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6
약혼식(1)
자이언트.
거인이라 분류되는 이 개체들은 성년이 되면 최소 준1급부터 시작되는 최상위 마인들.
지성은 떨어져도 타고난 신체능력과 항마력. 기사도 마법사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족이다.
50명의 거인들. 하나하나가 준1급 이상. 대장 거인쯤 되면 준특급이 아깝지 않은 괴물이다.
특급 마인인 마리에가 폭격해오는 대규모 마법도 버티면서 화란의 주먹질에도 도구를 이용해 얼추 버틴다.
-퍼억!
“끄헉···!”
화란이 날린 주먹에 턱뼈가 으스러지며 뒤로 자빠지는 거인. 곤죽이 된 얼굴을 뚜둑 맞추면서 거인이 신경질을 냈다.
“······.”
한 방으로 죽지 않는 적은 생소하다. 화란은 자신이 손속을 뒀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화란이 거인들의 주의를 끌고 있을 때, 화력지원을 역할을 충실히 하는 대규모 마법.
거인들 전원에게 수십 발을 꽂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규모였다.
“크음···!”
쏟아지는 마법의 화살에 움찔거리는 거인들. 타고난 항마력과 방패, 동료의 시체 따위로 마법을 막아냈다.
“뒈져라!”
그때였다. 화살비를 맞아가면서 한 거인이 작살을 마리에를 향해 던진 것이다.
-꽝!
아찔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비행하는 작살.
“컹!”
날아드는 작살을 향해 몸을 던지는 덕구. 쿵! 하고 온몸을 던져 작살을 날려버린다.
“후··· 쉽지가 않네. 한둘이라면 모를까 거인이 이렇게 몰려있는 건 처음이야.”
마리에와 화란. 덕구는 거인들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코린이 소 괴물에게 끌려간 것도 벌써 5분이 지났다. 연이은 터지던 굉음도 이제는 잦아들었지만, 그녀들은 걱정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답답한 상황. 무리해서라도 강행돌파를 결심한다.
“화란. 나하구 덕구가 길을 뚫을 테니까··· 네가······.
고오오오오────!!
순간, 모든 이들이 그 존재를 눈치채고 돌아봤다.
등을 녹이는 막대한 열기.
일식의 그늘을 밝히는 광채.
압도적이기까지 한 존재감이 그들을 뒤돌아보게 한다.
“······뜨거워.”
“와아······.”
금강불괴지체의 생강시조차 따갑게 타닥거리는 열기. 태양을 극복했을 터인 흡혈귀까지 본능적인 섬광에 주춤거린다.
“이건······.”
순식간에 대기가 끓어오르고 증발해 가는 가운데, 거인들은 분자 하나에 이르기까지 작열의 충격을 선사하는 광열에 새파랗게 질렸다.
절대적인 존재감의 끝. 으스러지고 무너져 가는 거인의 성에서 태양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강림하듯, 태양을 발현시키고 그 앞을 걷는 기사를, 거인들도, 강시도, 흡혈귀도 황홀하게 지켜 보고 있었다.
“으오오··· 오오오오······.”
틀림없다. 거인들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지는 신화. 그들이 이 하늘에 묶이게 된 족쇄의 근원.
신위 아르게트람이 쥔 찬란한 신왕(神王)의 증거이며 멀찍이 낙원을 비추던 그 빛.
대장 거인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대, 대장!”
“태양의··· 신위다. 우리로선 대적할 수 없어.”
지고의 존재가 악덕으로 물들던 세상을 정화하던 기억이 그들 핏줄에 기억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굴욕과 증오에도 불구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태양.
대장 거인은 핏줄에 새겨진 굴욕의 기억에 다시금 복종했다.
일제히 무릎을 꿇는 거인들. 그들은 제 앞에 놓인 태양을 두려워하며 바들바들 떨었다.
코린은 태양을 거인들의 한가운데에 놓아 위협하면서 소녀들을 향해 뒷짐을 지고 다가왔다.
