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8
약혼식(3)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화란을 목격했다.
“란··· 아니, 화 쪽인가. 뭐하냐?”
“······안 와.”
“뭐가?”
“황새가··· 안 와.”
당최 영문모를 소릴 하는 화란. 이 세계의 동방에선 아침에 황새가 날아오는 이야기라도 있는 건가.
“창문 그만 보고 씻고 밥 먹으러 가자.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대욕탕으로 가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섰다.
“안 가?”
“······잡아먹힌 걸까?”
“황새?”
“······응.”
“이 동네 황새 안 다녀. 좀 더 북쪽에서 나다닐걸. 노스킹덤 쪽에 황새 서식지가 있을 텐데.”
“······!!”
마치 그런 난점을 알지 못했다는 듯 놀란 표정을 하는 화란. 대체 왜 황새가 보고 싶었던 걸까?
“됐고. 밥이나 먹자.”
시무룩해 보이는 화란을 끌어안고 대욕탕까지 갔다.
·········
······
···
“가짜약혼?”
“쉿. 이거 비밀이니까 남들한테 말하지는 말고.”
“······응.”
아침. 씻고 나온 화란에게 루니아 씨와 관련된 사정을 설명했다.
“좀 놀래켜 주려고 그랬는데, 내가 배려가 없었어. 란한테 그렇게 전해줘.”
“······.”
“란의 마음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네 자매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
화란은 별 반응 없이 이쪽을 쳐다보더니 주먹을 들었다.
-퍽!
“으갹···! 아퍼!”
“······.”
내, 내가 맞을 짓 한 건 맞지만, 뭔가 그 이유 때문에 맞은 것 같지 않은데?
“먹어.”
시니컬한 한 마디와 함께 고등어자반 앞 젓가락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화란.
몇 번인가 나와 고등어자반으로 시선을 옮긴다.
“······.”
“······.”
“··················.”
“··················그래, 내가 발라줄게.”
긴 침묵 끝에 화란 앞에 놓인 고등어를 먹기 좋게 발라준다.
-냠냠
고양이가 생선을 우물거리듯 보기 좋게 먹는 화란. 그렇게 식사를 마칠 때쯤,
“너··· 항상 바쁘네.”
“응? 아, 그렇지.”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나랑 다녀.”
“어? 그러면 나야 좋지.”
“······좋아?”
당연히 좋다마다. 화란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이쪽에서 얼싸안고 환영할 판이다.
“그래, 고맙다.”
화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묘한 표정 변화로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
마리에를 찾아야 한다.
아덴가의 하인들에게 행적을 물으니 그들도 모르는 모양.
그렇다면 마리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건······.
“컹!”
아덴 본가의 뒷마당. 그곳에 녀석이 있었다.
몽티조 브랜드의 금화 두 장짜리 티셔츠와 다섯 장짜리 바지. 멋들어진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를 낀 녀석이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나를 반겼다.
“컹컹!”
“어··· 바쁜 건 알겠는데.”
덕구. 나와 마리에의 피의 산물은 버려진 소파와 제 무릎 위에 동네 암캐들을 죄 불러모아 눕히고 있다.
이놈 이거 인기 왜 이리 좋아?
“혹시 엄마 어디 있는지 아냐?”
“커컹!”
“아니, 이눔이? 누가 아빠한테 그런 상스러운 소리 하래?”
“컹컹!”
“아니··· 엄마 울린 건··· 의도한 건 아니고······ 아, 아니. 이것도 변명이다. 아빠가 잘못한 게 맞다.”
나는 덕구의 옆자리에 앉았다. 덕구를 바라보는 간절한 암캐의 시선이 심히 부담스러웠지만, 어렵사리 뗐고.
-끼잉끼잉(덕구 씨··· 절 버리실 건가요?)
···············
내 귀가 잘못됐나. 왜 동네 개들 낑낑거리는 소리까지 번역되는 것 같지.
“아무튼, 덕구야. 아빠가 엄마하고 풀 이야기가 있어요. 엄마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겠니?”
“컹!”
아씨 안 통하네. 그런데 이놈, 나중에 가서 나한테 쌍욕 박는 거 아니야? 자식새끼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다 엄마 편이구나!!
“소 한 마리.”
“······컹?”
“돌아가면··· 남부산 최상급 흑우 생고기 에디션으로 한 마리 사줄게.”
“컹컹컹···!!”
갑자기 웃는 녀석. 왜지? 남부산 흑우 생고기는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거절할 리가 없──
「보관 명세표 : 덕구(듀나레프 보증)」
보관잔액 : 2,956골드
지온 대성당의 금화 보관소를 이용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이 세계에서 은행의 위치를 대신하는 교단의 금화 보관소. 그 보증어음이었다.
이 새끼, 왜 나보다 돈이 많지?
