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0
업보(3)
최근의 들뜬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가령 시내의 포장마차 분식집. 오뎅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 걸치기 좋은 야외식당에서도 화두에 오른다.
-이번에는 성녀님이 나온대!
-마리에 듀나레프도 나온다던데?
-이번 참가자들 장난 아니야.
화두의 중심은 단연 수확제의 한 인기 행사다.
가을의 여인.
가을 수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회가 호화로운 참가자들로 인해 더욱 불을 지폈다.
“다들 가을 수확제 이야기네요, 코린 씨.”
“그 열기를 기말고사에 쏟아줬으면 한다만. 일단 그쪽이 학생의 본분이라고.”
늦은 토요일 저녁. 아리샤와 코린은 모처럼 야식을 먹으러 온 참이다.
“떡볶이 4인분. 오뎅탕 4인분. 튀김 한 세트 나왔습니다.”
“순대도요.”
“아이고 참. 내장도 드릴까요?”
“아리샤, 내장 먹냐?”
“전 사양할게요.”
“그렇다네요. 간 빼고 나머진 순대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분식 아주머니가 나가고 코린은 슬쩍 눈치를 보다 까딱! 하고 무언가를 마시는 제스처를 취했다.
“술은 안 돼요.”
“한 잔씩만 걸치면 되지 않을까?”
“저 오늘은 기숙사로 안 가고 언니 방에 들어가서··· 술 마시면 혼나요. 애초에 저희 아직 미성년자거든요?”
“하아~”
정석적인 아리샤의 질타에 낙담하는 코린.
분명 그가 미성년자이긴 해도, 실제로 겪어온 인생을 치자면 아리샤보다 족히 두 배는 넘는 아저씨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금주령은 참기 힘든 것이었다.
“오뎅탕에 소주가 없다니~”
그는 테이블 위에 오른 질냄비를 내려다봤다.
보글보글 따뜻한 김을 내는 질냄비 오뎅탕은 K식이 아닌 J식이다. 묘하게 재현이 잘 되어 있다.
“요즘은 많이 느셨네요. 아, 영역 쪽이요. 그것 말고는 제가 지적할 주제는 못 되니까요.”
“겸손이 과하다. 요즘은 너한테 연전연패잖아.”
포크를 질냄비에 옮기는 코린. 실곤약을 그릇에 옮기고 국자로 국물을 끼얹는다.
“그래도 진짜 실전이 되면 제가 지겠죠. 뭔가··· 어떻게 해도 코린 씨를 이기는 상상이 안 가요.”
“글쎄.”
코린은 국물을 홀짝이며 훈련장에서 있었던 대련을 떠올렸다.
최근의 아리샤는 물오른 듯 기세가 날카롭다.
검귀와의 결전 이후가 결정적. 그때, 보여준 천검(天劍)은 아직까지도 완벽한 재현이 불가했지만, 생사결은 그녀의 기량 그 자체를 증폭시켰다.
“꾸준히 노력할 걸 그랬어요. 괜히 겁먹어서 검을 피했으니까 이 꼴이죠.”
“경험의 양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밀도지.”
자기 자신이 그 증거다.
코린이 창을 쥔 건 전 회차의 3년. 이번 회차의 2년이다.
평생을 단련해온 다른 기사들에 비해 그 경험의 양은 극도로 적다.
하지만 그가 단순 창의 기량만으로 검호라 불리는 루니아에 필적하는 건 그가 가진 경험의 질이 한없이 농밀하기 때문.
숱한 죽음의 사선을 넘어 승리하고, 이 세상의 최상위 강자들과 대결해왔기에.
그의 기량 자체는 회귀하기 전에 완성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으··· 할아버지라도 베고 와야하나.”
오뎅 하나를 베어 먹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패륜 발언을 하는 아리샤. 의외로 진심인 표정이다.
“그 영감, 취급이 박하구만.”
“그럴 만하니까요.”
검제 가란드 아덴.
작중에서는 아리샤나 루니아의 강화를 위한 NPC로 등장한다.
그 자신도 최종전에 기여하는 바는 적지 않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국지전의 한편.
“차라리 할아버지를 그 타테스라는 무시무시한 아저씨와 붙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 아저씨··· 엄청 강하지만, 할아버지도 만만찮으니까요.”
“좋은 승부가 되겠지.”
게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시추에이션이다. 실제로 전 회차에서 그렇게 써먹어 보려 했지만······.
“그 영감님은 그 영감님대로 해야할 일이 있거든.”
