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
헌팅 그라운드(1)
“여전하시군, 대마녀님.”
알고 있었지만, 감탄사만 나온다. 숱한 마법사를 봤지만, 이런 대규모 공간이동을 구사하는 마법사는 조제핀 여사 정도였으니까.
최상급 마법으로 구분되는 .
이번엔 랜덤 이동이겠지만, 아카데미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녀가 수백 명의 학생들을 한 곳으로 이동시켜버리는 걸 본 적이 있다.
골골대는 이사장을 제외하면 현 아카데미 최강이겠지. 그래서 화란 같은 특급을 전담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 이제 헌팅 그라운드 퀘스트가 시작됐다. 내 목표는 2급 네임드들을 최소 한 명은 잡는 것.
이번 실습에서 네임드들은 주변 학생들의 다구리를 맞는다. 급수가 높을 수록 높은 점수의 견장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하다.
즉, 이 실습은 급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불리하다. 거의 대놓고 엿 먹으라고 만든 밸런스 패치지.
‘약한 학생들은 파티플레이 경험을, 강한 학생들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요령을 실전에서 체득하라는 취지지만······.’
이것뿐이면 모르겠는데, 이 숲에는 고학년 학생들도 있다.
철저하게 신입생들을 마크해 방해하는 그들은 1, 2급의 상급 마물들을 대체하는 장애물 역할이다.
-챙! 채앵!
-이, 이 자식!
-크하핫! 내 성적을 위한 제물이 되어라!
-죽어! 죽엇!
규칙을 너무 잘 이해한 녀석들이 벌써부터 칼부림이다.
뭐, 크게 다치는 녀석들은 안 나오겠지. 이번 실습에서는 무기들에 비살상 처리 마법이 걸려있으니까.
‘슬슬 아리샤를 찾아볼까?’
아리샤에게 먹여둔 룬을 감지한다. 명확한 시야로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특유의 기운이 나를 인도했다.
“저쪽인가.”
느껴지는 룬의 마력이 생각보다 가깝다. 마력을 쫒아 숲을 주파하자 요란한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렸다.
-채앵! 챙!
-크학?!
-잡아!
이놈의 아카데미는 학생들도 근육뇌다. 다들 머리도 좋은 편인데, 생각은 단순하다고 할까?
어차피 날이 봉인된 무구라는 것 때문인지 정말 사정없이 서로를 공격했다. 이 필드에 있는 학생들은 모조리 선공몹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최대한 전투를 피하며 도착한 공터.
이미 한바탕 벌어진 뒤였다.
“으··· 다, 당신도 제 견장을 노리는 건가요!”
특유의 어깨를 노출한 도복과 예쁘장한 갈색 머리카락. 쓰러진 일곱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아리샤가 나를 응시한다.
“견장 내놔.”
“코린 씨, 믿었는데! 사탕을 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샤는 내게 칼을 겨눴다.
“이, 이렇게 된 거! 사이좋게는 무리겠죠! 필사즉생! 필생즉사!”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야······.”
아리샤는 2급 기사에 순수한 무투타입. 특성인 경계안은 아직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테지.
1인 전투력으로 치면 2급 중에서는 그럭저럭 중위권······.
‘해볼 만 하다.’
아리샤의 왼팔에 부착된 파란색 견장이 참 예뻐 보였다.
* * * *
학생들이 출발한 현장. 자리에 남은 이는 에리우 이사장과 조제핀 수석교수. 그리고 무료한 시선으로 쪼그려 앉아있던 화란뿐이다.
“이사장님, 저도 이만 숲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각지에 교수들을 배치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녀가 직접 나서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
“그래요, 그럼 저도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혹 만약에라도······.”
“이사장님이 나서실 만한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숲에 있는 교수들은 모두 검증된 실력자들이다.
선배인 학생들도 동원하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한 제약을 걸어뒀으니 만에 하나 큰 부상을 입는 이는 없겠지.
조제핀은 공간을 열어 숲속으로 들어서려 하는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었다.
“나도······.”
화란이었다.
“······네?”
“······.”
“나도 할래.”
화란의 돌발적인 발언에 에리우 이사장은 조금 놀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표현하기도 전에 조제핀 여사가 반대하고 나섰다.
“안 됩니다. 당신은 제어할 수도 없고 애초에 당신에겐 의미가······.”
조제핀 여사의 말은 에리우 이사장이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손에 제지되었다.
그는 천천히 화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
화란은 에리우 이사장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 됐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렴.”
“이사장님!”
“압니다, 클라라. 화란 학생에게 이 실습은 수준이 낮다는 것도, 아이가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요.”
“······.”
“화란, 선생님과 한가지 약속을 해줄 수 있겠니?”
화란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은 것만으로 무언의 긍정이었으며 이전보다는 나은 태도였다.
“선을 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렴. 네 영혼의 색은 언제나 네가 정하는 거란다.”
“······노력할게요.”
아직 코린은 알지 못하리라.
