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9
마탑의 마법사들(7)
팽보어들은 특유의 번식능력과 잡식성으로 매년 정기적인 개체수 조절이 필요한 4급 마물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농가의 시민들에 해악을 끼쳤음에도 말살되지 않은 건, 산맥의 복잡한 길을 따라 늘어져 있는 둥지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번식기가 되면 부족해진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산밑으로 남하하니 이들을 처리하는 건 가디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다.
금년도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오우겐 교수는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 교수님! 팽보어들이 너무 많아요!”
“전원 나를 중심으로 방진을 펼쳐라! 뭉쳐서 싸워라! 서로를 보호해!”
오우겐 교수는 커다란 제 애병으로 달려드는 팽보어를 두 쪽 내며 학생들을 보호했다.
“전원 모였나? 이름을 호명하겠다! 란돌프 학생!”
“네! 여기 있습니다!”
차례차례 22명의 학생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결번이 존재했다.
“렌 학생! 론 학생은!”
“모, 못 봤습니다!”
“저쪽 산기슭에서 봤어요!”
멀다.
팽보어들의 무리야 저 혼자서라도 돌파할 수 있지만, 문제는 학생들이다.
2학년이라면 모를까 이제 막 입학한 1학년들이 이 패닉상황에서 잘 헤어나갈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천천히라도 전진한다! 마법사들 중간에 서고, 기사들은 전위와 후위를 맡으며 이동! 기껏해야 4급 마물이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맞설 수 있어!”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버릴 수는 없다. 오우겐은 스스로 선두에 서며 학생들을 독려했다.
“교, 교수님을 따라!”
“팽보어는 상대도 안 돼! 그냥 찌르면 뒈진다고!”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1학년들의 무장은 굉장히 충실했다.
학년 초에는 보통 하급 무장을 사용했겠지만, 어떤 통 큰 선배 덕에 그들의 무장은 최소로 쳐도 중급이다.
무기의 질이 좋다는 건 마물의 고기가 더 잘 썰린다는 걸 의미했고, 1학년들의 어설픈 솜씨에도 마물들은 손쉽게 잘려나갔다.
“좋아! 이대로···!”
“그렇겐··· 안 된다.”
오우겐의 거친 도끼질에 팽보어들이 갈려 나가던 그 순간. 그를 향해 저주의 화살이 쏘아졌다.
“마법···?!”
날아드는 화살을 도끼로 막아내는 오우겐. 하급 마법이었으나 문제는 적대세력의 존재다.
“마법사들······.”
음침한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들이 오우겐과 1학년 학생들을 둘러싸고 있다.
“교수님! 팽보어들이 마법사들을 공격하지 않아요!”
“······역시 이 습격은 네놈들의 짓이었나.”
수백 마리의 팽보어들을 거느리듯 포위를 형성한 흑마법사들. 그 정체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어째서 마탑의 마법사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이건 중대한 약정 위반이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화는 무의미하다.
‘대체 뭐가 목적이지?’
해소되지 않는 의문을 품으며 오우겐 교수는 도끼를 꽉 쥐었다.
·········
······
···
많다.
여기도 저기도 멧돼지들 투성이다.
늑대남매는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며 덮쳐오는 멧돼지들을 때려죽였다.
“허억, 허억··· 너무, 너무 많아······.”
“물··· 마실래?”
“아니야, 렌 마셔.”
연이은 전투로 혹사당한 남매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산맥 전체에 돼지 멱 따는 소리와 썩은 피 냄새가 진동한다.
“교수님하고 다른 애들은 괜찮을까?”
“······그거 걱정할 때가 아니야.”
당장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인 건 자신들이다.
“이거··· 이상해. 팽보어들한테서··· 썩은 냄새가 나.”
“그치? 나도 그래. 코가 마비되는 거 같아.”
남들보다 후각이 뛰어난 늑대남매는 팽보어들에게서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았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본격적인 부패가 일어나기 전의 애매한 상태의 고기 냄새.
“일단··· 산밑으로 달리자. 최대한 빨리 뛰어가서 지원을 요청하는──”
“그렇겐 안 된다.”
