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4
에스텔 하닷사 엘 라스(6)
오버 마스터 폼 무진합체 네이쳐 위커 워리어를 소환하기 위한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첫째, 골렘술사 크라넬 루든과 드루이드 유엘의 최종육성이 끝나 있을 것.
둘째, 둘 중 한 명이 보물섬 마그 멜에서 ‘모이투라 공예세트’를 얻을 것.
일단 네임드 두 명을 동시 최종육성까지 끝낸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보물섬 마그 멜에서 파티원이 보물을 얻을 확률이 확률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까다롭다.
어쨌든 이렇게 얻은 최종결과물은 굉장했다.
-꽈앙! 꽈앙!
육중한 골렘이 내지르는 주먹이 거인왕 발로르를 후려친다.
-꽝!
느리지만 묵직한 무게의 주먹을 얻어맞고 휘청거리는 발로르. 그러나 곧장 반격한다.
-부웅!
공기를 가르는 거인의 주먹. 꾸웅! 하는 아찔한 굉음과 함께 위커 워리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돌로 된 안면부가 후두둑 떨어지며 흔들리는 위커 워리어.
《안면부 손실 13%》
「끄응···! 크라넬, 괜찮나요?」
「아직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이 정도에 흔들리지 않아!」
「그··· 당신 영혼만이겠죠?」
은근슬쩍 저도 끼워 넣지 마세요, 라며 칼같이 끊어 버리는 유엘.
어쨌든 크라넬은 투지를 불태웠다.
평소 음침한 골렘술사로 너드 취급받던 그였지만, 이 슈퍼 이족보행 골렘을 탑승할 때만큼은 열혈인 것이다.
「가라, 네이쳐 위커 워리어!」
발로르를 향해 내달리는 위커 워리어. 위커맨의 뿌리보강으로 묵직한 나무덩쿨로 감싼 주먹이 발로르를 후려쳤다.
휘청거리면서도 동시에 대응하는 발로르. 위커 워리어 이상으로 빠르며 효율적인 권투술이 골렘을 후려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난타전.
두 거체 모두 회피 따윈 없다. 미래 따윈 없다는 듯 상대를 두들길 뿐.
-꽝! 꽈앙!
-꽈꽝! 꽝!
때려 부수고 때려 부수고 때려 부순다. 실로 사내대장부다운 난타전. 그러나 점점 밀리는 건 악의 거인이다.
“그우어어어어······!”
피를 끓게 만드는 난타천 속에서 먼저 후퇴한 건 발로르였다. 골렘의 단단한 장갑을 후려치던 주먹은 뼈가 드러나고, 얻어맞은 어깨는 찢어져 피를 줄줄 흘리고 있다.
「좋아! 이대로 밀어 붙···!?」
순간, 크라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부서졌을 터인 발로르의 어깨가 돌연 구렁이로 가득 차더니 순식간에 어깻살로 둔갑한 것이다!
「재생!」
거인왕 발로르가 핵으로 삼고 있는 것은 풍요의 가마솥 운드리. 그 무한한 생명력은 부서진 거인의 생살조차 복원시킨 것이다!
그리고 발로르의 무기는 이 생명력뿐만이 아니다.
-지이이이잉!
마력을 집속하는 것만으로 굉음을 발생시키는 발로르의 사안. 그것이 한없이 제로 거리에서 위커 워리어를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쏘아지는 발로르의 사안. 위커 워리어는 정면으로 그것을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나자빠진 위커 워리어는 그것만으로 재앙이었다. 자빠진 해안가에 물폭발이 일어나며 무지개를 생성했다.
「크··· 괘, 괜찮아요?」
「괜찮아! 이 골렘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고!」
「······아니, 크라넬 당신 말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위험했다. 방금 그걸로 위커 워리어의 장갑 내구도가 반절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이다.
「사안을 또 충전하기 전에 처리해야 해!」
「두고 볼 것 같은가?」
일어서는 위커 워리어를 두고 발로르는 제 발밑의 얼음을 들어 올려 손에 쥐었다.
황금의 대마법사는 즉석에서 연금식을 새기고 얼음덩어리에 초석으로 변환. 내던지는 얼음 탄환.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주변의 산소가 모두 연소되고 폭발의 압력이 충격파를 일으키며 화염을 솟구치게 했다.
부우웅! 하고 피어 오르는 먼지구름. 압축된 공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광경은 가히 세상의 종말을 떠올리게 했다.
