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9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98화
이제 무색무취의 하얀색보다는 생명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녹색이 눈에 들어오는 4월이었다.
몇몇 음지에서는 아직도 눈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양 남아 있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세상을 집어삼킬 듯 내리고 온 대지를 뒤덮을 것처럼 쌓이던 눈도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은 자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도시인 모스크바의 거리는 평상시와 같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도구를 사러 상경한 농부, 공장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노동자, 구두닦이 소년과 같은 빈민층의 소년, 그런 소년에게 동전 몇 개를 던져주는 신사.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끼어든 모양이었다.
“압제자는 물러가라! 러시아의 인민들이여 속지 말아라! 눈을 뜨고 진실을 목격하라!”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당국으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인쇄물을 뿌려대기 시작한 사람들이었지만, 주변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저놈들 또 시작이군.”
“아이 씨, 늦었는데. 이 자식아! 저리 비켜!”
-삐이익! 삑!
“차르의 개다!”
오래 지나지 않아 경찰이 그들을 잡기 위해 나타나자 자신들이 나왔던 골목길로 모습을 감춘 이들이었지만, 이들이 남기고 간 인쇄물은 땅 위에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슬프게도 이 인쇄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집에 있는 낡은 난로에 쓸 불쏘시개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진 듯한 소년 몇몇만이 더러워져 가는 인쇄물을 줍고 있었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글을 읽을 능력이 없는 이들은 둘째 치더라도 문해력을 갖춘 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약간 들여다보는 듯싶다가도 이내 코웃음 치기 일쑤였다.
“하, 황태자는 언론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자유로운 보도환경을 조성하라니. 이미 전하께서 검열의 기준을 대폭 낮추셨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군.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마지막으로 인쇄물에 관심을 가진 청년마저 자리를 떠나자, 길거리는 다시 평상시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밑에, 이제는 글씨도 못 알아볼 정도로 더러워진 종이 쪼가리만이 방금 무언가 소란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 시절 황태자인 니콜라이의 집요한 탄압과 추적 그리고 회유는 인민주의자들이 지금껏 경험했던 것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마주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3세의 치하 아래에서의 그 모진 세월도 견뎌냈던 그들이지만, 니콜라이가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하자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교수형, 총살형, 유배형에도 굴하지 않던 그들이 와해되기 시작한 것은 조직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인민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렸으며 압제자들의 프로파간다에 속아 넘어간 이들이 우리를 적의 아가리로 쳐넣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차라리 이미 우리 형제들이 먼저 가서 기반을 다져놓은 영국으로 떠나겠다.”
원래 무지몽매한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은 오매불망 차르의 자비만을 바라는 상태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젬스트보로 대표되는 지식인들마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에 실망감을 느낀 인민주의자들 중 일부는 차라리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게다가 정부가 이를 묵인하고 때로는 마치 망명을 장려하는 양 길을 열어주는 등의 행동을 보이자 이 길을 택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이것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인민주의자들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이 외에도 더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화적인 운동이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 강경노선으로 운동 방향을 바꿨지만, 그 결과가 어떤가? 차르 한 명 죽인 것에 지나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그 성과가 적의 수뇌부를 사살했으니 매우 큰 것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달라진 게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던 대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서로 피로 피를 씻어내는 광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언론에 대한 검열 완화와 우리가 추구하던 인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황태자가 권력을 잡은 후에 일어난 것이지 않은가?”
조직 내에서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의 숫자는 매우 적었지만, 과거와 비교하자면 어마어마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0과 1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숫자를 곱했을 경우 무엇이든 삼켜 버리는 0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1이었으니까.
또 니콜라이가 시행한 사회 유화 정책 또한 조직 내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게 만들고 있었다.
앞서 이름 모를 청년이 언급했듯 지금까지는 검열만이 존재했던 언론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톨스토이 백작을 중심으로 한 정부에 대한 가벼운 비판이 담긴 신문이 출판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거리에서 판매되고 있었으며, 지금까지는 금기에 가까웠던 황태자와 같은 황실 인물에 대한 비판도 허용되고 있었다.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식자층에게는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변화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낯뜨거운 찬양만이 존재하던 지면에 시행 중인 정책에 대한 비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이는 시대를 앞서나간 황태자의 교묘한 언론 통제 정책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겉으로는 정부에 대한 비판기사를 실은 대다수의 신문사가 뒤로는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에 재정을 의존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경제적 목줄을 쥔 대상을 향해 이를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론의 비판은 용인하되 그 기사를 지면에 싣기 위해선 따라야 할 방침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시행 중인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먼저 싣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추가한 뒤, 기사의 마지막은 정책을 옹호하는 의견으로 기사를 마무리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시대를 앞서나간 언론 장악 방식이었다.
