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3
밑준비(1)
메르카바 1학년 신입생 제르맹 루터의 삶을 논하자면 수도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느 날, 미카엘라 수도원의 입구에 바구니째 놓여있던 갓난아이.
독실한 신자였던 신부의 손에 거둬져 비슷한 사유로 모여든 소년소녀들 사이에서 수녀님들의 보살핌과 함께 자라났다.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가창력으로 성가대에서 봉사활동을 했으며, 기사로서의 자질이 드러나자 소년 십자돌격단원으로 육성되었다.
신앙의 문제는 차치하고 구 교단의 시대착오적인 교육. 고이델 성서의 근본주의적 해석. 신 교단··· 즉,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배교적 시선 등 이 소년은 아주 훌륭한 레이시스트로 자라났다.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형제들 사이에서라면 모를까 무교와 신교도들이 섞인 사회에서는 빈말로라도 좋은 시선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아니, 같은 신앙을 고려하더라도 극단주의자는 무리에 섞이기 어려운 법이다. 그 극단주의자가 엘리트 주의자이기까지 하면 더더욱.
“어··· 가, 같이 성당 가자고? 나, 다니는 성당이 있어!”
“음··· 나 무교야. 미안.”
“구교단? 난 에스텔 성녀님 다니는 성당만 간다.”
“구교··· 아니야.”
자연스럽게 제르맹은 모두를 왕따시키는 자발적 아싸가 되었다.
“하아··· 역시 메르카바처럼 타락한 도시에서는 진정한 신앙의 동료를 찾기 어렵구나.”
교단원들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전도는 오늘도 요원하다. 교단이 그에게 준 황동색 로사리오를 꼭 쥐며 허탈한 발걸음을 움직이려던 찰나.
“어이, 신입. 혼자서 뭐 하고 있어?”
뒤에서 기습하며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는 한 소년. 정확히는 2학년 선배다.
“코, 코린 선배님?”
“성당 가냐?”
“아, 네···.”
“지온? 아님 제루엠?”
지온과 제루엠. 신교와 구교를 가르는 정식명칭이다.
세간에서는 편리하게 신교와 구교라고 부르고 있지만, 많은 구교 신앙인들은 이 호칭에 불만이 많았다.
‘구’교라니. 자신들은 구식이 아니다. 오랜 원칙과 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지온과 제루엠으로 분류해준 것만으로 제르맹 안에서 코린에 대한 평가는 올라갔다.
“제루엠입니다.”
“그래? 아~ 그 황동색 로사리오. 내가 괜한 걸 물었나?”
신교단이 화려함을 숨기지 않으며 금과 은으로 만든 로사리오를 보급하는 한편, 구교단은 명목상으론 청렴과 청빈을 내세우기에 값싼 황동 로사리오를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를 알 정도의 종교적 지식은 있는 모양이다.
“난 지온 쪽으로 갈 건데.”
“제루엠 성당에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르맹은 객관적으로 이 사내를 높게 평가했다.
전 학년을 둘러봐도 희소한 1급 기사. 거기에 숱한 강자들이 가입된 가디언즈 단장이다.
유능함은 둘째 치더라도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두루두루 친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어서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그 이상으로 인간적인 호감이 생기는 타입.
이런 훌륭한 인재에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럴 수도 없지. 내 친구 중 한 명이 지온 교단 수녀잖냐. 내가 신실하진 않아도 걔 데리고 제루엠 쪽에 가기는 좀 거시기하지.”
“으음······.”
바로 친구를 잘못 사귀고 있다는 것이다.
방금 그가 말한 지온 교단의 수녀는 살아있는 인간을 강시로 제조한 사악한 연구의 결과물. 생강시다.
구교와 신교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 마인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냐 괴물로 배척하느냐다.
구교의 교리에 따르면 마인은 결코 용납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화란··· 그 살아있는 강시뿐만이 아니다. 흡혈귀 마리에, 늑대수인 렌과 론 등 이 소년은 구교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당 다녀오고 미션이나 뛰는 건 어때? 가디언즈에 의뢰가 들어왔는데, 다른 녀석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거든.”
