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7
가을 수확제(4)
홀리 버스터 세미 오픈 임팩트.
기도로 증폭시킨 신력을 순수한 물리적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기술이다.
기사든 마법사든 에너지를 가공하여 무술과 마법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에스텔의 이것은 단순무식한 에너지의 폭발이다.
무형의 에너지를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물풍선에 가득 담아 단박에 터뜨려 버리는 것과 같다.
단순하고 낭비적이나 장점은 있다.
무술로 치면 무호흡, 마법으로 치면 노 캐스팅.
준비단계를 거치지 않고 터뜨리는 광오한 힘은 상대가 대비할 틈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에고~ 경기장 준비한 사람한테는 미안하게 됐네.”
조금도 미안하지 않으면서 에스텔은 의무적으로 사과한다. 자신은 그래도 된다는 오만함.
“흐흠~ 끝났나?”
전력을 다한 건 아니지만, 경기장을 반파시킬 정도의 위력은 됐다. 이만한 폭압을 맨몸으로 견디는 건 쉽지 않다.
마법사의 배리어 마법이나 타고난 방어력을 지닌 기사라면 모를까.
아리샤 아덴은 전형적인 테크니컬 타입의 검술사. 압도적인 스펙으로 찍어누르면 당해낼 재간이 없을 터. 그러나······.
“······.”
파편화된 경기장에 검을 뽑은 채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검사가 있다. 그 폭압을 얻어맞고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폭발의 순간 검만으로 충격파를 상쇄시킨 건가?’
그런 기예가 가능한가? 아니, 애초에 그 짧은 순간에? 혼자서 ‘시간이라도 정지’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래··· 저게 그 ‘영역’이라는 거지? 재밌네.”
수많은 인력풀을 가진 신교의 전투 성직자들 중에서도 전설이나 과대포장된 낭설 정도로 치부되는 무(武)의 경지.
그것으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한 시대의 정점이었던 가란드 아덴이지만, 그것도 오래된 과거다.
영역이란 건 존재는 알려졌지만, 목격한 이는 협소한··· 하물며 교단의 성직자인 에스텔은 영 인연이 없는 경지다.
“흠?”
에스텔이 감탄하는 사이 아리샤의 신형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횡으로 베어지는 검의 궤적. 그것이──
-깡!
──에스텔의 맨 피부에 가로막힌다.
“무, 무슨 사람한테 이런 소리가······.”
“나는 내 적의 철병거를 막아서는 철벽이 될지니.”
에스텔의 육신이 보이지 않는 광오한 빛으로 뒤덮인다.
끔찍할 정도로 농도 짙은 에너지는 오러나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이다.
코린 로크조차 에린 다누아나 오하드 브레스의 최후 때나 보았을 정도로 선명한 신력.
운드리를 소유함으로써 에스텔은 더더욱 신성과 가까워졌다.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이 자리에선 에린 다누아나 코린 로크 정도. 그나마 모든 것을 꿰뚫는 경계안의 소유자뿐이다.
“서, 성녀님이라더니······.”
“이젠 아니지.”
에스텔이 미소 지으며 곤봉을 들었다. 다그다의 마법의 곤봉. 대지의 신성과는 너무나 궁합이 잘 맞는 무장이다.
“여신이야, 중생아.”
내리치는 곤봉을 검으로 막는 아리샤. 하지만 흡사 산을 막아선 것처럼 거대한 무게가 아리샤를 짓눌렀다.
“으극···?!”
다그다의 마법의 곤봉. 다난 중에서도 장사 여덟이 들어야 간신히 들 수 있다는 가장 무거운 무기.
오직 땅의 기운을 흡수하는 대지의 신성만이 이 곤봉을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일개 인간인 아리샤가 견뎌낼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으극···!”
곤봉에 깔려죽기 전에 빗겨내자 곤봉의 끝이 경기장의 바닥을 두드렸다.
콰앙! 하고 터져나가는 경기장. 아리샤는 직접공격을 피했음에도, 곤봉이 터뜨리는 폭압에 전신을 두들겨 맞았다.
“으윽···!”
“재주가 좋네.”
여유로운 목소리와 달리 그녀의 움직임은 한 줄기 뇌격 같다. 신력으로 강화된 피지컬은 이미 여파만으로 아리샤를 압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후우···!”
무식하게 달려드는 에스텔에 맞서 호흡을 정리해 기술로 대응하는 아리샤.
패도적인 싸움법과는 거리가 먼 아리샤의 대응은 유려하고 세련됐다. 그간 코린과의 숱한 대련에서 상대의 공격을 흘리면서 제 공격만을 가격하는 수엔 도가 튼 덕이다.
에스텔이 곤봉을 휘두르면 그것을 빗겨내거나 회피하며 허벅지, 복근, 가슴, 목을 베어나간다.
거대한 곤봉에 비해 아리샤의 검은 확실히 빨랐고 치명적인 급소를 여러 번 두들겼다.
하지만 에스텔은 찰나의 순간조차 움찔거리지도 않았고, 아리샤의 공격을 터프하게 얻어맞으며 돌진해왔다.
“으···!”
