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0
코린 가디언즈(3)
명목상은 자신을 위한 파티.
코린의 다소 충격적인 깜짝 발언이 있었지만, 아리샤는 낙천적으로 흘러넘기며 파티를 즐겼다.
“음음~ 역시 행복하게 살다 온 소는 육질이 연하구나~”
나중에 아이가 열셋은 뛰놀 커다란 전원주택에서 살게 되면 직접 소도 키워볼까 싶다.
애가 열셋은 될 테니 그중에 한 명쯤은 클래식 음악에 재주가 있는 아이도 있지 않겠는가?
“한 덩이 더···.”
그렇게 소고기 요리에 손을 뻗으려던 그때, 음식이 놓인 쟁반 너머에 커다란 존재감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 언니?”
“아리샤냐.”
루니아 아덴. 아리샤의 이복언니가 그녀와 같은 요리에 손을 뻗었던 것이다.
“먹어라. 마지막 한 점인 모양인데.”
“아, 아뇨. 언니가 드세······.”
“나는 먹으라고 했다.”
“넵···.”
아리샤는 바로 꼬리를 내리며 루니아의 말에 따랐다.
“따라와. 같이 앉지.”
반쯤 강제적인 언사에 쪼르르 따라가 한 테이블에 앉는 아리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느냐.”
“더, 덕분에요.”
“언니의 약혼자를 훔쳐 달아났는데, 잘도 지냈군?”
“힉···.”
아리샤는 루니아에 대해 내심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녀의 암묵적인 조언과 침묵이 있었다곤 하나, 행복해야 할 약혼식에 언니의 약혼자를 납치해 달아간 건 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네 학창생활이나 이야기해보도록. 명색이 네 보호자니 말이다.”
사생아라는 입지 탓에 아리샤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도 공식적인 보호자란에 친부가 아닌 루니아를 적어 제출했다.
제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냉대하는 친부와 계모보단 젖병을 물리며 업어 키워준 루니아 쪽이 훨씬 엄마에 가깝기도 했고.
“최근에··· 중간고사를 봤어요.”
“호~ 성적은?”
“주 전공 수업은··· B+에 B가 두 개······.”
“설마 A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겠지?”
“교, 교양 수업에서는 A 맞았어요!”
“무슨 수업이지?”
“사랑과 전쟁 수업이요! 극단에서 연극을 보고 연기도 해보고 감상문도 제출했어요.”
“아~ 연극인가.”
루니아가 관심을 갖자 아리샤는 조잘거리며 수업내용을 설명했다.
리치몬 카운티의 다리라는 연극을 보고 형부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 끝내 제 사랑을 거부하고 사랑을 포기한 여주인공. 그런 여주인공을 떠나보낸 남주인공인 형부.
“이런··· 나라면 당당히 차지했을 것이야.”
“저두요! 역시 사랑이 중요하죠?”
“하지만 남자 주인공도 범속한 자로군. 사내된 자라면 몇 사람의 여인이라도 만족시켜주면 그만인 것을. 아무래도 밤일에 충실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야.”
“윽··· 그, 그런 불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조금은··· 동의하지만요.”
루니아의 직설적인 말에 잔뜩 얼굴을 붉히면서도 쥐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동의하는 아리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그이는 태양을 손에 넣지 않았느냐?”
“어···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아~ 모르는 건가? 그럼 됐다.”
“예?”
“그보다 그이와는 잘 지내나?”
“코린··· 씨요?”
“명색이 언니에게서 훔쳐간 약혼자가 아니더냐. 배꼽 정도는 맞췄을 거라 생각했다만?”
“그, 그런 파렴치한 짓은 안 해요!”
순간 버럭! 하고 소리 지르는 아리샤의 반응에 루니아는 실실 입꼬리를 올렸다.
제게는 항상 기죽은 듯 눌려살던 아이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항거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가 어렵기에.