어어? 내가 작년에 그런 똥꼬쇼를 벌이며 사수한 여관 매출비용을 한큐에 말아 잡수시는 돈을 덕구가 가지고 있다고?
“아, 아들··· 아빠 용돈 좀······.”
“크퀘퀘퀘퀠···!”
* * * *
한껏 조롱과 무시를 당하긴 했어도 덕구가 결국 마리에가 있는 위치를 알려줬다.
“선배.”
“······.”
아덴 본가에서 구석진 사랑채. 손님이 없어서인지, 창문도 닫아놔 어두운 방 안에서 마리에는 장지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맞이한다.
“왔어?”
“여기서 뭐 해요?
“그냥. 구경.”
“뭐, 어제 일은······.”
그때였다. 마리에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더니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선배?”
요사스럽게 빛나는 붉은 눈. 그 시선만으로 나는 그녀의 갈증을 깨달았고, 대처할 틈도 없이 그녀가 나를 덮쳤다.
팍! 하고 마리에의 송곳니가 쇄골에 박힌다. 몇 번이나 물려 흉터가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지만, 재생능력이 있어 문제없다.
-꿀꺽···!
이럴 때면 마리에는 아기 같다. 필사적으로 내 목덜미에 매달려 입술을 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균형을 잃어 넘어지지 말라고 허리춤을 잡아주곤 있지만, 마리에는 내 피를 빠는 데 여념이 없다.
“하아··· 하아······.”
쉴 새 없이 빨아먹은 탓인지 숨을 헐떡인다. 이 상태의 마리에는 정신없을 때가 많으므로 등을 토닥여주며 안정시켰다.
“천천히 마셔요. 어디 안 가니까.”
“······응.”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치며 침대 위로 쓰러진다.
철퍼덕! 침대 위로 쓰러진 나를 자연스럽게 눌러오는 마리에. 어제의 란과 비슷한 구도지만··· 방 안의 끈적한 공기와 농밀함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맛있어.”
더, 더 내게 파고드는 마리에. 심장이 맞닿는 자리. 쿵쾅거리는 마리에의 심장소리가 내게도 들린다.
얼마나 피를 탐했을까? 송곳니가 박힌 곳에서 흘러나온 목덜미를 할짝할짝 깔끔하게 훑어 먹은 마리에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스르륵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입가를 간질거렸다.
“코린 더 마셔도 돼? 오랫동안··· 굶주렸어.”
거진 한달이었나. 마리에와 헤어진 뒤로 그녀는 혈액팩만을 마셨겠지.
드물게 그녀가 어리광을 부리는 거니 나도 거부할 순 없다.
그녀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다시금 아기처럼 내 품에 파고드는 마리에. 재생하기 시작한 살덩이가 날카로운 송곳니에 다시 한번 뚫린다.
············
·········
······
오랜 굶주림 탓에 주체를 못 하고 과하게 피를 빨고 말았다.
빈혈 기운을 보이며 침대에 잠든 코린을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마리에.
오랜만에 맛본 그의 피는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탄탄한 근육질의 넓은 어깨. 일자로 펴진 쇄골로 도드라져 보이는 승모근과 가슴근육.
혓바닥과 식도로 흘러가는 풍성한 피도, 쇄골에 남은 잔여물을 핥는 것도 전부······.
내꺼다. 전부전부전부 내꺼다.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나만이 맞닿을 수 있는 거리.
이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누구보다 살가운 듀나레프의 공주님은 이 순간에만큼은 살의마저 숨기지 못한다.
코린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건 너무나 서럽고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행복을 빌어야겠지.
그가 행복했으면 한다.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세월을 보내고, 여생을 끝마치기를.
“코린 있지··· 나는 기다릴 수 있어.”
백 년. 이제 그녀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그 기다림 끝에 그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긴 거야.’
귀한 보물에 타인의 손떼가 탄들 어떠하리. 잠깐만 내어주면 영원히 제 보물고에서 나오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 괜찮다. 기다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럴 터인데······.
“윽··· 흐윽···!”
그래도 싫다. 역시 싫다. 잠시라도 빼앗기기 싫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옆에 있기를 욕심내고 만다.
“내 껀데··· 내 껀데······.”
왜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하고 맺어지는 걸 봐야 하는 거야. 어떻게 100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거야.
소녀는 울상짓는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인생에 있어 처참한 첫 패배는 쓰고 매웠다.
“······선배?”
쓱, 하고 그녀의 눈가를 스치는 굵은 손가락.
“왜··· 울어요?”
비몽사몽한지 말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감정만큼은 확실히 전달되었다.
“여 누워봐요.”
탁탁, 침대를 두드리는 코린. 그의 행동에는 마성의 무언가가 있다.
마리에는 빨려 들어가듯 그가 내민 팔에 머리를 맞대었다.
“진정됐어요?”