이러한 샌드위치 식 보도방침은 기사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부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보도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교묘한 방법으로 자유를 주는 듯싶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사를 읽는 사람들 스스로가 검열을 하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세련된 언론 장악은 지식인 계층으로 하여금 지하조직이 뿌리는 인쇄물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하며 때로는 할 말도 하는 제도권 언론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투박한 종이에 거친 방식으로 인쇄된 자극적인 언어의 향연보다는 질 좋은 종이에 보기 좋은 방식으로 교양인의 언어를 통해 나열된 신문이 보기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이런 식의 완화 정책은 인민주의자들 중에서 차라리 지금과 같은 폭력투쟁 노선을 고집하기보다 제도권 내로 들어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품은 이들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들과 지금과 같은 노선만이 정답이라 여기는 두 그룹 사이의 충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적이었던 사람들보다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증오스럽게 느껴졌으니까.
다만 유화적인 노선에 매력을 느낀 이들의 숫자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현저히 적었기에 뒤이어 발생한 일은 충돌이라기보단 내부 노선 정리 및 숙청에 가까웠다.
“도네긴, 인민을 배신하고 적들의 선동에 넘어가 우리를 배반하려 한 죄.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탕!
모스크바를 비롯한 인민주의자들이 남아 있는 도시의 뒷골목에서는 신원불명의 시신들이 발견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피의 숙청을 피해 달아난 운 좋은 몇몇은 젬스트보의 문을 두드리거나 경찰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안전을 보장받는 등의 행운을 누렸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모든 도시에는 우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라고 자부할 수 있던 인민주의자들의 세력은 극렬주의자들만이 남은 한 줌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도시 노동자로 대표되는 잠재적인 지지층의 이탈이었다.
낮은 곡물 가격은 러시아의 수출 정책과 농가의 사정을 어렵게 했지만, 낮은 봉급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적은 돈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브라노벨이 주축이 된 노동개혁위원회에서 내놓은 법적인 점심시간 보장과 노동자들의 시급을 기준으로 한 점심 식사 준비 비용 산정 및 제공 정책은, 노동자들이 따로 돈을 들여 노동 시간 중에 식사를 틈틈이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주었다.
악덕 업주들의 경우에는 싸구려 재료로만 식사를 준비해 장부상으로는 제대로 된 재료를 구매한 것처럼 기입하고 차익을 착복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로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해 재무부와 노동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단속을 실시했지만, 정책의 빈틈을 찾아내려는 창과 이를 막아내려는 방패의 대결은 대부분 창의 승리로 끝나기 마련이었으니까.
다만 이런 노력에 힘입어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이 점차 개선되어가자 그들도 과격하기만 한 인민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시작했다.
자고로 배가 부를수록 사회에 대한 불만은 적어지는 게 당연했다.
기본적으로 도시 노동자들 또한 농촌에서 살길을 찾아 상경한 이들이 대다수였기에 가지고 있는 정치 성향이 친정부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인민주의자들은 현시점에서 유일한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집단으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인민들의 외침이다! 이 개자식들아!”
쾅!
“꺄아아악! 내 아들! 안 돼에에에!”
점차 자신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자, 아직 남아 있던 극단주의자들은 경찰서나 우체국에 대한 폭탄테러 등으로 존재를 과시하려 했지만, 이는 역효과만을 불러왔다.
폭탄에는 눈이 없는 만큼 그들이 목표로 삼은 이들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마저도 희생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빨간 벽돌집 뒤에 있는 파란 지붕 건물 2층에 놈들이 숨어 있다는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무차별 테러로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알려주듯, 여태껏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던 시민들도 극단주의자들의 은신처를 경찰에 밀고하는 등, 인민주의자들은 점점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니콜라이의 정책에 힘입어 내부의 제일 큰 골칫거리로 보이던 인민주의자들이 사라져갔지만, 정작 그 성과에 가장 기뻐해야 할 황태자는 별다른 기쁨의 표시를 나타내지 않았다.
인민주의자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보아라! 황태자 전하께서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내신 눈부신 성과를! 이것이야말로 우리 슬라브 민족이 신의 선택을 받은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이교도들의 압제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포들이 남아 있으니 우리는 같은 신앙과 혈통을 공유하는 형제로서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야흐로 범슬라브주의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자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