“코린!”
“······너.”
와락 코린을 안아 드는 마리에. 화란은 다쳤네, 하고 걱정하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괜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왜 이리 다쳤어! 내가 못 살아! 못 살아!”
“다들 괜찮아요?
“응··· 그런데 코린은 대체 무슨 일이야? 저 태양 같은 건 뭐고?”
“이야기가 길어져요. 일단··· 내려가죠.”
“응응···!”
하늘섬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이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거인들은?”
“태양이 있는 이상 덤벼들지 못할 겁니다. 이건 녀석들에게 종족적인 트라우마 같은 거니까.”
-파지직!
그 순간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인들을 위협하던 태양이 꺼져버렸다.
“······.”
“······.”
“후우······.”
“코린? 지금······.”
“야아~ 이게 벌써 꺼지네.”
전 회차에서도 한번, 태양에 맞서 승리하고 그 힘을 취한 적이 있었더랬다.
이 아이템은 보스전 사양. 플레이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마력량으로도 오래 발현하지 못하는 필살기 같은 존재다.
“······죽일까?”
아니나 다를까, 자신들을 압박하던 거인들 사이에서 위험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죽이자.”
“지금이다. 지금이 녀석을 죽일 때다.”
“코, 코린?
“도망쳐요!”
분위기를 파악하고 도망치는 건 빨랐다. 목표는 스카이스와 둠 노릭스가 타고 올라온 참나무!
그곳으로 내려가 먼저 도착해서 참나무를 쓰러뜨려야만 한다!”
‘이거 늦지 않으려나.’
참나무에서 획 떨어진다면 모를까 거인의 보폭을 제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화란이나 마리에라면 문제없겠지만, 이쪽엔 부상자가 둘이나 있는 것이다. 코린도 상태가 좋은 건 아니다.
필사적인 도주의 순간이었다.
“허허, 아무래도 노구가 늦은 듯 허이.”
────?
질주하던 무리가 발을 멈춘다.
수천 톤에 달하는 질량의 무리들은 어째선지 멈춰버린 자신의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목도한다.
머리칼은 산발이었고, 도복은 헤져서 야인과 다를 바 없다.
제 키보다도 거대한 거검(巨劍) 파산검과 어느새 회수한 쌍룡이검. 그 외에도 두 자루 마검을 허리춤에 멘 기이한 노검사.
“······너무 뒷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대인.”
“늙은 몸으로 나무를 등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네.”
검제 가란드 아덴.
전대 아덴가 당주. 한 시대를 풍미한 정점.
“꽤 좋은 울림이었지. 내 손녀와 검귀의 대결은.”
그는 아리샤와 검귀의 생사결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저 귓가에 들리던 그 검격의 싸늘함을 인식하고서 어떤 대결이 오갔는지를 훤히 들여다보았다.
“가라, 소년. 내 손녀를 지켜주는 김에 같이 지켜주지.”
“뭐, 수고 하십쇼.”
검제의 도움을 망설임 없이 받는 코린. 그는 참나무 아래로의 등정을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고도 거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눈앞의 노괴가 결코 자신들을 뒤로 보내지 않으리라는 걸.
“좋은 구경 다 놓쳤구나. 하지만 태산보다 높은 세상을 마주했으니 이 또한 풍류로고.”
거인들이 술렁거린다.
어찌됐건 그들의 결정은 단 하나.
자신들을 속박하던 태양에서 벗어나 드넓은 지상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능을 자극하는 눈앞의 존재를 두고서도 조금씩 다가간다.
눈에 그려지는 미래는 패배뿐이나, 이길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 검귀를··· 미숙하긴 했지만, 놈을 죽였단 말이지.”
노괴는 움직이지 않고,
한쪽 팔로 든 5m 상당의 거검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거인들조차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듯 가란드는 눈앞에 보이는 검투의 흔적을 응시할 뿐.