“저는······.”
“알아, 알아. 견습이란 거. 1학년 수업 빡빡하지? 가디언즈에서 실적을 쌓으면 몇몇 수업은 면제도 받을 수 있거든.”
“으음······.”
제르맹은 메르카바에 스파이로서 잠입했다. 그런 그에게 수업과 과제마저 면제받을 수 있는 가디언으로서의 실적은 저버리기 어려운 꿀사과다.
무엇보다 코린의 가디언즈는 워낙 쟁쟁한 멤버들 덕에 곧 1급으로 승급이 가능한 가디언즈다. 이런 거물 가디언즈에서 활동한다면 정보를 얻을 기회도 많을 터······.
“그··· 내용이 뭡니까?”
“여기서부터 70km 정도 떨어진 마을 근처에 마물들의 굴이 발견됐다는 모양이야. 조속히 처리해달라는 미션.”
“······멀군요. 이런 장거리 미션은 보통 협회가 처리하지 않습니까?”
“괜찮아. 비장의 무기가 있거든.”
“???”
·········
······
···
-캬아아아아아···!
“으아아아···!”
드넓은 창공을 비행하는 야수의 포효. 이에 뒤섞이는 인간의 비명.
“사, 살려···!”
2급 기사인 제르맹이지만, 이 난폭하고 거친 야수의 비행에 정신을 못차렸다.
“으아악···!”
와이번 비행에 익숙치 않은 제르맹은 하마터면 와이번 전용 등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어이쿠!”
아찔한 순간, 늦지 않게 손을 붙잡는 코린.
“조심해. 안전벨트는 꽉 동여놨지?”
“으으··· 네. 그, 그런데 앞이 안 보여요.”
아까부터 비행용 고글에서 바람이 세차게 흘러들어와 문제였다. 세찬 바람은 눈가를 젖게 만들고 시야를 가렸다.
“이런. 고글에 균열이 있네. 지난번에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그때 망가진 모양인데. 화란.”
“응.”
코린의 말에 대답하는 앞좌석의 수녀복 소녀. 마족인 화란이 불편한 제르맹이지만, 그걸 대놓고 드러내기엔 코린의 눈치가 보였다.
“고삐 좀 잡고 있어 봐. 여분 고글 좀 가져오게.”
코린은 금방 와이번에 매달려 있는 짐 배낭에서 고글 하나를 꺼내왔다.
“이거 써라.”
“가, 감사합··· 으으······.”
제르맹은 코린이 건넨 고글을 받으려 했지만, 눈물로 앞이 가려져 허우적거렸다. 바람이 너무 거셌는지, 눈물을 닦아도 시야가 흐릿한 탓이다.
“어유, 후배님. 가만히 있어 봐.”
코린은 제르맹의 얼굴을 붙잡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쓱쓱 닦아주더니 부드럽게 고글을 씌웠다.
겨우 시각을 되찾은 그의 눈앞에 야성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선배가 보인다.
“앞으로 장거리 이동은 와이번을 사용할 거니까 익숙해지도록 해. 우리도 자주 써본 건 아니지만, 사육장에 비행교관이 있으니까 틈틈이 배우고.”
“아, 알겠습니다.”
“짜식.”
신경 써서 내린 머리는 와이번 비행 때문에 마구잡이로 헝클어졌다. 코린은 거기에 한결 더 뒤흔들어줬다.
“벨트 꽉 매고. 고글 끈에 귀 안 눌리게 잘 착용하고.”
보모처럼 제르맹의 벨트를 꽉 조이고 고글 버튼을 눌러주는 코린. 여기에 달콤한 초콜릿 바까지 까서 건네준다.
“비행이란 게 의외로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거든. 정신 말짱 깨 있어야 하니까 먹어둬.”
“가, 감사합니다.”
요 며칠 지내보면서 느낀 거지만, 이 소년··· 누군가를 챙겨주는 게 익숙하다. 천직이라고 해야 할까?
1학년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친절하고 좋은 형, 오빠라고.
마족들하고 어울리며 다니는 것만 아니면 제르맹도 진심으로 거기에 동의했을 것이다.