남매를 막아서는 무리들. 마탑의 흑마법사들. 프로페서 아르카이를 비롯한 모르슈탄의 제자들이었다.
“다, 당신들은······!”
“마탑··· 왜?”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렌과 론. 그런 남매를 보면서 비열한 미소를 짓는 아르카이.
“흐흐, 장로급 흡혈귀도 굉장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황금털의 늑대도 만만치 않지.”
발단은 모르슈탄이 우연히 남매를 발견한 데서부터였다.
금랑(金狼). 우연과 기적의 여파로 생겨난 격세유전. 그 가치는 장로급 흡혈귀에 비교해도 만만치 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본래 정사대로라면 남매의 현 거처는 둔 스카이스를 따랐을 것이며, 그들이 확보해야 할 진귀한 실험체는 마리에 듀나레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수중에 없는 마탑이 강력한 특급 흡혈귀보다 미숙한 어린 금랑들을 노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결정은 아니다.
“얌전히 따라와라. 그렇지 않으면 사지를 찢어서 질질 끌고 가 주지.”
아르카이의 협박. 남매는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았다.
일찍이 뒷골목을 전전하다 갱단에 붙잡혔을 때, 자신들의 판매처가 바로 마탑이었으니까.
“렌.”
“······알고 있어.”
수인화로 반신을 짐승의 형태로 변모시키는 두 사람. 완전한 전투태세다.
“어리석은 것들. 한낱 짐승 따위가 마도에 대적하느냐.”
아르카이는 가소롭다는 듯 제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저마다 품속에서 웬 뼛조각들을 꺼내는 흑마법사들.
“프로페서 마도사인 아르카이님에게 대적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한 무더기의 뼛조각들이 바닥에 널브러지고 이윽고 아르카이가 커다란 두개골을 꺼냈다. 마치 늑대의 머리뼈 같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해라, 천한 짐승아.”
아르카이에 주언에 뼛조각들이 뭉쳐지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하나하나 형태를 갖추며 본래의 이음새에 맞게 조립되는 뼈들. 이뿐만이 아니다.
-꿰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팽보어들.
이미 죽어 언데드가 된 그것들조차 이 변모와 합성이 그들의 내제된 본성을 자극했다.
저것에 빨려들어가면··· 변질된다고. 생명의 본능이 호소한다.
-꾸에에에에엑!
-꾸에엑! 뀌에에에엑!
처절한 비명소리. 그것이 합쳐져 산맥을 떨게한다. 그러나 무의미한 저항이다.
팽보어들의 피와 살이 흑마력에 의해 짓이겨지고 부서지고 꿈틀거리며 압축된 고깃덩어리처럼 뭉쳐졌다.
그러한 덩어리 하나하나가 뼈에 붙어 살점을 이루는 것이다.
흑파의 마도란 흑마법 전반. 생명을 모독하고, 인위적인 융합, 합성을 반복해 죽음조차 극복하는 것.
거기에 삶에 대한 존중도, 지켜야 할 금기도 없다. 남매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악의 결정체다.
“그르르르······.”
뼈가 조립되고, 팽보어들의 살점이 채워진 기괴한 하울링을 흘렸다.
“어, 어어······.”
그것의 완성된 형태를 보고서 할 말을 잃는 남매.
그 형태가 마치 자신들을, 정확히는 완벽히 수인화된 짐승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늑대인간?”
“그렇다. 이것은 너희 동족의 뼈와 살로 만들어낸 최상급 언데드. 이 내가 만든 최고 걸작품이다!”
웨어울프 키메라.
평범한 인간의 뼈가 아닌, 순혈 늑대인간의 뼈와 팽보어들의 살점으로 만들어낸 합성괴물.
────!!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웨어울프 키메라. 지면을 박차는 가공할 기세에 늑대남매는 기겁하며 몸을 던졌다.
-쾅!
아슬아슬한 회피. 웨어울프가 들이박은 것은 백년은 묵었을 고목이 일격에 찢어 발겨졌을 뿐 아니라, 마치 방망이로 쳐낸 공처럼 마구잡이로 날아갔다.
“어어······.”
상식이 부정되는 것 같은 파괴력. 숲을 헤집으며 박살나는 고목의 잔해.
