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87)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87화
원 역사에서 오흐라나의 이중 첩자로서 피의 일요일 사건의 배경이 되는 민중들의 행진을 조직한 것으로 유명한 가폰 신부가 이곳, 영국에 와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러-영 협상이 타결되고 영국이 국경 검문을 강화하기 이전 혁명분자들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인민주의자들 조직에 잠입해 있던 오흐라나 소속 요원들 또한 함께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그들이 영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뒤 원대로 복귀했겠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은 이들이 해협을 건너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곳으로 오게 했다.
“우선 저들이 우리 조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한 만큼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다들 돌아가십시오. 조만간 저희 쪽에서 연락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차분히 하지만 오늘 벌어진 일을 기억하며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혈기는 때로 만용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한순간에 지도부가 사라진 조합을 어느 정도 수습한 가폰은 조합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명목은 경찰이 다시금 이곳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그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방금 가폰이 얘기한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조합의 미래를 지금껏 함께해 온 같은 국적의 조합원도 아닌 얼마 전 흘러들어온 신원 불명의 외국인에게 맡겼다는 것은 이상했으니까.
“가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 거야? 본국으로부터의 연락도 끊어진 지 오래인데.”
조합원들이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쑥대밭이 된 사무실에 남아 있는 인원은 가폰과 그의 동료들뿐이었다.
더는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기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 자신을 믿어주던 조합장이 체포되던 그 위치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가폰은 영국으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받았던 명령서를 떠올렸다.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는 인민주의자들의 사이에 숨어 영국 내에 존재하는 노동조합에 잠입한 후 그들의 동태를 살펴 분기별로 보고할 것, 혹시 본국과의 연락이 끊기게 된다면 귀국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할지는 현장의 판단에 맡기겠음.]신부를 꿈꾸며 신학 대학으로 진학을 하려던 자신이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지난 기근 동안 정부에서 나온 보급품들이었다.
날이 갈수록 근심이 깊어져만 가던 아버지와 그에 비례하듯 바닥을 보여가는 식량 창고를 다시금 채워준 것은 차르의 은혜가 담긴 밀과 보리였으니까.
그 일은 가폰이 하늘에서 별다른 대답 없이 자신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신보다 실제로 본인들이 어려울 때 손을 내밀고 응답해 주는 차르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고 해도 임무 수행 3개월도 되지 않아 연락선이 끊어질 줄이야.’
“가폰!”
“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 건지 물었잖아. 조합을 장악한 것까진 좋은데 설마 별다른 계획 없이 행동한 건 아니겠지?”
과거를 회상하던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던 걸까.
가폰은 어느새 저 먼 동토에서부터 함께 온 동료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로 걱정과 의심이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설마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잖아? 얼마 전 체결된 러-영 협상의 결과를 토대로 본국의 행동 방침과 발을 맞춘 거니 염려하지들 말라고. 동지들. 자세한 사항은 오늘 저녁에 설명할 테니 우리도 이만 여길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좋아, 대신 우리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이야기를 준비해야 할 거다.”
이내 가폰을 제외한 러시아인들마저 자리를 떠나자, 을씨년스러운 사무실에 남은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사실 이번에 이 젊은 요원이 행한 공작은 그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에 속해 있었다.
지난 협상에서 영국 내 존재하는 러시아인들의 배후에 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들통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지난 협상에서 나온 내용을 살펴보면 제국 정부는 여전히 영국을 잠재적인 적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중들에게 공개된 협상 결과는 어느 정도 왜곡과 영국 측에 유리하도록 과장되게 서술되어 있었지만, 가폰은 그 속에서 협상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영국 내 머무르면서 혹시라도 나중에 발생할지 모를 전쟁을 대비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오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후방이 불안정하다면 그 자체로 자신의 조국에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이번 도박 수가 성공해서 다행이군. 자칫 잘못했으면 템즈강에 몸을 던져야 했을지도 몰라.’
만약 이번 일이 실패했다면 그와 그의 동지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몸을 뉘어야 했겠지만, 경찰을 이용해 조합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당분간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하고 힘을 길러야 할 시간이었다.
아직 남아 있는 체포된 전 조합장이 임명한 간부들을 차근차근 몰아내고 자신들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본인들의 목적에 맞도록 개조해나가는 과정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게 분명했으니까.
이처럼 러시아인들이 혼란을 틈타 노동조합을 장악한 사례도 존재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지하로 숨어 들어가는 이들에 섞여 함께 몸을 숨기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모든 인원이 가폰처럼 행운과 능력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심장이자 사자를 상징으로 하는 영국 왕실의 심장 속에 숨어든 기생충처럼 러시아가 영국에 퍼뜨린 독은, 언제고 기회만 된다면 다시금 일어나 그들의 내부를 갉아먹을 것이다.
