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1
불량성녀(1)
세상에 부족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많다.
돈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배경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가진 바 재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부문에서건 빈부의 격차는 나기 마련이고, 그들 모두가 부족한 것보다는 풍족한 것을 바라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여기, 조금 특이한 케이스도 존재한다.
지나치게 과잉된 삶을 살아가는 자.
타고나기를 너무도 많은 것을 가져 넘쳐흐르는 축복받은 존재.
에스텔 하닷사 엘 라스가 바로 그러한 케이스였다.
엘 라스 왕국의 제1왕녀.
신교단 지온 대성당의 유일무이한 성녀.
타고나기를 고귀하게 태어났고, 확고한 신의 기적이 함께하는 성녀이기에 신앙의 권위도 그녀를 짓누르지 못했다.
단 한 명뿐인 성녀. 신과 연결된 존재. 교단의 우두머리인 교황조차도 신의 증거 그 자체인 성녀에게 권위를 내세울 순 없었으니.
속세에서는 단 두 명뿐인 왕녀이자 왕위계승후보자요, 교단에서는 유일무이한 성녀.
모든 것을 타고났으며 사바세계에서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천녀(天女).
그 탓인지 다소··· 아니, 심하게 자유분방한 영혼이 되어버렸다.
「성녀, 아카데미 생활은 어떠한가?」
“평소대로죠 뭐. 남자들은 여전히 절 보면서 침 흘리고, 후배들은 귀엽고! 우리 화란이는 짱 귀엽고!”
「······.」
통신구 너머, 팔순을 바라보는 노쇠한 교단의 장(長) 시카리 이스카리옷 교황은 이 자유로운 영혼에 난색을 표했다.
「성녀는 사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그 망측한 차림부터 어찌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시카리 교황은 통신구 너머로 보이는 성녀의 차림을 보며 난색을 표했다.
금실과 금 장신구를 아낌 없이 박고 남부산 최고급 누에실로 짠 비단으로 제작한 순백의 성복.
기본적으로 교세가 대단하여 화려함을 과시하는 지온 교단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부터 은근히 과시해야 하는 법이다.
로사리오에 박힌 은은한 보석빛이 최고급 에메랄드였다던가, 성복을 두르는 허리띠가 마우(魔牛)의 가죽을 수천 번 무두질한 장인의 오더 메이드라던지.
알아볼 만한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은근한 부의 과시야말로 고위 성직자나 귀족들의 ‘품위 있는 미덕’인바.
벼락부자처럼 노골적으로 치장하며 아낌없이 제 완벽한 몸매를 과시하는 성녀는 자유분방함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깝다.
“왜요? 귀엽잖아요. 남자들의 시선이란. 교단에서는 힐끔거리는 걸로 끝내지만, 여기서는 또 은근히 대시해오는 애들이 있거든요. 어디 백작가의 자제라던가, 상단의 후계자라던가?”
그야 그렇겠지.
왕가의 상징인 적발에서 살짝 벗어난 핑크빛 머리칼은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맑디맑은 눈동자는 채도 높은 최고급 에메랄드처럼 반짝거렸다.
성녀 본인이 화려한 치장을 아끼지 않지만, 다소 노출도가 높은 개방감의 오더메이드 성복은 제 몸매에 대한 과신이 없으면 소화가 불가한 복장일 터.
한창때의 질풍노도 소년들이라면 혹할 법도 하다. 아니, 소녀들도.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린 법일세. 화란 자매의 성복도 그리 주문한 건 당최······.」
“귀엽죠? 엄청 귀엽죠?”
「하아······.」
통신구 너머 팔순노인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에스텔은 방긋 미소 지었다.
시카리 교황은 이미 그녀를 포기한 지 좀 오래되었다.
「그건 둘째치고 죄인들의 호송계획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급파된 성기사들과 함께 운송할 거예요. A급 악질 이단인 마탑의 모르슈탄과 메르카바에서 감금 중이던 진법술사 강륜. 그 외 구교의 십자돌격단까지. 아주 줄줄이 엮였죠.”
「참으로 불순한 작자들이야. 필히 이곳 지온 성지에서 심판해야 하네.」
시카리 교황의 말대로 메르카바에 구속되어 있는 악질 범죄자들은 널널한 성격의 에스텔도 용서할 수 없는 악인들이었다.
엘더 모르슈탄은 신조차 모독하는 흑마법 실험을 벌였고, 강륜은 신교의 견습수녀인 화란을 상대로 흉계를 벌였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최근 치안국에 연이어 마탑의 마법사들이 체포되고 있었다. 전도유망한 후배님이 대활약 중인 것이다.
“교황님, 역시 교단 차원에서 마탑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는 게?”