그가 주역이 아닌 이유. 검제라는 걸물이 최종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개연성 있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가요.”
내 부족한 설명에도 아리샤는 그다지 반론해오지 않았다. 마리에나 에스텔과 다르게 아리샤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굳이 끼어들어 흐트러뜨리지 않는··· 딱 필요한 것만 듣는 주의다.
“코린 씨.”
호호, 점잔을 떨며 오뎅을 불더니 내게 건네는 아리샤.
“아앙~”
“······아니, 이건 좀.”
“빨리요. 저 팔 아파요.”
“크흠···!”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이나 할법한 닭살스러운 행위. 하지만 죄인은 그저 주는 대로 받아먹을 뿐이다.
“리본이요.”
“으음···.”
얹힐 뻔했다. 여기서 그 화제를 꺼내는 건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사장님까지 다섯이나 되던데.”
“크흐흠···!”
아리샤는 별다른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선택받길 바라는 가운데, 아리샤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정확히는 신청서를 내고 난 뒤에 깨달은 것이다.
“후···.”
“아리샤?”
아리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코린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제 마음을 재차 고백한다.
짖궃은 장난이었다.
“제가 코린 씨 좋아하는 거 아시죠?”
“어, 어어··· 아, 알지.”
아리샤의 미묘한 장난기를 코린은 깨닫지 못했다. 마음속 혼란에 여유를 빼앗기는 코린을 보며 아리샤는 묘한 만족감을 얻었다.
“좋아해요. 진심으로요. 제가 정말 코린 씨를 좋아하거든요.”
“고, 고마워.”
“그러니까······.”
날 선택해주세요. 나만을 선택해주세요.
그 말만큼은 하지 않는다. 상대를 곤란하게 할 것이다. 자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저한텐 안 주셔도 돼요.”
“어?”
아리샤는 속마음과 모순된 대답을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한다.
그 감정만큼은 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선택받지 못했을 때가 두렵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포기한다.
경쟁을 선택하지 않고 양보의 미덕을 보인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떠밀린 자존감의 발로일지라도.
양보했다, 라는 결과만을 취하고 승부에서 한 발자국 떨어지는 것이다.
“······아니.”
코린은 그 부분에서는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너한테도 황금 리본을 줄 거야.”
“어··· 네?”
“비겁하고 치사하다고 생각하지만··· 난 모두에게 황금 리본을 줄 거야.”
“하,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다섯 개나 되는 행사에서 우승해야 하는데요?”
“우유부단한 놈이 어물쩡저물쩡 어장관리하는 꼬라진데 그 고생이라도 해야지.”
“저, 저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그만.”
아리샤의 말을 단호하게 저지하는 코린. 한없이 진심인 그의 시선을 마주치자 제 안에 있던 자존감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넌 자격 있어.”
“흣···.”
아리샤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 * * *
늦은 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가디언즈 사무소로 다시 돌아왔다.
마리에가 거창하게 세워둔 총 면적 3천 평의 거대부지에는 온갖 편의시설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가령 숙박시설. 상시 주둔하는 워스카이 용병단과 아덴 검각의 검계들만 수백 명. 여기에 와이번과 흐레스벨그의 담당으로 고용된 조련사와 사육사들까지.
어지간한 대기업 수준의 직원들이 고용된 셈이다.
“오셨수, 보스.”
“식사 맛있게 드셨습니까, 5검각주님.”
입구에서부터 인사를 하는 워스카이 용병단 경비병과 아덴 검각의 검객.
가디언을 제외하면 고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정예전력인만큼, 그들이 거주하는 이상 사무소의 경비는 완벽하다.
“맞다, 보스. 손님이 오셨수.”
“손님? 누구?”
“깜짝 놀래키고 싶으니까 말하지 말라던데.”
“······.”
“······.”
코린과 아리샤는 번갈아 시선을 마주하더니 제 추측들을 확신했다.
“무슨 일일까요?”
“루니아 씨는··· 음, 일찍 자는 편이지.”
지원군이 없다. 코린은 별수 없이 내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향하던 중. 등 뒤에서 눈을 가리는 부드러운 손바닥.
“누구~게?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와 실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닿는다.
“에스···.”
“정답은 짜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에스텔 누나예요!”
“거 매번 참신하게 주책이시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코린. 아리샤는 목청을 가다듬곤 최대한의 예의를 담아 인사했다.
“서, 성녀 전하를 뵙사옵니다아···.”
“아리샤 후배님은 매번 볼 때마다 뻣뻣하네. 편하게 대해도 된다니까?”
