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
헌팅 그라운드(2)
아리샤 아덴을 탈락시킨 뒤, 나는 품 안에 파란색 견장을 집어넣었다.
‘2급 상대론 이 정도인가.’
사실 아리샤이기에 이길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다른 녀석들은 그 특수능력 때문에라도 내가 상대하기 어렵다.
‘드루이드와 골렘술사도 성가시지만······.’
1학년 네임드 중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건 어검의 용병 도론 워스카이다.
제2계율의 50% 백업을 받아도 승률은 3:7 정도 되려나?
“하······.”
그나저나 아리샤 아덴의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아리샤 아덴의 최대장점은 경계안이라는 특성과 기본 피지컬이다.
경계안은 차원의 틈새를 보는 눈. 이것은 자연스럽게 시전자를 ‘영역’ 안에 들이게 만든다.
게임상에서는 ‘영역’이라 표현되는 정지된 세계에서 공격을 하는 필살기 정도로 연출됐지만, 현실이 된 이 세계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경지.
아덴류 일검의 영역베기나 육합창의 무간(無間)이 추구하는 최종오의. 나는 전 회차에서 무간의 끝자락에도 못 갔다.
이건 피지컬이나 힘의 크기 이전의 문제.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의 세계에서만 발동되는 거니까.
그래도 이런 문제를 떠나서 기본 실력부터 하자가 있다. 아무리 내가 3년의 극한 경험이 있더라도 기술에서 압도당할 정도라니.
이러면 한 달도 안 남은 마리에 보스전이 걱정된다.
“뭐··· 기본 피지컬은 있으니까 나름 도움은 되겠지.”
예정대로라면 2막의 초입부 미션인 . 마리에는 1막 후반부에 도시로 잠입한 녀석을 상대하다 각성의 전초를 겪는다.
‘당분간은 아리샤와 친해지면서 단련을 시켜야 하나?’
전 회차의 실력을 되찾진 못했지만, 아리샤에게 부족한 건 대충 감이 온다.
를 쫓아 메르카바 시티를 방문한 루니아 아덴과 접촉하고 계기만 마련해주면 금방 따라올 것 같은데······.
‘당분간은 의무실 신세겠지만. 다 나은 다음에 한 번 봐줘야겠어.’
팔괘에 중합기를 섞은 합장을 가슴팍에 얻어맞았으니 일주일 정도는 기본 체력단련밖에 못 할 거다.
설마 이렇게까지 허술할 줄 알았나. 솔직히 내가 칼 들고 싸워도 소드 레슬링에서 이길 것 같다.
“저기 3급이다!”
“잡아!”
“이, 이 자식들이···!”
헌팅 그라운드가 소란스럽다.
룰을 이해하기 시작한 녀석들은 영악하게 도당을 짜고 사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마물이든, 학생이든.
아카데미에서 유도한 대로 다구리의 정석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급수가 낮은 학생들이 연합해서 보다 높은 급수의 동기들을 습격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나와 마주친 녀석들도 그런 녀석 중 하나였다.
“어? 뭐야. 5급이잖아?”
“해치울까?”
“됐어. 5급 주워서 어따 쓰게. 야, 5급. 너 우리하고 같이 다닐래?”
“응?”
“미끼 역할은 할 수 있을 거 아냐. 야, 협력하면 10% 정도는 챙겨줄게.”
“놀고들 있네.”
기습적으로 창을 놀려 녀석들에게 달린 견장을 낚아챘다.
“어, 어엇?”
“뭐야?”
어느새 창끝에 견장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녀석들을 대충 무시하고 숲을 달렸다.
4급 두 명을 잡아 얻은 하얀색 견장이라··· 아리샤 아덴의 파란색 견장도 있으니 합산하면 꽤 높은 점수가 나온다.
내 목표는 이번 헌팅 그라운드에서 100점을 찍는 것. ‘씨앗’을 얻고 히든피스 획득까지 진행하는 거다.
2급을 하나 더 잡으면 확정적으로 100점을 찍을 수 있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만나는 것부터 일이다.
게임에서는 무한리트를 해서라도 100점을 획득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금부터는 다른 동기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볼까?
-콰앙! 콰쾅!
생각에 잠겨 북쪽으로 달리고 있을 때, 숲속을 깨부수는 굉음이 울렸다.
-콰카카카칵!
-끄아악!
-이건 사기잖아!
철편 소리와 비명이 교차하며 숲속에 울린다. 가열된 열기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 왜 이리 가까워?’
-쉬익!
“흡···?!”
정수리부터 추락하는 무거운 중압감. 이 중량감··· 본능적으로 창을 찌른다!
-까앙!
