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3
마탑의 마법사들(1)
저녁이 지나고 유흥의 밤이 찾아왔다.
뒷골목의 주점들이 손님을 받고, 거리를 순찰하는 갱단이나 창부를 찾는 사내들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로브를 입은 수상쩍은 사내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어서 옵쇼.”
합법과 비합법을 오가는 회색 경계선이 있다면 뒷골목의 주점만 한 곳이 없겠지.
마탑의 흑마법사 만로지는 뒷골목의 생태를 제법 잘 아는 편이다.
“식사? 술?”
누구에게나 불퉁한 마스터의 환대 아닌 환대. 만로지는 슬쩍 주변을 살피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게임이나 하러 왔소.”
“계단 따라 내려가쇼.”
숨기는 기미도 없다. 사실 뒷골목의 주점에서 도박과 여자를 소개하는 거야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이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지하로 내려가자 북적이는 인파들이 저마다 판을 벌이고 있다. 주로 하는 게임은 플레잉 카드와 크랩스 계열의 주사위 놀이인 모양이다.
“흐흐흐······.”
만로지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마탑의 4층 마법사 만로지는 전형적인 도박중독자다.
방문하는 도시마다 뒷골목의 도박을 찾아다닐 정도로 말이다.
다만 그가 다른 이들과 다른 게 있다면······.
‘저놈은 투 페어. 다른 쪽은 스트레이트인가.’
어둑한 도박장 지하. 은밀하게 매달려 있는 박쥐 형태의 패밀리어. 주인과 시각을 공유하는 그것이 만로지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흐하하하···!”
“에이씨, 또 졌네!”
“이런 썅!”
오늘도 연이은 승승장구. 너무 이기기만 하면 의심받으니 적당히 져주기도 하면서 만로지는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저도 합석해도 될까요?”
슬슬 물갈이가 되는 시점. 새로운 상대는 웬 미녀였다.
회색빛의 단발머리와 고혹적인 차림의 미녀. 홀리듯 흘리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도도한 매력이 돋보였다.
“흐흐, 상관없소.”
순간 미녀에 혹한 그는, 이 여자를 탈탈 털어먹기로 했다. 마음에 든 여자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몸을 요구한다. 그가 자주 쓰는 수법이다.
1시간 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저, 정말··· 돈을 돌려주시는 건가요?”
“그렇다니까. 흐흐, 그러니까 빨리 그 거추장스러운 천쪼가리부터 벗으라고.”
숙박과 매춘을 위한 2층 룸. 만로지는 자신이 빈털터리로 만든 여자의 손을 붙잡고 방에 들어섰다.
“아, 알겠어요.”
수십 장의 금화를 잃고서 고분고분해진 여자. 그래, 제가 암만 도도해봤자 제 앞에선 한낱 계집일 뿐이다.
덕분에 도시에 체류하는 동안 옆구리가 시릴 날은 없어 보인다.
“그, 그보다··· 서로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흐흐, 알아서 뭐 하겠느냐. 너는 얌전히 안기면 되는 것을.
“아니, 알아야지.”
분위기가 일변한 것은 순식간. 아까까지 바들바들 떨던 미녀가 돌연 냉혹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레냐 클레어. 이 건물 주인이야.”
“뭐?”
“우리가 호구로 보였나, 마법사?”
“······!!”
-퍽!
무언가가 만로지의 뒤통수를 후려쳤고, 그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의식이 꺼져갔다.
“후~ 하여튼 마법사들이란.”
“수고했어. 그보다 옷이나 좀 제대로 입어.”
“미성년자한테는 좀 자극적이었나, 보스?”
꺼져가는 의식 속. 그의 귓가에 들린 것은 도도한 미녀의 목소리와··· 묘하게 익숙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
······
···
눈을 뜬 만로지는 자신이 어느 지하 방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음도.
“누, 누구냐! 어째서 이런 짓을!”
“안녕, 마법사 양반.”
“흡···!?”