·········
······
···
죽을 뻔했다.
마물 무리를 쫓아 들어간 굴에서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낸 웜이 그를 삼키려던 것이다.
정면대결에서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좁은 동굴에서 웜은 평가등급 이상으로 위험한 마물이다.
“······괜찮아?”
손을 내미는 은색 로사리오의 수녀. 그녀가 더러운 마족임을 아는 제르맹은 반사적으로 그 손을 치우려다 찢어진 수녀복을 보고 멈칫거렸다.
웜이 습격한 순간, 자신을 내던지고 대신 커다란 이빨들에 물린 흔적. 화란이 아니었다면 제르맹은 반토막이 나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응.”
은인이 내민 팔을 저버리기엔 충분히 도덕적인 제르맹이다.
“분명 고블린의 굴이라고 들었는데, 왜 웜이······.”
“단순한 고블린 동굴은 아니라는 거지.”
무언가를 알아챈 듯 낮게 고개를 숙이며 선행하는 코린. 그는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했다.
“선배님?”
“긴장 꽉 붙들어 매라. 이 안에··· 뭔가가 있다.”
“뭔가··· 라뇨?”
“포식동물은 피식동물과 한 둥지를 공유하지 않아. 고블린과 웜이 한 동굴에서 동거를 하고 있다? 더럽게 의심스러운 상황 아냐?”
확실히. 같은 마물이라곤 해도 동족이 아닌 이상에야··· 아니, 동족이라 해도 제 영역을 침범하면 용서가 없는 법이다.
본디 야생의 생태란 홈 그라운드를 침범하는 모든 것에 적대적이지 않은가?
“고블린도, 웜도 ‘사역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사역마······.”
마법사들의 서번트 술식이 새겨진 짐승들을 말한다. 완벽하게 복종하는 사역마들은 주인의 명령을 따를 뿐인 인형들이다.
“이곳에··· 마법사가.”
“바로 그렇지. 이런 한적한 마을 근처에서 실험실을 만들고 사악한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는 꽤 있어.”
빌어먹을 음흉한 마법사들 같으니라고. 고결한 종교인들과 다르게 이익과 실험에 미친 마법사들은 믿기지 않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구교 신교를 가리지 않고 종교재판관들이 유독 마법사들을 족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아닌가?
제르맹도 주의를 살피며 동굴을 선행하던 찰나. 코린이 손을 들어 그들을 멈췄다.
“화란.”
“응.”
“다 때려부셔. 마법사가 있다면 생포해.”
“알았어.”
다음 순간, 화란이 동굴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쾅! 콰직! 네, 네놈! 내가 누군 줄 알··· 끄악!
코린의 예상대로 이곳은 마법사의 실험실이 맞았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실험이 자행되는 곳이었다.
“미친······.”
끔찍한 광경이었다.
배양액이 가득 담긴 수조가 곳곳에 늘여져 있고, 그 안에서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는 짐승들이 배양되고 있었다.
뭔진 몰라도 사악한 실험이 이곳에서 자행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근처 좀 살펴봐. 전부 가져갈 순 없으니까 중요한 문서가 있으면 그것만 찾아서 협회에 제출해야 돼.”
코린과 화란이 체포된 마법사와 배양된 괴물들을 옮기는 사이, 제르맹은 마법사의 실험일지 등을 확보했다.
이런 사악한 실험을 하는 놈들은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이 처벌해야 한다. 그는 신실한 종교인으로서 이 사악한 행위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응?”
그러던 와중 한 문서가 그의 눈에 띄었다.
“이건······.”
누군가가 실험을 하던 마법사에게 보낸 밀지. 그냥 넘기기엔 밀지에 새겨진 인장이······.
황동색의 아무런 문양이 없는 인장.
제루엠은 이 인장을 알고 있다.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십자돌격단 같은 암부가 사용하는 인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늬 없는 인장에 성력을 주입하면··· 황동색 역십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교자들을 위한 인장.
“왜··· 여기에.”
역십자 인장이 새겨진 밀지를 펼치고 내용을 읽은 제르맹은 바들바들 떨었다.
