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287)
제294화
294화
‘7레벨 게이트도 생긴 건 별거 없네.’
춘천의 어느 야산.
다른 게이트들과 다를 바 없이 덩그러니 허공에 생겨난 게이트를 본 정현의 감상이었다.
에너지 수치도 5레벨 수준이라 그런지 딱히 감각을 자극하지 못하는 정도였고.
“게이트 안에서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한편, 그의 뒤에서 마찬가지로 게이트를 살피고 있던 지희가 중얼거렸다.
특성 안정제는 이미 복용한 상태였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성격상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 듯했다.
하기야, 처음 만났을 때 지희는 몬스터를 향해 살상 마법을 펼치는 것조차도 힘들어했다.
비록 게이트 내부의 인간이라 해도 같은 인간은 인간.
‘나도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걸.’
정현 역시 공략 상대가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라는 데 적잖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청설모는 7레벨에 들어가 보신 적 있으세요?”
정현은 저만치 떨어진 바위에 앉아 있는 청설모에게 물었다.
담벼락과 함께 화음까지 맞춰 가며 휘파람을 부는 솜씨가 한두 번 호흡을 맞춰 본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러면서도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녀가 시선을 정현에게로 돌렸다.
“네, 담벼락이랑 한 번. 담벼락은 부엉이랑도 한 적 있으니 두 번이네요.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요.”
“그때도 안에서 사람이 나왔나요?”
“뭐, 그랬죠.”
청설모는 의외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은 순간 궁금증이 동했지만 질문을 밖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물어봤자 살인에 대한 감상을 건드리는 것밖에 더 되겠나.
그러나 정현이 뭔가 머뭇거린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청설모는 먼저 작게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궁금한 거죠? 제가 어떤지.”
“예? 아, 뭐······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정곡을 찔렸다.
정현의 표정을 확인한 청설모가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실례는 아니니까.”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런 뒤 청설모의 표정은 어딘가 처연해 보이기도, 한편으로는 정말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거지 같긴 하지만, 또 협회장님이 말하는 것처럼 부담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정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랑 담벼락이 한번 그 얘기를 해 본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뭔지 알아요?”
물론 알 리가 없다.
정현은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지희도 청설모와 정현의 대화에 흥미가 생긴 건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협회장님 같은 1세대 헌터랑 우리들은 사고방식이 애초에 다르다는 거였어요.”
“사고방식이요?”
“애초에 세대도 구분되어 있잖아요? 그런 이유가 있는 거죠.”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세대 구분은 보통 각성한 시기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대격변 당시는 1세대, 그때부터 질서가 잡힐 때까지 2세대, 그 이후부터 3세대.
그러나 단순히 각성한 시기만 다르다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도 맞는 소리였다.
“1세대 헌터분들은 그야말로 사명감으로 헌터 생활을 하던 분들이었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거기서 머뭇거린 헌터들은 죽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살았고.”
“그거 협회장님 자서전에 쓰인 내용 아닌가요?”
“맞아요.”
누가 보면 자서전 내용까지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태휘의 어록에 빠지지 않는 구절이었다.
– 지금 돌이켜 보면, 사람을 구하는 데 주저했던 사람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마치 시스템이 그렇게 인도라도 하는 것 같다. 살아남은 동료들은 언제나 내 곁에, 그리고 내 앞에 있던 사람들뿐이다. 그 모두가 살아 있는 건 아니라지만.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하는 건 아니어도 대충 이런 내용이 실려 있음을 모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청설모도 협회 소속이니만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 같은 3세대 헌터들한테 게이트는 의미가 좀 다르죠.”
“의미가 다르다······.”
그렇게 말하니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청설모가 쐐기를 박았다.
“3세대에게 게이트는 그저 공략 대상이라는 말이에요.”
딱히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솔직히 이제 와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순수한 열망만으로 헌터 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모든 헌터가 없이 살면 모르겠으되.
뻔히 모든 미디어에서 스타 헌터들이 나오고 그들의 부유한 생활이 주목받는 이상 그것을 외면 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 개인이 나빠졌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사회의 방향성이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게이트 안에 들어 있는 게 인간이든, 몬스터든, 심지어는 신이든 난이도의 문제일 뿐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는 힘들다는 뜻이죠.”
“아하.”
정현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기억을 그리 오래전으로 되돌릴 필요도 없다.
당장 미국에서 만났던 제이슨 파커만 생각해도 그가 인류에 대한 사명감으로 헌터 생활을 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었다.
어찌 보면, 특히 「방송」의 등장 이후로 사냥은 이전보다도 더 스포츠화된 것일 수도.
때문에 정현 역시 청설모의 주장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오해하지는 말아요. 그런 변화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고, 한정현 헌터가 속물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에요.”
“그럼요.”
쓰게 웃으며 덧붙이는 청설모의 걱정 어린 말에 정현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신경은 쓰지 않지만 아마 한동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 듯했다.