자신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가 어떤 태풍으로 불어닥칠지.
자신이 일으킨 날개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안타깝게도 절반은 자업자득이 되겠지만.
* * * *
아리샤 아덴은 느닷없는 순간이동과 살벌하기 그지없는 동기들의 습격에 반쯤 패닉에 빠져 있었다.
‘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거야? 못됐어! 다들 은인님처럼 마음씨를 곱게 쓰질 못하는 거야?!’
메르카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호되게 뒤통수를 당한 터라 대응하는 건 늦지 않았다.
무려 일곱 명의 동기들이 그녀를 습격했으나 아리샤는 손쉽게 그들을 쓰러뜨렸다.
그녀 자신도 나름 자각이 있다.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의 부류에 들어간다는 것을.
물론 진짜배기 천재인 언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녀가 상위 1%에 들어가는 실력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 소녀는 천재였고, 노력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며 열정도 없었던 것이다.
“후우······.”
그렇기에 5급 기사인 코린을 보고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다.
코린은 좋은 사람이고, 호감이 가는 선량한 사람이지만 그게 곧 무력을 뜻하진 않기 때문이다.
상대는 겨우 5급. 3, 4급의 학생연합도 가볍게 쓰러뜨렸다. 고작 5급쯤이야 10초 안에 정리할 수 있겠지.
‘뭐야, 이 사람?’
30초 전의 아리샤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촤악! 채앵!
‘엄청 강하잖아!!’
창을 들고 파고드는 5급 기사.
꾸불거리는 뱀처럼 시선을 현혹시키면서도 방심했을 때는 매섭게 창이 파고든다.
시도는 여럿 해봤다.
최근접전에서의 소드 레슬링도,
아웃 레인지를 파고든 공략도.
그러나 상대방은 자신의 어설픈 시도를 농락하듯 반격하고 압박해오는 것이다.
반격할 수가 없다.
분명 접근할수록 틈이 보여야 하는데, 창의 찌르기가 회수되고 다시 찔러지는 간격이 너무 좁다.
약간의 손목 스냅과 보법만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마치 백전노장처럼 노련했다.
‘하지만 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찌르기와 베기의 호흡이 조금씩 달라! 그 간격을 포착하면···!”
“후···!”
특유의 호흡이 눈이 좋은 아리샤에게 포착된다. 매서운 찌르기의 전조다.
검술명가의 후계 주제에 무도에 대한 열정이 없는 소녀였으나 그 타고난 감은 범재들을 웃돈다.
이 틈이야말로 파고들어 상대를 베어버릴 기회임을 놓치지 않는다.
육합창(六合槍)
두 번째 합(合) 횡소호풍(橫掃虎風).
감히 거리를 좁히려 파고드는 아리샤에게 휘둘러지는 창대.
그래, 매서운 찌르기에 압박되었지만, 창의 광범위 후려치기야말로 가장 무서운 공격이다.
어설픈 회피로는 피하지 못하고 동귀어진을 노려도 이쪽이 먼저 갈라진다.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를 강제 시키는 막강한 위력. 결국 공격을 중단하고 날아드는 창대를 막아야만 했다.
-팡!
“엇···?!”
공기가 터진 것처럼 맹렬한 충격이 칼날을 관통해 작렬했다. 뻥! 하고 튕겨지는 몸을 막기엔 아리샤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
‘중합기(重合技)?’
오러와 함께 심기체를 일거에 터뜨리는 순간화력 발군의 요령. 잘만 쓰면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지만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이게 5급 기사라고?’
밀려나는 자신을 향해 창을 어지러이 흔들며 시야를 현혹시키는 코린.
그 움직임, 언제 어떤 자세에서든 공격으로 이어지는 노련함은 도저히 5급의 영역이 아니다.
‘힘이 강한 게 아닌데···! 기술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보통이 아니야!’
일단 창을 쳐낸다. 완력으로 창을 눌러 제한시킨 뒤 파고들어 베어버리겠다!
-챙!
그러나 아리샤의 야심 찬 공격은 코린의 첫 번째 대응에 막혔다.
창을 쳐내려던 시도가 현란한 창의 움직임에 역으로 들어오는 빗겨나 버린 것이다.
란(攔), 들어오는 공격을 빗겨낸다.
란으로 빗겨낸 도신을 창날로 제쳐 누른다. 순간적으로 코린의 허벅지 바깥으로 쳐진 검.
이를 나(拏), 상대방의 무기를 눌러버린다고 말한다.
“어라?”
어느 순간 제 도검이 밑으로 제쳐져 있는 것을 본 아리샤. 그녀는 파고드는 창끝을 포착했다.
찰(扎). 일직선 찌르기.
세 가지 기본기가 합쳐져 가장 기본이자 극한의 카운터가 되니 이야말로 창의 극의.
육합창(六合槍),
세 번째 합(合) 란나찰(攔拿扎).
“커흑?!”
명치를 찌르는 창끝. 오러로 막아냈어도 급소를 찔린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읏···!”