「정크 골렘 술식과 위커맨 소환식의 결합이라. 재밌는 발상이지만 낡았군. 이 발로르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큰 마학적 진보가 있었다 생각하는가.」
거인왕 발로르. 그 오래된 거인의 유해를 이용하여 현대에 부활시킨다는 기적은··· 골렘 술식, 키메라 술식, 결합과 연금술식의 크나큰 진보 끝에 완성된 첨단마학의 결정체인 셈이다.
낡고 오래된 두 술식이 합쳐진다 한들 이 마학의 진보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얕보지 마···! 얼마나 뛰어난 마법을 사용했느냐가 아니야.」
「뭣이?」
「골렘과 인간의 유대가 얼마나 깊어졌는가··· 그 유대의 합체야말로 무엇도 넘을 수 없는 진보다!」
「입 발린 소리를···!」
-쿵! 쿵! 쿵!
먼지구름 너머 바닥을 때려 부수는 소리가 세상에 울린다. 자욱한 회색 안개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위커 워리어였다.
연금폭탄에 의해 한쪽 팔이 날아갔음에도, 조금도 기세를 줄이지 않은 골렘이 몸을 던져 발로르와 부딪친다.
수십 톤 중량의 몸통 박치기에 자빠진 발로르를 향해 엘보 드롭이 낙하한다.
-쿵!
아찔한 소리와 함께 찌그러지는 발로르.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리친 팔꿈치는 활처럼 젖혀지더니 팔꿈치 부분을 열어 재꼈다.
《자세/균형 제어 술식──체크》
《마력편향 부스트 술식──체크》
《지정타겟추적 레이더──온》
《네이쳐 웨폰 우든 피스트 장착》
《정령핵 X5 강제 폭주》
폭주하는 마력을 부스터처럼 분사하는 중펀치. 무게와 출력을 쏘아내는 엘보우 로켓이 발로르의 안면에 내리꽂힌다!
“그우어어어어···!!”
찌그러진 안면부와 함께 완벽하게 바다로 쓰러지는 발로르. 그 거인의 중심부를 짓밟고 크라넬이 외쳤다.
「유엘! 그거다···!」
「으··· 그거요?」
크라넬의 텐션을 따라잡지 못한 유엘이었지만, 이것만큼은 몇 번이고 연습했기에 금방 알아차렸다.
떡갈나무 지팡이로 조정간을 대신하고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는 유엘.
-지이이잉! 철컥!
《네이쳐 웨폰 32 발사관 개방》
위커 워리어의 가슴이 열리 수십 개의 발사관이 드러났다. 크라넬과 코린의 로망이 섞인 설계이자 필살기술!
「필살──!!」
「············.」
「필살──!!」
「······꼭 해야 돼요?」
「코린이 그랬어! 기술명을 외치면 공격력이 150%는 올라간다고!」
「······아닐 텐데.」
유엘은 1.5초 정도 망설였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크라넬의 로망에 응해주기로 했다.
「필살──!!」
「······브레스트 봄버.」
쥐꼬리만큼 작아지는 목소리였지만, 어쨌든 필살기명이 외쳐지고──
-콰콰콰쾅!!
수십 개의 발사관에서 정령핵 대포가 발사되었다.
체내의 코어인 정령핵을 쏘아 강제폭주, 폭발시키는 예술적인 필살기. 그 직격타를 맞은 발로르의 살점이 터져나갔다!
「좋아, 쓰러뜨렸···!?」
찢겨나간 발로르의 팔이 위커 워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우지끈!
갑작스레 무너지는 위커 워리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유엘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무, 무슨 일이?!」
「오른발의 강도가 약해졌어! 연금마법이야!」
경화된 위커 워리어의 발이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그탓에 서로를 위아래로 두었던 두 거인은 이제 역전된 시야로 서로를 응시했다.
「거인왕의 핵이 운드리인 이상, 아무리 부수고 찢어도 의미가 없다.」
그 말대로 거인왕은 브레스트 봄버에 터져나간 살점들을 실시간으로 회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단단하고 강력한 폭발력을 보여주는 위커 워리어라도 결국 한계가 있고, 이 무한의 생명력 앞에 무릎 꿇으리라.
「작전대로다.」
「뭣이?」
그때였다. 에이드린은 돌연 후방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뒤를 돌아봤다.
하늘이 열렸고, 허수차원의 심연 속에서 태양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것이 태양···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코린 로크.
태양의 신위를 계승한 자.
