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1)
제1화
1화
방년 23세, 남자, 한정현.
내 인생은 개같이 멸망했다.
10살 되던 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거?
그래, 조금 슬펐지만 이해할 만했다.
무작위로 열리는 게이트와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
그 새끼들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인데 이런 걸로 징징댈 마음은 없다.
그 뒤로 한 푼 두 푼 모으고 3억의 빚까지 져 가며 마나 주입 시술을 받은 거?
괜찮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 높은 가격의 시술을 받으면 받았지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술을 받은 것도 벌써 2년이 지난 이야기.
인생을 걸다 못해 고액의 빚까지 져 가며 시술을 받았으면 적어도,
‘각성은 시켜 줘야 할 거 아니냐!’
작업대에 산처럼 쌓인 고블린의 사체에 도축용 칼을 푹 찔러 넣으며 소리쳤다.
나는 아직도 각성하지 못했다.
***
“안녕하세요, 아저씨들!”
“어어, 그려. 어서 오고.”
정현은 오래되어 기괴한 소리를 내지 않고선 열리지 않는 작업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활기차게 인사했다.
이미 출근해서 커피 한 잔씩을 나누고 있던 인부들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작업장 내부에서 정현의 평판은 좋은 편이다.
젊은 나이에 몬스터의 사체를 처리하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과거 시체닦이나 특수 청소 알바에 비하면 될까.
몬스터 특유의 악취는 한번 배면 아무리 옷을 갈아입어도, 씻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인부들도 작업장에 들어올 때면 인상을 사정없이 찌푸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정현은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출근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했다.
그 시간이 벌써 2년.
호기롭게 덤벼들었다가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젊은이들을 숱하고 보아 온 인부들이 정현을 좋지 않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현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지나가면,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씁쓸하게 변했다.
“쯧쯧, 쟤도 인생이 참 불쌍하지.”
“그러게 말이야. 빚이 얼마?”
“3억이었는데, 지금은 2억.”
아직 인생이 채 꽃피지도 않은 청년이 짊어지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액수였다.
과거 가상화폐에 인생을 걸었던 세대가 있었던 것처럼, 현재는 헌터가 될 수 있는 마나 주입 시술에 영혼을 끌어모으는 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어릴 적 고아가 된 정현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인부들이었지만, 그래도 걱정 반 한심함 반으로 이루어진 말을 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빚을 져 가면서 도박한 거나 다름 없지.”
“확률이 30%? 어휴, 나는 상상도 못 해.”
“어허, 정현이 듣겠다.”
아직 가까이 있는 정현을 의식한 한마디에 헛기침을 뱉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
그러나 들리지 않았을 리 없다.
티끌 한 점 없이 웃던 정현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이윽고 풀어지낟.
지난 2년 동안 지겹게 들어 왔던 이야기였음에도 아직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남 일이면 무슨 말이든 못 해.’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모두들 자기 삶이 가장 힘든 법이었고, 그만큼 다른 이들의 삶은 몰이해로 점철되는 법이다.
달리 말하자면 정현에게는 정현의 사정이 있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빚까지 져 가며 시술을 받아야만 했던 사정이.
대격변이라고 칭해지는 날 이후, 세계가 게임처럼 변했다.
게이트가 있고, 몬스터가 있고, 헌터가 있다.
다만 이 세계는 현실이기에 지금은 게임이 아니라 지옥이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게임 같을 수도 있겠다.
몬스터 부산물 사업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나, 지옥을 게임처럼 살아갈 힘을 가진 헌터들에게는 말이다.
그들은 오히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돈을 끌어모으며 호의호식한다.
자신의 모든 것, 그 이상을 마나 주입 시술에 쏟아붓는 사람들 중 태반은 그런 삶을 꿈꾸는 부류일 것이다.
그러나 정현은 조금 달랐다.
‘강해져야 했는데.’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 작업용 칼을 쥔 정현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정현의 부모님은 게이트가 처음 생성되던 무렵에 오크에게 죽었다.