“후후후, 놀랐느냐? 짐승에겐 이해하기 어렵겠지. 이것이 생명마도의 정수라는 것을!”
어안이 벙벙해진 남매를 비웃으며 아르카이는 제 업적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완력의 기본은 근육! 기사 나부랭이들이 비인간적인 파괴를 일삼는 것은 근육의 밀도가 일반인의 백배를 넘어서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나는 생물의 근육밀도만을 높이는 생명합성의 진수를 연구했다! 비록 개개의 근육량은 기사 나부랭이에 비하지 못할지라도 숫자가 늘어나면 그 수치는 수십 곱절로 늘어나지!”
“너희 같은 짐승들은 나의 완벽한 키메라에 대항할 수 없다···!”
“······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알아먹지 못할 설명인 건 둘째치고 저 웨어울프 키메라의 강력함은 진짜다.
“그르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육중한 팔을 내리치는 웨어울프. 렌은 수인화된 팔로 놈의 공격을 막았다.
“윽···!”
무겁다. 아르카이의 말대로 수십 마리의 팽보어들을 합친 웨어울프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다.
“렌!”
누이를 구하기 위해 소년 늑대가 내지른 주먹을 웨어울프는 가볍게 막아섰다.
“윽···!”
무슨 돌덩이를 후려친 것 같다. 분명 힘만큼은 코린보다 우위였는데··· 그런데도 이런 차이라니······.
“엇···?!”
웨어울프가 우악스럽게 잡아당기자 그대로 딸려가는 소년. 꽝! 하고 남매가 부닥쳤다.
“으윽···!”
아찔한 충격에 신음을 흘리는 두 사람. 렌은 빠르게 판단했다.
“지, 짐승화야!”
그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포텐셜을 터뜨렸다.
커다란 늑대가 되어 웨어울프에게서 벗어나는 두 사람.
수인계열의 마인에게 이러한 짐승화는 미숙함의 상징이지만, 지금 상태만으로도 그들의 힘은 몇 배나 증폭된다.
짐승화한 두 금랑은 이대로 도주할 생각이었으나······.
“······?!”
어느새 쫓아온 웨어울프가 내리친 손톱이 렌의 옆구리를 찢었다.
「윽···!?」
「렌···!」
철푸덕! 바닥을 구르는 렌. 누이를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웨어울프는 그마저도 용서치 않고 론의 옆구리를 후려찼다.
「컥···!」
튕겨 나간 반동과 충격으로 우지끈! 구부러지는 고목.
「허억···, 허억···!」
두 금랑은 웨어울프의 육체능력에 절망했다.
힘도, 속도도 웨어울프 키메라는 자신들을 능가하고 있다.
대적할 수 없는 강자를 눈앞에 둔 것처럼 앞이 깜깜하다.
「힘만으로는 강자를 이길 수 없어.」
마음이 꺾이려던 찰나에 떠올린 음성. 타고난 강자들을 상대로 자신은 한낱 기사 나부랭이라며 자조했던 남자의 말을 되새긴다.
「하지만 싸우면 내가 이겨.」
그 모순적인 발언. 싸움이란 수식과 결괏값처럼 명료하지 않다, 라고 말했던 그의 조언.
지혜로운 싸움을 해라. 약점, 상성, 심리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상대의 아픈 곳을 찔러라.
「렌······.」
「알고 있어.」
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정면 싸움으론 안 된다. 약점을 파악하고 틈을 노려야 한다.
“슬슬 끝내지. 짐승들을 제압해라.”
“그르어어어어어···!”
아르카이의 말에 전보다 더욱 흉폭하게 덤벼드는 웨어울프 키메라.
초고밀도의 근육량을 사용하여 폭발적인 기세로 덤벼드는 웨어울프를 남매는 정면에서 맞상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피지컬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힘 대결을 피하고 회피에 전념하는 것이다.
‘빨라!’
‘엄청 쎄!’
주먹질 한 방에 고목이 날아가고, 십수 미터의 거리를 한달음에 좁히는 속도. 그 짐승 같은 몸놀림에 남매는 깨닫는다. 자신들이 바로 이러했노라고.
