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200)
제207화
207화
사실 드래곤을 앞에 두고 짤막한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정현, 정확히는 주갑의 덕분이었다.
[버프 특성, 「듀라한의 저주」(A)가 ‘미약한 수준의 드래곤 피어’를 감지합니다.「듀라한의 저주」와 동급의 정신 공격입니다.
‘미약한 수준의 드래곤 피어’가 사용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줄어듭니다.]
거대한 공간에서 몸을 말고 자는 놈을 처음 봤을 때 떠오른 알림창이었다.
그나마도 피어가 제대로 몰아닥친 이후에는 더욱 힘들어졌다.
정현이 이를 악물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드래곤이 나올 줄이야······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난이도야?’
정현은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3층쯤부터 해서 대형 몬스터들이 와르르 쏟아질 때부터 조금 불안하긴 했다.
이렇게 파워 인플레이션이 심해서야 도대체 9, 10층에는 뭐가 나오겠냐고.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한 헌터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표적인 몬스터가 바로 드래곤 아니겠나.
정현은 다시 한번 눈앞에 배를 깔고 드러누워 있는 몬스터를 관찰했다.
일단 크기 자체는 앞서 나왔던 대형 몬스터들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았다.
대략 기다란 목과 꼬리까지 합쳐 15m 정도는 될까.
수치상으로 보면 커 보여도 대부분이 가느다란 목과 꼬리였으니 비교적 작아 보였던 것.
붉은색이 도는 매끄러운 비늘로 온몸이 덮여 있었으며 말 그대로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번득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이 드래곤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조금씩 저리고 시선을 피하게 된다.
정현이 이 지경이었으니 「듀라한의 저주」를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다른 헌터들은 더할 것이다.
워낙 믿지 못할 일이었기에 이런저런 소리를 하긴 했지만 저놈이 정말 드래곤이라면 이 상황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죽음.
하지만 정현과 함께 이를 악물고 상대를 관찰하던 휘곤은 안도감과 절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 드래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현이 물었다.
드래곤이 아니라니.
비슷하게 생겼다는 드레이크가 드래곤의 아종이라고 한들 그 특징은 명확했다.
두 발로 보행하며 덩치에 비해 유달리 큰 머리.
전형적인 육식 공룡의 형태를 가진 것이 드레이크라면, 드래곤은 판타지 소설에서 묘사되던 그대로 목과 꼬리가 길고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시스템이 ‘드래곤 피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놈이 드래곤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휘곤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드래곤은 맞지만, 어린 개체입니다. 헤츨링이요.”
“헤츨링이라면 예전에 독일에서 잡힌 적이 있었던······?”
헤츨링.
그 단어를 들은 지명이 반응했다.
그러자 휘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게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의외로 헤츨링은 몇 번 잡힌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6레벨 일반형 필드 보스로 나와 아예 건드리는 것을 피합니다만······ 브라질이나 몇몇 곳에서는 임무형 게이트에서도 발견된 전례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잡았답니까?”
“헤츨링이 잡힌 건 이제까지 전부 의도적으로 브레이킹시킨 경우입니다. 클리어가 안 돼서 브레이킹시켜 보니 헤츨링이 나왔다······ 이런 느낌이지요.”
“······.”
의도적인 브레이킹.
당연한 말이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 써먹을 만한 공략법은 아니었다.
게이트의 제약 속에서 헌터들이 도저히 잡지 못하겠다 싶을 때 써먹는 방법.
말하자면, 눈앞의 몬스터가 성체 드래곤이 아니라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헤츨링이라고 해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체형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정현은 다시 한번 미려한 유선형의 체형을 살폈다.
목과 꼬리가 길긴 하지만 전체적인 신체 비례를 생각해 보면 머리와 몸통이 꽤 거대했다.
그에 비해 접혀 있어 제대로 보이진 않아도 날개 역시 상대적으로 작았고.
그리고 그때, 마치 정현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알림창 하나가 여유롭게 떠올랐다.
생명에 귀천은 없다지만 그래도 헤츨링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아이일 것입니다.
드래곤에게는 금쪽같은 새끼일 테지만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재앙입니다.
헤츨링을 죽이고 생존하세요.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목표 : 레드 헤츨링 처치 기여도 50% 이상 달성
보상 : 15코인, 드래곤 하트의 사용법]
‘이건 또 무슨······.’
