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1
가을 수확제(8) 삽화有
지금까지 내가 세운 계획은 꽤 높은 확률로 뭔가가 삐끗해왔다.
그래, 뭐 내가 머리 쓰는 타입은 아니지. 원래 계획은 박시후가 하고 나는 실행하는 쪽이었으니까.
하도 망운이 겹치다 보니 이제는 플랜 B와 C를 세워두는 게 기본이 되었다.
여장대회는 플랜 C였고, 당연히 준비를 해놨다.
“뭔가··· 당당하시네요?”
“당당하지 못할 건 또 뭡니까.”
“유명인이시니까요.”
접수처의 샤나 선배님은 나를 아는 모양인지 의외라는 표정이다.
“지금까지 참가자가 몇 명이에요?”
“스물 한 명이요.”
“오케이 경쟁률 낮네.”
하긴, 전 회차에서도 다 고만고만했다. 그럼 내가 이길 수 있다.
-어, 쟤 코린 로크 아니냐?
-여장대회 나가? 진심?
-어머~ 코린이가 여장대회에 나가나 봐.
-대박.
주변에서 나를 알아보고 시선이 집중된다.
“원하신다면 익명으로 해드릴 수도 있는데요?”
“후후, 괜찮습니다, 선배님. 그거 아십니까?”
나는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왜냐!
“여장은 오직 사내대장부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사나이다운 행위란 걸!”
“······그야, 여장이니까요?”
“이왕 하는 거 즐기죠!”
“오오······.”
감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 누님··· 날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
사실 여장대회 나가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거 남자가 살다보면 여장도 좀 할 수 있지 어?
쪽팔린 건 한순간이야. 이것도 다 추억으로 남는 거라고.
사내대장부답게 당당히 접수를 마친 뒤, 곧장 3학년의 한 여선배를 찾아갔다.
“엘자 선배. 나 옷! 화장!”
“어머어머! 진짜 나가는 거야? 잘 생각했어! 너한테 정말 어울리는 코디가 있거든!”
* * * *
여장대회라는 것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부끄럽고 남사스러운 대회는 아니다.
어차피 사내자식들이 꾸며봐야 다 거기서 거기고 이런 건 보통 벌칙게임이나 놀기 좋아하는 애들이 흥에 겨워 즉흥적으로 신청하는 경우다.
“후··· 인생 씨팔.”
예거 힌츠페터.
2학년 기사학부 깍두기 머리 소년은 안 그래도 험앆한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만 있어봐. 내가 이쁘게 꾸며줄 테니까.”
“닥쳐, 라크!”
“아~ 코린이 이걸 봤어야 하는데.”
예거와 라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법 박람회의 충격적인 알바가 끝난 뒤, 2학년 기사학부 동기들끼리 몰래 깡술을 마시다 웬 미친 짓이 떠오른 것이다.
「야, 내기해서 지는 사람이 여장대회 나가기 할래?」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예거가 내민 제안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도 조금 취한지라, 제정신이 아니었고.
-어··· 콜?
-진짜 지면 나가는 거다?
뭇 모든 문화권에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일찍 죽는 이유는 참 병신 같은 생각을 재밌어 보인다고 당장 하자 달려드는 근성 탓일 테지.
물론 그 대가로 얻을 수치심은 본인이 감당할 몫이라지만······.
“하아~ 화장 다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라크의 어설픈 분칠을 견뎠을까? 결과물은──
“······.”
“······푸흡!”
“웃지 마.”
라크의 노골적인 반응에 제르맹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역시··· 여장한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예뻐지고 그러진 않는구나~”
“알면서!!”
“뭐, 웃기니까 크흐흐흑···!”
한 시간을 가만히 앉아 노력한 결과가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하자 예거는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까.
“봐봐. 너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다들 즐기는 거라니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장한 모습을 보일 추태가 부끄럽긴 했지만,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의외로 이 해괴망측한 대회에 참가한 자들이 있긴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두가 함께하면 덜 부끄러운 법. 예거는 아직 그러한 군중심리에 쉽사리 휩쓸릴 나이다.
“하아···.”
“내가 왜······.”
물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제 운명에 한탄하는 쪽이다. 대개 내기에서 져 반쯤 억지로 여장대회에 나온 케이스.
한숨을 푹푹 쉬며 얼굴을 쥐어뜯는 것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걔중에는 정상체격을 넘어서 2m가 넘는 떡대를 가졌음에도 꽃무늬 땡땡이 원피스를 입은 우스꽝스러운 케이스도 있다.
“젠장···.”
못 봐주겠다. 예거는 제 꼴도 제 꼴이었지만, 이 끔찍한 현장이 못내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건 코린 그놈하고 같이 해야 하는데······.”
“갠 재밌어 보인다고 그냥 했을 듯. 이번에 바쁘지만 않았어도.”