“뭐, 지금을 만끽해두어라. 뺏기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네에? 대, 대체 무슨 소리를······.”
“쥐새끼처럼 구석에 숨어 집주인이 남긴 치즈를 훔칠 생각만 하지 말라는 소리다. 하려면 당당하게 정문을 박차고 쟁취하란 말이다.”
“으······.”
아리샤는 루니아의 말의 의도를 알아채고 수그러들었다. 이 호쾌한 여걸은 매사에 정면돌파를 선호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소녀 같은 섬세함이라곤 없지만, 그 호쾌함이 곧 강력한 힘··· 설사 패전하더라도 재도전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는 타입이다.
‘그래도··· 포기 안 할 거지만.’
‘뭐, 동생에게 먼저 넘어가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자매. 기본적으로 취향이 빼다박았다.
경쟁자가 있을 때, 비로소 맹렬하게 질주하는 타입.
거기에 설사 결승 라인에 도달해도 어거지로 경기를 끝내지 않는 타입이다.
실로 악랄한 자매가 아닐 수 없다.
* * * *
“······.”
화란은 자연스럽게 그룹에 끼지 않고 구석에서 가든을 관조했다.
조제핀은 루니아를 비롯한 아덴의 검사들과 조율에 나섰고, 유엘이나 크라넬은 뭔가의 악연인지 투닥거리고 있다.
의외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건 깍두기 머리 소년 예거다.
“이것이 예거표 그림 속 소고기다!”
“야, 이거 만드는데 고기 몇 킬로 썼냐?”
“안 재봤어!”
“······.”
코린한테 물으면 난 아무것도 안 했다며 손절하는 라크. 어쨌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파티를 즐기는 모양이다.
모두가 그룹을 형성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붙임성이 없는 화란은 자연스럽게 소외되었다.
란이 표면에 나선다면 이럴 일이야 없겠지만, 조금 전 요리를 하느라 피곤해진 모양이다.
란이 하루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은 세 시간 남짓. 이 신체가 앓고 있는 구음절맥증은 화가 아니고서야 견뎌내기 어렵다.
“그 녀석한테··· 붙을까?”
‘괜찮아. 지금은 부끄럽잖아? 좀 천천히 해도 돼.’
“······안 부끄러워.”
평소라면 코린에게서 넘쳐흐르는 양기를 공급받겠답시고 들러붙었을 것이다.
화도 조금도 부끄럼 없이 기분 좋게 넘치는 양기를 빨아들였겠지.
하지만 며칠 전 사랑을 자각해버린 이 소녀에게 연심의 대상과 밀착 스킨십을 하라는 건 가혹한 처사일 것이다.
‘그래도 오빠 품이 좀 그립긴 해. 요즘은 밤에 같이 자지도 않으니까.’
“······.”
재잘거리는 자매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는 화. 돌이켜보면 자신은 어째서 그런 행위를 태연하게 저질렀던 걸까.
“이제··· 손 잡고 안 잘 거야.”
‘으··· 그건 아니지! 오빠하고 아이는 언제 가질 건데?’
“······몰라.”
이곳이 황새 서식지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새서식지에서 황새를 잡아와야 하나 고민까지 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리에 언니나 아리샤를 봐! 우리 경쟁자들은 너무 강력해.’
“······내가 더 센데.”
‘그런 의미 말고······.’
말은 그렇게 해도 화는 코린의 주변에 들러붙는 얌생이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리에 듀나레프.
아리샤 아덴.
둔감한 화지만, 그래도 이 두 사람을 본능적으로 ‘적’이라 인식했다.
그만큼 저 두 사람은 코린에게 특별한 사람이고 언제든지 손을 잡고 잘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황새··· 다 치울까?”
혹시 모르니까. 주변에 황새 서식지가 있다면 다 때려부수고 올까 하는 과격하고 엉뚱한 발상까지 간 화였다.
“혼자서 뭘 하고 있니?”