“하, 하해와 같은 말씀은 감복? 스러우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뭔가 이상하게 짬뽕 됐다? 좀 편하게 해.”
“으으······.”
아리샤는 코린 씨니까 되는 거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이 나라는 어찌됐건 계급제 사회이며 에스텔은 어쩌면 왕보다도 높은 사람이다.
아리샤 본인은 신앙심도 뭣도 없고, 다난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서는 더욱 그랬지만, 그렇다 해도 어려서부터 하늘처럼 떠받들던 왕족을 편하게 대하기 어렵다.
“자자, 억지로 편하게 대할 필요는 없어. 난 우리 코린하고만 친하게 지내면 되니까~”
그러면서 스스럼없이 코린을 껴안는 에스텔. 코린이 질색했지만, 에스텔은 배시시 웃으면서 최대한 피부를 밀착했다.
“아쫌···!”
“왜에? 부끄러워서 그래? 우리 사이에 뭘~”
“······.”
아리샤는 에스텔이 코린에게 치근덕거리는 모습을 불편한 기색으로 응시했다.
우리 코린.
그 말이 영 눈에 밟힌다.
어쩌다가 왕녀 전하까지 코린의 주변을 맴돌게 된 걸까?
‘복학생이라고 하셨지.’
성녀의 바쁜 업무 때문에 사실상의 자퇴상태라 들었다. 올해로 에스텔의 나이가 스물둘. 즉──
“코린 씨보다 네 살 더 많구나······.”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
“······.”
기습적인 충격발언. 코린과 에스텔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너, 너너···! 나 지금 나이 많다고 꼽주는 거야?!”
“예? 예? 아앗···!”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새파래지는 아리샤.
“네, 네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보거든?! 완전 창창하거든? 이이익···!”
“아, 아뇨! 아니에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괜찮아요! 저희 언니도 코린 씨하고 열 살 차이인 걸요!”
“······호오. 우리 동생은 언니를 늙어서 주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군?”
“······!”
경직하는 아리샤. 굳은 것처럼 빳빳하게 돌아가는 그녀의 시야 안에 루니아 아덴─28세─가 있다.
“어, 언니··· 그,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됐다. 그나저나 토너먼트에 나간다지? 특별단련을 시켜주지.”
그러곤 홱! 하고 돌아서는 루니아. 아리샤는 울상을 지으며 언니이~ 그게 아니에요오! 하고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
반면 에스텔은 나이 공격을 당한 것이 아직도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어깨가 달달 떨린다.
“으···.”
고개를 돌린 그녀는 답지 않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 동생도 나이 많은 누나는··· 싫어?”
“어··· 딱히요? 실제 나이보다는 외견을 중시하는지라.”
그 본인도 전생을 더하면 사십 대 아저씨다. 나이를 논하기엔 양심이 있다.
“그보다 좀 자제해주시면 안 돼요? 뭐 걸핏하면 밀착하니까 좀 부담스럽거든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애정표현하는 게 뭐 어때서! 그리고 동생도 싫지는 않잖아!”
실로 위풍당당 자신만만한 태도다.
“남자애가 나 같은 미인이 들이대는데 싫어할 리가 없잖아?”
하긴 객관적으로도 그랬다. 사실 코린의 주관적으로도 싫지는 않았다.
“그렇긴 한데··· 그, 남들 볼 때는 자제해달라는 거죠. 요즘 소문이 어떻게 나는지 아세요?”
“나도 신문 봤어.”
“신문에도 나왔어?!”
금시초문에 경악하는 코린. 단순히 교내에서 떠들고 다니는 수준이 아니었단 말인가!
“뭐, 나 다 시집갔으니까 코린 동생이 날 책임지면 되지~”
에스텔은 키득거리면서 공연히 미소를 지었다. 발그레해진 양 볼과 활짝 편 표정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혹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리라.
“끄응··· 그나저나 어쩐 일이에요?”
“미르 소식 알려주러.”
“······말해봐요.”
“뭐, 명목상으로는 피해자란 게 공식입장이니까. 쿠 쉬에 대한 재판 증언을 끝내고 가을 수확제도 왕궁에서 보낼 거 같아.”
“사실상의 휴학이군요.”
“뭐··· 그 녀석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거 같고. 당분간은 내버려 둬야지. 그러는 사이 마운드 관련 행정도 착착 진행되는 중이야.”