2학년 기사학부 동기들은 곧잘 어울려 다니지만, 그중에서 코린은 특히나 유쾌한 타입이다.
뭐든지 ‘이것도 다 청춘 때 하는 거지’하는 유들유들한 반응으로 이것저것 망설이지 않는다.
여장대회 자체에는 질색할 수 있지만, 막상 하게 되면 즐기는자 모드가 될 것이다.
그런 사고관이기에 그놈의 임모탄 헤드뱅잉 메탈 하모니카를 부르는 거겠지.
“죄 벌칙게임 수준이구만.”
“우리 같은 생각을 한 놈들이 많은가 보지. 어.”
남자들의 여장이란 다 고만고만했다.
이변 같은 건 기대하지 못할 정도로.
* * * *
거듭 말하자면 여장 대회는 벌칙 게임에 가깝다.
그말인즉슨, 참가자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단, 참가자를 놀려주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와아아아아! 봉팔이 이쁘다!
-너.무.섹.시.해!
-영상구 남겼냐? 미래의 제수 씨한테 보여줘야 한다고!
“크흑··· 이 개자식들···!”
참가자도, 관객들도 괴짜 투성이이인 별난 대회에서 흔한 야유보다는 우뢰와 같은 환호성만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쓰읍···.”
앞서 차례차례 박살나는 참가자들을 보며 예거는 쓴웃음을 삼켰다.
확실히 웃기긴 했다. 건장한 한창 때의 사춘기 소년들이 제대로 검수조차 받지 않은 화장과 우스꽝스러운 드레스 따윌 입으며 보여주는 건 퍽 흥겹다. 그 참가자 중 한 명이 자신만 아니라면.
“하아··· 아예 컨셉 잡고 나온 놈들은 낫지.”
본인들도 여장이 우스꽝스럽다는 걸 알고 전략적으로 나온 녀석들도 있다.
생각보다 괜찮은 노래 실력을 선보이는가 하면 꽤 연습해온 춤을 선보이는 녀석도 있다.
자기소개에서 이어지는 어필 타임에서 점수를 따겠다는 노림수다.
“······뭐라도 준비해올 걸.”
차라리 저런 거라면 낫다. 어차피 얼굴은 다 고만고만한 거 저런 곳에서라도 눈에 띄어야 점수를 따지 않겠는가?
어차피 흑역사를 제조할 거라면 실익이라도 따겠다는 마인드. 합리적이다.
-푸하하하하하! 저거봐 저거!
-우와아아아악! 너무 섹쉬해! 끼야아아악!
“아오··· 근데 왜 저리 여자애들이 많아? 이거 남자들만 참가하는 대회라 하지 않았어?”
남학생들의 실시간 흑역사 제조를 관망하는 건 그들의 친구들뿐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숱한 여학생들과 도시의 주민들까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린 것이다.
이상하다.
좀 별난 대회로 유명하긴 해도 이렇게 강당이 꽉찰 정도는 아닐 텐데?
-여기래······.
-정말 참가하는 거래요?
-응··· 리본 때문에··· 괜히 미안해지네.
-사장님이 기대해달래요.
“으응?”
예거는 수많은 관객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을 목격했다.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왕국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는 쟁쟁한 거물들. 같은 학생이라는 게 실감이 되지 않는 그녀들도 이 대회를 보러온 것이다.
이상하다. 저 인물들이 어째서 여장대회 따윌 보러 온단 말인가? 개개의 성향이 제각각인 이들인데, 저들이 한 곳에 모일 일이라면······.
“······설마.”
이거, 한놈밖에 없지 않나? 예거가 불길한 예측을 하던 그때──
-그럼 참가번호 17번! 이야~ 이 친구가 이 대회에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는데 말이죠!
사회자의 텐션이 오른 진행. 예거는 무대에 오르는 인물을 보고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묘하게 익숙한 인상.
특유의 날카로운 야성이 살아있는 그것은 흉내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확신하지 못한 건 묘하게 ‘여장이 어울렸다’는 거겠지.
-코린 로크! 네! 바로 그 코린 로크입니다! 다들 박수우우우우우!!
17번 참가자 코린 로크의 등장에 지금까지의 우스꽝스러운 환호가 아닌, 성대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오···
-제가 코린이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특유의 주눅 들지 않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장한 코린은 빈말로도 ‘예쁘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건장한 신체와 근육질 탓에 여장하고는 영 안 어울리는 체질이다.
하지만 그것을 화장과 코디로 극복했다.
건장한 근육질은 신체의 곡선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정장으로, 일단은 여장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치마와 스타킹을 신었지만 새까만 고단위 데니어로 근육질을 숨겼다.
물론 이러고도 남성성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지만, 적당한 화장으로 얼굴을 갸름하게 보이도록 하고 특유의 당당한 표정으로 일말의 부끄러움 한 점조차 없는 건 여타 참가자들과 확실히 달랐다.