오러를 두른 창으로 추락하는 검을 정면으로 관통. 두 날붙이가 길항했다.
“큭···!”
무겁다. 이건 강철의 4배 밀도를 자랑하는 중철석으로 만든 마검이다.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심플하게 무거움으로 승부하는 검. 대형 보스 몬스터 상대로 효과적인 마검인데, 이게 날 습격했다는 건···!
-카앙!
“뭐야, 중철검을 튕겨냈나? 꽤 실력이 있잖아?”
마검들을 회수하며 다가오는 어검의 용병, 남자는 나를 보고 의아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5급?”
“망할······.”
남자의 등 뒤로 전투의 참상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쓰러져 있는 수십 명의 동기들. 학생들뿐만 아니라 몇몇 마물의 시체와 마령이 남긴 소울 더스트까지 여기저기에 있다.
이 모든 게 한 사람이 벌인 일. 저 노안이 팍팍 온 용병 출신이 벌인 일이다.
“도론 워스카이······.”
“유명한 것도 피곤한 일이야. 사방에서 덤벼드니까.”
-돈 안 되는 일은 피하고 싶은데.
수십 명을 쓰러뜨린 압도적인 전과에도 불구하고 어검의 용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냥 못 본 척 넘겨주면 안 될까?”
“굳이?”
다섯 개의 마검이 나를 위협했다. 그래, 맹수가 토끼를 굳이 안 잡을 이유도 없다는 거겠지.
“······일이 꼬였는데.”
튀자.
-쉬익!
숲을 가르며 마검들이 내게 쇄도했다.
* * * *
아리샤는 헌팅 그라운드를 터벅터벅 걸으며 빠져나왔다.
“으··· 코린 씨가 그렇게 강했다니······.”
정말로 5급이 맞긴 한 건가? 이런 의문을 가지기엔 그 소년의 지적이 너무나 뼈아팠다.
「재능에 의존한 안이한 연습 부족.」
연습 부족··· 본가에서도 많이 지적받았던 말이다.
“애초에 난 검도를 걸을 생각도 없었는걸.”
재능이야 있지만, 아리샤는 진지하게 할아버지의 후계를 이을 생각 따위 없었다. 그냥 멋있으니까 다이어트 겸 계속해온 거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이복언니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피가 멈추질 않아요!」
「비살상 처리가 됐는데 어떻게!」
모든 게 바뀌었던 그 날. 처음으로 대련을 했던 그 순간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었다.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후계자에 들어버린 것이다.
「검 하나만 보고 다른 건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군.」
그래도 그 지적이 아팠던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한심해 보였던 걸까?”
은인님도 자신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힘이 축 늘어졌다.
“강했지, 그 사람.”
코린 로크를 대해 떠올려본다.
그토록 매서운 창은 본 적이 없다. 그만한 기술을 쌓으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을까?
창의 기본기부터 약점을 극복하는 노련함과 완성된 기술까지··· 마치 언니를 보는 것 같았다.
천재라는 치켜세움에 우쭐해서 노력하지 않았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조금··· 노력해볼까?”
돌아가면 검술을 더 연습해봐야겠다. 주변에서 천재라고 치켜세워주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정보도 알려주고, 사탕도 주고··· 나름 조언도 해 줬었지······.”
얼굴도 야성적이고, 근육도 꽤······.
찬찬히 코린 로크의 외형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한 가지 눈에 띈 것을 깨달았다.
“어, 그 허리띠······.”
자신이 차고 있는 은인님의 허리띠와 비슷하지 않았나?
“아리샤 아덴 학생!”
노회한 교수의 목소리에 아리샤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아, 네···!”
“아덴 학생. 그쪽이 아니예요.”
“네?”
“그쪽은 3급 마물들이 서식하는 장소입니다.”
“넷?”
“입구는 반대편입니다. 저쪽으로 가세요. 길 잃지 마시고.”
“아··· 네에······.”
상기된 피부를 숨기듯이 숲을 달리는 아리샤. 창피함에 매몰된 소녀는 허리띠에 대한 건 감쪽같이 잊어버렸다.
* * * *
어검의 용병 도론 워스카이는 노련한 용병이다.
어려서부터 워스카이 용병단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수많은 마물과 마령들을 쓰러뜨린 베테랑.
입학도 전에 받은 정식 2급 가디언증은 그가 역전의 경험을 쌓은 증거다.
“세상은 넓군.”
도론은 으스러진 숲의 경관과 끔찍하게 패여진 공터를 응시했다.
수백 년을 자랐다고 하는 고목들은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고, 화염과 뇌령의 힘이 담긴 마검이 일으킨 재해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도론의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공략당했다.’