처음 정현이 각성했을 때의 감정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그때의 한정현과 지금의 한정현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다들 모여 있네요?”
“아, 오셨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지와 세아, 그리고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이 도착했다.
“맙소사,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옷을 입은 김밥집 아주머니일 거야.”
수지를 본 청설모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정현도 동의했다.
저번 협회장실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수지는 평범한 중년 여성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장비들을 대거 착용한 채다.
특히 정현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으니.
“검을 쓰시네요?”
바로 그녀의 허리춤에 있는 한 자루의 검이었다.
고등급 헌터가 쓴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검.
하지만 정현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람 마법 특성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첫 만남에 수지는 자신더러 바람 속성의 마법사라고 했다.
세상에 아무리 다양한 특성이 있다고 해도 마법사이면서 검을 쓰는 헌터는 정현으로서도 처음이었다.
“한정현 헌터도 무기로 놀랄 사람은 아니지 않아요?”
하지만 수지는 거꾸로 질문함으로써 답했다.
그녀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피식 웃었다.
“험험······.”
정현 역시 멋쩍게 시선을 피했다.
애당초 정현의 전적이 화려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의 곡괭이는 이제 괴짜 무기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유명해졌다.
인터넷에서는 곡괭이를 캡처해 만든 온갖 합성짤들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게다가 그렇게 근접 무기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주제에 미국에 가서는 코리안 매드 거너라는 호칭까지 받아 왔다.
적어도 정현이 누군가를 무기로 지적했다가는 상당히 억울한 상황이 된다는 뜻이었다.
“어머, 근데 오늘은 곡괭이가 아니네. 저 곡괭이 팬인데 말이에요.”
“아, 이번에 이걸 새로 얻어서요. 한번 시험해 볼 겸.”
그렇게 말하는 정현의 손에는 묵빛의 몽둥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초석 길드와 함께한 ‘산중왕’ 공략에서 오우거 부족장을 죽이고 얻은 것이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잘 어울리네요.”
“······그거 무슨 뜻입니까?”
“그냥 말 그대로예요.”
수지는 능글맞게 웃으며 정현을 지나쳐 다른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아, 저도요.”
그리고 그런 세아의 뒤를 따르던 또 한 명의 사람.
“잘 지내셨어요?”
정현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의 첫 임무형 게이트 사냥을 함께 했던 사람이니만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많이 유명해지셨더군요.”
“어쩌다보니······ 하하.”
살짝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세아의 동생, 신진아였다.
얼마 전 6레벨로 올라 뉴스에 오르기도 했던 만큼 그녀 역시 그동안 착실하게 엘리트 헌터로서의 길을 다져 가는 중이었다.
물론 정현과 비교하는 것은 그녀에게 잔인한 처사겠지만.
“그때만 해도 미등록자에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S등급이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는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합니다.”
“됐어요. S등급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제가 제일 잘 아니까.”
정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하자, 진아는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S등급을 제일 잘 안다라.
언니가 그 신세아이니 틀린 말은 아닐지도.
그런데 어딘가 불만스러운 기색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정현 때문만이 아닌 듯했다.
‘그때도 언니를 많이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지.’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 건지, 아니면 같은 헌터로서 S등급에 대한 질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 예전에 진아랑 같이 공략하신 적 있으셨죠? 그때만 해도 한정현 헌터를 영입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뭐, 지금은 제가 잡기에도 너무 높이 올라가셨지만 말이에요.”
둘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세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정현이 미등록자인 데다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 물밑에서 퍼져 나가고 있을 때.
세아 길드뿐 아니라 웬만큼 유명한 길드라면 전부 정현의 영입전에 참전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신진아 헌터도 이번에 함께 들어가는 겁니까?”
“아뇨. 공략이 진행되는 동안 바깥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을 거예요. 진아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어서.”
“나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세아의 설명을 듣다 말고 진아는 앞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진아와 세아 사이에서 느껴지는 묘한 갈등의 기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정현이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 아뇨.”
세아는 잠깐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7레벨 공략전에는 항상 진아를 좀 못살게 굴어서요. 예민해져서 그래요.”
“하하.”
정현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기야, 정말 심각한 갈등이었다면 이 자리에 동행하지도 않았을 터다.
어쨌든 그렇게 공략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한곳에 모이고.
7레벨 게이트는 따로 공식적인 기록이 남지 않는 공략이니만큼 사전에 밟아야 할 절차도 없다시피 했다.
다시 말해 사실상 입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하죠. 그 전에, 이번에 처음 들어가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수지가 정현과 지희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모든 게이트가 그렇긴 하지만, 7레벨 게이트는 특히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에요. 그래서 잔인한 곳이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정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라.
그런 경험으로만 따지자면 정현도 어디 가서 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현의 자신 있는 대답에도 어딘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수지는 재차 강조했다.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잘 안 잡히겠죠.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예요.”
잠시간의 공백.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 우리는 그것만 신경 쓰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