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8)
사마라 시에 존재하는 제분소를 비롯한 곡물 거래소를 시찰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출발한 나는 이전에 만난 이반과 나눈 대화를 회상하고 있었다.
‘정말 나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는가?’
‘전하, 제 처자식을 비롯한 친지들이 이곳에 남아있는 동안 저 혼자 어떻게 편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사실 나도 그가 어떤 대답을 할 지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 또한 같이 가도 된다고 말할 시의 답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그대의 처자식 또한 같이 갈 수 있네.’
‘전하, 저 같은 비천한 존재에게 보여주시는 관대함과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폐하께 간청을 드렸던 다른 사람과 그 친지들마저 데리고 가실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곳에서 묵묵히 전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네. 내 약속하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눈동자에서 감정이 보이지 않던 모습과는 다른 의지에 찬 눈빛으로 나에게 대답하는 이반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을 관리하는 지방감독관에게 경고 섞인 명령을 내리는 것밖에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지금 내가 향하는 곳에서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똑 똑 똑
이런 내 상념을 깬 것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수병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전하, 곧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합니다.”
“알겠네. 알려줘서 고맙군. 준비하도록 하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현재 러시아 제국을 다스리는 로마노프 황실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는 곳, 미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우며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가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곳
그러나 그 한편으로는 저임금 고강도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자 러시아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인 자비로운 차르께 자비를 호소하며 행진하던 인민들에게 따뜻한 빵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신 차디찬 납탄과 중무장한 기병 돌격으로 대답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총칼 보다는 종이와 잉크를 통해 바꾸어 나가야 할 곳이기도 하지.’
지금도 쉴 새 없이 팽창하고자 하는 러시아 제국에는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내실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인민을 얻기 위한 전쟁은 승리할 경우 제국의 자산을 한 번에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소화를 할 준비나 능력도 없이 먹는 음식은 결국 본인에게 고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자 어느샌가 주먹을 쥐고있던 손에서 땀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알렉산드르 3세는 최근 동방에서 자신의 장남이 거둔 성과를 보고 너무나도 기뻤다. 마음 같아선 마주치는 사람마다 ‘최근 동방에서 영국 섬나라 촌놈들과 붙어먹으려는 노란 원숭이 놈들에 한 방 먹였다는 소식 들었소? 그 멋진 한 방을 날린 사내가 바로 내 아들이라오.’라는 자랑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본인이 따로 후계자 교육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아들을 보고 있자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본인의 형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¹가 떠오르곤 했다. 자식들에게 무관심할 정도로 엄격하던 자신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도 높이 평가하고 사랑하던 형, 자신과는 다르게 준비된 군주였던 자
알렉산드로 3세는 형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곤 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던 자신의 즉위를 생각하면 가끔은 그때 레슬링을 하던 형을 말리고 본인이 레슬링을 하다가 부상을 입는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곤 했다.
알렉산드르 3세가 본인의 즉위는 아무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적법한 후계자였던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그의 황제즉위를 달갑게 여긴 이들은 드물었다. 심지어 황실 구성원들마저도 그가 차르라는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이런 일들이 니콜라이가 30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계자 교육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로 제위에 오른 본인이 제대로 이 거대한 제국을 이끌어나갈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그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았을 수도 있었으니까.
자기 자신조차 준비되지 않은 스승의 교육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서 예상치도 못한 성과를 거둔 아들이 귀환했다는 소식은 그런 생각들을 말끔히 날려버릴 만큼 알렉산드르 3세에게 기쁘게 다가왔다. 비록 아들의 몸에 상처를 낸 그 괘씸한 ‘쓰다’라는 놈을 직접 교수대에 올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최근 극동에서 자신들에게 기어오르려는 기미를 보이는 동양의 이교도 놈들에게서 얻어낸 것이 적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식의 성취에 기분이 안 좋을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설사 그 아버지가 밖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을 탄압하고 가차 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자들을 교수대로 보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단독 면담에서 요청할 것이 있다고 했을 때 알렉산드로 3세는 어지간한 것이라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장관 회의²를 주재하길 원한다던가 아니면 최근 점점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느끼는 본인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고 해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자신의 예상밖에 있던 것이었다.
“곡물 수출을 당장 금지하거나 최소한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
“예 아버지. 지금 당장 수출을 금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곡물 수출량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합니다.”
내가 한 말을 들은 알렉산드르 3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곡물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이 러시아 황실 재정과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딘 산업화를 추진함에 있어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내 말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에 닥친 위기는 황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어도 해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만큼 거대했다.
