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8
진실한 신앙(1)
성녀를 납치한 마탑이 토벌당한 일로 왕도는 떠들썩하다.
이 떠들썩한 연회는 주야를 막론하고 칠일 밤낮을 계속될 예정.
연회의 주인공인이상 벌써 나흘 연속으로 연회에 참여 중이다. 다행이라면··· 매일 같이 갈 파트너가 있다는 거고.
“──코린 로크 경과 아덴가의 제1검각주 루니아 아덴 경입니다!”
문제라면 그 파트너가 매일 바뀌고 있다는 거지만.
“세상에, 또 파트너가 바뀌었네요. 그제는 아덴가의 차녀, 어제는 지온 교단의 수녀였죠?”
“사흘 전에는 듀나레프 영애였고요.”
쑥덕거리는 시선들. 오늘 아침에 내가 파트너를 갈아치웠다며 염문설을 뿌리던 신문을 봤는데, 내일도 마찬가지겠군.
“무얼 그리 보나?”
“주변이 좀 시끄러워서요.”
오늘의 파트너는 루니아였다. 뭔가 여자애들한테 순서대로 파트너 신청을 받고 있는데··· 이거 원래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피앙세가 너무 잘난 것도 생각해볼 일이군. 허나.”
내 넥타이를 획! 하고 끌어당기는 루니아. 그녀의 당당한 미소가 내 시야를 꽉 채웠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마라. 오늘은 나만을 봐야지?”
“크, 크흠···!”
걸크러시가 바로 이러할까. 당대의 여걸답게 그녀의 행동은 거침이 없고 당당했다.
“요즘 바쁘더군. 국왕과 성녀, 게다가 뒷골목의 여왕까지 만나던데?”
“아··· 그것까지 아세요?”
“네가 연회장 홀수번에서 그녀와 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증언한 사람이 있었거든.”
“······증언한 사람이 누군지는 둘째치고 아는 겁니까?”
“예전에 한 번 날 잡아먹고 싶다고 앙칼진 이빨을 들이댄 적이 있다.”
오··· 에드나 그 양반, 올라운더이긴 한데 루니아 누님한테도 집적거렸을 줄이야.
“당연히 성사는 안 됐겠군요.”
“물론이다. 채찍질로 정욕을 푸는 취미는 없어. 무엇보다 이쪽이 방어라는 게 마음에 안 들더군.”
“루니아 씨는 S냐 M이냐 치면 명백한 S죠.”
“원한다면 네 환상을 채워줄 수 있다만?”
“하하··· 거절할게요. 제 취향은 지극히 노말이라.”
하지만 본디지 차림을 한 루니아는··· 후~ 눈호강은 확실히 하겠네. 뭐, 지금도 하고 있지만.
“그보다 루니아 씨. 오늘 드레스는 너무··· 노출이 많지 않나요?”
루니아의 차림은 파격적이다. 가슴을 과감하게 드러낸 럭셔리 드레스 차림에 스웨이드 샌들 말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덕분에 깨끗한 흰 피부의 살결이 어깨부터 발끝까지 가감 없이 노출된, 어지간히도 자기 몸매에 자신이 없으면 소화할 수 없는 복장이다.
“동부는 더운 지역이 많아 파티 드레스라고 하면 이런 분위기다. 뭐, 평소에도 이것보다 조금 더 걸치는 수준 아닌가.”
“자매 옷만 봐도 그렇긴 합니다만··· 이런 건 저랑 둘이서만 있을 때, 보여주시죠. 남들 보여주기 아깝네요.”
“그렇다면야.”
루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드레스 차림의 오검 누님들이 접근했다.
한 명은 곰방대를, 다른 한 명은 두툼한 검은여우털 목도리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걸친다.
아! 하고 주변의 남성들이 탄식 섞인 소리를 흘렸지만. 하여간 남자들이란, 우린 자연스럽게 테라스의 프라이빗 공간으로 향했다.
“준비성이··· 있으시네요.”
“뭘~ 내 피앙세가 이만한 여자를 파트너로 데려왔다, 자랑 좀 하라고 힘 좀 썼지.”
“아하하······.”
“아덴의 사위가 되려거든 어디서든 당당해야 할 것이야.”
으음··· 아리샤도 벅찬데, 루니아까지 이렇게 나오다니.
“거짓약혼 아니었나요?”
“이런, 넌 그렇게 생각했었나? 이거 상처로군.”
루니아는 내 목에 양손을 두르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근접한 그녀의 맨살이 또렷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여동생과는 어디까지 했지?”
“마, 말했나요?”
“그 푼수가 말했겠나? 표정으로 다 드러났지만.”
“으음······.”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리샤의 고백과 끈적하고 농밀했던 키스. 그 팔푼이 같은 아리샤가 이렇게나 과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말해라, 어서.”
“키, 키스요.”
“자세히 말해봐라.”
코앞까지 얼굴을 맞대고 압박해오는 루니아의 심문에 솔직하게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 자백을 듣더니 살짝 놀란 듯하면서도 호쾌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하하, 그 푼수가 꽤나 과감하게 나섰군. 그래, 그 정도는 돼야 아덴의 후계자 후보라 할 수 있겠지.”