어릴 적 정현의 눈에 녹슨 도끼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내리치는 오크는 지상 최악의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어린 정현의 모든 것이었던 부모님의 머리마저 같은 방식으로 깨어 버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쿠이익!”
오크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고 있던 정현마저 죽여 버리기 위해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죽은 것은 정현이 아닌 오크였다.
“꼬마야, 괜찮니?”
정현의 눈앞에 단단히 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헌터.
그는 오크가 부모님을 죽인 것만큼이나 손쉽게 오크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싿.
그는 강했다.
정현의 마옴슥오세 강함과 헌터에 대한 동경이 싹튼 것은 그때였다.
마나 주입 시술이 허용되는 나이인 21살이 되던 해.
정현은 사회 초년생의 신용등급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대출금 3억과 그동안 몬스터 도축업을 하며 아등바등 모은 돈 5천만 원을 더해 마나 주입 시술을 받았다.
그리 높은 등급의 마나는 아니었지만 정현이 노릴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에 베팅한 것이다.
결과가 간절함과 노력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떄였다.
‘그딴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리고 그렇게 주입 시술을 받은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시술이 각성으로 이어질 확률은 대략 30%로 집계된다.
그러나 이 30%는 어디까지나 시술 이후 1년 내의 이야기다.
시술 이후 1주일부터 1년 남짓까지 각성자의 분포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그 이후에 각성이 보고된 케이스는 없다.
그 누구도, 시술 1년 이후에는 각성하지 못했다.
시술을 받고도 각성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냐고?
‘고블린 배때지나 찌르고 있어야지 뭐.’
정현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작업대에 놓인 고블린의 배와 가슴 사이를 찌른다.
이미 피를 다 뺀 상태였기에 보란색 피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방치된 내장의 냄새도 만만찮았다.
몇 번을 맡아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악취가 더욱 강해져싿.
정현은 이를 악물었다.
제아무리 마나를 주입받았다고 하더라도 각성하지 못하면 일반인이다.
시술 전 별다른 비전도 없었던 데다가 고액의 빚만 끼고 있다?
최악의 작업 환경 덕에 기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수당을 잘 챙겨 주는 몬스터 부산물 처리 노동자가 되는 수밖에.
그게 지금 정현의 상황이다.
아무리 취급이 좋지 않은 부산물 처리 노동자라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빚은 한가득인데 비위가 좋지 않아 이런 일조차 하지 못했다면 정말 중년에 이르기까지 빚만 갚고 있어야 할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히 정현은 무감각한 편이었다.
마나 주입 시술을 받고 각성을 기다리는 동안 작업장에서 일하며, 그의 뒤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정현 씨는 이런 거 잘하는 거 보면 헌터가 천직이긴 한가 봐?”
“나중에 각성해도 우리 모르는 척하지 말라고!”
그때만 해도 그들은 순수하게 응원해 주었고, 그만큼 정현도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2년이 지난 지금은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헌터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실례가 된다는 듯 정현의 앞에서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피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평범하게 기다릴 걸 그랬다.
정현은 후회했다.
헌터가 되겠답시고 그처럼 덜컥 작업장에 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시술을 받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차피 곧 각성할 텐데 뭐 하러.’
시술 이후 각성자 중 절반은 일주일 이내에 특성을 받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곧 각성할 텐데 왜 그런 힘든 일에 뛰어드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정현이 부산물 작업장에서 일하기로 한 데에는 생계 유지를 제외하고도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사체들을 도축하다 보면 비록 죽은 몬스터지만 지식이 쌓이지 않을까.
일반적인 작업장에서 만질 수 있는 시체라고 해 봐야 고블린이나 스켈레톤, 잘나가도 오크 정도지만 그게 어딘가.
정현이 각성하고 처음 만날 몬스터도 십중팔구는 그것들일 텐데.
보육원에서 나온 뒤 3년 조금 넘게 작업장에서 일하며 얻은 나름의 성과도 있어싿.
‘고블린의 명치는 사람과 위치가 미묘하게 다르지.’
고블린의 경우에 늑골이 인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길다.
따라서 인간 기준으로 명치를 지르기 위해 칼을 들이대면 가슴벼에 막혀 버리고 만다.
