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9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92화
37장 미래를 위한 안배
사박사박.
함경도의 겨울은 추웠다. 한반도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하며 백두산을 품고 있는 땅의 기후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 날씨만 이들이 살아가는 것을 힘들게 하겠는가.
‘함경도에 살아가는 놈들은 죄다 범죄자들의 후손이라더라’, ‘함경도에 한 번 들어가면 백골이 진토가 되더라도 못 나온다더라’ 같은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보내는 차별적인 시선과 소문도 그들에게 차가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오늘 처음 본 청년의 말을 믿고 눈 덮인 길 위를 걸어가는 이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차디찬 곳이었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가는 그들의 피부에 닿는 공기는 더욱 차가워져 갔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씨는 점점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50여 명 되는 사람들의 앞에 앞장서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최재형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길 위를 걷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코흘리개 시절 가족들의 손을 잡고 이 땅을 떠나 러시아라는 나라로 이주한 그에게 조선은 낯선 나라였다.
그가 처음에 연해주 지방의 조선인들을 규합하고 조직했던 이유에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을 돕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단체라는 힘을 빌려 더 잘 먹고 잘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으니까.
교토 협약과 홍콩 협약으로 인한 경제 특수에 힘입어 젊은 나이에 연해주 지방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부로 성장한 그였다.
그러나 최재형 본인도 한인 공동체와 관련된 일을 하면 할수록 차츰 욕망을 넘어 동정심으로,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것에서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고향을 떠나 이 먼 곳까지 흘러들어온 동포들이 배 안 곯고 등 따시게 지낼 수 있게 해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바다에서 떨어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목축업을 통한 군납을, 바다나 강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연어와 같은 어업과 농업을 통한 군납을 권유한 것도 그의 일환이었다.
그런 최재형의 행보를 주의 깊게 보던 종무원장이 그에게 조선인 공동체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겼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출세를 했다는 기쁨만이 감돌았으니까.
-나리가 아니셨더라면 저희는 꼼짝없이 굶어 죽었을 겁니다.
-아직도 조선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저희는 다행히 하루 세끼라도 꼬박꼬박 먹는 데다 바람 안 통하는 집에서 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하지만 본인의 도움으로 정착을 하는 것에 성공한 이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최재형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단순한 업무가 아닌 사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에 쐐기를 박은 것은 다름 아닌 종무원장과의 면담이었다.
종무원장의 제자라 소개한 이와 동승한 자리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최재형이 지금껏 느끼던 게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거친 황야에서 갈 곳을 찾아 헤매는 양 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목자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물 아니겠는가. 비록 나는 나 자신이 그러한 목자인 줄 알고 살아온 오만의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자네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본인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나. 그것이야말로 주님이 사람들의 양심을 빌려 하는 말씀이실 테니.
공동체 지도자라는 임시 직책을 수여 받기 위해 간 자리에서 만난 종무원장의 이야기는 최재형이 본인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리, 이제 조만간 국경검문소가 나올 텐데 정말 괜찮을 겁니까?”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미 다 이야기가 된 사항입니다. 여러분은 합법적으로 저와 계약을 맺고 함경도에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러시아 영주권자들입니다. 혹시라도 국경을 넘는 와중에 체포가 될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막상 이곳까지 따라는 왔지만,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자기가 살던 마을에서 떠나는 것을 금한 국법의 지엄함을 걱정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최재형의 자신을 믿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대열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평생을 살아오던 마을을 떠나 다른 지역도 아닌 다른 나라로, 그것도 생김새나마 비슷한 청나라나 일본도 아닌 코쟁이들이 살아가는 러시아로 간다는 사실도 그들의 불안함을 더하는 모양이었다.
“이봐, 김 씨. 참말로 별문제 없는 거겠지? 만약에라도 국경을 넘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렇게 된다면 아까처럼 주먹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네.”
“자네가 그렇게 허락해 주지 않더라도 내 당연히 그리할 생각이었네.”
오른쪽 눈 부위에 시퍼렇게 든 멍을 문지르며 대답하는 판석과 그에게 아직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개똥이의 대화를 들은 일행들 사이로 웃음이 퍼져 나갔지만, 여전히 가벼운 긴장감은 남아 있었다.
“근데 참말로 이번 겨울 동안에는 가구당 장정 한 사람만 보내도 되는 게 맞겠지? 그, 무슨 공사라고 했더라?”
“시베리아 횡단 철도 공사 말하는 건가?”
“그래, 그거! 1년도 아니고 이번 겨울 동안만 하면 되는 게 확실하겠지?”