「그 부분은 성녀가 돌아온 뒤, 논의토록 하지. 예정대로 6월 5일이 출발일인가?」
“네, 죄인이 많아서 육로로 이동해야 하니 도착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그렇군. 조심해서 오시게.」
그것으로 통신을 종료하는 시카리 교황. 에스텔은 기지개를 쭉 켜며 따사로운 햇볕을 만끽했다.
* * * *
새삼스럽지만 메르카바의 학사 분위기는 널널하기 그지없다.
수업은 현대 대학에 비하면 채워야 할 학점도 적고, 그 적은 수업마저도 가디언 협회의 미션 활동으로 대체가 가능하니 혈기왕성한 2학년들은 벌써부터 활발하게 외부로 쏘다니는 것이다.
그건 우리 코린 가디언즈도 마찬가지였다.
“고용주, 이쪽은 다 처리했어.”
담당구역에서의 일을 마치고 보고하러 온 도론 워스카이. 등 뒤에는 십수 자루의 마검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벌써? 어검술 솜씨가 날로 늘어나는구먼.”
도론의 마검들은 마물을 썩썩 잘라낸 탓인지 칼의 단면에는 피와 기름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단순히 베는 정도가 아니라 마물의 지방층까지 깊숙이 베었다는 증거다.
마물의 대량발생으로 마을을 지켜라, 라는 디펜스 미션이었지만, 도론과 크라넬의 과잉화력 앞에 마물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뭐, 고용주 덕에 얻은 검 덕이지.”
도론은 염동력으로 띄운 마검 중 커다란 황금의 마검을 붙잡았다.
거대한 격노 모랄타크. 의 레전더리 히든피스이자 광역기에 특화된 파괴의 마검.
“대단하더군. 마나난에게 받은 마검은.”
도론은 슬쩍 방어전을 펼쳤던 마을 외곽을 바라봤다.
대지를 으깨버리며 모조리 휩쓸어간 격류의 흔적. 마물들의 공세에서 선공을 가했던 흔적이다.
내가 보물섬 마그 멜에서 보물들을 얻어왔듯이 도론을 비롯한 몇몇 단원들도 보물을 얻는데, 성공했다.
마리에나 아리샤, 화란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마그 멜에 입장할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이니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이번 일까지 마치면 슬슬 승급 한도는 꽉꽉 채웠겠군.”
“가디언즈 등급 말이지?”
“설립 두 달도 안 돼서 1급으로 승급하는 건 거의 전설적인 기록 아니야?”
가디언즈 설립 이후 나는 가디언 협회가 뿌리는 미션들을 마구잡이로 클리어했다.
우리 가디언즈의 막강한 전력을 믿고 벌인 문어발 전개였다.
덕분에 승급에 필요한 공적치를 순식간에 쌓았지.
“슬슬 외적인 힘과 입지도 필요하니까.”
“고용주의 목표를 생각하면 이것도 부족하지 않나 싶긴 하지만.”
미션을 마치고선 와이번을 타고 신속히 귀환했다.
가디언즈 공적치를 쌓기 위해 외부미션도 서슴지 않고 수락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와이번 덕이다.
마리에가 사준 와이번은 강도 높은 비행일정에도 지치지 않았고, 굉장히 빨라서 빠르게 미션을 클리어하고 돌아오기 간편했던 것이다.
게다가 마리에의 공작영애 신분을 방패로 도시 내 비행금지조례도 적용받지 않으니 와이번 착륙장이 있는 외부 플랫폼 마을까지 갈 필요도 없어서 일정이 항상 이틀씩은 단축됐다.
“후우···.”
“코린 왔어?”
외부 미션을 뛰고 온 나를 반겨주는 마리에. 그녀도 미션을 클리어하고 왔는지, 활동성이 높은 복장을 하고 있다.
“······.”
“으웅?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농장소녀라고 해도 저 배와 허벅지를 다 깐 파렴치한 복장은 대체··· 이 세계관의 여성복은 너무 개방적이다.
“어딜 보는··· 아하?”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마리에는 스륵, 로브를 저미며 요염한 미소를 짓더니 침대 위에 앉아 제 무릎을 팡팡 쳤다.
어서! 라는 것처럼.
“크, 크흠···! 협회에 미션 클리어 보고서 써야 하는데요.”
“그건 좀 있다가 하면 되잖아~”
“그, 그럴까요?”
마리에의 유혹에 결국 지고 말았다. 푹신하고 풍만한 볼륨감··· 이거에 이길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거야······.
“자장~ 자장~ 우리 코린. 누나 품에서 코~ 자자?”
아아, 의식이 꺼져간다.
커다란 쿠션에 파묻히며 기분 좋은 살내음이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었──
-냐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억?!”
꺼져가는 의식 속. 갑작스런 괴성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디언즈 사무소 숙소의 창문 너머. 붉은 눈동자를 지닌 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어이구, 나비 왔니?”