“저··· 엄밀히 말하면 루니아 씨하고 경쟁자인 셈 아니에요?”
내 입으로 말한 거지만, 루니아의 이 반응은 좀 이상하지 않나?
“미녀 자매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것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아무리 봐도 피로 피를 씻는 치정극 소개글입니다만······.”
“치정극이라 하면 그뿐이겠나. 널 사모하는 여아들이 내 여동생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알고··· 있으셨나요?”
“그걸 모르면 등신이다.”
네, 제가 등신입니다······.
“뭐, 그리 부담스러워하지 마라. 응당 영웅인 사내라면 여러 여자를 취하고 만족시킬 줄 알아야 함이야.”
“그, 그 말은?”
“이왕 영웅의 길을 걷는다면, 눈앞에 보이는 미녀는 모두 차지하는 호쾌함을 지녀라.”
“그쪽 자매는 도대체 뭐가 문제예요?! 머리에 진짜 무슨 이상한 유전자 있는 거 아니에요?!”
보통 남편보고 다른 부인 들이라는 말이 이리 쉬이 나오나? 자매가 어떻게 된 연애관이지?
“그래도 여동생이 나보다 앞섰다는 건 부아가 치미는군. 동생의 것은 나의 것. 내겐 동생에게서 빼앗을 정당한 권리와 의무가 있지.”
그러더니 갑자기 내 허리를 끌어안고 턱을 붙잡는 루니아.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며 매력적인 입꼬리를 올린다.
“네가 여동생과 무얼 하든, 적어도 나와 비슷한 급까지는 해야 할 거야.”
“누, 누님?”
그녀의 입술이 다가온다.
루니아와의 시간은 확실히 여동생보단 농염하고 끈적했다.
·········
······
···
“크, 크흠···!”
루니아가 왕국군의 장군과 비즈니스 토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적당히 연회장의 음식을 골라먹었다.
연회장의 음식들은 대체로 가벼운 음식들이 많아서 그런지, 루니아의 맛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아······.”
화와 란에 이어 아리샤. 그리고 루니아까지··· 마리에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개새끼인 구도가 완성돼가는 거 같은데······.
내가 이렇게 인기가 좋았다니··· 왜 지구에서는 이런 연이 없었을까?
영희 누나나 한별이나, 세영이나, 철호, 상우, 미샤, 후지와라하고 놀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다들 쏠로라 그런지 같이 우정여행도 다니고 그랬지. 갑자기 상우 그놈하고 홋카이도 온천여행 갔을 때가 생각나는군. 거기 경치가 끝내줬는데.
겨울축제 한번 더 가고 싶다. 게이바만 빼고 다 좋았어. 왜 그런 델 ‘실수로’ 간 걸까?
‘에휴··· 다 끝나면 온천여행이나 갈까.’
그때처럼 우정여행은 이제 못 가겠지만, 가디언즈 단원들하고 다 같이 갈 여유가 있으면 좋겠네.
그렇게 지구 시절의 추억을 상기하는데, 연회장에 낯익은 단원이 보였다.
단정한 차림이었으나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소년. 제르맹 루터. 구교의 스파이다.
“여어~ 제르맹.”
“어, 어? 코린 선배님?”
“아카데미도 아닌데, 대충 형이라고 불러. 아, 형아는 안 된다.”
“으음··· 형.”
“연회는 즐기고 있어?”
“그냥저냥요.”
구교··· 제루엠 교단이 마탑과 더러운 거래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걸 안 뒤로 제르맹은 항상 고민이 많은 눈치였다.
“제가 이런 곳에 올 자격이 있나 싶어요. 토벌에서도 전 한 게 없는데.”
제르맹도 가디언즈의 단원인만큼, 마탑 토벌에 참전했었다.
물론 이 녀석은 제루엠 교단의 명령으로 우리 가디언즈의 움직임이나 왕국군의 정보를 마탑에 은밀히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겠지.
“뭐, 전쟁이란 게 항상 주역이 될 수 없는 거 아니겠냐. 넌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도 활약할 수 있을 거야.”
“······.”
제르맹의 복잡한 신경이 표정과 얼굴로 드러난다. 아마, 지금도 날 속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거려나.
어렸을 때부터 종교에 세뇌당한 녀석이니 쉽게 가치관을 바꿀 수도 없겠지.
뭐, 녀석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그때까진 적당히 이용할 생각이다.
“야 이 케이크 먹어봐. 왕궁 파티셰 실력이 끝내주더라.”
“다, 단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여긴 단것들이 너무 많네요.”
비밀로 하고 있긴 해도, 교단의 사제 출신인 녀석에겐 상류사회의 사치스러운 음식들이 안 맞는 모양이다.
“여기 음식이 안 맞으면 따로 요청해도 돼. 복도 넘어서 가면 따로 식사를 위한 식당이 있거든. 뷔페 형식이야.”
“어··· 그런 게 있었어요?”