“계약상으로는 그게 맞네. 만약 겨울이 지나도 자신은 농사보다 이 일이 더 적성에 맞다고 하는 이들에 한해서는 계약을 연장하겠지만. 그리고 자네들이 가게 될 지역은 저 멀리 시베리아 한복판이 아니고 바이칼 호라는 큰 호수 옆에 지어지고 있는 현장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맞습니다. 그리고 가구의 유일한 성인 남성이 공사를 하게 되어 그동안 가족은 누가 돌봐주는지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분들도 그 기간동안은 저를 비롯한 조선인 공동체와 연해주 지방 정부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쓸 테니까요.”
판석과 개똥의 대화에 끼어든 최재형이 다시 한번 그들에게 했던 약속을 상기시켜 주자 일행 사이에 감돌던 걱정과 긴장감이 한층 더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말도 없이 발끝만 바라보며 걸어오던 사람들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쪽 나라 사람들은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도 궁금하네. 쌀농사가 어렵다고 하니 이제 떡 구경은 다했구만!”
“허이고, 떡은커녕 피죽도 못 먹던 양반이 입은 살았네. 우리가 떡 구경을 한 게 언젠지는 알고 하시는 말이요?”
“아니, 이놈의 여편네가! 하늘 같은 서방님이 하시는 말씀이면 그런 갑다 해야지. 이런 식으로 나오기야?”
“하이고, 서방님. 쇤네가 잘못했습니다요. 오늘 밤 몸으로 사죄드릴 테니 한 번만 봐주시지요.”
“엄마, 나 오늘 동생 생기는 거야?”
하하하.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아이가 내뱉은 말에 사람들이 웃는 것을 지켜보던 최재형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일행을 지켜보던 그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국경의 검문소를 바라봤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가 사라져 있었지만.
‘이렇게 자기 나라의 국민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과연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충분히 느꼈지만, 하다못해 저 부패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이씨 왕조라도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선을 건국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차르시여, 우리를 굽어살펴 주소서.’
어린 시절부터 조선을 떠나 러시아에서 자라난 그였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조선이라는 나라와 이씨 왕조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살아온 조선 민중들이 최재형의 이런 생각을 들었다면 경을 쳤으리라.
그러나 러시아로 넘어와 살아가는 유민들의 머릿속에서는 차츰 조선이라는 나라가 본인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싹터가고 있었다.
자신들이 태어난 땅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껏 빼앗아가기만 한 조선보다 본인들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해 주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준 러시아가 더 나은 게 아닌가?
아직은 조선에서 살다 온 이민 1세들이 대다수인 만큼, 자신들처럼 러시아로 넘어온 이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아직도 조선에 남아 있는 친지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넘어오라는 이야기를 할 뿐인 지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의 인식이 바뀌고 조선인이라는 인식보다 러시아인이라는 인식이 큰 2세들이 나타날 경우 어떻게 될지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급변이나 조선의 수뇌부가 넣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자책골로 최재형이 생각하는 일이 생각보다 일찍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 * *
얼마 전 있었던 모신 소총 개량형에 대한 평가와 기관총의 위력을 보여주는 시연 자리가 끝난 후, 그날 나온 이야기들이 단발성에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반노프스키 장군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각 연대, 사단, 군 사령부별로 나뉘어 있는 명령계통으로 인한 중앙에서의 지시사항 전파의 어려움과 또 그 와중에 계급체계마저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코사크 기병들에 대한 통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진행한 러시아 육군 내 화력 교리 연구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이를 위해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을 쪼개고 쪼개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배정한 그의 능력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반노프스키 장군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적어도 행정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선 그에게 찬사를 보내야겠군요.
남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은 비테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제국군 내에서 화력전 교리가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낡은 교리에 대한 신봉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화력전을 실현하기 위해선 포탄 생산 능력과 같은 산업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산업 능력은 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 있다.]애써 만든 화력 교리 연구소에서 나온 첫 보고서의 내용이었다.
‘그나마 앞으로 10년 내로 우리 군이 요구하는 수준의 화력전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없어서 다행이군.’
러시아에 존재하는 재벌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군납이라는 고깃덩이에 달려들고 있었기에 앞서 언급된 것만큼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리라 예상되고 있었다.
국가 간 전면전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다른 나라로부터 포탄과 총알을 수입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내 행보가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생각하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려하면서 놀고먹는 궁중 생활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도무지 이놈의 일은 해도 해도 줄어들지를 않고 있었으니까.
“전하, 외무장관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도록 하세요.”
그래서였을까. 게르 외무장관에게 말하는 내 어조가 날카로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소모하면 안 되는데.
“미안합니다, 외무장관. 요즘 좀 짜증 나는 일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전하. 다만 오늘 제가 전해 드리는 편지가 전하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염려되는군요. 이전에 전하께서 언급하시기도 한 조선에 상주 중인 베베르 공사로부터의 전보입니다. 조선의 왕이 전하께 보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