 타슈켄트 선로가 없는 시기였기에 오렌부르크까지만 열차로 이동한 뒤 총독부가 위치한 알마티로의 기나긴 행군을 해야 했지만, 열차에서 내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2일간의 군용 열차 경험은 병사들에게 황태자 전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지만,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오늘 오후면 오렌부르크에 도착한다는 것만이 나에게 위안거리였다. 앞으로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자고 다짐하며 나는 이동 경로를 다시 검토해보기로 했다.
오렌부르크에서 알마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하게 생각해 1달 정도로 예상되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이동이었지만, 러시아 군내에서도 정예인 근위 연대였기에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다만 우리가 이동하는 것은 단순한 행군이 아닌 무력시위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더 오래 걸릴지도 몰랐다.
‘지금이 5월 첫째 주이니 어쩌면 6월 첫째 주는 되야 도착할 수도 있겠군.’
다만 내 시선을 잡아당기는 지점은 행군 경로에서 살짝 어긋난 지점에 위치한 안디잔이라는 도시였다. 그곳은 원래 역사대로라면 1898년 봉기가 일어난 곳이기도 했으니까.
‘안디잔…… 안디잔이라…….’
“전하, 앞으로 한 시간이면 오렌부르크에 도착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지도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는 사이 연대장이 들어와 곧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아, 알려줘서 고맙네. 그런데 연대장 혹시 총독부로 가는 경로에 안디잔을 추가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있나?”
#작가의 말
الله اکبر! : 알라후 아크바르의 아랍어 표기입니다.
두만은 분열시켜 지배해라 편에 등장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