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7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73화
“후방에 적입니다!”
수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은 반란군이 와해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열망이나 러시아에 대한 적대심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이미 예상보다 큰 피해에 놀라 자신의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목표가 거의 손에 들어왔다는 요소가 반란군을 결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았던 목표가 등 뒤의 적 지원군으로 인해 다시금 멀어지자 개인의 집합체인 반란군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포위당했어! 놈들의 숫자는 얼마지?”
“제, 젠장. 고향을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자리를 지켜라! 달라진 건 없다! 안디잔만 함락시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동요에 휩싸인 무리 사이에서 부사관 역할을 하는 이들이 애를 써보았지만, 다양한 씨족에서 온 개인으로 구성된 반란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웃기지 마라! 이미 이번 일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는 걸 모를 줄 알고?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지. 우즈벡 씨족은 나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자!”
“키르기스 씨족은 이쪽이다! 이 방향이 가장 적들이 적은 것 같다!”
거기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모래 먼지와 초연은 러시아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후방에 나타난 규모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적.
이런 요소들은 군대와 군대가 맞붙는 대규모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 반란군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켰다.
그들은 러시아군과의 전투가 아닌 자기가 만들어낸 공포에 무너지고 있었다.
사실 근위 연대 또한 장기간의 행군으로 인한 체력 저하와 대부분이 보병이라는 특성상 혹시라도 반란군들이 하나로 뭉쳐 저항했다면 그들로서도 한 번의 기회라도 노릴 수 있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가정이었다.
지원군이 도착한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안디잔 반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번 사태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고 뒷수습을 하는 여정은 이제야 막이 올랐지만.
* * *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연대장을 불러 휘하 병력에 ‘황태자 전하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으시다더라’라는 등의 소문이 돌지 않도록 하란 명령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에 반란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운이라는 요소가 작용한 일이었다.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과 행운이 결합해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앞으로도 이런 요행만을 바랄 수는 없었다.
불가사의한 힘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지도자가 한 번이라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동안 쌓아왔던 게 모조리 무너져 버릴 게 분명했으니까.
“정말로 전하가 말씀하신 대로 마달리라는 자가 이번 반란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오흐라나의 능력이 대단하긴 하군요. 그런데 정말 전하에게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주님의 축복이나 가호가 내리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까?”
행군 경로를 변경할 당시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밑밥을 깔아놓았지만, 아무래도 연대장은 내가 어떠한 신비한 힘을 가진 게 아닌지 궁금한 눈치였다.
독실한 신자이자 귀족 혈통인 그가 이 정도라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 병사나 민중들이 나를 어떻게 여길지를 생각하니 두통이 올 것 같았다.
“그렇다니까, 자네 지금 내가 한 말을 못 믿는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전하. 아래에서 이상한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허겁지겁 경례를 붙인 뒤 전장의 뒷정리를 하는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연대장을 바라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의 내 행보에 조심성이 부족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오늘이 되도록 그동안 지나치게 미래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을 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어. 하지만 이후로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내 행동으로 역사가 바뀌었다는 걸 명심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늦었다 하더라도 아예 고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백배는 나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 수습할 수 있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않기도 했고.’
오흐라나라는 이름이 두려움의 대상인 것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장교 진을 포함한 대다수 귀족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였으므로.
혹시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라도 오흐라나에게 황태자 전하가 말씀하신 게 사실이냐고 추궁할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오흐라나라는 단체의 이름값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 같았지만, 이런 정보 조직에 적당한 정도의 악명은 오히려 도움이 되는 요소였다.
‘실제로 KGB나 CIA도 자신들이 실제로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가졌다고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을 그냥 놔두기도 했으니까. 단 그들이 내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겠지.’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겉으로 보기에도 훼손된 곳이 많은 20연대 사령부로 말을 몰았다.
사령부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가구나 수레 등으로 얼기설기 쌓아놓은 장애물들이 20연대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저항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연대 사령부는 하나의 거대한 야전병원으로 변해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한구석에 모여 있는 전투에서 사망한 시신들은 이번 전투가 힘겨운 싸움이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전하, 오셨습니까.”
“먼저 상처부터 치료받게나. 보고는 그 이후에 듣도록 하지.”
나를 발견한 20연대장이 어깨에 입은 상처를 치료받던 도중 허겁지겁 다가와 경례를 올리려 하는 것을 제지했다.
아무리 니콜라이의 몸에 익숙해지고 신분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 적응했다고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2배는 많은 사람이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로 경례를 올리는 것에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 노인이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처럼 나를 발견한 병사들이 불편한 몸을 일으켜 예의를 갖추려는 것도 제지하며 나는 연대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란이 끝났다고는 해도 앞으로 이와 관련되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게 분명했으니까.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총기와 관련된 문제점, 반란군에게 협력한 일반 주민들에 대한 처우,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주동자 마달리와 관련된 문제, 주변 지역에서의 민심 동향 등등.
‘게다가 총독에 대해서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조만간 결정해야 하겠군.’
시대적 한계로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총독은 이번 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였다.