두 자루 창을 든 태양신이 강림한다. 막대한 질량을 가진 태양이 그의 손짓과 함께 떨어졌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내리치는 압도적 질량. 구현 단계에 접어든 거대한 태양이 그대로 거인왕을 짓눌렀다.
“크오오오오···!”
거인왕 발로르가 괴성을 내질렀다.
동토의 싸늘함 속에서 사안 하나만 남은 거인왕의 유해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숙적의 등장에 반응한 것이다.
태양이 짓누르고, 거인왕이 버틴다.
그 모습은 마치 행성을 짊어지는 거인을 연상시켰다.
「얕보지 마라, 모이투라에서 거인왕이 어떻게 신왕을 죽였다고 생각하느냐?」
불사왕 게롤그와 120만 언데드 시티를 한순간에 정화하고, 왕의 수하 둔 스카이스를 압살했던 세계 최대질량의 힘을 발로르는 버티고 있었다.
거인왕 발로르라는 존재의 특성. 신들의 군대를 휩쓸며 신왕을 살해할 수 있었던 모든 마법에 대한 저항력.
태양 클라우 솔라스조차도 이 항마의 힘 앞에서는 길항할 수밖에 없다.
“뭐, 그럴 것 같았어.”
서리거인도 대충 그런 포지션이었다. 코린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발로르를 지나 아직 재생하지 못한 살점을 향해 뛰어들었다.
“적창 게 데르그.”
내지르는 적창. 그것이 발로르의 살점과 닿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평범한 찌르기. 단지 그뿐 일진데, 닿은 지점을 시작으로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적창 게 데르그. 마나난 막 리르의 보물창.
그 힘은 마법의 효과를 무력화하는 것. 따라서 발로르를 구성하는 연금마법이 이 창에 의해 무위로 돌아간다.
“아직 외피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나. 너무 무방비해.”
본래라면 이런 압도적인 상성 게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마법을 무력화하는 적창이라도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친다면 마법을 전부 무력화하기도 전에 당한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본래 발로르의 유해가 아닌 온갖 거인들의 신체를 누더기처럼 기워 만들었기에 발로르 본래의 신체 강도조차 구현하지 못했다.
원작에서 발로르는 둔 스카이스의 보조 따위 없이 부활하기에.
이 모든 것이 시간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자, 핵이 드러났다고.”
「네놈···!」
코린의 시야에 커다란 가마솥이 보인다. 발로르의 핵을 이룬 거대한 에너지원. 대지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운드리. 그것에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손을 잡는 누군가가 있었다.
“까꿍.”
“······그래, 너 왜 안 나오나 했다.”
마법이 붕괴하자 둔 스카이스가 살점들을 흡수해 소의 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남의 소중한 걸 가져가려고 하면 쓰나.”
“니껀 내꺼. 내껀 내꺼야. 악당이면 감수해야지.”
“히힛···!”
그대로 코린의 팔을 붙잡은 채, 거인의 살점 바깥으로 내던지는 스카이스. 그는 거인을 뒤로하고 땅을 밟았다.
“다시 구현 가능해?”
「······저자를 접근시키지만 않는다면, 한 번은.」
“좋아좋아.”
스카이스는 허리를 숙이고, 뿔을 내세우며 돌진했다. 그의 필살 전법. 소의 가장 강력한 공격인 차징이다.
직선에서 맞서는 걸 무조건 피해야 할 진데, 이에 맞서는 코린은 피할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압축.”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발로르를 짓누르던 거대한 태양이, 조금씩 어느 한쪽으로 강이 흐르듯 흘러갔다.
유수가 되어 몰아친 태양의 마력이 도착한 곳은 찬란한 은빛을 빛내고 있는 코린의 왼팔.
거대한 태양의 힘이 겨우 팔 하나에 의해 압축된다. 그 안에 담긴 무한한 힘을 이고서 코린은 달리기 시작했다.
“윽···!”
다가오는 압축된 태양. 둔 스카이스는 열기에 피부가 타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숙인 허리는 올릴 수 없었고, 불붙은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가속이 붙어버렸다.
격돌의 순간.
죽음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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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로 인한 길항도, 소음조차 없었다.
지우개에 지워지는 흑연 가루처럼··· 아니, 흑연 가루조차 이보다는 더 오래 버텼을 것이다.
격돌의 순간 간신히 몸을 비튼 스카이스는 제 좌뇌에서부터 어깨, 심장, 허파,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말끔하게 사라졌다.
“끄으으으──?!”
