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9
업보(2)
정규수업이 끝나고 약간의 방과 후 활동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은 기숙사로의 귀로에 오른다.
각 학부 별이나 남녀로 기숙사를 나누고 있지만, 극소수의 학생들만을 위해 세워진 특별 기숙사가 가장 언덕 위에 있다.
산의 기운을 받는다는 컨셉인 탓에, 높은 곳에 있을수록 언덕길을 오르기에 그닥 선호되지 않는 입지.
그렇기에 다른 기숙사들과는 별개로 구별되는 특별 기숙사.
처음에는 머나먼 동방에서 사고를 치고 온 위험인물인 화란을 격리하기 위함이 시작이었으나 차츰 입주민들이 늘어난 2층 주택.
최근 정원정리와 대청소가 끝난 깔끔한 썬룸에서 세 사람··· 마리에, 화란, 렌은 침묵 속에서 다가올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
“······.”
사각사각.
연필의 흑연이 갈리는 소리만이 썬룸에 울린다.
“······.”
“······.”
사각사각.
‘수, 숨 막혀······.’
시험공부를 위해 썬룸을 찾은 렌은 이 끔찍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나갈 명분이 보이질 않는다.
발단은 가을의 여인인가 뭔가 하는 축제에 나가는 것이었다던가.
화란과 마리에 모두 그 대회에 나가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한 남자를 둔··· 그 묘한 경쟁의식이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침묵을 강요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말 걸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각자 방에서 공부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그건 또 싫은 모양이다. 아마 물러서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먼저 온 건 렌인데, 왜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공부해야 할까?
‘론··· 얼른 와서 나 좀 데려가···!’
애타게 제 쌍둥이 남동생을 찾았지만, 녀석은 썬룸 문 앞에 서성이며 차마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데려가라고···!’
‘드,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아. 내 직감이 말리고 있어······.’
‘저게···!’
요즘 저보다 먼저 성장했다고 말을 들어 처먹질 않는다.
유들한 성미 때문에 식당주인과 싸우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깡패들에게서 보호해주던 누이의 은혜를 잊었더냐!
그러거나 말거나 스윽스윽 하고 교과서에 그어지는 밑줄들. 렌은 식인 맹수들과 동거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파란의 징조를 경계했다.
-뻐꾹! 뻐꾹!
어느 순간, 침묵을 깨는 뻐꾸기 소리. 정오 12시, 저녁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식사시간을 알리는 뻐꾸기 시계가 보금자리에서 튀어나와 흘리는 노랫소리가 너무나 반갑다.
“······다들 없는 모양이네요.”
공부를 내팽겨친 화를 대신해 복습을 하던 란이 말했다.
평소라면 조제핀 기숙사감을 비롯해 입주민들 중 누군가가 식당으로 불러 모을 때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 저녁은 다들 외유인 모양이다.
“공부는 내가 했으니까. 응. 오늘은 화가 해.”
그렇게 말하며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있던 몸에 활기를 넣는 란. 곧 머리카락 색이 번지며 붉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밥. 내가 할게.”
“······화가?”
마리에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슬쩍 제안을 했다.
“도와줄게.”
“아니. 요즘 연습 중. 그러니까. 나 혼자.”
화는 마리에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썬룸을 나선다. 마리에가 손짓으로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부엌을 향해 걷고 있다.
“으음······.”
부러 부엌까지 걸음을 옮겨 나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화가 요리라······.”
그것과는 별개로 란도 아니고 화가 하는 요리가 궁금하긴 했고.
“렌은 공부 다 했니?”
“아, 네···! 아, 아뇨! 아직······.”
“그래··· 그럼 식사가 다 될 때까지 공부 봐줄게.”
“괘, 괜찮은데······.”
“론도 이리 들어와.”
진작 론의 존재도 눈치챈 것인지, 물빛머리 소녀는 두 황금색 늑대들을 눈빛만으로 압도하여 자리에 앉혔다.
“있잖아.”
“······말씀하세요, 마리에 언니.”
평소 나긋나긋하고 사근사근한 마리에다. 렌은 그런 마리에가 싫지 않았으나 그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법이다.
“코린이 누구한테 리본을 줄까?”
아아··· 이게 이렇게 되나.
“······글쎄요.”
“흐음······.”
사실 마리에는 오늘 내내 저기압이었다.
최근 대두대기 시작한 에스텔의 과도한 스킨십. 코린에 대한 노골적인 호의와 거리낌 없는 태도는 코린의 유일한 ‘누나’를 점하고 있던 마리에에게 위기감을 가져왔다.
심지어 오늘은 ‘가을의 여인’에 참가하겠노라고 선포하더니 당연하다는 듯 코린에게 리본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코린의 ‘선배이자 누나’로서 이 당치도 않은 횡포에 당당히 맞불을 놓았다.
