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7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76화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새 계절은 완연한 여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름이 되어도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더운 날이 나타나는 일이 드물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냉방기구가 없는 19세기에 그것도 제복류의 옷을 주로 입어야 하는 나는 남들보다 더 더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에어컨, 하다못해 선풍기도 그립네. 내가 다녀온 중앙아시아 지역은 고산지대가 많아 그다지 덥다는 걸 못 느꼈었는데.’
선풍기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은 이미 1831년 알렉산드르 사블루코프라는 러시아의 군인이자 발명가가 만든 후였지만, 집무실의 책상 위에 두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까웠으므로 좀 더 알아보니 영국에서 최근 그보다 발전된 형태의 선풍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물건도 현대의 선풍기처럼 실내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기에 나는 아쉬움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더위가 행정 효율을 비롯한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했기에, 나는 행정 관료들이 피곤을 달랠 수 있는 커피 기계가 있는 공간에 두어대 정도는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나조차도 누릴 수 없는 호사를 행정 관료들은 맘껏 영위하다니 뭔가 잘못됐어.’
여름 궁전에 있는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간마저 없었다면 파업이라도 선언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피서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한 달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 쌓인 안건들은 내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분게가 나를 대신해 업무를 처리했다고는 해도 내게 최종 결정을 맡겨야 할 문제까지도 처리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시 말해 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은 허투루 처리해서는 안 되는 매우 매우 중요한 안건들을 정리한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 바다로 휴가 떠나고 싶다…….
“전하, 무엇을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십니까?”
“아, 별거 아닙니다. 그래서 조만간 제 사촌인 조지가 방문한다는 말이군요.”
현실도피를 하려던 나를 다시금 불러온 이는 아버지 시대부터 외무장관을 역임해 온 니콜라이 게르였다.
벌써 70이 넘은 그는 내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자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 서명을 하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타결 직전까지 온 러불 동맹의 설계자이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럽 국가들에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는 위험한 국가라고만 여겨지던 러시아의 이미지를 대화가 통하는 상대로 상승시킬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기도 했다.
아마 이 사람이 없었다면 단 1~2년 만에 영국과 프랑스와의 관계가 이 정도로 급물살을 탈 수는 없었겠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맞습니다. 전하께서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을 처리하시는 사이 영국에서 발생했던 일들에 대해 러시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그리고 그쪽에서 전하의 사촌이기도 한 조지 왕자를 특사로 보낸다고 하더군요.”
내가 중앙아시아로 내려가기 전 들었던 영국의 사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수습을 하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버킹엄 궁에 계양된 유니언 잭이 끌어내려지고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적기가 올라간다거나 영국 왕실이 캐나다로 도피를 했다거나, 아니면 과거 크롬웰을 연상케 하는 왕의 목을 자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방에서의 소요가 런던에 미칠 정도로 원 역사보다 영국 내의 노동운동이 힘을 얻기는 했지만, 막상 런던에서 일어난 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니까.
아무래도 빅토리아 여왕이 가진 인기와 19세기라는 시대에 윈저 왕실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에 총칼을 들이밀 만큼 영국 내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지는 않은 것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런던에서 진행된 시위는 노동자들이 페더스톤 학살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 요구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육체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전반적인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행진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경찰력을 통한 진압을 고려했던 프림로즈 내각이었으나 자신의 신민들에게 총부리를 또다시 겨눌 생각이냐는 빅토리아 여왕의 반대로 시위대는 버킹엄 궁 근처까지 진출할 수 있었고 집회의 결말은 시위대를 이끄는 대표자와 여왕의 면담으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하니까.
그렇게 자칫하면 영국의 피의 일요일이라 기록될 뻔한 행진은 평화적으로 끝을 맺었다.
프림로즈 내각의 총사퇴와 그로 인해 보수당의 솔즈베리 후작이 다시금 수상으로 취임했다는 결과는 내게 약간 불편함을 안겨주었지만.
솔즈베리 후작보다는 프림로즈 백작의 정치적, 외교적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그를 상대하는 게 더 쉬웠을 테니 말이다.
‘확실히 다른 나라의 군주들에 비해 실권이 작다고는 하나 대영제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으로서 수십 년간 살아온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어. 자신에게 신민들이 품고 있는 감정을 이용해서 저렇게 사태를 수습할 줄이야.’
빅토리아 여왕이 원 역사의 니콜라이 2세와 같은 정치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윈저 왕실은 런던을 떠나 캐나다로 먼 항해를 떠나고 있었겠지.
‘아, 지금은 하노버 왕실이던가?’
그래도 이번 회담에 왕위 계승자인 에드워드 7세의 아들이자 그의 뒤를 이을 조지 왕자를 보내는 걸 보면 영국 내에서도 이번 일을 매우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조지를 보내는 이유에는 러시아가 과거 ‘유럽의 헌병’이라 불릴 정도로 자유주의 운동을 잘 때려잡던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테니까.
