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32화
쉬익-
경고성을 냈을 때 이미 단검 하나를 뽑아 들었던 정현이 곧바로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구울을 향해 날려 보냈다.
깔끔하게 미간을 꿰뚫는 연보랏빛의 단검.
인간형의 몬스터에게 약점이라면 뻔했다.
관성으로 몇 걸음을 더 뜀박질하던 구울은 이내 자세가 점점 무너지더니 정현의 발치에 이르러서는 축 늘어져 미끄러질 지경이었다.
온갖 간접적인 버프가 붙은 D등급 암기술은 구울이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우준을 향해 덤벼드는 한 놈.
우준은 아직도 화살을 메겨야 할지 단검을 뽑아 들어야 할지 선택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한심하긴.’
화살을 쏘든 단검을 뽑든 궁수가 아닌 정현이 정답을 알진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정현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었지만, 공격 경로 예측에서 한 가지 더 더해진 기능이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한테 공격하는 것도 보였나?’
물론 F급이었을 때보다 조금 더 흐릿한 수준이었지만 분명 우준에게 향하는 구울의 공격 경로가 보였다.
그의 목을 노리는 날카로운 손톱.
그렇다면 대처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뻑-
기습을 노린 것이었기에 직선으로 곧게 뻗은 구울의 팔을 메이스로 내리쳤다.
단번에 부러진 팔이 덜렁거렸다.
“키킥- 키킥-”
거기서 굴하지 않고 구울은 곧바로 반대쪽 팔을 뻗었다.
적어도 우발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구울이 상준이나 승혁, 우준보다 훨씬 나았다.
그것을 정현이 뻔히 알고 있었기에 실패했디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정현은 재차 메이스를 휘둘러 구울의 팔을 바깥쪽으로 떨쳐 냈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입까지 벌리고 덤벼드는 구울의 공격성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중간에 목표를 수정하는 일도 없이 우준 하나만을 노린 채 맹렬하게 덤벼드는 모습은 뭇사람을 질리게 했다.
결국 정현은 한 번 더 가속한 힘 그대로 체중을 이용해 구울과 옆에서 정통으로 부딪혔다.
힘이 잔뜩 실린 구울의 몸은 단단하기 짝이 없었으나 대부분의 충격은 오크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 흡수해 주었고, 남은 충격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고작 이 정도 충격에 머뭇거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기습을 막기 위해서는 그만큼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응이 중요했으니까.
정현과 몸 대 몸으로 부딪쳐 튕겨 나간 구울은 벽에 재차 박고 아직 자세를 잡지 못했다.
일격 필살의 공격이 빗나간 이상 마땅히 돌아오는 리스크였다.
정현은 곧장 구울의 마리에 메이스를 꽂아 넣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었기에,
퍽- 퍽- 퍽- 퍽-
손가락 하나 꿈틀거리지도 못할 때까지.
“후우······.”
여기까지가 단 두 호홉의 일이었다.
단검을 던질 때 한 호흡,
우준에게 덤벼드는 구울을 처리할 때 한 호흡.
당연히 상준과 승혁은 이제야 달려오고 있었으나, 이미 상황은 끝났다.
잡담이나 하며 시시덕거린 것치고는 제법 빠른 속도였으나 그뿐이었다.
삶과 죽음은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
순식간에 시체로 돌아가 널브러진 구울 두 마리와, 그 사이에 서 있는 정현.
그동안 정현을 무시하다가 이제 그마저도 질린 듯 자기들끼리 떠들던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자, 언제나 게이트 안에선 기습을 조심해야죠. 다들 괜찮으신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진욱이 손뼉을 두어 차례 치며 물었다.
괜찮냐고 물어본들 구울과 접촉한 이는 정현뿐이었다.
정현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진욱을 쳐다보았다.
이들 중 눈치를 챈 이가 몇이나 될까 모르겠지만 그는 똑똑히 보았다.
자신이 경고성을 내자마자 메이스를 고쳐 잡는 진욱의 반응을.
정말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면 아마 진욱 혼자서라도 두 마리의 구울쯤 손쉽게 정리해 버렸으리라.
‘나랑 비슷하게 알았거나, 아니면 그 직후거나.’
제아무리 고등급으로 갈수록 특성과 무관하게 간접적으로 상승하는 능력의 폭이 높다지만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 사람은 진짜다.’