······그리고 뭔가 잘못된 걸 느낀 건 화란과 아리샤까지 이 대결에 참전하면서부터다.
하나도 버거운데 셋으로 늘었다.
문제는 없다. 그래, 문제는 없어. 코린은 날 선택할 거야. 마리에는 의심하기 싫었다.
그녀가 그에게 쏟은 헌신. 사랑. 친애는··· 분명 다른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 나겠지? 나일 거야, 그렇지?”
“저, 저한테 물어보셔도······.”
불안하다.
무려 네 명이 아닌가? 확률적으로는 25%.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지?
분명.
분명 실망할 것이다.
어쩌면 울지도 모른다.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되었음을 자각하면서도 내심 나를 선택해주길 바라는 자신이 있다.
“으으···.”
애초에 코린도 코린이다.
뭐만 했다하면 주변에 여자가 늘어있다.
마리에는 단순히 코린이 어울리는 여자들에 대해선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 자신은 전혀 흑심이 없으니까.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순수한 인간관계를 구사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코린에 대한 연모를 저 못지않게 품고 있는 소녀들이 있었다.
화란은··· 특히 란은 마리에의 가장 오래된 숙적이다. 그 사랑의 시작은 1년여를 계속하고 있었으니.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그 당돌하고 맹랑한 소녀의 발언을 기억한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그녀야말로 최대의 적이다.
‘안 질 거야.’
그래, 자신은 마리에 듀나레프다.
가지고 싶은 건 뭐든 가질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라 할지라도.
결코 동방의 외지인에게 코린을 빼앗길 순 없는 것이다.
‘정신 차리자, 마리에 듀나레프!’
마리에가 재차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썬룸의 입구에서 화가 웨건을 밀고 들어왔다.
“다 했어.”
그녀가 가져온 요리는······.
“응?”
“으윽···? 콜록콜록!”
늑대남매가 냄새만 맡고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검붉은, 지금도 부글부글 팔팔 끓고 있는 무언가.
“어? 이, 건···?”
란의 요리실력은 객관적으로 좋은 편이다.
기숙사에 입주할 때부터 꾸준히 연습해왔고 애정을 듬뿍 담아 정성껏 요리하니 무엇이든 맛이 좋을 수밖에.
반면 화는?
그녀는 그런 섬세한 작업 따위는 귀찮아했다.
그러기에 기대 따윈 하지 않았다. 기대는 하지 않았고··· 적당히 식재료를 버리지만 않을 정도면 마리에도 괜찮다 싶었는데······.
“뭐야, 이게···?”
그 마리에마저도, 말문을 막히게 하는 무언가였다.
“우동?”
의문부호를 쓰면 안 되는 곳에 의문부호를 쓰고 있다.
화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척척, 테이블에 요리를 옮긴다.
우동.
그래 김치우동. 학식으로도 많이 나온다.
동방의 김치와 우동을 한데 섞은 칼칼한 국수요리. 꽤 인기가 좋은 편이고, 동방 문화권인 화가 선택할 법한 요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우동은, 이렇게 활화산처럼 요란하게 끓지 않는다.
국물이 질척질척하게 국자에 들러붙지도 않는다. 용암을 퍼올린 것처럼 붉은색도 아니다.
우동 국수마저도 국수라기보단 지저의 용암에서 발버둥치는 촉수 비스무리한 것 같다.
“그··· 우동, 이지?”
“······응. 코린이, 볶음면 좋아한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우동도, 그렇다고 국물 없는 볶음면도 아니다.
그 중간에 놓인···, 우동이라는 카테고리를 모욕하는 무언가다.
“먹어.”
이건 설마, 경쟁자를 독살하려는 시도인가.
마리에는 집어 달달 떨리는 손으로 볶음우동이라는 요리의 표면에 포크를 찍었다.
-치이이익!
“히익···!”
이건 아니다. 결코 아니다. 우동에 닿아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결코 아니었다.
“으으엑······.”
“괴, 괴로워··· 렌.”
후각에 민감한 늑대남매는 우동의 표면에서 찌릿찌릿 올라오는 스코빌지수에 숨을 못 쉬고 있었다.
“코린이. 좋아해.”
“코린이?!”
화의 발언은 거짓이 아니었다.
분명 코린은 한 젓가락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치울 정도로 이 요리를 애정했다.
다만 그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닌, ‘대한의 혼’이 가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으으··· 그, 그래?”
코린이 좋아한다면··· 마리에는 불구덩이에 짚을 이고서라도 뛰어들 수 있다.
아아, 사랑이란 이리도 찬연한 것이어라.