* * *
이번 농업 개혁의 성패를 가를 한 해의 수확량을 확인할 수 있는 가을이 지나고, 러시아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에게 혹독한 계절인 겨울이 돌아왔지만, 각지에서 들어온 보고서를 살펴보는 내 마음은 이전보다 가벼웠다.
“좋습니다. 대부분 지역에서 이전까지 거두었다고 기록된 것보다 조금이나마 증가한 수확량을 거두었군요. 훌륭합니다, 재무장관.”
새로운 농업 기술과 도구에 거부감을 느끼는 농민들로 인해 쉽지는 않았지만, 내 권위를 빌려 조금씩이나마 농업 학교에서 파견된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특히 사마라 지역은 이전과 비교해 무려 1.5배나 되는 수확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지난 시절 전하께서 극동 순방 이후 돌아오는 길에 시찰하셨던 곳이 아닙니까?”
비테의 말을 듣자 나는 당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반이 떠올랐다.
내가 단순히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다 니콜라이의 몸에 빙의된 사람이 아닌 진정한 러시아의 황태자로서 살아가는 계기 중 하나가 된 그는 레닌을 체포하는 데도 막대한 도움을 준 고마운 인물이었다.
그 공을 높이 사 내려주겠다고 하는 포상도 자신이 친구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거절한 그는 여전히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그날 사마라에서 제가 보고 들은 것은 지난 기근을 극복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주었지요. 아무래도 이번 개혁안을 충실히 따른 사마라 지역에 무언가 포상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식의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새로운 농업 방식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정부의 지시를 잘 따른 지역에는 포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널리 퍼뜨린다면 개혁을 진행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제가 마련해 보지요.”
기근이 남긴 상처가 아직 모두 아물지는 않은 데다 아직 겨울 초기였지만, 전국에서 발생하는 아사자 및 동사자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제정 러시아 특유의 통계 누락이나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보고서 수정도 감안을 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점진적으로나마 곡물 수확량을 늘려 나간다면 현재 낮은 곡물가로 인한 재정적 손해를 완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게다가 지금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곡물가가 미국이라는 대형 수출국의 등장으로 인한 국제시장의 충격으로 발생한 것을 생각하면, 머지않아 시장이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곡물 가격으로의 복귀가 예견된 만큼 미래에도 재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에 있는 재벌가들을 격려하고 수출 품목 중 공산품의 비중을 늘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최소 10년 동안은 러시아의 수출 항목 절반 이상이 곡물일 것을 생각하면 농업을 장려하는 일은 단순히 기아를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앞으로 속도를 낼 산업화와 낙후된 공업력을 메꾸기 위한 기계를 수입하는 일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추가로 다행인 점은 비슈넷그라스키 경이 주축이 되어 진행 중인 화폐개혁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절 전하께서 브라노벨 사와 맺은 협정 덕분에 중앙은행에 예치시킬 금을 확보하는 일이 수월했으니까요.”
금본위제로의 편입을 위한 화폐개혁이었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행될 화폐에 대해 지급을 보증하기 위한 금의 확보였다.
다행히 지난 수십 년간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모아왔던 금과 일본과 중국과 같은 친구들로부터 받은 선물, 그리고 세계 제1위의 원유 수출을 자랑하는 브라노벨과의 연대를 통해 원 역사보다 빠르게 이를 위한 현물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금본위제로의 편입이 단순한 화폐개혁이 아닌 국제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루블화에 대한 인식 재고와도 연관이 된 만큼 매우 중요했는데 다행히 별다른 물가 상승과 같은 부작용 없이 완료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맡은 바 일을 완수해 내는 관료들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비슈넷그라스키 경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리 열정적으로 일을 수행해주다니 이번 일이 끝나면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군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올해가 끝나는 대로 그동안 애써준 비슈넷그라스키와 분게는 퇴직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비테의 눈에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어림도 없지.
그는 앞으로도 나와 함께 최소 20년은 더 일해주어야 할 운명이었다.
억울하면 능력이라도 없으시던가.
“크흠, 그리고 지난 시절 기근으로 인해 공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도 다시금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전하께서 말씀하신 바이칼 호 노선과 관련해서는 스위스에서 초빙한 기술진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계획을 수립하는 중입니다. 아마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늦어도 내년 가을까지는 바이칼 호까지의 노선은 완공이 될 것 같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시베리아 철도를 완공하는 데 있어 시간뿐만 아니라 예산이 증가하는 데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던 구간이었다.
하지만, 관련 해결책을 제시한 덕분에 원래보다 이른 시일 내에 단선으로나마 개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종무원장과 잘 연계해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지난번에 제가 말한 민간 부분을 통한 조선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시점에서 한반도는 운 좋게 열강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중립지대로 여겨지고 있는 장소였다.
원래라면 일본과 청나라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무대로 사용되었겠지만, 지금 두 나라는 제 앞가림을 하기도 버거운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다른 유럽 열강들 또한 청나라와 일본으로부터 얻어낸 과실을 소화하고 있는 와중에 옆에 위치한, 그들이 생각하기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