“꺄아아아아악! 코린 동생 너무 예뻐! 멋져! 잘생겼어! 와아아아아아악──!”
에스텔은 무대에 오른 코린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마구 박수를 쳤다.
한 나라의 왕녀이자 수억 신도들이 신망하는 종교 지도자라기엔 너무나 체신머리 없는 행동이었으나 요즘 성녀에 대한 이미지는 주책없는 누님 쪽이다.
-오··· 약간 언니 같아.
-이게 걸크러시? 멋있는데?
코린의 여장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일단 옷걸이가 좋은 편이다보니 여장을 해도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라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코린 학생은 2학년 기사학부의 수석이죠?
-예.
-와~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오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존 참가자들에 비해 확연히 개성이 있어요.
-잘생겼죠?
-허허헛!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하나요?
-누나라고 불러도 됩니다.
코린의 말에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존 참가자들이 부끄러워하며 치마 속에 드러난 허벅지를 숨기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화장이 굉장히 잘 됐네요. 순간 코린 학생인줄 몰랐어요.
-그렇죠? 솔직히 내가 어지간한 여자들보다 이쁜 듯.
와하하하하하!
청중들의 광대뼈가 내려가질 않았다.
보통 이런 대회에 나오면 긴장하거나 부끄러움에 어버버거리기 마련. 하지만 코린은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 표정이다.
코린 로크.
전 지구 체대 밴드부 출신.
그 특유의 사교성과 인사성은 이런 대회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이왕 하는 거 이긴다.
이왕 하는 거 즐긴다.
이왕 하는 거 씐나게 놀아보자!
학교 축제가 있으면 특히나 나서서 분위기를 돋우는 타입.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서라면 제 한 몸 정도는 얼마든지 희생하는 케이스다.
-그럼 코린 학생. 혹시 준비해온 것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악기 연주와 춤입니다.
-오오~ 연주와 춤? 대체 뭘 하실지 기대되는데요?
사회자는 코린의 장기자랑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런 타입이 대회를 고조시키기 딱 좋은 인재라는 걸 경험적으로 깨달은 덕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코린은 선글라스를 쓰고──.
-오라! 와드네!
외침과 함께 저 멀리서 웬 하프가 날아왔다.
대지의 다난 다그다의 보물. 거인살해의 하프 와드네.
주인의 부름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날아오는 신의 보물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코린의 앞에 안착했다.
그 보물을 손에 쥐지도 않고서 코린은 씨익 웃었다.
“음악을 원하는가!”
-예?
“원하다면 박수 쳐! 환호성을 질러라!
-오··· 여러분 박수!
-와아아아아아아아──!
코린과 사회자의 재촉에 환호성을 보내는 관중. 코린이 기타를 치듯 와드네의 하프줄을 튕겼다.
“들어라, 마이 뮤직! 울려라,마이 로큰롤!”
-띠링~!
와드네를 내려놓는 코린.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손을 떠난 와드네가 스스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합니다. 천마 이클 잭슨. 빌리 진.”
-퐁짝! 퐁짝!
다른 이들도 많이들 준비해왔던 것이 춤과 노래다. 하지만 코린은 스스로 날아오며 연주하는 와드네로 확실하게 모두의 주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음에 선보인 것은 지구 대중가요의 역사를 바꾼 분기점. 위대한 뮤지션의 유산이다.
-오오···.
-노래 좋다.
대륙 문화권에서는 생소한 스타일은 낯설긴 했어도 특유의 중독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이 가장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한 이유는 그 특유의 댄스 퍼포먼스다.
노래에 맞물려 비트와 리듬의 조화. 센세이셔널한 안무와 곡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척! 하고 고개를 돌렸다.
잦아드는 환호성. 무언가가 온다. 관중들이 본능적으로 직감한 그때.
-스윽
마치 중력을 거스르며 달을 걷는 것과 같은··· ‘문워크’가 펼쳐진다.
“어어?”
“뭐야···.”
“사람이 뒤로 걷는다?!!”
“엄마! 사람이 뒤로 걷고 이써어어어어?!!”
문워크가 펼쳐진 건 짧은 순간이었다. 휘리릭! 하고 회전하는 코린이 척! 하고 관중을 향해 돌아보자 모두가 자지러졌다.
“으허어어어어어어억!!”
“꺄아아아아아아! 언니, 여길 봐요!”
“오아아아아아아악! 방금 내가 뭘 본 거야아아아아앙!!!”
“임모타아아아아아안! 역시 임모탄이다아아아아아!”
지구에서 처음 문워크가 공개됐을 그때처럼··· 아니, 이 세상에서 보여지는 문워크는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문화대충격.
일개 여장대회에서 보여진 이 춤과 노래는 다음날 지역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