잔뜩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코린과 같은 요리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에 요리를 입으로 옮긴다. 그리고──
──매워어어어어!!
찌를듯한 비명이 기숙사에 울려 퍼졌다.
“······잘못 한 걸까?”
‘으음··· 코린 오빠가 말한 10,000 SHU 라는 거. 정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야?’
화는 제가 만든 요리를 집어먹으면서 홧홧한 입가를 낼름 핥았다.
* * * *
그날 저녁, 나는 친구들과 함께 교내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좆됐다.”
“어, 넌 좆됐어.”
“내가 말했잖아. 감당되겠냐고.”
가을의 여인에 참가하는 건 에스텔, 마리에, 아리샤, 화란까지 무려 넷.
무려 네 명이다.
네 명이 내게 리본을 건넬 것을 은연중에 압박해왔다.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있다면, 난 한 명이라는 거다.
“어쩌긴 어째. 누구 한 명 골라서 줘야지.”
“그러면 안 돼. 남은 애들은 실망할 거라고······.”
“구할 수 있는 게 한 명이면 한 명만 선택해야지.”
“놓치지 않고 모두 구할 거라고!”
“응 불가능이야.”
예거와 라크는 꼴 좋다는 듯 뺨을 씰룩거리고 있다. 이 의리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바, 방법이 있을······.”
그때였다. 대로 너머에서 스승님이 사뿐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코린~!”
반갑게 다가오는 스승님. 그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평소의 안부를 물었다.
“밥은 먹었니? 몸 상태는 어떻니? 요즘 시험기간이라 많이 힘들지?”
“힘들긴요.”
“클라라가 보양식을 준비해왔다고 하니, 같이 먹을··· 어머, 예거 학생. 라크 학생.”
한창 나에게 집중하다 두 사람을 눈치챘는지 두 사람의 어깨를 토닥이는 스승님.
“두 사람 다 여름방학 전에 승급했었지? 성취가 대단하더구나. 정진하렴.”
“아, 예··· 가, 감사합니다!”
“꿀꺽···! 감사, 합니다.”
예거와 라크는 스승님의 미모에 정신이 팔린 듯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스승님은 곧장 내게로 고개를 돌렸고, 목덜미에 반짝이는 금색 줄이 보인다.
“목걸이 하셨네요?”
“아? 응··· 누가 준 건데, 당연히 해야지.”
“예뻐요. 진작 그렇게 꾸미고 다니시지.”
“으읏··· 정말이지, 우리 제자님은······.”
스승님은 싱긋 미소 짓다가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아··· 그게 말이지. 이번에 교무회의에서 좀 난처한 일이 있었단다.”
“예? 그게 무슨.”
설마 벌써 전조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전 회차와 전혀 달라진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게···.”
“말씀해주세요. 뭐든지 도울게요.”
“어, 엇··· 그, 렇게 말해주니 든든하구나. 실은··· 내가 이번에 가을의 여인에 참가하게 되었단다.”
“······예?”
“매년 가을의 여인에 교직원이 한 명은 나가는 게 전통이었거든. 다들 나가본 경험이 있거나 거부하는 통에··· 크흠! 참, 이 나이에 주책이기도 하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스승님을 보며 나는 점점 안색이 새파래져 갔다.
“맞다, 코린은 어느 행사에 나갈 예정이 있니? 우리 제자님이야 어딜 가도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아이지만, 리본을 따면 누굴 줄지 궁금하긴 하구나.”
어어······.
“아! 나한테 달라는 건 아니고··· 아하하, 이 나이에 가을의 여인이 될 정도로 주책이진 않아. 이 스승님은 그냥 딱 한 사람의 리본만 있으면 된단다.”
스승님은 파리해진 내 안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방실방실 웃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같이 먹자꾸나! 오늘도 면학에 힘쓰렴!”
자리를 떠난 스승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나를 보며 예거와 라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괜찮아, 임마. 네 명이나 다섯 명이나.”
“야아~ 볼만 하겠다. 누구한테 줄 거냐?”
마리에, 아리샤, 화란, 에스텔, 에린 스승님까지······.
나는 어느 한 명도 고를 수 없다. 내가 어느 한 명을 딱 골라 리본을 선물한다면··· 그건 다른 이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네.”
라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운을 띄우자 예거가 받아넘겼다.
“여기서 방법이 있냐?”
“자살. 그것 말곤 방법이 없어.”
“오. 추천추천. 자살추천.”
도움 안 되는 친구놈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섯 명 전부에게 리본을 선물한다.”
“뭣.”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
이론적으론.
“가을 수확제에서 열리는 대회 다섯 개에 참가해 다섯 개 모두에서 우승하면 돼. 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
“”············힘내.””
어째 두 사람의 시선이 동정적이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