예상보다 한 뼘쯤 아래, 그것도 날을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질러야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스켈레톤은 망치로 깰 곳을 잘 찾아야 하고.’
대부분 스켈레톤은 따로 처리가 필요 없을 만큼 헌터들이 잘 부숴서 보내지만 가끔 두개골이 멀쩡하게 오는 경우가 있다.
듣기로는, 마법사의 공격에 즉사한 경우.
그런 것들 중에 죽은 척하다 인부의 손을 뜯어 버린 녀석들도 있다는 아저씨들의 괴담을 듣고 한동안은 엄두도 못 냈던 정현이었지만,
‘여기!’
콰직.
지금은 다른 인부들이 감탄할 만큼 결을 잘 찾아내 한 번에 뼈를 부숴 내는 정현이었다.
“와, 정현 씨는 어떻게 그걸 한 번에 부숴? 나는 아무리 세게 쳐도 흠집도 안 가던데.”
옆에서 지켜보던 인부, 중철이 물었다.
그는 작업장에 들어온 지 아직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참이었다.
온전한 스켈레톤의 해골을 요령 있게 부수기는 힘들겠지.
스켈레톤이 아무리 약해도 몬스터였다.
보통 사람의 뼈보다는 더 단단했다.
정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요. 결을 잘 찾으면 쉽거든요.”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다고.”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중철.
그러나 달리 더 해 줄 말도 없었다.
정현도 몇 번 손목에 통증을 느껴 가며 배운 요령이었으니까.
다시 고블린의 배를 몇 번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깨부수고, 손뼈는 가루를 내고.
하염없이 작업에 집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정현의 귀에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여러분들, 점심 먹고 합시다! 짜장면에 탕수육이오!”
“와, 오늘 무슨 날이에요? 탕수육?”
좀처럼 먹기 힘든 탕수육이 있다는 소식에 정현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뒤, 그 웃음은 자조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 이제 헌터는 포기할 때가 됐지.”
각성을 하고, 몬스터를 때려잡고, 세상을 지키는 헌터.
그들은 이미 정현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고작해야 그들이 사냥한 뒤 남긴 시체나 처리하며 살아갈 뿐.
“정현이도 많이 먹고.”
“아, 탕수육은 못 참죠.”
사무실로 들어가며 마주친 작업반장이 정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정현은 너스레를 떨며 자연스럽게 받아 주었다.
그래, 이제는 평범하게 탕수육에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
“어우, 진짜 냄새가 문제다 문제.”
퇴근 후 막 씻고 나온 정현이 코를 킁킁거렸다.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먼저 무뎌지는 것이 후각이건만, 이 지X맞은 냄새는 인중 언저리에서 계속 새로워지기라도 하는 모잉이었다.
좁은 원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침대 위에 털썩 걸터앉은 정현이 책상 위의 시계를 흘끗 본다.
오늘도 자원해서 추가 근무를 한 탓에 어느덧 시간은 11시.
내일 출근을 제때 하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시계 옆의 거울로 향했다.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 보는 정현.
각성에 대한 욕심을 접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까 전의 일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다.
1년이 지났을 때부터 몇 번을 단념하려고 했는지 셀 수 없었다.
번번이 포기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느새 기대감이 다시 커져 있는 패턴의 반복.
헌터가 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헌터가 되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의 아쉬움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던 정현이 눈에 힘을 풀고 푸념처럼 말했다.
“하······ 진짜 거짓말같이 딱 떠 주면 안 되냐.”
각성할 때 공통적으로 떠오른다는 ‘각성하셨습니다.’라는 문구와 특성에 대한 안내.
정현은 꿈에서 몇 번 본 것이 다였다.
그때마다 화려한 효과와 함께 불꽃놀이하듯 폭죽이 터졌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각성은 지극히 평범하게, 마치 당연한 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듯 찾아왔다.
또 다른 정현이 들어 있던 거울을 가리며 떠오른 반투명한 창.
정현은 눈을 끔뻑끔뻑 몇 번 감았다 뜨곤 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아 짤막하게 말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