「공격이 너무 직선적이야. 변칙과 허수를 좀 섞어.」
「캬아아아···!」
포효를 내지르며 온 몸을 던지는 렌. 누이의 사각에서 내리치는 웨어울프의 손톱을 동생이 물어뜯어 당긴다.
-콰직!
론이 팔을 물어뜯는 동안, 렌은 웨어울프의 다리를··· 정확히는 아킬레스건을 물어뜯었다.
“그르아아아···!”
웨어울프가 가공할 완력으로 이리저리 휘두르자 두 늑대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웨어울프의 살점들이 한 덩이씩 물려 있었다.
「퉷···!」
살점과 핏줄을 내뱉는 금랑들. 웨어울프 키메라는 절뚝거리며 남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뜯겨 나간 근육과 살점은 괴물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이 점을 남매는 집요하게 공략한다.
렌이 먼저 공격하고, 론이 급소를 물어뜯는다.
욕심내지 않고 차근히, 상대를 공략하고 약점을 갉아먹는다.
그 현명한 사냥에 웨어울프 키메라는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끝이다···!」
절호의 기회. 누적된 피해로 틈을 보인 웨어울프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컥···?!」
「흐윽···?!」
동시에 쓰러지는 남매. 내장이 끓는 것 같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격통 탓이다.
“흐흐흐, 멍청한 짐승들 같으니라고.”
검은 피를 쏟아내며 고통스러워하는 남매를 향해 유유히 걸어오는 흑마법사들.
“이게······.”
짐승화조차 풀린 렌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광소하는 아르카이.
“키메라의 살점은 독성 그 자체지. 그런 것도 모르고 잘만 물어뜯더구나.”
“렌··· 한테서 떨어져!!”
비통한 론의 외침. 그러나 이는 아르카이의 가학심을 만족시켜줄 뿐이다.
“흐흐, 금랑이 두 마리라··· 스승님이 기뻐하시겠군.”
“웃기지··· 마. 네 스승은··· 감옥에 갇힐걸······.”
렌의 힘겨운 조소에 아르카이는 구둣발에 더욱 힘을 주며 렌의 머리를 짓눌렀다.
“멍청한 것. 그깟 신교의 팔라딘 따위가 스승님을 제압할 수 있을성 싶으냐? 신호가 가면 얼마든지 탈출하실 것이다.”
“으으······.”
“네놈들은 산 채로 박제해주마. 뇌를 포르말린 용액에 보관해주지. 뼈와 살점은 모두 마도의 발전에 사용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레에엔······.”
“쿨럭···!”
론은 검은 피를 토하는 렌을 향해 힘겹게 바닥을 기었다.
행동은 거칠고 항상 타박하지만, 뒷골목의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구하면 항상 저를 먼저 챙겨주던 쌍둥이 누이.
지켜야 한다. 내가 지켜야 한다.
「렌은 론을 지키고 싶지? 론도 렌을 지키고 싶고.」
「네! 저는 렌을 지킬 거예요!」
그 당연한 맹세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껄인 게 아니다.
한낱한시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던 쌍둥이 형제. 제 인생의 반쪽.
“아니···?!”
구속구를 채우려던 흑마법사가 돌연 황금빛을 발산하는 론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수인들은 그 정신적 성장에 따라 육체 또한 성장한다.
그 대부분은 사회적인 교육에 따라 지성과 이성이 발전해나갈 때겠지만, 지금처럼··· 어린 짐승이 가혹한 삶의 시련에서 강해져야만 할 때도 해당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때론 차갑고 가차 없는 시련의 태풍 속에서도 들이닥치는 것이다.
슬픈 성장이었으나, 지금의 론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성장이었다.
“하아, 하아······!”
“로, 론?”
갑작스러운 골격의 발달. 아이에서 소년이라고 할 정도의 변화였으나 그것만으로 급성장이었다.
언제나 여리여리하고 어리숙했던 쌍둥이 동생의 어른스러운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누이.
“호오··· 아주 진귀한 광경이로군. 수인의 성장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아르카이에게 경계의 기색은 없다. 그에게는 여전히 비장의 병기가 존재했기에.