오랜만에 보는 돌발 퀘스트였다.
일단 시스템이 밝혔으니 놈이 성체 드래곤이 아닌 헤츨링이라는 것은 확정되었다.
문제는 과연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냐는 것이다.
걸린 보상이 무려 15코인.
난이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임을 시스템이 확인해 준 셈이었다.
물론 퀘스트 알림은 정현만이 볼 수 있었으니 휘곤은 미세하게 바뀐 그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까지 잡힌 놈들은 신장이 25m에, 추정 연령이 500년이었습니다. 반면에 저놈은 그보다 훨씬 작은 것처럼 보이는군요. 드래곤이 연령에 비례해 강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건 나중에 들을게요. 그래서 공략법이 있어요?”
휘곤은 이제까지 인간이 알아낸 헤츨링에 관한 정보를 모두 말해 버릴 작정인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하나하나가 귀중한 정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걸 전부 들어 주기엔 정현의 마음이 너무나도 급했다.
지금은 졸린 듯 그 눈을 제대로 뜨지도 않은 채 끔뻑끔뻑 가만히 몸을 말고 엎드려 있었으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갈지 몰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듣도 보도 못한 마법을 시전해 자신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것이 드래곤이라는 종족이었으니까.
“확실한 약점은 있지만 그곳을 공략하려면 압도적인 마법 전력과 놈의 마법을 막아 줄 탱커진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어린 헤츨링이라고 해도 최악의 몬스터입니다. 아니, 인간이 잡은 몬스터 중에서는 단연 최강이에요.”
요컨대 게이트 밖으로 끌어내 숫자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참회의 탑’이 임무형 게이트인 이상 그 방법은 파티의 전멸을 전제로 한다.
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파티의 상황을 살폈다.
당장 원호는 이를 악물고서도 양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승준은 그보다 더했다.
그나마 나머지는 평소와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평상시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예린은 헤츨링을 발견한 뒤로 어떤 말도 없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당장 느껴지는 기운은 자연의 힘을 받은 아슈레크 그 이상······.’
정현은 가느다란 눈으로 헤츨링의 힘을 가늠했다.
비록 피어가 어느 정도 중화되기는 했다지만 그렇게 중화된 효과가 이 정도라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졸고 있는 상태인데도 온몸이 저릿하다니.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다 있다는 말인가.
놈이 당장 공격해 올 생각이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몬스터를 상대로 물러서는 것을 수치이자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해 왔던 정현.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그런 그라고 해도 무턱대고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싸우면 죽는다.
이미 남들과는 비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선 그의 전투 감각은 1초에도 수십 번씩 비명을 내지르며 경고하는 듯했으니까.
오히려 적을 앞에 두고도 태연하게 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감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너희 같은 놈들은 감히 나의 위협이 될 수 없다는.
정현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파도처럼 부서지기를 반복할 때.
예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선공 몬스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털썩-
그러면서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버렸다.
“지금 뭐 하시는-!”
지명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기겁해 소리치려다가도 뒤에 있는 헤츨링을 의식해 제 입을 막았다.
그저 그런 몬스터를 상대로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물며 최악의 몬스터라는 헤츨링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주저앉는다니.
그러나 예린은, 그런 지명에게 태연히 물었다.
“잡을 방법, 있습니까?”
“그건······.”
관성적으로 지명이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당연히도 대답이 튀어나을 리가 없었다.
정현은 잠시 헤츨링과 예린을 번갈아 보다가 이윽고 자신 역시 그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헤츨링의 눈이 다시 완전히 감긴 상황.
피어도 그에 맞춰 많이 약해졌기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겁에 질려 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한정현 헌터까지······.”
그렇게 말하는 승준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어차피 이대로 덤벼들었다 죽으나, 작전 짜다 죽으나 똑같지 않겠습니까. 얘기 좀 해 보죠.”
어차피 놈은 잠에 취해 당분간은 깨어나지 않을 듯 보였고, 그렇다는 말은 이쪽이 어떤 행동을 하든 건드리지만 않으면 현상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예린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앉은 것이 아니라는 뜻.