“그하하, 그하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에 거인들이 움찔거린다. 웃음은 곧 폭소와 기쁨의 환희가 되어 터져 나왔다.
“베어낸 마물의 총계가 십만! 평생 지켜낸 땅이 지평선 너머! 구한 인간은 능히 백만!”
“숱한 전투의 열화 속에서도 보지 못한 천검(天劍)을 하루 새 두 번이나 보게 되었구나!”
“그래, 살아남은 게 내 손녀란 말이지. 기쁘지. 기쁘고 말고···! 드디어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검사가 내 핏줄에서 태어났건만,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이어지는 목소리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린애 같은 웃음이었다.
거기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리가 없다.
“꺼져라, 천한 것들. 이 뒤는 미래로 향하는 젊은이들의 계단이다. 비천한 마종들이 더러운 발로 침범하려 드느냐.”
오연한 선고.
막을 내리는 검제의 말에 거인들이 반발했다.
“그래, 굳이 노구의 칼에 죽고 싶다면야··· 사력을 다하거라. 부디 반 시진은 버텨줬으면 좋겠군.”
산을 깨뜨리는 거검이 공간을 베어낸다.
대지를 으깨고, 구름에 상흔을 남겼다.
이로써 하늘섬의 이야기는 폐막을 고한다.
승부를 인정하지 못한 거주민들의 발악은 머지않아 생명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꺼드러질 것이며 노괴는 유유히 나무를 타고 내려올지니.
“선배, 나무 잘라버려요.”
“으웅? 코린, 뒤에 사람이 있지··· 않아?”
“괜찮아요, 괜찮아.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양반이니까. 한 1년쯤 하늘섬에 처박혀 있으라지.”
“어··· 코린이 그렇다면야.”
-쿠구구구구궁! 와르르 쾅!
그러나 세상사, 그리 품위 있게만 끝나지는 않는 법이다.
* * * *
달빛이 창호지를 뚫고 은은하게 비치는 밤. 아리샤는 부스스한 눈꺼풀을 열었다.
“으으······.”
온몸의 뼈가 바스라진 것처럼 아프다. 자신이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하늘섬에서 살아 귀환했다는 걸까?
“언니는······.”
자신을 구하고 검귀의 칼날을 대신 막아선 이복언니. 루니아를 찾아 정처 없이 드루이드들의 마을을 걷는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아······.”
나무로 지어진 도시의 높은 고목 위. 세상을 흘겨보고 있는 소년이 얼굴 가득히 미소 짓고 있다.
일단 소년을 향해 올라갈 때쯤, 제 존재를 눈치챈 목소리가 가볍게 흘러왔다.
“몸은 괜찮냐.”
“그다지요.”
“나도 그래.”
아리샤는 검귀만을 바라보느라 코린의 전투를 코앞에서 보고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숱한 사투를 벌여온 그가 힘겨운 싸움을 끝내다는 걸 짐작했다.
“서로 잘 해냈네요.”
“끝내줬지. 끄응······.”
“어엇, 괜찮으세··· 으아!”
옆으로 쓰러지려는 코린을 받아내려다 저도 같이 밀려 나가는 아리샤. 엎어진 건 아니지만, 영 안타까운 모양새가 되어 겨우 코린을 지탱하고 있다.
“무, 무거워요.”
“나도 죽겄다 야······.”
달빛이 비치는 나무 위에서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지탱하며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루니아 씨는 금방 나을 거야. 튼튼한 사람인 것도 있고, 엘릭서도 마셨으니까.”
“하아··· 다행이네요.”
“다 잘 된 거지.”
이번 일로 잘 알았다. 목숨을 건 사투라는 게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것인지를. 그렇다면······ 그는 대체 이런 사투를 얼만큼이나 벌여온 걸까?
이 커다란 어깨 위에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것인가.
그가 대적하는 존재들. 사악한 자들. 또래 소년의 어깨에 부과된 무게는 너무나 무겁고 터무니없다.