상대는 전투에 익숙하지 않다. 그저 압도적인 피지컬을 믿고 밀고 들어올 뿐이다. 비슷한 사례를 아리샤는 알고 있다.
비천야차 화란.
그 압도적 방어력과 무진장의 오러에서 발산되는 공격력.
진지하게 그이를 적으로 삼으면 이렇게 될까 싶을 정도로 막강한 무력이다.
‘하지만 달라. 한계는 있을 거야.’
화란의 그것은 패시브다. 소모되지 않는 무적의 방어력이다. 반면 에스텔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액티브. 그렇다면──
“촐랑촐랑 도망만 치기는···!”
에스텔의 발에 신력이 집중된다. 발바닥에 집중된 힘이 경기장 바닥을 밟자 반파되었던 경기장이 통째로 들릴 정도로 바닥이 들썩였다.
“······!”
박살난 경기장 바닥과 함께 공중으로 튕겨 올라가는 아리샤. 발 디딜 곳 없는 공중으로 튕겨나간 아리샤를 향해 에스텔이 곤봉을 꽉 쥐었다.
피할 수 없다. 이대로 낙하하면 저 흉악한 곤봉이 아리샤를 두들길 것이다.
────
“어?”
순간 에스텔의 시야에서 아리샤가 사라진다.
가속했다 수준이 아니다. 미리 기도로 강화해둔 육체의 동체시력은 음속조차 잡아낸다.
아니, 애초에 발 디딜만한 곳은 튕겨오른 경기장 바닥 정도가 다인 곳에서 무슨 수로 가속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인지를 한참 벗어난 찰나. 아리샤는 에스텔의 코앞에 있었다.
‘영역?’
영역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보’를 내딛는 극도의 집중력이다. 시간의 순리를 벗어나는 경지.
코린 로크.
에린 다누아.
가란드 아덴.
오하드 브레스.
타테스 발타자르.
궁극에 도달한 이 천외천들은 완벽한 무공의 일보를 걷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아리샤 아덴은?
‘영역은 한 걸음 내의 한정된 거리에서만 발동하는 거 아니었어?’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경지는 그러했다. 하지만 에스텔과 아리샤의 거리는 일보로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삼보. 아리샤 아덴은 세 걸음을 걷는다.
경계를 보는 눈.
누구보다도 검은 공간을 직시하는 타고난 천성. 극한의 수련과 뼈를 깎는 노력을 비웃는 절대적 재능.
그 불합리한 검은 거리의 한계조차 무시하고──
아리샤식(式) 천검(千劍).
무궁(無窮) 영역돌파.
──성녀의 성복 끝자락에 닿는다.
-촤악!
“엑······.”
아리샤의 입가에서 얼빵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온몸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 행한 영역돌파. 그 비장의 일격이 어처구니없게 빗나간 것이다.
“어음··· 이러면 안 되는데.”
허를 찔렸음에도 상대방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기회를 놓쳐버리자 에스텔의 시선이 더없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우물거리며 기도를 끝남쳤고 곤봉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본능적인 생존경고가 울릴 정도로 위험천만한 힘의 집중이었다.
“자, 잠깐만요. 하, 항보──!”
HOLY BURSTER
FULL OPEN IMPACT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신나간 폭압이 경기장과 함께 아리샤를 덮쳤다.
* * * *
“히이잉······.”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선수용 의무실. 아리샤는 우는 소리를 내며 칭얼거렸다.
“거 적당히란 게 없냐.”
“그러니까요.”
“너한테 한 소리거등?”
코린이 정수리를 쥐어박자 아리샤는 전보다 울상을 짓는다.
“환자예요, 환자···!”
“에휴···.”
“······우승상품. 제가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지금 중요해?”
영역과 풀 임팩트. 둘 다 일개 토너먼트에서 정도를 한참 벗어났다. 이벤트성 친선대련에서 죽자고 싸운 두 사람을 보며 코린은 오히려 죄책감을 느꼈다.
“하여간··· 나 때문에 미안하게 됐다.”
두 사람이 경쟁하듯 우승상품을 놓고 붙은 것은 제 탓이었다.
“아니, 이거 뭐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라고.”
그는 그저 우승상품 중 하나인 기념품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별거 아닌 바람임에도 두 소녀가 너무 죽자살자 싸운 셈이다.
“히히, 그러면 저 상처에 호~ 해주세요.”
“······이게.”
한 대 또 쥐어박을까 했지만, 코린은 배시시 웃는 아리샤를 보고 주먹을 거뒀다. 미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다쳐놓고 뭐가 그리 좋은데?”
“그냥요. 그냥··· 코린 씨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게 그냥 좋아요.”
“너도 참··· 중증이다.”
그래도 더 뭐라 말할 수도 없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속도 없는지 헤실헤실 웃는 아리샤.
“코린 씨, 붕대 좀 조여주실래요?”
만세 자세를 취하는 아리샤의 붕대를 감아주었다. 겨드랑이에서부터 가슴팍까지 칭칭 감아주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얼굴을 붉히며 웃고 있다.