저속내를 알 수 없이 웃고 있는 얼굴 뒤로는 괴물이 숨어 있다는 직감.
적어도 예전 주철이나 희수와 맞붙었을 때와의 격차보다 지금 자신과 진욱 사이의 격차가 더 크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등급이 깡패라지만 이 정도는 너무하지 않나.
특성 4개를 두르고 있는 자신과 비슷할 정도라니.
물론 그 격차에는 경험 역시 무시하지 못할 비중으로 녹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현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대답했다.
“전 괜찮습니다.”
어차피 진욱은 자신의 적이 아니다.
웬만해선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가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그런 사람이 등을 지켜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해지지 않는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속 편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
고작 C등급의 헌터에게 이렇게 격차를 느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일천한 운만을 가지고 자신의 격 그 자체가 높아졌다는 오만함을 가진 사람들.
각성은 그저 운이다.
그리고 악운이기도 하다.
각성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이트라는 사지로 내몰리는 것이 악운이 아니라면 무얼까.
지금에 와서는 각성이 인생 역전의 수단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내가 헌터로서 보낸 시간은 투쟁이 대부분이었다.
D등급 3레벨?
A등급 7레벨조차 방심할 수 없는 것이 게이트다.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예비 시체에 불과하다.
나는 예비 시체를 헌터로 만드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런 헌터들이 모여 버티는 것이 정진이다.
그러나 가끔, 이미 완성된 헌터들이 있다.
예컨대 눈앞에 보이는 이 남자가 그렇다.
미등록자 3레벨.
직접 보기 전까지만 해도 F등급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달랐다.
수많은 조롱을 여유롭게 넘길 수 있을 만큼 내면이 탄탄한 것은 큰 자산이다.
단순히 등급과 레벨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의 강함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러나 사람의 강함에도 한계가 있다.
슬프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전 괜찮습니다.”
“그럼 조금 더 들어가 보죠. 다들 이제 긴장을 푸는 일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삽시간에 달려든 구울 두 마리를 F등급 3레벨이 두 호흡만에 쓰러뜨린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일선에서 물러나 인사팀 업무를 하며 사람들을 보아 온 경험이 말해 주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노력 없이 거둔 일천한 힘만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히히덕거리는 예비 시체들보다는 월등했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어둠 속에서 도사리던 구울이 뛰쳐나왔다.
“이번엔 네 마리입니다!”
언제나 가장 먼저 그 기척을 느끼는 이는 한정현이었다.
심지어는 C등급인 나보다도 미세하게 먼저.
제아무리 민첩 특화라도 D등급은 되어야 가능할 텐데 그렇다면,
쉬익-
어김없이 구울의 머리통을 헤집어 즉사시키는 저 암기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치 특성이 여러 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
어차피 자신의 실력을 한번 드러낸 차에 이제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버스 타러 온 사냥에서 열심히 할 생각도 없긴 했다.
정현은 매 전투가 시작될 때마다 단검 두어 개를 던져 구울의 수를 줄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으니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코인 획득 알림.
‘코인 맛 좋고, 손맛 좋고!’
어쩌면 시너지의 상승으로 드디어 몸이 D등급의 암기술 특성을 전부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거 참, 특성을 여러 개 가진 사람이 있을 리도 없으니 어디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 것은 오로지 정현 혼자서 알아내야 할 가설이었다.
하나의 특성으로는 그 온전한 성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여러 개의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이점은 시너지 효과를 제외하고도 단순히 합 계산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압!”
“화살 조심!”
정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뿌듯하게 다른 헌터들을 쳐다보았다.
한번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다들 열심이었다.
다들 능력 자체는 출중하다 보니 구울 세 마리 눕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빠르게 달려드는 구울의 속도는 대개 그들을 더 빠른 죽음으로 인도했다.
한 차례의 전투가 순식간에 끝나고, 상준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서 있는 정현을 흘끔 노려보았다.
“무슨 볼일이라도?”
“······아닙니다.”
정현의 빙글빙글 웃는 낯짝에, 상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제 할 일에 집중했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다.
너는 왜 그렇게 하는 게 없냐,
그렇게 버스만 타고 있을 거냐,
미등록자 주제에.
그러나 어쩌겠는가.