염검은 최대출력을 내기도 전에 코어가 꿰뚫렸고, 뇌령검은 도론의 특성인 염동력으로도 뽑히지 않을 만큼 땅속 깊숙이 처박혔다.
가속술식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자철검은 취약한 술식 구조가 잘려나가기까지.
다섯 개의 마검과 염동력, 특유의 가속술식이 시작부터 절반이 봉쇄된 상태에서 싸운 것이다.
“뭐하는 녀석이지? 내 술식과 특성 모두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하지만 그 이전에 노련했다.
상대방의 능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는 둘째 치고 공략가로서 능숙하다.
마검을 공략당해 당황했지만, 직접 검을 마주해본 결과 본신의 스펙은 대단치 않다.
단순 피지컬만 따지면 3급 기사도 겨우 턱걸이. 따지고 보면 4급 기사 수준이다.
그것만으로 5급 기사라는 코린의 등급평가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어째서 이만한 실력자가 아직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지도 의아하다.
‘적자군. 이번 실습은 포기한다.’
다섯 개의 마검 중 세 개가 기능고장이다.
재료만 있으면 수리는 금방 할 수 있겠지만, 그 재료가 오는 것도 다 시간이었으니.
* * * *
“죽을 뻔 했네!”
도론과의 격전에서 탈락하지 않은 건 순전히 운이다.
전 회차와 게임을 통틀어 녀석의 술식과 마검들의 특성을 다 꿰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시작부터 가장 성가신 염검과 뇌령검을 기능 해제시키는 걸 성공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골로 갈 뻔 했어.’
녀석은 아리샤 아덴을 비롯해 초반부 플레이어의 주력 파티멤버다.
지형 빨을 좀 타는 드루이드나 육성이 제대로 안 되면 대인전에서 한계가 명확한 골렘술사와 달리 범용성이 좋다.
특히 다양한 속성마검들은 속성공략과 화력에서도 특출나니 후반부까지 끌고 가는 강력한 동료 캐릭터.
캐릭터 성격이 , 라 지출비용이 커서 그렇지 실력으로 치면 아리샤보다도 낫다.
“크······.”
자철검··· 녀석이 자랑하는 가속술식으로 가속된 초가속검에 당한 상처가 아릿하다.
분명 비살상용 봉인처리가 된 검인데도 스친 것만으로 어깨가 찢겨 나갔다.
하지만 괜찮다. 어깨의 상처는 벌써 아물기 시작했으니까.
‘끈질긴 전사의 재생. 제대로 작동하고 있군.’
전투지속 중에 일정 HP 이하로 떨어지면 회복력이 대폭 증가하는 특성.
단순한 회복 수준을 넘어서 신체를 원상복구하는 회귀에 가까운 능력이다.
“흐흐, 내 어깨 값은 아주 제대로 치렀지?”
녀석의 마검 중 세 개를 고장 냈다. 아직 스토리 초기라 대부분이 3급 마석으로 만들어진 중저가형 마검.
제대로 된 1급 블랙스미스가 만든 특제가 아니다 보니 결합이나 이음새가 약하지.
수리하려면 돈 좀 들거다.
-콰아아앙!!
순간, 숲이 요동쳤다.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비산하는 물방울들. 거리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범위.
이 숲에서 수속성 마법을 이만한 수준으로 펼칠 수 있는 마법사는 메르카바 아카데미에서 한 명뿐이다.
“마리에?”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북동쪽. 아마 이번 실습의 목적지인 오두막하고 근접한 장소다.
마리에와 이 정도로 싸울 정도면 1학년 네임드. 드루이드 유엘이나 골렘술사 크라넬 루든 중 한 명인가.
크라넬이야 한 1분 버틸 테고, 드루이드 유엘이면··· 숲이라는 압도적 어드밴티지 덕에 제법 싸워볼만 하겠어.
“3분 정도 버티려나?”
하지만 상대는 2학년 최강. 아니, 메르카바 아카데미의 네임드 마법사 중에서 조제핀 여사에 견주는 천재다.
-콰앙! 콰쾅! 콰콰콰쾅!!
특유의 증폭술식과 연금술식이 터져나가자 숲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날붙이 가지고 투닥거리던 기사들은 초현실적인 무언가에 넋을 잃겠지.
같은 마도의 길을 걷는 자들은 압도적 재능 앞에서 절망할지도 모른다.
‘정정. 2분 버티면 다행이야.’
저게 마리에 듀나레프. 원치 않는 각성으로 추락하는 마법의 총아.
한 달 뒤 내가 공략해야 할 1막 최종 보스다.
“으··· 저쪽으로는 가지도 말아야겠다.”
삥 돌아가야지.
휘말려서 탈락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