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8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81화
35장 러-영 회담
아버지의 어처구니없는 나와 조지를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된 다음 날, 나는 게르 외무장관과 함께 영국 외교 사절단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면 서로 사용하는 달력이 달라 도착하는 날짜가 율리우스력에서는 며칠이 맞는지 한 번 더 검토해야 하는 일이 있었겠지만, 외교문서에 한해서는 그레고리력으로의 표기 통일이 완료된 후였기에 그런 불필요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다.
군악대를 비롯한 환영인파들과 도착한 이들을 호위할 기마대에 둘러싸여 사촌을 기다리고 있자니 자꾸만 지난 밤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앞머리의 후퇴 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아버지야말로 이미 대머리이시지 않던가?
내가 속으로 이미 이마가 반짝거리는 아버지에 대해 구시렁거리고 있자 옆에 있던 게르 외무장관이 내게 속삭였다.
“전하, 긴장하시는 것은 알겠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시지요. 어디까지나 이번 회담에서 우위에 있는 쪽은 우리입니다. 저들의 왕위계승자인 조지 왕자가 직접 온다는 것만으로도 영국의 몸이 달아 있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내가 긴장한 것처럼 보였습니까?”
이번 회담을 맞이하는 내 마음속은 긴장감보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라있었기에 외무장관의 말은 다소 생뚱맞게 느껴졌다.
얼마 전 나와 얘기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번 만남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얘기해 줬는데도 내가 그렇게 긴장한 것처럼 보인 건가?
“전하께서 자꾸 앞머리를 만지작거리시기에 한 말이었습니다. 모처럼 정돈된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건…… 그…… 알겠습니다. 고맙군요, 신경 써줘서.”
“아닙니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만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내가 긴장한 게 아니라는 것을 설명할까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걸 어떻게 설명을 할지도 의문이었고 설사 납득시킨다 하더라도 그 후에 게르 외무장관이 웃음이라도 터뜨린다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았으니까.
웅성웅성.
인파가 소란스러워지는 것과 동시에 저 멀리서 사절단을 태운 기차가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배를 타고 크림반도까지 오는 것이었지만, 러시아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눈으로 보고 싶다는 조지 왕자의 강력한 의견표출로 인해 육로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 외무장관의 설명이었다.
빠바밤♬ 빠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기차가 역에 도착하자 군악대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영국 국가는 아니었지만, 과거 헨델이 당시 왕이던 조지 1세와의 화해를 위해 작곡한 곡인 ‘물 위의 음악’¹이었다.
그리고 열차에서 내린 사절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동원된 군중들이 사전에 연습했던 대로 환영을 위한 플래카드와 자그마한 국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와! 영국 만세! 러시아 제국 만세!”
주변에서 쏟아지는 함성에 조지 왕자를 비롯한 사절단은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약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상 적국 1위이던 사이인 나라의 신민들이 이렇게 나오자 당황했겠지.
‘이것도 철저한 사전 연습의 결과이지만.’
연습 과정을 직접 지켜보지는 않았으나 입은 웃으며 환영의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눈은 공허한 환영단의 모습을 보니 꽤 힘든 과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번 회담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상당히 있을 텐데.’
어제부터 소지품 검사를 비롯한 신변조회를 마친 이들로 구성된 환영단이었지만,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비밀경찰들은 눈을 빛내며 어떤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인민주의자뿐만 아니라 극렬 민족주의자들에게서도 노려지는 입장이었기에 당연한 조치이긴 했지만,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상황 자체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전하, 가시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절단을 맞이해야 하는 내 본분은 다해야 했기에 아직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환호성에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나아갔지만, 내 마음은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 니키!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그러게. 형도 건강하게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야.”
정말 아버지의 말대로 조지 왕자의 이마 형태와 내 이마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 * *
한 가지 내 예상과 다른 점은 게스코인세실 후작이 직접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총리직과 외무장관직을 함께 수행할 그가 오지 못할 정도로 영국의 상황이 불안정한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큰 스크래치를 남긴 환영 행사가 끝나고 리바디아 궁전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바로 회담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사절단이 하루 정도는 쉬고 회담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한 그대들을 환영하는 바이오. 다만, 내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아들이자 후계자인 니콜라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상태이니 이번 회담에 있어도 그의 뜻이 곧 나의 뜻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소.
사절단과 아버지가 만난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들은 그들은 새삼 내가 현재 러시아 제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관련 주제와 연관된 이야기를 넌지시 꺼낼 때마다 전하께서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다며 이리저리 피하던 그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전하, 아까 말씀하신 사항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하, 긴 여정으로 지쳤을 텐데 내일 얘기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푹 쉬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얘기합시다.”
그들이 전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들은 후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뭔지는 대략 짐작이 갔다.
노련한 외교관인 게르 외무장관보다는 내가 더 상대하기 쉽겠다는 판단이겠지.
‘하지만, 어림도 없지.’