“그러는 넌 어때?”
“으음······.”
아리샤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자신 없게 풀어냈다.
검귀와의 대결에서 환희를 느낀 일. 그라는 제물을 잡아먹기 위해 변모한 일.
영역 속에서 영역을 건넌다는 기묘한 경험도.
“고생이 많았네.”
“······무서워요. 저란 인간이.”
그녀는 상식인이다.
사람을 베면 안 된다.
누군가를 베며 웃는다는 것은 더더욱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서 억누르고 부정했다.
검귀와의 싸움은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야수의 해방이다. 그녀는 제 본능을, 본성을 새삼 직시하게 된 것이다.
“평범하고 싶었는데······.”
평범하고 싶은 이상자의 고민에 코린은 멋쩍게 뺨을 긁적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운을 띄운다.
“세상에 이상한 놈들 많아. 중요한 건 언제나 선택이지.”
“하지만······.”
“마리에 선배나 화란을 봐. 두 사람을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 두 사람이 뭘 잘못했던가?”
“하지만··· 제가 검에, 사람을 베는 것에 홀려버리는 건 사실인걸요.”
“그게 뭐가 나쁜데?”
“예?”
“중요한 건 이 마음과 신념이야. 왕도를 걷는 거지. 너는 네가 가진 힘에 좀 더 긍지를 가져야 해.”
코린은 아리샤의 손을 잡아주며 웃어주었다.
“정 못 견디겠으면 내가 같이 있어 줄게. 고민이 있으면 이야기 정돈 들어줄 거고, 잠이 안 오면 잡담이라도 같이 하다 보면 잠들겠지. 꿀꿀하면 고기나 먹으러 가자.”
“하하······.”
그렇게 장난스러우면서고 꽉 잡은 큼직한 손이 어찌나 소녀를 안심시키는 건지··· 신기한 기분이다.
“사실 처음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요. 청춘을 만끽할 생각이었단 말이에요.”
“그래 보이더라.”
“그런데 코린 씨하고 같이 다니니까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건 쫌 미안하네.”
“으응··· 밤새 놀기도 해보고, 수업 중에 졸기도 하고, 의미 없이 옥상에서 시간을 죽여보고, 돈까스하고 우동정식 중에 어떤 걸 먹어볼까 고민해보기도 하고······.”
“그래요. 주말에는 시내로 나가서 군것질하면서 최신연극도 보고, 쇼핑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다가 산책도 하고요. 그런 평범한 것들이요.”
“어울려 줄게.”
“히히··· 그거 좋네요.”
무엇이 그리 좋은 건지, 배시시 미소를 흘리며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소녀.
“같이 하면··· 진짜 즐거울 거예요.”
“오냐.”
“약속한 거예요? 저··· 이상한 사람이니까. 케어해줘야 한다구요. 언제 엇나갈지 모르니까······.”
“넌 잘 해낼 거야. 난 알아.”
“흥··· 말은 항상 잘해요.”
“못 믿겠으면 날 믿어. 내가 보증한다. 넌 엇나가지 않아. 넌 잘해 낼 거야. 다 잘 될 거야.”
“그래요··· 믿을게요.”
밤이 깊어간다.
아리샤는 새삼 소년의 어깨가 딱딱하고 넓다는 걸 깨닫고, 듬직한 아군을 만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째선지···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가 소년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밤을 지세우며 별 구경을 했다.
············
·········
······
“아.”
어느 순간, 깨달은 사실.
‘언니하고 코린 씨··· 곧 약혼식이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때, 아리샤는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불쾌하고, 짜증이 나는 감각. 가끔 뭉실뭉실 피어올랐던 그 감정의 정체는······.
“앗. 아앗······.”
오싹오싹하다.
환영 속에서 보았던 기억들이 짜르르 몰려온다.
일대의 대파란은 끝이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지진이란 후에 여진을 동반하는 법.
겨울방학을 장식할 파란은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