목소리의 주인을 목격한 만로지는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보랏빛의 맞춤 정장, 기괴한 광대분장의 입 찢어진 남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너는 누구냐!”
“······.”
“뭐, 뭐야? 왜 말을 안 해!”
“아니, 잠깐만. 영화 본 지 너무 오래되서 적당한 대사가 생각이 안 나. 후··· 마지막으로 본 게 4년인가 5년은 됐단 말이야.”
“뭐···?”
“쉬이이··· 전부 농담이야. 신경 쓰지 마.”
만로지는 곧장 광대를 향해 마력을 뿜어냈다. 저위 즉발성 마법 암흑의 안개. 뒷골목의 왈패 따위는 순식간에 살해할 것이다.
-화악!
그러나 안개가 광대에게 닿는 순간, 빛이 암흑을 잠식하고 몰아내 버렸다. 마치 정화된 것처럼.
“무, 무슨 짓을···!”
“태양 없이도 이따위 저주쯤이야.”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중급 마법을 행하기엔 적이 코앞에 있었다.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 제 목에 칼을 쑤셔박을 테지.
만로지는 다급해졌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나는 마탑의 4층 마도사···!”
“한 가지 확실한 건. 구라치다 걸리면 인생 조진다는 거지.”
그의 손에는 박쥐 형태의 패밀리어가 잡혀 있었다.
“우리, 대화의 시간을 가져볼까, 친구?”
* * * *
“코린, 여기야, 여기!”
마리에와 시내에 나왔다. 별일은 아니고 듀나레프 가문 산하의 유통업체가 정식으로 메르카바에 진출했다는 모양이다.
「듀나레프 신선유통」
전 회차에선 없었던 상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 회차에서도 마리에의 유폐 이후 교내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
일단 학식이 맛없어졌다. 상당히 오랫동안.
“선배, 이전에도 식재료를 납품하는 게 선배네 회사였죠?”
“응? 으웅, 그럴걸? 아빠가 ‘기부’하는 걸로 알고 있어.”
“······.”
납품이 아니라 기부였냐. 내가 아연실색하자니 마리에가 내 코를 톡 두드리며 웃었다.
“농담이야! 아무리 그래도 직원 포함해서 3천 명이 넘는데, 어떻게 공짜로 줘!”
“그, 그렇죠? 하긴 그 많은 감자들도······.”
“아, 감자는 내 용돈으로 왕도에 납품하는 거 일부를 차떼기해서 나눠주고 있어.”
“······.”
따로 감자창고가 있는, 그 어마어마한 양의 감자를··· 말이죠.
“그런데 여긴 웬일이에요?”
“우리 가게 오픈하는 김에 시식이나 하고 가라고. 줄 것도 있구.”
“아하.”
마리에가 안내한 가게는··· 상당한 규모였다.
지구 시절의 농협 직판장을 보는 느낌일까. 여기에 2층에 식당까지 있단다. 남부에서 가져오는 방대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요식업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이니까.
근데, 이거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 아닌가?
“요거 감자 퓨레하고, 감자전하고, 이건 감자떡하구 감자 고기조림하구 감자 뇨끼하고 크로켓하고 튀김하고 파이도 주세요!”
마리에는 이걸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주방장을 시켜 이것저것 요리를 시켰다.
“자! 코린 많이 먹어!”
상다리가 휘어져라 놓인 감자 요리들. 감자로 할 수 있는 요리란 요리는 다 있는 것 같다.
“······선배 감자 중독인 걸 알아줘야 해.”
“으응? 감자 중독이 어딨어? 코린도 참.”
“아니, 선배 매일 감자 몇 개씩 찌지?”
“파, 팔십 개? 하지만 그거 친구들 나눠주는걸!”
“근 일년간 삼시세끼에서 감자 요리가 빠진 적은?”
“가, 감자는··· 밥 같은 거야.”
“거봐. 중독이라니까.”
“아냐! 나 감자 중독 아니야! 옥수수하고 고구마하고 당근도 좋아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
보통, 음식 가지고 끊는다는 표현을 하지 않아요. 탄산중독이나 카페인 중독자가 끊는다는 표현을 쓰지.