나도 전 회차에서 미르하고 같이 가서 알았던 거다. 처음 오는 사람들한테 친절한 동네가 아니니까.
“야, 가자. 밥이나 먹고 오자고.”
파트너도 없이 와서 할 것도 없을 텐데, 나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나.
* * * *
어느덧 축하 연회도 끝나고 왕도에서의 볼일도 끝나가던 차.
슬슬 그녀를 만나야 할 때였다.
어둑한 심야. 왕도 근교 왕립공원.
정확히는 화란과의 데이트 후 피날레를 장식했던 동굴에 나와 스승님. 그리고 조제핀 여사가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입니다.”
조제핀 여사는 가타부타 없이 반대의견을 비쳤다.
“자자, 클라라. 코린이 정한 일이잖니. 다 생각이 있을 거란다.”
그런 조제핀 여사를 달래는 에린. 오히려 반대해야 할 입장인데, 스승님이 그러시면 어떡하나 싶다. 나한테 너무 약하신 거 아니야?
“에린. 당신은 코린 학생에게 너무 유약합니다.”
거봐, 조제핀 여사도 그렇게 말하잖아.
뭐, 어쨌든 두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내 계획은 실행할 수 없다. 이곳에 온 이상 조제핀 여사도 반쯤 동의한 거지만.
“솔직히, 이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저도 예상 못하겠어요.”
“······너무 무책임한 말이군요. 에린이 오랫동안 교단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다난의 신앙이 다시금 퍼질 때의 혼란을 막기 위해섭니다. 이미 퍼질대로 퍼진 교단의 신앙이 부정된다면 그 여파는 예상할 수 없어요.”
“적어도 세계가 멸망하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구교야 예나 지금이나 꼴통 집단이지만, 신교까지 뻗은 줄기는 나중에 크나큰 위협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증명할 증거가 대체······.”
“클라라.”
조제핀 여사를 제지하는 스승님. 조제핀 여사는 내가 미래를 겪었음을 모른다. 하지만 에린 스승님은 내 회귀를 알고 있기에 날 100% 신뢰했다.
“정의란 언제나 최선을 고르지 못할 때가 많아. 때론 최악보단 차악을 선택해야 하지. 우리가 마녀혁명에서 숱한 성직자들과 마법사들을 죽였을 때처럼.”
“······.”
“솔직히 나도 아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는 예상하지 못해. 하지만 타테스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 우린 선택해야겠지.”
다시 한번 지지해주는 스승님의 발언. 그때,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이사장님? 조제핀 교수님?”
로브를 뒤집어쓰고 홀로 은밀히 방문한 이는 에스텔이었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스승님과 조제핀 여사가 있다는 것에 놀란 눈치다. 하지만 이내 평소의 여유를 되찾고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다.
“흐음~ 동생하고 단둘이 데이트라고 생각했는데, 누나 실망하겠어.”
“아 쫌. 진지하게 합시다, 진지하게.”
“누나는 항상 진지해~”
이 사람은 항상 나한테서 우위를 다지며 놀리려고 한다. 그 점이 얄미우면서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보다 내게 뭔가를 보여줄 생각이라며? 신임 이사장님과 조제핀 교수님이 관련된 거야?”
“관련된 정도가 아니라 핵심이죠. 이 두 사람의 동의가 없으면 힘들어요.”
“흐음······.”
에스텔 하닷사 엘 라스. 신교단의 성녀. 누구보다도 교단의 ‘주님’을 섬기는 신의 아이.
나는 오늘 그녀에게 신앙의 정체를 공개하고자 한다.
“스승님, 여사님. 부탁드립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요. 에린, 에스텔 학생. 제 앞으로 오십시오.”
조제핀의 말에 그녀의 앞에 서는 두 사람. 나는 멀찍이 떨어져 이를 지켜봤다.
“공간이동인가요?”
“네, 하지만··· 현세하고는 좀 다를 겁니다.”
“그게 무슨···.”
“가보면 알 거란다.”
에스텔의 의문과 함께 공간이 열린다. 에린이 허락하고 조제핀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낙원 티르 나 노그의 편린.
낙원의 보물섬 마그 멜. 신들의 잔류사념이 남은 그곳에 에스텔을 보낼 생각이다.
────
세 사람이 이동했고, 나는 그녀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별무리를 관찰했다.
그녀는 진짜 신들을 보며 어떤 결론을 내릴까?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블 파티가 아닌 조력자 NPC로만 등장했고, 전 회차에서도 어디까지나 교단의 성녀로서만 활동했었기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제 그녀는 마그 멜에서 신화시대의 신들을 마주할 것이며, 진실을 듣게 되겠지. 그곳에는 에스텔의 먼 조상들이 있으니까.
운이 좋다면 다그다에게서 보물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흐르고서야 동굴에 공간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허억···!”
숨을 토해내며 열린 공간 속에서 쓰러지는 에스텔.
“성녀님?”
“코린··· 동생?”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그녀는 큰 충격이라도 받은양 위태롭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고──
“──신이시여.”
그 어떤 때보다도 신을 갈구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