코린은 지난 마운드 사태 이후로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미르암을 보며 안도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 정치적인 움직임을 취했다면 마운드와 관련된 사안들은 적어도 내년까지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수인들의 운용 문제에 대해선 어떻죠? 사실 그 녀석들도 죄가 없는 건 아닌지라.”
쿠 쉬가 모든 걸 뒤집어 써서 그렇지, 수인들도 만만찮은 죄인들이었다.
“뭐, 별다른 움직임은 없더라고. 하지만 그들을 사병으로 운용하는 건 말이 많은 모양이지만. 코린 동생한테 집중된 ‘무력’이 위협적이라 보는 모양이야.”
코린은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안보’와 ‘정치’의 문제다.
코린에게는 이미 400명이 넘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마운드가 코린을 요정왕 핀느바라로 추대하면서 그들 또한 코린의 수족으로 해석된 것이다.
위험하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무력이 지나칠 정도로 과잉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코린 로크는 왕실의 의지를 벗어나 반역에 준하는 행위를 저지른 전적이 있으니.
“곤란하네요. 사실 예상된 부분이긴 한데.”
“후후··· 곤란할 게 뭐가 있어.”
에스텔의 미려한 손가락이 코린의 턱을 붙잡았다. 그녀는 매혹적인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성녀가, 누나가 네 편인데.”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인 눈웃음. 쑥스러움을 숨기려는 듯 헛기침을 하는 코린. 그런 코린조차 사랑스럽다는 듯 똑바로 응시하는 에스텔.
“내가 곧 교단이고, 교단은 언제나 네 편이야. 동생은 그걸 좀 이용해도 괜찮아.”
“협력··· 이라고 해두죠.”
“히히, 그러니까 내가 민폐를 좀 끼쳐도 그냥 참아! 이런 것도 안 봐주면 누나 삐칠 거야.”
“크흠! 그래도··· 남들 앞에선 자제해주십쇼.”
“침 발라놓는 의미도 있거든! 뭐, 그 아리샤란 애만 봐도 다들 만만찮네.
“으음······.”
“아는구나? 걔가 동생 좋아하는 거.”
“하아··· 과분한 사랑들을 받고 있죠.”
에스텔은 올라간 입꼬리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굳어진 시선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애. 토너먼트에 나간다고 했던가?”
“아, 네··· 제가 부탁했거든요. 우승상품 좀 얻어달라고.”
“그래? 그거 내가 가져다 줄게.”
“예?”
“토너먼트에 나갈 거야.”
“그럴 필요는··· 애초에 나갈 수는 있고요?”
코린은 에스텔의 전력을 최소로 잡아도 준특급으로 상정했다. 성녀 에스텔은 파티원으로 영입하는 게 아닌 외부 조력자란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렇다고 무력이 부족하진 않기 때문이다.
기도에 의한 현실개찬. 그 만능의 힘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는 안다.
“나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등급평가 같은 거 받은 적 없어. 내가 가디언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 정치적인 의미가 더 컸으니까.”
애초에 2년만 다니고 사실상의 자퇴 상태였던 그녀다. 가디언 아카데미 쪽에서도 바쁜 성녀가 성실하게 졸업하리라 여기진 않았다.
일종의 사회 고위층에 대한 명예 졸업증을 수여하는 정도로 에스텔의 학창생활은 끝났을 예정이었다.
“내가 줄 거야. 그러니까 아리샤 쟤는 필요 없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는 에스텔에게 코린은 의뭉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나이 이야기 했다고 어른스럽지 못한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야···!”
버럭 소리 지르며 퍽퍽! 가슴팍을 두드리는 에스텔. 솜방망이처럼 부드러운 투닥질을 보자면 도저히 에스텔의 무력을 상상할 수 없지만······.
‘위험한데, 이거.’
에스텔의 무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코린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아니, 애초에 축제기간 동안 어떻게 왔다갔다 하려고요?”
“클라라 교수님한테 부탁할 거야! 미리 마커를 잔뜩 만들어놔야지!”
시합 때마다 귀환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제핀 여사라도 초장거리 연속도약은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가능은 하겠지. 에스텔이 조제핀에게 직접 기도로 축복까지 해준다면.’
생각보다 토너먼트가 복잡해질 것 같다.
“하아······.”
공교롭게도 그쪽까지 신경 쓰기엔 그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달 뒤. 5일 동안 있을 수확제의 행사에서 무조건 다섯 개 이상의 황금리본을 얻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부족할 지경이니.
“한다. 해낸다. 해보자···!”
해야만 한다.
그 정도는 해내야만 제 업보를 짊어지는 시늉이라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