“코린 씨~”
깍지 낀 양손이 코린의 목덜미를 감싼다. 아리샤는 방실방실 웃으며 태연하게 그를 구속했다.
“히히히······.”
“뭘 잘했다고 웃어.”
“그냥요.”
여름방학의 고백 이후, 아리샤는 종종 이렇게 스킨십을 해오곤 한다.
손만 닿아도 부끄러워했던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다친 것도 좋네요. 이렇게 가까이서 독점할 수 있으니까. 히히······.”
“방정맞기는. 기지배야, 다치지 말고 평상시에 잘해.”
“히히, 저 많이 노력했어요?”
“알아.”
“알면 뽀뽀······.”
“안 돼.”
“······안 돼요?”
“응. 아직 못 정했어. 미안하니까.”
“치~ 저는 괜찮은데.”
아리샤는 일전에도 말한 바가 있었다. 자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오히려 대가족이 되면 좋지 않겠느냐고.
“너희 자매가 좀 괴팍한 성격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야.”
“코린 씨는 좀 더 뻔뻔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기 싫어서 그래. 고민이 많거든.”
사랑받는다는 것은 이다지도 기쁘고 곤란한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것도,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 것도··· 혹시라도 제가 잘못되어 남겨질 사람들이 걱정되어.
그 누구의 사랑에도 보은해줄 수 없었다. 그것이 못내 미안했다.
“미안한데, 지금은 기다려줘.”
아리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곤 붕대를 꾹꾹 묶는 코린. 풍만한 가슴골이 보이는 바람에 얼굴에 피가 쏠렸다.
“하여간, 요즘 애들이란.”
“애 아니거든요? 곧 성인이거든요?”
“알아 임마.”
코린은 아리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리샤는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똑바로 마주 봤고 코린은 솔직하게 칭찬했다.
“강해졌네.”
“그치요?”
아리샤는 강해졌다.
물론 낮은 자존감과 자신 없는 태도는 여전했지만, 입학 초기 기본기 부족이라며 코린에게 후드려 맞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다아~ 코린 씨 덕이에요.”
아리샤는 어찌 보면 코린과 가장 오래 함께했다.
헌팅 그라운드에서 호된 호통을 들어가며 깨질 때부터, 싸우는 걸 두려워하고 편한 길만 찾던 때도.
지켜주고, 믿어주었고, 함께해줬다.
“코린 씨가 아니었다면 영역을 직시하지도, 언니에게 맞서지도, 재능을 마주 보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녀가 타고난 천성.
검에, 사람을 베는 것에 홀리는 재능.
재능만이 있을 뿐, 평범함을 추구했던 아리샤에겐 직시하기 두려운 재능이었다.
“코린 씨가 아니었다면 뭐든 못 했을 거예요.”
“그렇지도 않아.”
코린 로크는 알고 있다. 이 소녀가 결국에는 제 재능을 직시하고 세계를 구하는 영웅 중 한 명이 될 것을.
자신은 조금 등을 떠밀어주고, 믿어준 것뿐이다.
“히히···.”
아리샤의 시선이 코린의 시선과 얽혔다. 그 시선에 깔린 깊은 사랑이. 코린은 못내 고맙고 미안했다.
* * * *
사흘 째의 밤이다.
온 대륙이 축제로 들뜬 시간을 보내고 내일을 또 즐거이 보내기 위해 취침에 든 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일에 매진 중인 이들이 있었다.
“후우, 후우······.”
“되, 된 건가?”
코린 가디언즈 사무소에 마련된 실험실. 35명의 마법사들은 내일 있을 마법박람회 코린 로크 부스의 출품작 최종 안정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난해한 주문이었다.
개념은 이해가 간다. 기본적인 골자나 디자인도 굉장히 앞선 개념이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현대 기술로 구현하냐는 것이다.
대뜸 아이디어를 내놓고 알아서 구현하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에 착수한 것이 벌써 3주. 전 마탑 출신 노예 마법사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공유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같은 마탑 소속이라 할지라도, 설사 스승과 제자 사이일지라도 비전과 지식은 공유되지 않는 것이다.
철저한 도제 방식에서 오는 비효율적인 교육방식. 하지만 위로 갈수록 독점되는 지식 덕에 제 위상을 끝없이 올릴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하던 마탑 마법사들이다.
학파의 석박사 35명이, 폐쇄된 사고방식을 지녔던 지식의 독점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으로 서로의 비술을 공유했다.
그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마탑 일곱 개 학파의 전면적인 협력 끝에 감동적인 결과물을 완성한 것이다.
“그, 그럼··· 시운전을 시작하겠소.”
에너지와 열 효율 관리를 맡았던 적파의 프로페서 마도사 졸린은 떨리는 심정으로 이 감탄스러운 합작품을 작동했다.
────!!
흡사 짐승과도 같은 우렁찬 소리. 이에 마탑의 마법사들은 저마다 환호하며 서로를 껴안았다.
“해냈다!”
“해냈소이다!”
“으하하하하! 우리가 해냈어!”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또한──
“이제 사무소에서 쫓겨날 일은 없어!”
“그 염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흐흐흑···!”
그들의 평생직장이 결정된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