그때였다. 구석에서 쭈그려 관조하던 화란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에린. 다누아.”
“맨 얼굴로는 처음이구나.”
에린 다누아. 에리우 카사르 이사장의 본체.
그를 처음 만난 건 동방대륙에서 폭주 후 폐허에서 그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때였다.
조제핀 클라라와 함께 부적을 씌워 자신을 제압하고 성녀 에스텔의 기도로 금제까지 걸어서 자신을 아카데미에 입학시킨 사람.
어찌 보면 은인이었으며, 그녀 자신도 에리우 이사장, 에린에 대해선 그럭저럭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너를 동방에서 데려올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성장했구나.”
“성장?”
강시인 자신이 성장했을 리가.
“응. 성장했단다. 분명.”
“······.”
에리우 이사장과 같은, 푸른 바다 같은 눈동자와 자애로운 표정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는 에린.
타인의 접촉을 질색하는 화지만, 어쩐지 이 사람과 코린에 한해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자신을 향한 호의와 대가 없는 선의를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요즘 아카데미 생활은 어떻니?”
“······그냥, 그래요.”
“어머. 즐겁지 않은 거니?”
“······.”
그건 아니다. 희로애락에 둔감한 화지만, 학창생활은 분명 즐거울 순간순간이 있었다.
「배고파? 기다려봐. 금방 생선 구워줄 테니까.」
「조별 수업인데, 같이 할래?」
「수업 끝나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
“······.”
그 즐거웠던 순간이 누군가와 함께일 때 뿐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 화.
에린이 의아해하며 질문을 계속하려던 그때, 마리에와 아리샤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쟁반에 차가 담긴 잔을 가져온 두 사람. 에린은 고맙다며 그 잔을 받아들고 화란에게도 권했다.
“이사장님··· 코린의 스승님이라고 하셨죠?”
에리우 이사장이 아닌 에린이 어색한지, 조심스럽게 말문을 트는 마리에.
“그렇단다. 아리샤는 구면이지?”
“아리샤를 알고 계신가요?”
아리샤는 이전 나즈레아에서 코린과 함께 300년 전의 에린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코린의 스승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여러 사정이 있었단다.”
에린은 간단하게 설명하며 자신과 코린의 관계를 알렸다.
“흐음, 그렇구나. 신기하네요. 코린의 스승님이라니···.”
다만 미래의 정보나 코린의 회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본디 미래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마리에나 아리샤의 이야기를 꺼려했으니까.
“다들 우리 코린과 잘 지내주렴. 강한 아이지만, 그래서 지탱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아이란다.”
에린의 말에 소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코린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더 돕겠다며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관계가 아닌가?
코린의 스승님이 그리 말하지 않아도 기꺼이 그를 위해 나서리라.
“그 아이. 최근 눈에 기미가 졌더구나. 바보처럼 우직하게 사람을 돕고, 항상 노력하는 아이란다.”
에린은 애석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를 걱정했다. 본래라면 그녀가 오롯이 감내해야 할 업.
그런 업을 기꺼이 지겠다고 나선 어린 영웅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전 에린을 스승으로 생각 안 하는데.」
“흣···?”
“이사장님?”
무언가를 떠올리고 마시던 차를 주책없이 내뱉은 에린을 걱정스레 응시하는 마리에.
“이, 이런. 얹혔구나. 나도 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무튼, 그 아이는······.”
「키스해도 돼요?」
“흐으··· 곤란하구나.”
하얀 피부에 색칠되어가는 붉은색. 에린은 코린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피부를 파르르 떨며 결국 일어섰다.
“아, 지금쯤 설거지를 하고 있겠구나! 너무 얻어먹기만 했으니 조금 도울까?”
“저, 저도 도울게요!”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듯 나서는 에린을 세 소녀들은 의무적으로 따라나섰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짜르르한 직감이 그녀들을 자극했다.