내 증조부이신 니콜라이 1세 시절 광범위하게 일어나던 자유주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순식간에 수십만의 병력을 오-헝 지역을 비롯한 유럽에 파견 보내던 것이 채 50년도 안 됐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유럽 왕실들은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이 자신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도 영국만은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지만, 당장 1개월 전 그런 상황을 마주한 지금도 자신들만의 힘으로 모든 인민주의자를 때려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회담에서 영국과 러시아 간 상호 방위 조약을 맺어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시 서로 군대를 파병할 수 있도록 한다. 라는 주제는 나오지 않겠지만.’
영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시점에서 러시아 군대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영토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할 리가 없었으니까.
“아마 이번 회담에서는 그동안 암묵적으로만 존재한 불가침 조약에 관한 얘기가 주로 다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전하께서 추진하신 러시아라는 몸속 안에 있는 독을 빼내어 다른 나라로 보낸 정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올 수 있으니 그에 대해 대비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번에 영국에서 발생한 일에 연루된 러시아인들과 저희는 상관이 없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국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영국과 강경 진압을 한 경찰들이 문제이니까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러시아 제국이 페더스톤 사태와 관련해 연관되었다는 물적, 정황상 증거도 존재하지 않을 텐데요. 오히려 우리가 저들에게 안디잔 반란과 관련된 추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디잔 반란에 영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포로심문을 통한 정황 증거는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화기나 총탄도 영국령 인도에서 생산된 물건들이었으니까.
이런 진술이나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제안한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심문 방법이 기대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나간 전략인 데다가 전문적으로 심문에 대항하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특히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마련이었으니까.
이를 통해 영국에게 물질적 배상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은 취할 수 없겠지만, 차후 진행될 협상에서 저들에게 양보를 끌어내는 정도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명분이었다.
페르시아 지역의 국경선을 설정하는 데 우리 측 의견이 조금 더 반영된다거나, 아니면 홍콩 협상에서 영국이 얻어낸 장강 유역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러시아도 한 발 정도는 걸칠 수 있게 해달라는 제안을 얘기할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었던 성과는 앞으로 영국이 우리 러시아에 대해 헛된 수작을 함부로 부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뒤에서 은밀하게 상대방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유도하는 협잡질을 영국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왔던 저들에게 한 방 먹여준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사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서로 하하 호호하며 등 뒤로는 칼을 꽂으려 하는 행위를 준비하고 이를 들키더라도 도마뱀 꼬리 자르듯 실무진들의 폭주라고 선을 긋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이번 사건에 한해서는 명분적 우위가 우리에게 있었다.
“그와 관련된 전략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빠르게 움직이신 덕분에 자칫하면 확보할 수 없을지도 몰랐던 증거들도 저희가 수집할 수 있었으니까요.”
“좋습니다, 외무장관. 곧 이뤄질 회담에서의 활약도 기대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체결 직전이라고는 하지만, 러불 동맹과 관련해서도 막바지까지 우리 러시아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용무를 끝마친 외무장관이 집무실을 나선 뒤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진행된 개혁 작업의 진척도와 도중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정리한 문서를 살펴보았다.
‘우선 그동안 미르를 통제해 온 이들의 조직적인 반항은 거의 다 분쇄된 상태라. 오흐라나를 비롯한 헌병대들이 잘해준 모양이네. 다만 아직도 대부분의 농민이 새로운 농업 방식과 도구들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라…….’
이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올해의 수확량으로 새로운 농업 방식과 신식 농업 기구들이 좋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해결될 사항이었기에 이는 농업 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노력과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농업 학교에 진학하는 이들은 병역 의무에서 혜택을 받는다는 당근이 잘 맞아 들어가 각지에 새로 설립된 학교의 학생들이 모자라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기에, 그동안 낙후된 상태로 용케 미국과 경쟁하던 러시아의 농업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날은 머지않아 보였다.
‘그때가 된다면 재정을 풍족하게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수출을 한다고 할지라도 농민들이 굶주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
다른 문서는 이번 인디잔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병사들이 호소한 탄 걸림과 같은 탄약 문제에 대해 툴라 조병창에서 개선방안을 마련했다는 내용이었다.
전문적인 공학 지식이 없었기에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 현재 사용되는 탄약의 구조가 문제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탄의 구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었고.
‘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탄약 생산도 러시아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언제까지고 방위의 핵심 요소인 탄약을 수입하는 것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탄약 개선 작업과 연계해 총기 생산과 포탄, 대포와 같은 군사 병기 생산 시설을 러시아 영내에 설립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아직 공업력의 한계로 생산 설비 등은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겠지만, 이것이 실현된다면 먼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1차 세계대전에서 포탄이 없어 탄약고를 지키는 병사를 배치할 필요가 없었던 러시아 제국군의 추태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재정적 지출은 납품을 미끼로 러시아 재벌가들과 분담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개혁 작업에 그다지 차질을 빚지 않으면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얼마가 필요할지는 재정부와 상의를 해야 나오겠지만, 나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돈을 지출하는 데 있어 중국과 일본이라는 든든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