어찌 됐건 이 지역의 치안과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으니까.
* * *
상처 치료를 마치고 당장에라도 보고를 올리겠다는 노장에게 ‘푹 쉬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는 명령을 내리고 날이 밝자 임시 집무실로 변한 연대장실에는 나를 비롯한 지휘관급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브레스키 총독도 휘하 병력을 이끌고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전하.”
“알겠습니다. 우선 불리한 형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한 20연대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번 반란이 중앙아시아 전역을 통째로 불태우는 산불이 되지 않도록 한데에는 20연대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에 대한 수훈 및 포상은 조만간 이루어질 겁니다.”
“저는 그저 경계에 실패한 무능한 지휘관일 뿐입니다, 전하. 저 같은 사람 밑에서 자리를 지키며 놀라울 정도의 분투를 보여준 제 부하들에게 어울리는 찬사이십니다. 저에 대한 포상 대신 20연대 병사들에게 내려갈 보상을 더 늘려주시길 간청드립니다.”
노장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의 것이었다.
지휘관 중 대다수가 귀족인 데다가 비록 초기 진압에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도시를 지켜낸 자신을 낮추고 휘하 부하들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은 신선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지요. 다만 그대 자신을 너무 낮추지는 말도록. 자신의 미흡한 점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할 줄 아는 지휘관 또한 귀중한 존재이니까.”
아직 이름도 모르는 노장이었지만, 이후 중요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가전에 있어 그가 보여준 전술은 평범했지만, 기본에 충실한 지휘관이야말로 때에 따라 적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를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며 나는 시선을 돌렸다. 책상 위에는 이번 전투와 관련되어 하룻밤 사이지만 어느 정도 정리한 전훈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병사들을 비롯한 부사관, 현장 지휘관들의 진술이 담겨 있는 귀중한 문서였다.
전투를 수행하는 데 있어 어느 점이 불편했고 어느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이 수록되어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번 전투에서 모신나강 소총의 기능 고장이 자주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보고서를 읽고 있는 내 미간이 찌푸려진 것을 봤는지 근위 연대장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모신나강 소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탄약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장전 및 발사하는 과정에서 탄피가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는 등의 사례가 대다수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탄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 현재 대부분의 탄약이 수입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와 관련된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총기와 탄약의 생산을 외국에 위임한 러시아이기에 해결하기도 쉽지 않았다.
생산 공장이 국내에 위치한다면 나의 권위를 통해 빠른 속도로 개선할 수 있겠지만, 외국에서 외국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공장에도 황태자의 명령이 바로 적용될 수는 없었으니까.
‘이와 관련해선 얼마 전 만나본 자본가들과의 대화가 필요하겠군.’
“또 이것은 지휘관들이 아닌 일반 병사들이 주로 호소한 문제점입니다만, 모신나강에 새겨진 조준기의 숫자가 혼동된다는 문제점입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아르신 단위가 아닌 미터 단위라는 게 원인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와 관련된 교육이 20연대만이 아닌 육군 전체적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소총이 있다고 한들 맞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미터법을 도입한 이후의 과도기였기에 생긴 문제였다.
작년 툴라 조병창에서 명령을 내린 당시에도 군대를 비롯한 사회 전체적으로 미터법과 관련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백만 단위가 넘어가는 육군 전원이 1년 만에 미터법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시간이 좀 더 흐른다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였지만, 수도로 돌아간 후에 미터법 관련 작업도 맡은 비테에게서 단위량 업무는 다른 이로 넘겨야겠다 생각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병목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이번 반란의 주동자인 마달리의 신변은 확보된 겁니까?”
“다행히 전장을 정리하던 병사가 마달리가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죽음을 공표하는 것이 오히려 주변 지역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겠느냐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로 포장되기 좋은 인물이니까요.”
“아니, 그가 사살되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괜히 마달리가 순교자로 여겨질 것을 우려해 죽었다는 사실을 숨긴다면 가짜 디미트리¹처럼 죽은 그가 되살아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일은 확실히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다행히 아직 주변에서 이와 관련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괜히 그가 우리에게 사살되었다는 것을 숨겼다간 마달리라는 이름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러시아 제국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탈출한 신출귀몰의 사나이 마달리!
러시아 제국에 대항하는 데 실패한 마달리의 원한을 갚겠다며 들고일어나는 것에 대한 호응보다는 ‘안디잔에서 탈출한 마달리가 사실은 나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더 열광적인 호응을 보낼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이건 가장 민감한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근위 연대장의 입에서 나올 말이 뭔지 나는 예상할 수 있었다.
“이번 사태에서 저들에게 협력한 주민들에 관련된 사항이겠군.”
어찌 보면 전후처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다루기 힘든 사항이었다.
#작가의 말
가짜 디미트리¹ : 이반 뇌제로 인해 류리크 왕가의 핏줄이 끊긴 혼란 시대에 발생했던 일입니다.
빈 왕좌를 노리고 자신이 이반 뇌제의 막내아들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공작이라 자칭한 3명의 인물들이 등장했던 사건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