“응··· 미아내.”
“우리 선배를 누가 울렸대.”
너 때문이다. 네가 날 이렇게 아프게 한다. 마리에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추한 일이다. 약혼이 정해진 사람에게 매달리는 건.
울상을 펴지 못하는 마리에를 보며 코린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릎 쓰기로 했다.
“내가 말했죠. 선배는 좋은 사람이라고. 난 선배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왜.”
“내 팔은 이렇게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밖에 뻗을 수 없고, 그러니··· 손에 닿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했으면 해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사람들······.”
어째서 자신을 구해주었냐는 것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번 들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은··· 코린 로크라는 영웅에게 그저 ‘모두’에 포함되는 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인가.
“나는······.”
네게 ‘모두’가 아닌 특별한 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배려해주고, 지켜주고 안아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이기에 마리에 듀나레프는 그를 사모한다.
연모하고 은애하며 사랑한다.
설령 그 사랑이 쌍방향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서럽고, 슬픈 감정이 자꾸만 쏟아지려 한다.
“코리이이인······.”
결국 목울대에서 뛰쳐나온 서러운 감정의 파도가 굽이치고 만다.
“아유··· 예쁜 사람이 이리 울면 어째.”
“흐끅···! 애···처럼 다루지··· 마아아······.”
“이렇게 큰 애가 어딨어요. 하여튼··· 이래서야 저 약혼식 때, 축하나 해줄 수 있겠어요?”
내가 왜! 내가 왜 그걸 축하해! 절대 안 해!
마리에가 이 눈치 없는 소년에게 울분을 토해내려는 순간.
“뭐, 가짜약혼이지만.”
“흐웅?”
뚝! 그렁그렁하던 마리에의 눈가에 의문이 비쳤다.
“가짜··· 약혼?”
“네, 루니아 씨하고 거래를 했거든요.:”
이를테면, 직격 100m짜리 얼음 덩어리에 직격당한 것처럼 화악 깨졌다.
“야아~ 갑자기 동부에서 보자마자 결혼할 생각 없냐고 물어서 말이죠. 뭐, 이쪽도 집안사정이 좀 있다는 겁니다.”
겨우 상대방이 말을 들어줄 태도를 보이자 코린은 재잘재잘 잘도 떠들었다.
그리고 코린의 말이 풀어질 때마다 마리에의 귓가는 빨개지고 도랑도랑 수분이 맺혔던 눈시울은 붉어지며 치를 떨듯 김이 서리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게, 연기였고, 가짜였다.
“그,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코린이 동부에 온 지 고작 한 달. 첫눈에 반해서 한 달만에 약혼 이야기까지 나온다?
아니, 그것이 성립한다 쳐도 코린은 바쁜 사람이다. 그가 마리에에게 털어놓았던 숙적들은 사시사철 온 대륙에서 음모를 꾸미는 자들.
마리에는 기꺼이 그의 파트너가 되어 가디언즈 활동을 함께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코린 로크가 동부에 스스로 묶인다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순임을 알 수 있었다.
“으, 으익··· 으이익···!”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며 그간 자신이 떠올렸던 망상, 음산한 계획 등을 떠올리고 만다.
백 년을 기다려? 빼앗기기 싫어?
“으기야아악···!”
침대 위에서 파닥파박 바둥거리는 마리에.
“여 이불 덮어요. 배불러서 피곤한가보네.”
“이익··· 이이익···!!”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며 바둥거리는 그녀를 귀엽다는 듯 지켜보는 코린.
그렇게 십분, 이십 분이 지났을까. 겨우 진정된 마리에를 토닥인다.
“그래서···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슬펐던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뭐··· 그런 거로 해두죠.”
부끄러움과 격노가 교차하는 가운데, 마리에는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그의 볼따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야야······.”
“코린.”
“네?”
“나한테··· 거짓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코린은 진지한 시선으로 마리에와 마주쳤다. 죄책감, 미안함··· 그리고 굳은 의지다.
“네, 그럴게요.”
“나는··· 코린이 하는 말은 뭐든 믿어. 의심하지 않아. 코린이 금화를 3배로 불려온다고 해도 믿을거구, 내일 유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믿어. 그러니까······.”
마리에는 복받친 감정을 미약하게 드러내며 눈망울이 그렁그렁했다.
“코린은 나한테 절대 거짓말하면 안 돼.”
“알았어요. 장난이라도 거짓말은 안 할게요.”
“응. 믿어.”
그렁그렁했던 것을 훔쳐내고 물빛머리 소녀는 만개한 꽃처럼 배시시 미소 지었다. 거짓을 말하지 않을 평생의 연인을 얻은 것처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백 년 뒤부터는 전부 내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비밀이야···!”
소년에게 그 비밀이 밝혀지는 건 아마 정말로 백 년 뒤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