압도적인 화력. 압축된 태양 앞에서 스카이스의 맨몸은 흑연 가루만도 못한 존재다.
“미안한데··· 태양을 얻은 시점에서 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네노오오옴···!”
스카이스가 남은 한쪽 팔을 움직였다. 놈은 방금 일격으로 태양을 유지할 마력을 소진했다.
곧 붕괴할 몸이라도 놈을 상처입혀놔야 곧 운드리에서 부활할 자신의 마지막 육체가 승리할 수 있다.
팔이 뻗는 순간, 코린의 창이 나찰의 묘리로 주먹을 빗겨냈다. 반신이 사라진 스카이스로선 수라와 계율의 버프를 받은 코린을 압도할 수 없다.
“읏?!”
“하필이면 짐승이란 말이지.”
「둔 스카이스가 적창 게 데르그의 짐승사냥 저주를 받습니다.」
-350%의 추가 대미지를 받습니다.
-헌팅 그라운드에서 도주할 수 없습니다.
-표식이 새겨집니다. 사냥꾼의 명중률 보정을 받습니다.
휘두른 창에 스카이스의 팔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잘려나갔다. 다음은 발목, 무릎, 복근, 팔목.
수십 번의 회전력이 더해진 적창이 마구잡이로 그를 유린한다. 가볍게 베인 상처조차도 스카이스에겐 치명타로 작용했고······.
“끄르으으으윽···!”
무릎 꿇은 스카이스를 향해 휘두른 창날이 손쉽게 그의 목을 절단했다.
굴러떨어지는 소대가리.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둔 스카이스는 수많은 짐승의 군집체. 사망한다 한들 새로운 몸을 얻어 운드리에서 태어날 것이다.
그의 본질은 운드리라는 무한의 그릇 안에 갇힌 짐승들이니까.
「코린···! 위험해!」
크라넬의 경고. 그리고 스카이스를 처리하는 사이 마법사들의 마력을 끌어모아 회복한 발로르가 코린을 향해 사안을 압축하고 있었다.
태양 클라우 솔라스가 무한의 군집체 둔 스카이스와 상성 관계였다면, 발로르는 누아다의 신위를 이은 코린의 극상성.
저 사안은 태양신을 죽인 마광이다.
“······한번 받아내보지.”
피하기 늦었다고 판단해 자신의 오러 코어를 개방하는 코린.
세반시아 듀크의 오러 코어. 그 방대한 오러를 ‘은창’에 집속했다.
최종의 마(魔). 용을 죽인 이 힘은 코린이 아직 다뤄보지 못한 힘이다. 잘못하면 코어 자체가 손상될 수 있는 도박수.
그는 이런 도박 따윈 하고 싶지 않았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죽어라.」
최종마창 용살──
전설과 신화의 힘이 부딪치려는 그 순간.
하늘에서부터 까마귀의 날개깃털과 함께 낙하하는 검은 수녀.
그 수녀는 끝없는, 전설의 영웅마저 능가하는 끔찍한 용량의 오러를 발에 집속. 발로르의 머리 위에서──
“밟을 거야.”
-콰직!
그대로 밟았다.
-꽈드드드득!!
들려선 안 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생물이 머리서부터 짜부라지면 이런 끔찍한 소리가 울리는 건가 싶을 굉음.
본래의 거인왕도 아니고, 다급하게 채워 넣은 살점은 비천야차의 전력 밟기를 견뎌내지 못했다.
-펑!
터져나간 머리에서 포탄처럼 쏘아진 발로르의 눈알. 그것이 재수 없게도 마법사들을 향해 떨어졌다.
“끄아아악···!”
“흐헉?!”
거대한 눈알에 깔려 죽는 마법사들. 그들을 보며 발로르의 목울대에서 에이드린이 피를 토했다.
“쿨럭···! 네년?!”
“화, 화란?!”
느닷없이 나타난 히든조커에 코린마저 놀랐다. 하지만 아직 발로르는 죽지 않았다.
머리가 짜부라지며 사안을 담은 눈알이 날아갔어도 거인의 형체는 아직 끈질기게 움직인다.
코린은 왜 화란이 등장했는지 묻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발로르의 육체가 무방비한 상태에서 결정타를 먹여야 한다는 것뿐.
“크아크키카카카카칵···!!”
성배에서 살점이 불어나며 둔 스카이스가 부활을 이루고 있었다. 코린은 그 안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화란···! 다 찢어버려!”
“······응.”
화란은 코린의 지시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발로르의 살점을 향해 뛰어들었다.
