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2
여름은 파란을 안고(4) 삽화有
왕도에서 데이트 코스라고 하면 몇 가지인가 대표적인 장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왕도 근교에 위치한 베이트 왕립공원은 왕국민이라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명소로 손꼽힌다.
그 시작은 왕국의 초기 박해받던 신앙인들이 지하동굴을 파 숨어 살면서 그들의 피난처를 숨겨주던 나무와 꽃들이 대단한 정원으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교단의 입장에선 제 신앙의 역사적 증거이며 왕국민들에게는 만발한 정원이 싱그러운 산책로를 제공하는 이중적인 의미의 뜻깊은 장소.
이러한 스토리를 갖고 후대에서야 왕립공원으로 가꾸어진 베이트 공원은 진짜 과거와는 많이 바뀌었겠지만, 이는 어른의 사정이다.
그런 왕도 관광의 명소인 왕립공원. 화란이 코린과 함께 나들이를 하며 데이트의 메인코스로 정한 곳이기도 하다.
“으, 으······.”
입장료를 받는 공원의 코앞 매표소. 검은머리 소녀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같은 자릴 멤돌았다.
「화. 솔직히 정신 사나워.」
“으읏···.”
한 몸을 공유하는 자매의 지적에도 화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소녀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 까?”
「안 올리가 없잖아.」
“그래도······.”
코린이 만약 자신을 싫어하면? 아니, 싫어하진 않더라도 데이트까지 할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막심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해버린 걸까?
갑작스런 제 데이트 신청에도 코린은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시원하게 수락했다.
「좋아. 가고 싶은데 있어?」
그 뒤론 일사천리다. 코린은 날을 잡았고, 소녀들은 마리에가 예약한 호텔로 귀환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리샤와 마리에는 자신이 코린과 데이트 한다는 걸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데이트 당일. 화의 복장은 평소의 무미건조한 수녀복과도 확연히 다르다.
데이트를 하려면 예쁜 옷을 입어야 한다. 조제핀의 로맨스 소설부터 확인한 문구.
두 사람은 지온 교단 금화 보관소에서 금화를 찾은 뒤, 무작정 옷 가게를 갔다.
일단 옷을 처음 사보는 건 처음이 아니다. 이따금 에스텔이 자신을 데리고 옷 가게에서 줄창 금화를 던지는 꼴을 보았더랬다.
하지만 혼자서 옷 가게를 가는 건 처음. 그녀는 점원이 좋다고, 예쁘다고 한 옷을 무작정 사왔지만······.
“이거. 이거··· 너무, 너무 노출이 많아.”
「······이곳에선 다들 이 정도는 하니까.」
화란의 복장은 어깨를 노출한 오픈 숄더 드레스다. 이 나라의 노출에 대한 기준은 과할 정도로 자유로웠지만, 동방 출신인 두 사람에겐 바람과 부딪힌 살이 벌겋게 익을 정도다.
「마리에 언니나··· 아리샤도 평범하게 입고 다니잖아. 이게··· 평범한 거 아닐까?」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배꼽이나 허벅지 노출은 고사하고 이 나라의 여성들은 윗가슴이든 옆가슴이든 하나쯤은 내비치는 게 숙녀의 소양인양 굴고 있다!
「그래두··· 예쁘잖아.」
“······예뻐?”
「응. 화, 지금 모습 정말 예뻐.」
“코린도··· 그렇게 생각할까?
「조제핀 수석교수님의 연애소설에서 그랬어. 남자는 사시사철 발정난 개라서 살짝 피부를 노출해주면 정신을 못 차린대.」
“발정이 뭔데?”
「그 다음 장면에서 서로 침대에서 손잡던데. 황새를 부르기 위한 의식 단계 아닐까? 근데 왜 개라는 말이 나왔지?」
“······황새가 오기 위해선 개가 필요했던 걸까?”
「어··· 그럼 우리가 여태 손을 잡고 잤어도 황새가 안 온건······.」
이럴 수가. 비단 황새 서식지가 멀어서 뿐만은 아니었단 말인가.
충격적인 진실을 깨달은 자매는 개를 구해야겠다는 의식의 흐름까지 흘렀다.
“······황새는 아직 일러.”
「하지만 생각해봐. 오빠하고 우리를 닮은 아기님을 황새가 물어오는 상상을. 얼마나 잘 생기고 예쁠까?」
“······우리 아냐.”
「또 그런다.」
어디까지나 코린을 좋아하는 건 란이다. 화는 그런 방어기제를 재차 강조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확인용. 자신은 결코 코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기 위한 데이트니까.
“미안, 내가 늦었네. 오~ 옷 새로 샀네?”
“어, 어어······.”
데이트 약속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한 코린에 침을 꿀꺽 삼키는 화.
처음으로 선보이는 사복에 화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코린은 뭐라고 할까? 예쁘다고 할까? 어울린다고 할까? 별로라고 말하면 큰 상처가 될 것 같다.