사절단에 소속된 이들의 대화 신청을 적절하게 반려한 뒤 나는 저녁 식사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래라면 만찬이 진행되어야 했겠지만, 오늘은 별다른 행사 없이 넘어가자는 의사를 저쪽에 밝힌 만큼 회담 일정이 진행되는 내일부터 열리는 것으로 일정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오늘 내가 참석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는 나와 조지 왕자 그리고 아버지만이 참석하게 되었다.
저쪽 실무진에서 난감한 기색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조지 왕자도 혈연관계 사이에서 대화하는 자리기에 괜찮을 것 같다고 하자 그들로서도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물론 조지에게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아냈겠지만.
“왔느냐, 자리에 앉아라.”
“조금 늦었네, 니키.”
“먼저 다 와 계셨군요. 형님의 수행원들이 어찌나 제게 데이트 신청을 하던지. 그것 때문에 늦었습니다.”
내가 농담 섞인 불평을 얘기하자 조지 왕자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내 후계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인기가 많다니 참으로 걱정스럽구나. 한시라도 빨리 결혼을 해 네 아비와 어미의 쓸데없는 걱정을 해소해 준다면 좋으련만.”
“걱정하지 마시지요. 저는 지극히 정상적인 연애 관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국가와 결혼한 상태이니 현재 아내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농담 섞인 핀잔으로 분위기를 품과 동시에, 시종들이 준비된 요리를 들고 입장하기 시작했기에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지만.
저녁 식사 도중에 이루어진 대화는 사소한 신변잡기가 대부분이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앨버트 빅터 공작에 대한 위로를 건넨다든가, 얼마 전에 테크의 메리와 한 결혼을 축하한다고 얘기한다든지, 여전히 빅토리아 여왕께서는 우리 로마노프 황가에 대해 그다지 좋은 생각을 품고 계시지 않느냐는 등의 이야기였다.
식사가 마무리되어 가자 아버지는 사전에 얘기한 대로 건강을 핑계 삼아 먼저 방으로 돌아가셨고 연회장에는 나와 조지 왕자만이 남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떠나자 조지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품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번에 알릭스가 네게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원 역사에서 나의 아내가 된 헤센의 알릭스가 쓴 편지였다.
그가 쓴웃음을 지은 이유는 세상을 떠난 조지의 형인 앨버트의 첫사랑이 그녀였기 때문이겠지.
“어, 고마워. 형.”
다만 나로서도 조금 당황스러운 편지였다.
지난번에 우리 사이를 조금 생각해봐야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 이후로 서로 간에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으니까.
‘방에 돌아가서 한번 읽어봐야겠네.’
“그나저나 일본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선 들었다. 큰일이 날 뻔했다면서. 잘 회복한 거 같아 다행이네.”
“뭐, 다 하느님의 보살핌 덕분 아니겠어. 형도 어때? 이번 주일에 미사에 참석해 보는 건.”
내 말을 들은 조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미안하지만, 네가 말하는 게 정교회 식 미사라면 정중하게 사양할게. 내 다리가 그렇게 튼튼하지가 못해서.”
“이해해. 사실 나도 일본에서 그런 일을 겪은 뒤로는 미사에 참석하는 게 좀 부담스럽더라고. 그 후로 몸 상태가 예전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거짓말이었다.
“저런…….”
내 말을 들은 조지는 매우 유감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원래의 니콜라이가 독실한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내가 그에 대해 매우 절망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겠지.
“그래도 괜찮아. 하느님을 찬양하는 게 미사만 있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틈틈이 간략하게나마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있으니까.”
“그래도…….”
아직 종교가 삶의 형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조지는 나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런 감정을 품게 하는 게 내가 의도한 바였지만.
“그나저나 나도 최근에 형한테 일어났던 일에 대해 들었어. 정말 끔찍하더라고 신민들이 감히 반기를 들다니. 그나마 잘 마무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야.”
나는 종교 관련 이야기가 길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얼마 전 영국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께서 몸소 나서신 덕분에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었지. 게다가 거기에 모였던 인원들도 자신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어?”
애써 태연한 척하는 조지 왕자였지만, 그의 눈빛 속에 있는 미세한 두려움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평화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도 전례가 없던 일을 경험한 만큼 겁이 났었겠지.
왕궁 앞까지 시위대가 처음으로 진출했다는 것 자체가 그와 비슷한 일이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역치가 낮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가진 이 두려움을 공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싹을 밟아놓는 게 중요해. 그게 내가 짧은 기간이나마 국정을 운영하면서 느낀 몇 가지 중 하나야. 신민들이 자신이 가진 힘을 실감하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흩뜨려 놓는다면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말을 하면서 조지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가진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법에 관해 얘기하는 만큼 큰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좋아, 그러면 미끼를 살살 던져봐야겠군.
#작가의 말
물 위의 음악¹ : 사실 행진곡이 아닌 이 음악이 환영행사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러시아와 영국이 화해하려는 상황에 잘 맞는 음악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