피부 껍질도 없는 거대 구렁이도, 독덩어리를 토해내는 거대 두꺼비도··· 화란은 묵묵히 손에 쥐는 대로 찢어버렸다.
수백 마리의 두꺼비들이 짓이겨지고, 수백 마리의 구렁이들이 뜯겨나갔다. 이 모든 건 운드리를 향한 길을 열기 위해.
“주, 주겨, 주겨버리겠──”
“시끄러.”
끔찍한 독니를 가진 뱀들이 화란의 목덜미를, 팔다리를 물었으나 뱀들의 독니는 화란의 생살을 파고들지 못했다. 오히려 독니가 부서지고 만 것이다.
기어코 짐승들을 압살해버린 화란이 모든 생명의 근원인 가마솥을 쥐었고, 보란 듯이 치켜올렸다.
“이거?”
“아주 잘 했어!”
코린은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방해물을 모조리 찢어버린 화란을 보며 환호했고, 다시금 수천 마리의 짐승을 쏟아내려는 운드리를 향해 병 하나를 들었다.
“무한의 생명이라 한들, 그릇 자체가 오염되면 어떨까?”
“그, 그건?!”
병 안에 든 액체의 정체를 본능적으로 알아본 스카이스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생명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알아챌 수밖에 없는, 신화대계를 멸망시킬 최흉의 맹독.
【배로강의 끓는 뱀독.】
“질긴 인연! 이제 끝내자!!”
“아, 안 돼!”
스카이스가 최후의 생명을 불태우며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운드리 바깥으로 나온 짐승은 여지없이 화란의 손에 뜯겼다.
결국 어떤 저지도 없이 운드리 안에 배로강의 끓는 뱀독이 투척되고, 그것을 담은 병아 산산이 깨지며 독액이 운드리 안에서 퍼져나갔다.
“화란, 그거 지지야! 버려!! 바다에는 안 빠지게 조심하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란은 운드리를 냉큼 해안가로 던져버렸다. 모래사장에 떵! 하고 떨어진 운드리가 수십 번을 구르고서야 잠잠해졌으나 내부는 그러지 못했다.
“끄, 끄아, 끄끽! 끄르르륵?!”
“카아아아아아악!”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온갖 생명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가마솥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수천 마리의 생물들이 억지로 빠져나오려다 껍질이 벗겨지고, 살갗이 찢어졌지만,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아, 안··· 아악! 아그악···!”
거대한 구렁이가 하늘에 닿을 기세로 솟구친다. 하지만 그는 하늘에 닿지 못했다.
“주인, 님······.”
새하얗게 질려버린 눈알을 끝으로 짐승의 왕이 고꾸라졌다.
더이상의 부활은 없었다.
* * * *
“위험합니다, 성녀님. 지금이라도 주둔지로 돌아가셔야···!”
“괜찮아요. 조금이지만 성력이 회복됐으니까.”
에스텔은 만류하는 성기사와 사제들을 뒤로 하고 이 전투의 끝을 눈에 담으러 왔다. 현재 그녀의 목덜미에는 화려한 황금 로사리오가 걸려져 있지 않았다.
“지켜봐야죠. 날 위해 온 사람들의 싸움을.”
그녀는 자신을 위해 결집한 군대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사들을 지켜볼 의무가 있었으니.
그녀가 어이없이 붕괴한 해안의 전투를 뒤로하고 향한 곳은 자신이 건넜었던 딩글 반도다.
왕국 소유인 여객수 흐레스벨그를 타고 마지막 전투를 지켜보던 에스텔은··· 그녀와 함께한 성기사와 사제들은 결국 보았다.
하늘에 강림한 태양을. 그 찬란하고 위대한 따뜻함을.
그것은 진정 태양이었다.
세상을 밝게 비추고, 생물을 자라게 하며,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
그리고··· 신께 기도하며 그 권능을 하사받는 성직자들에겐······.
“저, 저건······.”
너무나도 닮은 성질의 성력을.
“아아···.”
에스텔은 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누구보다도 신과 가까운 소녀. 신과 연결된 존재.
그렇기에 신의 ‘힘’을 피부로 이해하는 이 소녀가 제 안에 깃들 혈통을 깨우친다.
신들의 시대가 끝나고 방치된 무주공산 속. 방치된 신력을 제 뜻대로 끌어모을 수 있었던 성녀가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성이나, 지식이 아니라. 그저 본능적인 이해로.
“······주여.”
‘신’이 눈앞에 있음을.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