“예쁘다. 평소에도 예뻤는데, 오늘 차려 입은 거 보니까 색다르네. 진작 이렇게 입고 다니지 그랬어.”
“그, 그래?”
데이트 상대역의 남자로서는 훌륭한 대답. 화는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옷 사러 가자. 뭘 입어도 예쁘겠지만, 옷하고 악세사리까지 같이 사줄 테니까.”
“으응······.”
수줍어하는 화의 손을 붙잡는 코린.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가 화들짝 놀랐지만, 그녀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화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코린. 그는 ‘배운대로’ 행하였다.
“가실까요, 레이디? 기꺼이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어, 어어··· 으응······.”
내민 손을 뿌리치지도, 밀어내지도 못한 화는 얼떨결에 코린을 손을 붙잡고 공원에 입장했다.
공원 내부는 왕도의 명소인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람이 많네. 싫진 않아?”
“괜찮··· 아.”
사람 많은 곳을 질색하는 화는 어미 품에 부벼대는 아기 고양이처럼 그의 품에 기대었다.
맞잡은 손바닥과 손바닥. 자연스럽게 팔짱까지 이어져 밀착한 살들에서 전해지는 열이 귀밑머리까지 뜨겁게 달구어지는 것도 모른채.
“냄새 좋네. 이래서 다들 왕립공원 왕립공원 하나 봐.”
“으응······.”
“여기가 비둘기 동굴로 유명해. 원래 지하에 피난동굴을 세워둔 곳이니까. 그곳부터 보는 게 정석이라니까 그쪽부터 가볼까?”
“어······.”
과거에는 숨겨져 있었던, 현재에는 내부로 향하는 길까지 친절하게 안내 표지가 세워진 길을 따라 도착한 비둘기 동굴.
핍박받던 신앙인들의 거처로 향하는 돌계단을 내려가자 널찍한 동굴의 거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이사이마다 비싼 마광등을 설치했음에도 확연히 어두운 동굴 안. 두 사람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밀착하며 의지하듯 함께 걷는다.
그들이 걷는 어두운 동굴 안. 벽면 곳곳에 같은 크기의 둥근 홈이 파여 있다.
“화, 여기 봐봐. 이게 비둘기들이 들어있던 비둘기장인가봐.”
“어어······.”
그녀는 지금 온 신경이 맞닿은 코린의 팔뚝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용한 동굴 안에서 굉음을 내고 있다.
‘들릴까? 들리는 거 아니야?’
「아, 안 들릴 거야.」
확신하지 못하며 그저 제 심장소리가 옆사람에게 들리지 않기를 비는 화란. 그녀는 그저··· 이 순간에 취해 있었다.
* * * *
화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동굴 탐사 내내 구경은커녕 내 팔을 꼬옥 붙잡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닌다.
‘어두운 곳을 싫어하나?’
폐소 공포증이라도 있었다면, 내 크나큰 미스다.
“대충 다 본 것 같으니··· 올라갈까?”
“······.”
내 말에 그저 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젓는 화. 왕립공원의 묘미는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으며 꽃내음을 맡는 것이다.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편다. 점심을 먹긴 살짝 애매한 시간이지만, 아점이라고 해두자.
“······.”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챙겨왔던 음식들을 늘여놓는다. 사실 나들이에는 김밥이지만, 이곳에 김밥까지는 없어서 그냥 샌드위치로 싸 왔다.
왕립공원은 전에도 한 번 와봤지만, 참 신비한 장소다.
큼직한 언덕들을 가득 메운 튤립들. 가지각색의 튤립들이 저마다 구역을 선정하고 색을 빛내는 것이 잘 가꿔진 네덜란드 튤립농장을 떠올리게 한다.
눈과 코가 즐거운 아름다운 배경에 화가 샌드위치를 냠냠 곱씹는다. 그 모습이 참···.
“귀엽네.”
“어···.”
무심코 흘러나온 말을 인지한 화.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내리깔은 시선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나?”
“그럼. 귀엽지, 예쁘지. 눈이 다 호강한다.”
“어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귓불과 양쪽 뺨 위로 슬며시 번지는 홍조. 지금 내 말은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이다.
“물론이지. 오늘은 네가 제일 예쁘고 귀엽다니까.”
순간적으로 커지는 눈동자. 화의 눈이 저렇게나 커질 수 있구나 싶을 정도다.
“그··· 너도, 멋, 멋······.”
“으응? 안 들리는데?”
“······봐줄 만큼은 돼.”
“아··· 별로야? 준비 열심히 했는데······.”
내가 의기소침하며 푹 고개를 떨구자 바로 안절부절못하는 화. 그 반응이 참 귀엽고 재미있더랬다.
“아니, 그게··· 그게······.”
“장난이야.”
“읏···!”