「마탑의 마법사 게르암에게······ 귀하의 실험에 필요한······ 납치하지 마시오. 곧 13세 이하의 남아들을 보내겠소. -R.」
이 문양, 필체··· 그가 알고 있는 이의 서명이었다.
* * * *
“갔냐?”
“응. 뭘··· 숨겼어.”
흑마법사의 비밀 실험실을 털어버린 직후 일부러 제르맹에게 실험실의 수색을 맡겼다.
의 퀘스트에서도 발견되는 구교단 주교 르노 리쥐냥의 밀지.
게임에서야 퀘스트의 뒷이야기를 설명해주는 텍스트 문서의 하나일 뿐이지만, 현실에서는 종교재판을 열 수도 있는 파격적인 증거였다.
“어쩔 거 같아?”
“뭐··· 두고 봐야겠지.”
전 회차에서 제르맹 루터는 악역 아닌 악역이었다.
게임을 진행하고 스파이인게 들통나면 르노 리쥐냥과 구교 성전 기사단과 함께 중간보스로 등장하는, 그럭저럭 강한 네임드 캐릭터.
그 내심은 선량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잘못 받은 케이스였지.
어찌됐건 광신도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녀석이고 녀석이 자기 교단의 치부를 숨길지, 르노 리쥐냥을 탄핵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게임과 다르게 현실이 된 세계에서 모든 인간들은 유기적으로 행동했으니까.
“화란 너는 이곳의 증거물품들을 제르맹과 함께 옮겨. 더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어디 갔냐고 물으면?”
“똥 싸러 갔다고 해.”
-퍽!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요즘 화란··· 아니, 화는 내 농담에 어울려주질 않는다. 사춘기인가?
“아무튼, 여기 있어.”
새침하게 구는 화를 뒤로 하고 마법사의 비밀 실험실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흑마법사 게르암의 사악한 실험을 저지하셨습니다. 계율의 보상이 분배됩니다.] [란돌프]※ 난이도 : D+
※ 보상
– 10포인트 균등 분배
란돌프. 제루엠 대성당의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의 이름이다. 사이드 퀘스트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주인공이지.
르노 리쥐냥은 흑마법사 게르암의 비밀실험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아이들을 납치해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이 란돌프의 어린 아들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건 그 퀘스트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미리 해결하려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마탑 마법사들을 족치면 이런 계율은 얼마든지 클리어 될 테지.
나는 이곳에 오면서 떴었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렸다.
[도론 워스카이가 청마법사 필레네를 처치하였습니다. 계율의 보상이 분배됩니다.] [크라넬 루든이 골렘 공학자 드레븐을 처치하였습니다. 계율의 보상이 분배됩니다.] [유엘이 변질된 드루이드 자나의 계획을 저지하였습니다. 계율의 보상이 분배됩니다.]가디언즈의 멤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5막 이후 발생되는 사이드 퀘스트들이 발생하기도 전에 선수를 치고 있지.
대부분은 마탑의 마법사들과 관련된 일이고, 이런 각지의 악행들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아직 큰 거 남았거든. 조금만 기다리라고.’
덕분에 내 계율 보상이 쭉쭉 들어오고 있지만, 이것들은 본래 플레이어가 정당하게 클리어하는 ‘사이드 퀘스트’다.
즉, 플레이어를 위한 보상이 있다는 거다.
내가 제압한 이곳의 흑마법사 게르암은 낙원도래 세력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실험을 하는 녀석이었지. 수준도 준1급 마법사 수준이었으니까.
이곳의 녀석이 연구하던 게 뭐였을까? 나는 그 정답을 안다.
더욱이 깊숙한 동굴 안. 이제는 가로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로막힌 길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
그것을 꽝! 하고 발로 차 무너뜨린다. 인텔리 마법사라 그런지 허접하기 그지없는 위장을 넘어서자 숨겨진 내부에서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기운들이 느껴진다.
이번 회차에서도 한 번 목격한 것들이다.
지금은 이 대륙에서 사라진, 다난이 스러져가면서 남긴 낙원의 흔적.
“찾았다.”
「백족사두(百足四頭)의 괴물. 마타의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