최근 가디언즈 사무소 주변에서 자주 서성이는 검은 고양이였다. 대한민국 출신답게 나비라고 이름 지어주며 먹이를 주기도 하는 고양이다.
“이리온.”
창문을 열어주자 냉큼 내 품에 뛰쳐 안기는 나비. 몇 번 먹이 좀 줬더니 날 아주 잘 따른다.
“선배, 부엌에 생선 좀 남은 거 있어요? 얘 생선 좋아하거든요. 특이하게 고등어 조림을 잘 먹던데?”
“······알았어.”
마리에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면 우쭈쭈, 하고 귀여워해 줄 이미지였는데······.
“냐아아~”
마리에가 떠나간 숙소. 나비는 내 품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흐흐, 우리 나비,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동물이 이렇게 잘 따르는 건 처음인지라 나도 나비의 애교가 기쁘기 그지없다.
“어유~ 우리 나비. 아빠가 그렇게 좋아요?”
턱을 긁적거려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기분 좋다는 듯이 받아주는 우리 나비. 어디서 이런 이쁜이가 왔을꼬?
“코린! 생선 가져왔···어! 허억! 허억!”
어찌나 서둘러 뛰어갔던 건지 숨을 헐떡이는 마리에. 그녀는 냉장시설에 보관되어 있던 생선 몇 마리를 선반 위에 올렸다.
“뭐 그리 급해요? 천천히 다녀오시지.”
“응? 별루 안 서둘렀는데?”
“안 서두르긴··· 숨찬 게 보이는데······.”
“아닌데? 진짜 아닌데?”
마리에의 태도가 심상찮다.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야 하나.
“그보다 코린. 지난번에 마그 멜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사랑의 다난님한테서 선물을 받았거든?”
-냐아······
신기하게도 마리에의 말에 반응하는 나비. 그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다.
“아리샤는 【네반의 붉은 말】을 받았고, 선배는 【마하의 저주】였죠?”
아리샤가 받은 말은 정말 굉장한 준마였다. 전 회차에서 박시후가 받았던 안바르 정도는 아니지만, 엄연한 마법의 말인 것이다.
접근하는 것만으로 생물은 공포를 느끼고 원령은 도망치는 여신의 전쟁마.
마그 멜에서 얻을 수 있는 숱한 레전더리, 에픽 아이템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훌륭한 보물이다.
“응. 내 경우에는 남자한테만 걸 수 있는 저주긴 하지만··· 준비만 제대로 하면 엄청난 광역저주이기도 하구.”
“으··· 오싹오싹하던데요.”
마리에가 앙구스로부터 받은 마하의 저주는 남자에게만 통하는 저주였다. 그것도 광역기······.
“남자에게 9일 동안 산통을 느끼게 하다니··· 너무 악랄하지 않나요?”
“함부로 쓸 저주는 아니긴 해.”
굉장한 저주이긴 하지만, 조건이 좀 까다롭고 일정 이상의 항마력을 지닌 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언제 이걸 써먹어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마리에가 슬그머니 입질을 던졌다.
“코린, 화란이 받은 선물이 뭔지 들었어?”
“아뇨? 화란이 말 안 해주던데요.”
“흐흥~ 그렇구나~ 그렇단 말이지.”
-냐아아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아까부터 나비의 태도가 심상찮다. 마리에를 견제하는 듯한······.
“언제 한 번 물어봐! 그보다 나비야~ 언니랑 같이 놀까?”
“냐아아아······!”
나비는 앙칼진 목소리를 흘렸지만, 마리에의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쟤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따르는 건 처음 본다.
어쩐지··· 조금 짠한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화란이 받은 선물은 대체 뭐야?’
새삼 궁금증이 더해가던 그때, 가디언즈 부지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삐이이이이이이이!!
오직 주의만을 확실하게 끌기 위한 날카로운 음향.
진짜 사이렌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긴급한 소식을 알리는 소리.
“코린, 이건?”
“······무슨 일이지?”
“냐아?”
나비를 내려놓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
────────!!!!!
────────!!!!!
가디언즈를 설립하면 구태여 미션보드를 통해 의뢰를 수락하지 않는다.
시설 레벨업을 통해 실시간으로 미션이 갱신되는 마법의 미션보드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 갱신. 이는 즉, 협회의 공지를 실시간으로 가디언즈에 전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령 가디언즈의 승급 회의나 의무적인 집단훈련 공고. 그리고──
「메르카바 및 근방 열다섯 도시를 총괄하는 중앙 가디언 협회에서 알린다.」
「왕국병역법 제39조 4항에 의거. 긴급상황에 의한 행정명령 1호를 발령. 등록된 가디언즈는 각 도시의 행정부처의 지시에 따라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동원대기를 명령한다.」
「이는 훈련이 아니다. 반복한다. 이는 훈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