내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리자 그제야 속은 것을 눈치채고 벌겋게 달아오르는 화. 보복은 강렬했다.
-퍽!
“윽···!”
제 딴에는 살살 친다고 한 건데도 얻어맞은 어깨가 으스러진 것처럼 아프다. 맞을 짓 하긴 했지만, 또 놀렸다간 재생력이 못 따라가겠어.
“사과··· 안 할 거야.”
“흐흐, 미안.”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공원 곳곳을 구경했다.
“이거 봐. 장미가 황금색이네. 이거 마법으로 만든 거겠지?”
“기념품 좀 사갈까? 머리핀 어때? 장비도 괜찮지만, 빨간 튤립 머리핀이 좋을 거 같은데?”
“오, 저기서 음악회를 여는데? 듣고 갈까?”
“······.”
오랜만의 꽃구경으로 들뜬 건 오히려 나였던 모양이다. 각양각색의 꽃과 기념품들을 구경하다 돌아볼 때면 계속 눈이 마주쳤으니까.
하긴, 란이라면 몰라도 화는 꽃 구경에 관심이 없을 법도 하다. 이거 장소 선정을 잘못했나.
살짝 이른 저녁을 공원 내 식당에서 해결하자 어느덧 밤하늘에 별빛이 수 놓고 있다.
이 근처에 별 구경하기 좋은 포인트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좋은 반응이 올 것 같진 않네.
“슬슬 돌아갈까?”
“············아니.”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 * * *
결국 우린 별 구경하기 좋은 동굴까지 걸어왔다.
정확히는 왕립공원이 아니라 공원의 끝자락. 저 멀리 지평선의 서부로 향하는 평야와 이어진 곳에는 종 모양 동굴들이 산재했다.
게임에서는 배경으로 등장할 뿐, 어떤 상호작용도 없는 곳. 현실에서는 많고 많은 동굴 중에 방치되다시피 한 동굴 중 하나일 뿐.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며 관광명소로 가꾼 동굴들과 달리 이곳은 날것 그대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여기야.”
사람 몇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도 부족하지 않을 입구를 지나 어두운 동굴을 걷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빛이 파고든 한 자락을 발견했다.
“여긴?”
커다란 동굴 내부. 그 한가운데의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한 줄기 빛이 내리쬔다.
이 동굴에서 유일하게 빛이 존재하는 좁고 협소한 장소. 모든 빛을 독점한 그곳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예전에 좀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서 지낸 적이 있어. 정확히는 숨어 살던 거지만. 그때, 발견한 명소지. 이왕 온 김에 보여주고 싶었어.”
누워봐, 하고 권하자 화가 돗자리 위 내 옆에 살포시 머리를 뉘는 화. 몇 번이가 지세웠던 때처럼 팔을 베게로 내어주자 사양하지 않는다.
바닥에 누운 우리들의 위로, 좁은 동굴의 아치형 구멍에서 별빛무리가 보였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작은, 협소한 구멍 속 별바다.
“······작아.”
화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좁지. 바깥에서 보면 훨씬 넓고 많은 별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아름다운 것을 모두와 함께 보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때론 나 홀로 독점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자연은 모두의 것이다. 이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좋은 걸 나 혼자 독차지하고 싶다는 이기심이 마냥 나쁜 걸까?
“바깥에서 별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광대한 우주를 올려다보잖아. 하지만 우린 지금 이렇게 저 좁은 구멍 안에 가득 찬 별 무리만을 보고 있어.”
우리가 저 별 무리를 독점해서 보고 있는 거지.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작고 협소한 공간에 가득 찬 별들을. 오직 우리만이 올려다보고 있다고.
“우리···만?”
내 지론이 흥미로웠던 건지, 저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시선이 따라간다.
“우리꺼지.”
“우리꺼······.”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해석이지만, 이 추억은 전 회차에서도 꽤 기억에 남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순간이 화에게도 기억에 남아 언젠가 한번쯤은 떠올릴 법한 추억이 되기를.
“······.”
한동안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별들이 담겼다. 그런 화를 지켜본다.
별무리에 빠져든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동굴의 협소한 구멍보다도 훨씬 더 조그마한 눈동자에 담긴 별들이, 숨결과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깝다는 걸 깨닫자──
“······음.”
작은 헛기침을 삼켰다. 나만의 작은 예술품을 보는 것처럼, 이 순간만큼은 나만이 그녀를 독점하는 시간.
아주 잠깐. 3초 정도. 일방적인 교류를 이어나간다.
“왜?”
내 시선을 느낀 화의 고개가 돌아서며 그 교류는 아쉽게 끝이 났지만.
“별거 아니야.”
내게 향한 시선을 피해 하늘로 향하자, 화의 시선도 따라간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고, 오직 우리만의 별들에 시선을 고정한다.
작은 재잘거림도 시끄럽게 울리는 공동에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