“진짜로?”
“진짜루!”
자신만만한 마리에의 태도에 나는 소금을 집어 찐감자에 휙휙 뿌렸다.
하얀 결정들이 뜨거운 열기를 피어오르는 감자의 겉면에 우수수 쏟아지는 것이 퍽 먹음직스럽다.
“············.”
“············.”
찐득하니 마리에를 응시하자 점차 이맛살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마리에. 황금색 눈동자가 감자와 나를 오가며 흔들렸다.
“이거까지 먹고 다음부터 참으면 안 될까?”
“그냥 다 먹어요. 뭘 눈치를 봐.”
“헤헤.”
방긋 웃으며 감자를 짚는 마리에 소금 뿌린 찐 감자를 반으로 뚝 쪼개더니 내게 건넸다.
“그래두 코린이 반은 먹어줄 거잖아.”
“것도 그렇네요.”
식사를 재개하는 우리. 그러다 문득 마탑의 마법사들 이야기가 나왔다.
“맞다, 코린. 이번에 방문한 마탑의 마법사들 말이야.”
“그 이야기는 왜요?”
“코린이 직접 안내를 하겠다고 했잖아. 원래대로라면 나보고 해달라 부탁했다는 모양이야.”
“호오~”
원전 역사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마리에는 아카데미의 지하시설에 유폐되어 있다.
흡혈귀의 본성을 억누르고 치료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어야 했을 터.
정사에서 듀나레프 가문이 아카데미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대강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마탑은 마리에를 다른 의미로 보았다.
진귀하기 짝이 없는 장로급 흡혈귀. 그 피와 살을 연구하면 엄청난 마학적 진보가 있으리라고.
과연, 윤리적 제약 따위 없는 미치광이 마법사들. 인체실험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시도한다.
“선배. 안 그래도 슬슬 말할 생각이었는데요.”
“으웅?”
“이번 마탑의 방문은 선배 때문일 거예요.”
“어··· 나, 나 때문에?”
마리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 내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녀도 굉장한 실력의 천재 마법사. 곧 자신의 피와 살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왜?”
그럼에도 그녀는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 당연하다.
“나··· 건들면 큰일 날 텐데?”
마리에 듀나레프.
우스갯소리로 감자제국이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대륙의 식량을 통째로 책임지는 곡창지대의 소유자이며 왕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이다.
원전 역사에서 듀나레프는 마리에의 퇴장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지금은 마리에도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 마리에 듀나레프를 건드린다고? 그깟 실험을 위해?
“마탑은 타테스 발타자르의 하수인들입니다.”
“타테스··· 발타자르. 코린이 맞서려 한다는 무서운 사람이지?”
“네, 어차피 낙원도래로 세상이 박살나면 속세의 권력이나 재력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거겠죠.”
그것이 발타자르와 그 세력의 무서운 점이다.
어떤 미친 짓을 해도, 조금도 그 뒤를 보지 않고 행동해도 괜찮다.
문명의 파괴와 리셋, 새로운 신들의 도래. 어차피 낙원에만 가면 되니까.
“그, 그 정도로 무서운 일을 벌이고 있었구나······.”
파티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대강은 했었다.
나는 발타자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와 대적할 생각이라고. 내가 벌이는 일들은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망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말하는 건 처음이다.
“원초의 룬 문자를 모두 수집해서 낙원··· 티르 나 노그(Tír na nóg)로 가는 길을 열고, 4대 비보로 지고왕의 자격을 증명하여 왕위를 찬탈한다.”
그 뒤로 얻을 수 있는 낙원의 제어권을 이용해 온 세계에 그림자 낙원의 마수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문명의 파괴. 그리고 리셋. 지상을 싹 쓸어버린 뒤, 새로운 신들이 창생한 세계를 여는 거죠. 하··· 어디 삼류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실제로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게 무서운 것 같아.”
마리에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며 허무맹랑하다고 부정하지 않았다.