가든과 연결된 주방으로 향하는 길. 네 명의 여성들은 그곳에서 의자에 고개를 젖힌 채 쪽잠을 자고 있는 코린을 발견했다.
“······자네.”
“피곤했나부다. 하긴, 꼭두새벽부터 음식 준비한다고 먼저 나갔었으니까.”
손님맞이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그를 떠올린 마리에는 좀 더 일찍부터 도울 걸, 하고 생각했다.
마리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한정 퍼부어주고 싶은 그런 소녀인 것이다.
“드물게 무방비하네요. 코린 씨도 이렇게 무방비할 때가 있군요.”
아리샤는 피곤에 절어 퍼질러 자고 있는 코린이 신기한 모양이다. 코린이 자빠진 식탁 위에 턱을 괴고 이유 없이 헤실헤실 웃는 아리샤.
“······.”
화란은 그런 코린을 보며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냥 얼굴만 봐도 콩닥콩닥 거리는 것이 낯설기 그지없다.
“이런 곳에서 자면 몸이 골아. 옮기자꾸나.”
에린은 잠든 코린을 불쑥 안아 올리곤 거실의 소파에 뉘였다. 이불 대신 자신의 로브를 덮어주면서 잠든 그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잘생겼을까~”
“······이사장님?”
소녀들의 시선이 헤실헤실 웃는 에린에게 향한다.
“우리 제자님, 잘생기지 않았니? 오뚝한 코 하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하며··· 후후, 누구 제자인지~”
말만 듣자면 팔불출··· 자랑스러운 제자를 생각하는 스승님이다. 하지만······.
활짝 편 표정. 발그레해진 양 볼.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제자를 내려다보는 스승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데자뷰를 느낀다.
“헛···.”
이 뭉클한 데자뷰는 대체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세 소녀 모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 * * *
중간고사가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 우리들의 일정은 수업 외에도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새로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스승님, 에린 다누아. ‘다난의 보물고’ 공략에 앞서 로테이션 형식으로 그녀의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오늘부터 시작이군요.”
이사장실. 에린의 옆에 함께하고 있는 조제핀 여사는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마리에. 아리샤 그리고 화란. 렌과 론, 도론까지 여섯 명.
게임에서도, 전 회차에서도 그랬지만 에린 다누아의 수업은 파티 멤버들을 빠르게 육성시키는 시스템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에린 다누아라는 타고난 스승을 통해 아직 미숙한 파티 멤버들을 집중육성한다.
플레이어의 시각에서 보면 대충 시스템창으로 [단련을 시작합니다.] , [단련이 끝났습니다.] 정도로 끝나지만, 전 회차에서는 이 수업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에린 다누아는, 나의 스승님은 가르치는 데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타고난 스승이었으니까.
“그럼 이동하자꾸나.”
에린의 말에 공간이동 마법을 펼치는 조제핀. 찰나의 순간, 우리는 가디언즈 사무소의 연무장에 도착했다.
“온 건가?”
“루니아 씨.”
그곳에는 이미 루니아와 오검들이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자자, 그럼. 여러분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가볍게 서로 대련이라도 해볼까? 눈으로 한 번 실력을 훑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구나.”
전 회차와도 그리 다르지 않은 전개다. 일단 움직이는 걸 보고 그 움직임의 문제점을 파악, 맞춤형 가르침을 내린다.
나도 나지만, 다른 녀석들도 그녀라면 손쉽게 문제점을 찾아내 교정하고 경지를 상승시키겠지.
“그 전에.”
에린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 그녀의 앞에 나선 이가 있었다.
“선생의 실력부터 한 번 보고 싶은데.”
루니아 아덴. 다른 파티 멤버들과 달리 특수조건에서만 파티에 합류하는 강력한 네임드.
아마 이 자리에서 가장 가르침이란 게 필요 없을 정도로 완성된 검호.
“어떤가? 가볍게 한 번 검을 나눠보는 건?”
그녀가 에린 스승님께 가벼운 도전장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