“저는 돌아오는 동안 인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볼가강 유역의 곡창지대와 그 주변 상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냐. 당장 얼마 전에 재무부에서 올라온 보고서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알렉산드르 3세는 내가 한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사실 알렉산드르 3세의 입장에서는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아버지가 받은 보고서에는 농업지역 현지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올해도 세금을 정상적으로 징수할 수 있다는 내용만이 적혀있었을 테니까.
그로 인해 이반이 내게 말했듯 농민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곡물로 낼 수도 없는 세금을 내라는 독촉장을 받게 되었다. 낼 수도 없는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농민들의 귀족들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얘기였고.“지리노프스키가 올린 보고서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아버지 4월까지도 이어진 한파와 비조차 내리지 않는 가뭄으로 인해 이미 농민들 사이에서는 올해 농사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워야만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준비해온 보고서를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매 문장마다 농민들의 애 닳는 호소와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절규가 담겨져 있는 보고서였다. 또한 볼가강 유역에서 이루어지는 곡물 거래의 중심지인 사마라의 관련 종사자들의 증언은 위와 같은 증언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비록 이번 면담만으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다.
“이건…좀 당황스럽구나. 너도 국정을 운영하고 재정을 꾸려나간다는 행위를 즉흥적으로 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으냐?”
“물론입니다. 아버지 그로 인한 재정 적자는 이번에 제가 동방에서 거둔 성과로 충분히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황실의 지출을 조금 줄인다고 해도 저희가 입는 피해는 매우 미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구제받을 인민들은 매우 많지 않겠습니까?”
내가 연거푸 아버지에게 결단을 내려달라 얘기했지만, 알렉산드르 3세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눈치였다.
“크흠…그렇다면 장관 회의²에서 한번 이 문제를 논의해보도록 하자꾸나. 너의 말과 이 보고서대로라면 상황이 심각하니까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내일 열리는 장관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다는 것에 일단 만족하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 부서별 최고 책임자간 협의와 대화로 만들어진 대책이 더 짜임새 있고 구체적일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와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것은 신성종무원장직을 맡고있는 포베도노스체프였다. 그의 어록 중 유명한 것이 ‘사람들이 무언가를 발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일 정도로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길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기에 간단한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나의 입이 열리는 것보다 그의 인사말이 빨랐다.
“전하, 저 멀리 극동에서 벌어진 참담한 일을 듣고 정말 하루도 제외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느님이 차르의 일가를 굽어살피시는 만큼 무탈해보이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순방은 어떠셨는지요?”
“고맙소, 종무원장.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순방이었던 것 같소. 그래, 정말 많은 것을 말이오.”그는 내 말에 숨겨진 의미를 짐작하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전하의 식견과 안목이 넓어지는 것은 우리 러시아 제국의 축복일 것입니다. 이 늙은이에게 이번 순방에 대해 전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과거 나의 가정교사를 한데다가 원래의 니콜라이가 깊게 의지했던 인물인 만큼 내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장광설을 들을 시간이 모자랐다. 사실 들을 시간이 있다하더라도 듣지 않았을테지만.
“미안하지만 내일 아버지와 함께 참석할 장관 회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해서 말이오. 내가 다음에 직접 방문하겠소.”
물론 다음번 만남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벌어질 일은 없었다.
“물론입니다 전하, 국정을 운영하는 경험을 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이 늙은이가 전하의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아니오 종무원장 그대와의 대화는 항상 나에게 새로운 영역에 대한 시각을 넓혀준다오.”
서로간의 다른 마음을 품은 만남을 마무리하고 처소로 돌아간 나는 내가 설득해야 할 각료들에 대해 정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할 인물은 현 재무부 장관인 비슈네그랏스키였다. 원역사에서 중앙정부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8월 중순까지 곡물 수출 금지령에 반대한 인물인 만큼 그를 설득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가 수출 정책이나 균형 잡힌 예산안을 만드는데 타고난 능력을 지닌 능력 있는 경제관료임은 분명하지만 이번 일에서만큼은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 외에도 내무부 장관인 이반 두르누보나 장관 회의 의장직에 올라있는 니콜라이 폰 분게 등도 내가 설득해야 하는 인물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설득해야하는 1순위는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리고 이번 회의는 내가 단순한 황태자가 아닌 이 나라, 러시아 제국을 앞으로 이끌어갈 자격이 있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