“저놈을 무릎 꿇려라. 다리 한쪽 정도는 날려버려도 좋다.”
“그르르···!”
그의 명령에 어느새 떨어져 나간 살점조차 재생해내고 다가서는 웨어울프 키메라.
금랑의 성장은 놀랍지만, 그래도 이쪽은 온갖 마도의 정수를 합한 합성괴물이다. 결코 금랑에 뒤처지지 않는다.
같은 성체 늑대인간과 비교해도 열 배는 강력한 웨어울프 키메라가 가공할 일격으로 후려쳤다.
-쿵!
“론···!”
누이의 안타까운 비명. 그러나 곧 그 비명은 의문으로 뒤바뀐다. 이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마찬가지였다.
“뭐지?”
“그르르······.”
키메라에게서 흘러나오는 하울링. 전투의 포효가 아닌 당혹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다.
그도 그럴 게, 좀 전까지만 해도 압도하던 어린 늑대가 제 팔을 붙잡고 으스러뜨리고 있기 때문.
“무, 무슨···!”
힘에서 밀리고 있다. 누가 보아도 그렇게 판단할 어이없는 상황에 아르카이의 동공이 커졌다.
이해할 수 없겠지.
금랑. 격세유전으로 깨어난 왕의 혈통이 가진 힘을. 고작 50년을 넘은 인간이 이해하기란 너무도 먼 과거의 영광이란 것을.
“죽어···!”
활처럼 젖힌 팔이 웨어울프에게 쏘아진다. 그 단순한 직선운동을 막아낸 웨어울프였지만, 날카로운 발톱에 손등이 꿰뚫렸다.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어차피 언데드. 고통 따위 느끼지 못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가르르?”
손등을 꿰뚫은 채, 점점 더 다가오는 발톱. 론의 주먹을 붙잡고 밀어내려 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끄기기기긱!
필사적으로 밀어내는 웨어울프와 우악스럽게 힘을 주는 론. 손등의 살점이 찢기며 그 끝에 결국 목덜미까지 꿰뚫린다.
“그륵?!”
성대가 뚫리면서 하울링도 구멍 뚫린 소리가 난다. 다음 순간, 가차 없는 황금빛 발톱이 웨어울프의 목을 날려버렸다.
“어어?”
데굴데굴 굴러오는 웨어울프의 머리통에 흑마법사들이 당황한 찰나. 론이 그들 무리에 뛰어들었다.
“으아악···!”
“프, 프로페서 아르카이!”
날뛰는 금랑의 발톱에 흑마법사들이 찢겨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종하는 팽보어 언데드들을 돌격시켰으나 그것들은 시간벌이도 되지 않는다.
“젠장! 이 빌어먹을 짐승이···!”
굴욕이다.
저만한 사역마를 다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복종의 마법진과 마력을 쏟아 넣었거늘! 한낱 어린 짐승 따위에게 패배하다니!
“죽어···!”
눈앞의 흑마법사를 찢어버린 론이 아르카이에게 달려든 순간.
“멈춰라! 네 누이가 뒈져버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거든!”
렌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겁박하는 아르카이. 론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떻게 맹독을 이겨냈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누이는 사정이 다른 모양이군. 키메라의 살점에 흐르는 맹독은 해독제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비겁한··· 놈!”
“흐흐, 이것이 인간의 지혜란 것이다. 어디 한낱 짐승 따위가···!”
혹시라도 제게 덤벼들까 두려워 렌을 방패막이 삼은 아르카이는 발걸음이 멈춘 금랑을 보고 기세가 등등해졌다.
“어디 짐승 따위가 마도를 걷는 현자를 노려보느냐. 꿇어라! 그게 짐승과 현인의 마땅한 눈높이다!”
비열한 행위에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당당한 아르카이.
그는 한순간이나마 론에게 겁먹었다는 것이 치욕스러웠는지, 대신 그 누이를 바닥에 처박고 연신 짓밟았다.
“짐승! 따위가! 감히! 내게! 대적해!”
“으윽···!”
“머, 멈춰!”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누이를 짓밟는 노구의 마법사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그만··· 그만해···!”