밀려난 아리샤가 쉴 틈도 없이 창날이 그녀의 검을 후려쳤다.
두 사람의 무기가 격하게 튕겨 나가고 다시 되돌리려는 찰나의 순간, 창술사의 발차기가 늑골을 파고든다.
“꺼흑···!”
“재능에 의존한 안이한 연습 부족.”
“이익!”
검이 돌아온다. 리치가 긴 창보다는 한 템포 빠르다. 그러나 대응하는 건 검보다도 빠른 장법.
“검 하나만 보고 다른 건 배우지도 않았군.”
오러가 실린 합장(合掌)이 아리샤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팡!
“흐윽···?!”
횡소호풍을 얻어맞을 때와 비슷한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리샤의 몸이 10m는 날아갔다.
명치에의 연속 공격. 어지간하면 쓰러졌을 법도 하건만, 땅을 구르며 곧장 일어나는 아리샤.
“크흐······.”
아프다. 방금 합장으로 식도에서부터 울컥거리며 뭔가가 토해졌다. 하지만 이런 위기일수록 아리샤는 눈에 띄게 냉정을 되찾았다.
‘역시 자극받을수록 본성을 드러내는 타입이야.’
상대가 천재의 부류임을 새삼 깨닫는 코린. 반면 아리샤도 냉정을 되찾은 만큼 진지해졌다.
‘강해. 전력으로 상대해야 해!’
5급이라고 얕볼 상대가 아니다. 극도로 단련된 기술과 노련함은 틀림없이 자신 이상.
거리가 벌려진 틈. 참마검을 칼집에 집어넣고 자세를 취했다. 아리샤 특유의 발도술 자세.
미완성의 거합이나 접근한 적은 반드시 벤다.
“······.”
이쪽에 창을 겨눈 채 자세를 관찰하는 코린 로크. 아리샤는 이 일격으로 상황을 역전할 생각이 가득하다.
‘오기만 하면 내 최강의 카운터로 한 방 먹여주겠어!’
“······.”
진득하니 이쪽을 응시하는 창술사. 그러나 몇 초가 지나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접근 자체를 포기하고 자세마저 푸는 게 아닌가?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당황했다는 걸 입 밖으로 내버린 것은 틀림없는 미숙의 증거.
얼빠진 아리샤를 보며 돌멩이들을 여럿 줍더니 씨익 웃는 코린.
-휙!
던져지는 돌멩이.
‘파고드는 순간을 노린 카운터 기술이란 걸 눈치챈 거야?’
그렇다면 이 돌멩이의 노림수는 뻔하다.
돌멩이를 쳐내려 검집에서 검을 뽑으면 그 즉시 달려들 생각이겠지.
‘절대 넘어가지 않겠어!’
전신에 오러를 강화해 날아드는 돌멩이를 막아선다.
다행히 오러량에서는 이쪽에서 압도한다. 코린 로크가 던지는 돌멩이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리라!
-퍽! 퍼퍽!
‘흥! 아무렇지도 않아! 누가 넘어갈 줄 알고······.’
초월적인 시야에 들어온 돌멩이에 새겨진 글자. 그것이 순간 시뻘겋게 불타올랐다.
『 ᚲ 』 ─ 케나즈.
“어어? 마법?!”
화륵! 불타오르는 돌멩이에 무심코 뽑은 검으로 불타는 돌멩이를 쳐낸다. 불똥이 옷가지 튀어 붙었으나 이 정도 화력쯤은 오러로 버티리라.
“원거리 기술이 있냐 없느냐는 차이가 크지.”
추가로 날아오는 돌멩이들에 새겨진 룬은 하갈라즈, 소윌로, 버카난.
폭풍 같은 칼바람과 태양의 열기, 자작나무의 룬이 케나즈의 불길에 기름처럼 퍼부어졌다.
“아, 앗뜨뜨···!”
불길의 기세는 이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초급 마법 수준의 룬 마법을 여럿 조합해 사용한 복합마법의 위력은 중급 수준에 걸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타죽는다. 패닉에 빠진 아리샤였지만,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듣고 겨우 가드를 취했다.
-콰직!
불길에 시야가 가려진 사이 유유히 접근한 코린의 창이 매섭게 내리쳤다.
“크윽···?!”
마법에 당황해 준비 자세 없이 돌발적인 방어. 순간의 기세에 눌려 한쪽 무릎을 꿇는 아리샤.
‘어, 어쩌지? 오, 옷이 다 불타고 있는데? 머리카락도 타는 거야? 선크림 안 발랐는데!!’
-촤악!
“어?”
뭔가가 뜯겨지는 소리였다. 아주 시원하게.
“어어?”
코린의 손에는 아리샤의 파란색 견장이 쥐어져 있었다.
“싸울 때 한눈을 팔다니, 너 바보냐?”
“엑? 엑? 하, 한번만······.”
“안돼, 돌아가.”
아리샤의 눈망울이 흐릿하게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