정현이 슬쩍슬쩍 단검을 던지기 시작하자 그의 공헌도가 다른 이들과 거의 엇비슷하게 올라온 것을.
적어도 결과만 놓고 보면 누구도 정현에게 1인분을 하지 못한다고 나무랄 수 없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지가 나더러 버스 타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뭐라 할 수는 없겠지.’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상준에게 자승자박의 꼴에 불과한 터.
미등록자라고 무시한들 자신이 미등록자와 비슷한 수준이라 제 얼굴에 침 뱉기였고, 자기들이 캐리해 주겠다며 호기롭게 나섰으니 열심히 하라 하기에도 면이 서지 않았다.
결국 정현이 죽도록 얄밉겠지만 그 어떤 불만도 표시할 수 없는 상황!
정현으로서는 이득이면 이득이었지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거기다 정현의 기여는 사실 수치적으로만 따질 수 없었다.
“정현 헌터님, 단검 던지실 때 기준이라도 있나요?”
슬그머니 진욱이 정현에게 물어 왔다.
정현은 어깨를 조금 움찔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뭐 기준이랄 게 있나요. 그냥 잡히는 대로 던지는 거지. 오늘 유난히 잘 맞네요.”
역시 진욱의 눈을 피해 가기는 쉽지 않다.
정현은 되도록 선두도, 후미도 아닌 중간의 구울들만을 노렸다.
그렇게 해서 공세의 틈을 벌리는 것이다.
아마 전위의 상준이나 승혁이 눈치채지는 못했어도 묘하게 체감은 될 것이다.
어쩐지 부담이 좀 덜한 것 같다고.
‘뭐, 그래 봐야 얼마 안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런 것을 구태여 겉으로 표현하기도 민망한 노릇.
정현은 대충 둘러댔지만 왠지 고개를 끄덕이는 진욱은 정현이 하지 못한 말을 알아서 짐작한 듯했다.
‘역시 고등급들은 무서워······.’
역시 이 사람은 럭키 차예린이었다.
정현이 그렇게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느 정도 정비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할 무렵.
진욱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말했다.
“자, 이제 웬만큼 한 것 같으니 다음 전투만 마치고 돌아가죠.”
“······네.”
상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머지 둘도 못내 동의의 뜻을 밝혔다.
저들로서는 그리 입맛이 개운한 사냥은 아니었으리라.
그토록 무시하던 인간에게 실상 빚을 진 것과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유쾌할 수 있겠는가.
자존심은 생각보다 쉽게 자격지심으로 변질되는 법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커다란 홀이 나타났다.
“이건 뭐야?”
그동안 방은 많이 보아 왔어도 이런 규모의 홀은 처음이었기에 상준은 괜히 툴툴거리며 홀로 들어섰다.
진욱이 든 횃불의 불빛이 닿자 비로소 홀의 구조가 드러났다.
높은 천장과 홀에서 뻗어나가는 다섯 갈래의 복도가 있는 곳이었다.
‘어쩐지 느낌이 좀 안 좋은데.’
정현의 경험상, 특수한 장소는 그만큼 특수한 패턴이 있는 법이었다.
다른 이들도 어느 정도는 느낀 것인지, 평소보다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들이 홀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키킥- 키킥-”
“······? 으아악!”
“뭐야?”
쾅-
정현이 느꼈던 위화감의 전모가 드러났다.
그조차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위쪽.
소리도 죽이고 움직이지도 않고 있어 포착이 늦었다.
승혁이 낡은 샹들리에 이래를 지나가는 순간 별안간 구울 한 마리가 추락하듯 그를 덮쳤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방패를 들었던 까닭에 피해는 없었다.
다만 생각지 못한 공격은 당황을 불러왔다.
“으아악! 얘 좀, 얘 좀 떼 줘요!”
“가만히 있어, 승혁아!”
뜻밖의 상황에 상준과 승혁의 합이 제대로 맞지 않고 엇나갔다.
구울 한 마리가 불러온 여파리기엔 치명적이었다.
정현조차도 순간 단검을 던져 줘야 하나 망설이느라 제대로 기척을 느끼지 뭇했을 만큼.
“키킥- 키킥- 키킥-”
“옵니다!”
그리고 빛이 들지 않는 다섯 갈래의 통로에서,
열 마리의 구울이 일제히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