성장하면서 독의 기운조차 이겨낸 자신이지만, 누이는 다르다. 맹독을 이겨내지 못해 검은 피를 연신 토해내는 렌을 보며 론은 무릎을 꿇었다.
“누나를··· 살려줘.”
“론··· 이 멍충아······.”
기어코 저를 포기하지 못하는 쌍둥이 남매를 보며 렌은 눈을 감았다.
결국 이런 꼴이다. 갱단에 납치됐을 때부터 렌은 자신들에게 ‘실험체’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갱단이 자신들을 팔아먹으려던 곳이 바로 마탑이었으니까.
비싼 값의 짐승들. 정체를 드러내면 두려워하거나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시선을 받아왔기에 항상 주변을 경계했다.
그 타고난 직감이 거짓을 간파하기 시작한 건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재주였을 것이다.
「괜찮아. 이제 아무도 너희들을 때리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이제 안전해.」
그 말을 들은 뒤부터였을까.
항상 주변을 경계하던 날카로운 짐승의 감이 사라지고, 안도하며, 늘어지기 시작한 건.
‘실수였어. 나라도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야 했는데······.’
저를 살리기 위해 무릎을 꿇은 동생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만큼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야 했는데··· 울타리가 너무나 안락하고 따스해서··· 바깥이 얼마나 차갑고 싸늘한 곳인지 잊어버렸다.
‘이대로··· 이대로 무력하게 당할 순 없어.’
그렇기에 이 실책을, 실패를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
렌은 그 사람을 돕기로 했다. 오라버니와 같은 전장에 나란히 서기로 했다.
늑대는, 사냥꾼에 굴복하지 않는다.
늑대는, 무리와 함께한다.
-스르륵···!
맹독의 여파로 수인화조차 버겁다. 흑마법사가 독에 당해 무력한 렌에 방심하고 있던 그 순간.
“으아아아···!”
회심의 일격은 렌의 날카로운 송곳니였다.
다 죽어가는 짐승이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한 아르카이가 반사적으로 휘두른 팔이 늑대의 이빨에 물렸다.
“으윽···? 이놈! 놔라···! 크아아악···!”
제 손등을 물은 렌을 떼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는 아르카이.
살점이 찢어지며 피가 흐르고서야 튕겨 나갔지만, 렌의 투지는 끊기지 않았다.
“캬아아아···!”
작은 포효를 내지르며 손톱을 세우는 렌. 그녀가 아르카이에게 달려든 순간, 등 뒤에서 암흑의 창이 꽂힌다.
“커헉···!”
배를 관통하는 흑마법. 그녀의 등 뒤에서 한 흑마법사가 마법을 쏘아 꿰뚫은 것이다.
“레에엔···!”
누이가 바닥에 널부러지자 곧장 달려들려던 론이었지만, 이미 론의 몸은 마법에 의해 구속된 상태였다.
“이, 이이이··· 짐승 놈이 감히!!”
불시의 기습을 당한 것이 굴욕적인 탓인지, 아르카이는 관통상을 입은 렌을 연신 짓밟았다.
노기를 터뜨리며 마구잡이로 짓밟는 흑마법사. 점차 초점을 잃어가는 렌을 보며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터뜨리는 짐승.
“죽여버릴 거야··· 전부, 전부 죽여버릴 거야······.”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쌍둥이 동생을 보며 누이는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깨달았다.
안 된다. 이대로 가면··· 동생이, 론이 무언가로 변질된다.
짐승의 감이 경고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구해··· 줘요.”
들릴 리가 없다. 닿을 리가 없다. 그 물리적인 한계를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이해하고 있음에도.
이를 깨물고, 염원을 담아 읊조린다.
“구해줘요, 오라버니······.”
“흥···! 아무리 소리쳐봤자 누구도 네년을 구하러··· 쿠억?!”
어디선가 날아온 신형. 휘둘러진 주먹이 무심하게 노구의 마법사를 후려쳤다.
“오라··· 버니?”
시야를 가득 채운 한 남자의 실루엣. 렌은 눈망울에 맺힌 물기를 제어하지 못했다.
“늦었잖아요······.”
“미안하다. 이제 괜찮아.”
코린 로크.
사나운 야수의 시선이 아르카이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