그제야 지명과 휘곤도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특히 피어를 견뎌 내는 것을 힘겨워하는 원호와 승준은 마지막이었다.
피어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면 영향이 많이 줄어들 테니 일단은 그 전까지가 문제였다.
그렇게 파티원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정현이 휘곤에게 물었다.
“헤츨링은 어떻게 싸웁니까?”
그 역시 헤츨링을 사냥해 본 적은 없겠으나 적어도 그 사후 자료는 열심히 연구했던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휘곤은 침을 한번 삼킨 다음 천천히 대답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불, 물, 바람, 대지, 전기 속성 마법은 전부 마스터입니다. 거기다 그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드래곤과 큰 차이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영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싸우지는 않는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애초에 헤츨링을 만난 것이 최악의 불운이긴 했어도.
“저놈은 크기로 보건대 대략 100살 정도 먹었겠군요.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 정도면 드래곤치고는 어린 편이겠죠?”
“막 태어난 신생아 수준일 겁니다.”
드래곤은 나이에 비례해 강력해진다.
정현은 예린의 질문이 대략적인 강함의 척도를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기는 어릴수록 잠을 많이 잡니다.”
“예?”
예상치 못한 말에 정현과 휘곤, 지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드래곤의 새끼가 헤츨링이긴 했지만 저 정도 덩치에 아기라는 말은 아무래도 안 어울리지 않는가.
“잠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 녀석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린은 그렇게 물으며 검지로 헤츨링을 가리켰다.
“확실히······.”
애초에 녀석은 그들이 9층으로 올라왔을 때부터 졸고 있었다.
처음 슬쩍 눈을 떠 인간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그다음부터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으니까.
단순히 상위종으로서 하위종을 바라보는 거만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예린의 말대로라면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저게 정말 잠을 자는 거라고요?”
정현이 다소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묻고.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선공은 우리한테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다면 의외로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죠.”
바로 그곳에 저 무지막지한 놈을 공략할 단초가 있노라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아직도 헤츨링이라는 악몽 같은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실감이 잘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 자신의 최대 전력을 공유하며 작전을 짜 나갔다.
어느 정도 희박하지만 최대한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할 즈음.
“그럼 이대로 하기 전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현이 잠시 손을 뻗어 보이며 말했다.
게이트 한복판에서 기다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은 정말 간단했다.
‘특성 상점.’
금쪽같은 도마뱀을 잡는다는데 뭘 아껴서야 안 되지 않겠나.
‘이 정도면 해 볼 만해.’
저번 켄타우로스 사냥과 이전 층들에서 모은 코인이 총 41개.
충분히 무언가를 노려볼 수 있을 법한 수량이었다.
나름 이 조악한 상황에서 짤 수 있는 최선의 작전을 짰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운에 기댄 미약한 가능성일 뿐이었다.
그 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 어떻게든 힘을 기를 수단이 있으면 전부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코인만큼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힘을 올려 줄 수 있는 수단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도 가능성이라는 게 웃기긴 한데.’
어차피 전부 소모할 때까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자신의 운인 셈.
그리고 만약 천만다행으로 S등급 특성이라도 뜬다면 게이트에서의 적응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장착해야 했다.
정현은 다른 헌터들의 시선을 의식해 일부러 자신의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척하며 상점 목록을 갱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번 목록이 새롭게 바뀌는 동안에도 정현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품목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물론 확률이 확률이니만큼 전부 B등급 이상의 좋은 특성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노리는 것은 현재 장착하고 있는 특성의 등급을 올리거나, 아니면 아예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S등급 특성.
혹은 단박에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인 장착 슬롯 확장권이었다.
이 외의 것을 살 바에는 차라리 2코인을 아껴 다음 목록을 보는 편이 나았다.
‘갱신.’
눈앞의 목록이 다시 한번 뒤바뀌었다.
이것으로 남은 코인은 17개.
하지만 이번에도 앞서 말한 조건을 충족하는 특성은 나오지 않았다.
‘갱신.’
15.
‘갱신.’
13.
어쩌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리라는 최악의 경우도 예상하긴 했건만 막상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자 손이 멈칫했다.
‘갱신.’
11.
그리고 남은 코인이 두 자릿수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정현은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현실이 된 가능성이 두 개.
‘저 인간 왜 저래?’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티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