“코린, 이 이야기를 내게 해줬다는 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저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할 겁니다. 선배는 날 어디까지 믿어요?”
“······.”
마리에는 내 질문에 잠시 침묵하더니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 맞은편 건너에서, 내 옆으로 다가와 앉고······.
“코린. 코린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
툭, 머리를 기대는 소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난 말이야. 코린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어떤 부탁도··· 코린은 나의 코린이니까.”
“선배······.”
“히히··· 그래두 기쁘다. 코린이 이렇게 내 도움을 원한다는 게. 코린은 뭐든지 알아서 척척 잘하니까··· 내가 도울 것이 없다는 게 슬펐거든.”
“지금까지 선배가 얼마나 도움이 됐는데요. 철산의 왕 때도, 페스티벌 때도, 드루이드의 비경 때도.”
“난 욕심쟁이거든. 남들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앞서 나가고 싶어.”
어떤 역경도 기꺼이 견뎌내려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을 짓는 마리에.
“시, 실은··· 나 코린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어······.
“부탁이요? 선배가?”
“부, 부탁이라기보다는 그··· 상? 그런 게 필요하달까··· 모티베이션이랄까······.”
모티베이션. 중요하지. 하지만 마리에가 나한테 부탁할게··· 있나?
“있지. 있지잇지이······.”
마리에는 공연히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의미 없이 부비적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곧 목청을 가다듬고 침을 꿀꺽 삼키며 바보스러운 억양으로 말하는 것이다.
“코린이 부탁한 일 끝나면··· 내가 뭘 좀 해달라고 해도 될까?”
“어··· 그럼요. 아니, 그냥 지금 말씀하셔도 되는데요.”
“그, 그건 좀 파렴치한 거 같구···! 약간··· 약간 시간이 좀 필요해!”
대체 뭘까? 마리에가 내게 부탁할 게.
“좋아요. 내가 선배 위해서 뭘 못할까.”
진짜다. 난 마리에를 위해서 못 해줄 게 없다.
“그럼 선배··· 잠깐, 나랑 어디 좀 가줄래요?”
“으웅?”
마리에가 깜찍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
나는 마리에를 데리고 내 소유의 ‘행복여관’으로 향했다.
페스티벌을 특수목적을 위해 지은 이 여관은 여전히 여관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관리 자체는 정보길드의 간부 레냐에게 일임했지만, 이렇게 내 아지트로도 쓰이는 것이다.
“코, 코코코코코린? 이, 이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해?”
“예? 뒷말을 못 들었어요.”
어쩐지 바들바들 떠는 마리에. 양손을 마주 대고 비비며 손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있다.
“그, 그르쿠나··· 부탁 같은 건··· 하, 할 필요가 없는 건가?”
“여기 지하로 갈 거예요.”
“어, 지하? 그, 이왕이면··· 채광이 좋은 곳이 좋지 않을까?”
“무슨 소리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코린이 원하는 대로 해! 나, 나는 그냥 다 괜찮아!”
실없는 소리를 하는 마리에.
마리에가 발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손을 붙잡고 지하로 내려갔다.
여관의 지하는 객실이 아니라 창고로 쓰인다. 하지만 나는 애초부터 이 여관을 지을 때, 이곳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장비를 갖추며 건축했지.
“여기예요.”
“후, 후우, 후우······.”
어두운 곳은 질색인가? 어쩐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마리에를 데리고 지하의 어둑한 방으로 들어섰다.
“여, 여기구나. 하, 하긴··· 기숙사는 듣는 귀가 많으니까······. 침대는··· 어?”
방에 들어서자 마리에는 반보도 더 걷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럴 만도 하다. 지하의 중심에는 내가 어제 납치해온 흑마법사 만로지가 묶여있었으니까.
“선배. 부탁할게요.”
“코, 코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마리에의 양어깨를 붙잡으며, 나는 말했다.
“쟤 흡혈귀로 만들어주세요.”
-씨익
모르긴 몰라도 내 미소가 꽤나 사악하게 비틀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