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8
검제 가란드(3)
협회장 레딕 조르지아는 검제와 그나마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다.
어린 시절, 서부에서 날뛰던 거대한 괴물소가 악명을 떨쳤다.
내로라하는 가디언들이 살해당했으며 기어코 그 마수가 왕도에 다다를 적,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대의 명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젊은 검사 가란드 아덴. 그가 동부 검술명가 아덴을 대표해 지원을 온 것이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압도. 그의 강철과도 같은 근육에서 나오는 막대한 오러는 거대한 소를 하늘로 던져버리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가란드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드높아졌다.
수십 년에 한번 나올법한 괴물들도 그의 검에 잘려나갔고, 수많은 검객들이 그를 동경해 따랐다.
레딕이 40대에 이르러 협회의 간부가 되었을 때도 그는 여전했다.
산처럼 거대했던 육신은 쇠락하고, 대지에 울리던 웅혼한 오러는 흘러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어 이제 그도 늙었구나, 하고 한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검제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하늘을 날며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괴조를, 그저 칼 한 자루로 베어 떨어뜨린 것이다.
대체 지상의 검사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검제는 살아있는 전설. 가디언 협회의 정점.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검사.
기사들이 영원히 동경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검제가 친히 대련을 청하였다. 동서를 막론하고 엎드려 절하며 받아들여야 할 영예였다. 그런데······.
“······제가요? 왜요? 싫은데요?”
코린 로크는 단박에 이를 거절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된다.
원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적어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숨소리는 들렸을 텐데, 지금은 그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내 시험을 피하겠다는 건가?”
먼저 입을 연 것은 검제였다.
“검제와 한 판 붙는 건 수지가 안 맞네요. ”
“어디까지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한 대련일 뿐이야.”
“그 정도로 끝날 거 같지 않아서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의중이 담긴 시선에 검제는 거짓말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삐죽거렸다.
“재미없는 놈.”
그래, 검제와 코린 정도 되는 실력자들의 대결이 단순히 대련으로 끝날 리가 없다.
아리샤조차 극도의 집중력 속에서는 무심코 선을 넘어버리는데, 검제라면 어떨까? 대련이 생사결이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망할 영감탱이. 적당히가 없단 말이야.’
실제로 코린은 전생에서 그와의 대결에서 팔 한쪽이 날아갈 뻔했다. 덜렁거리는 팔을 겨우 접합해야 했다.
「훌륭하군. 10년만 더 키우면 볼만하겠어. 상처가 낫는대로 루니아를 안거라. 노구가 허락하지.」
검제 나름의 손녀딸 사윗감을 테스트했단 느낌이었다.
“저랑 싸워보고 싶으시면 딜을 거셔야죠. 맨입으로 홀라당 먹으려고 드시면 안 돼요.”
“흐하하하···! 이런 당돌한 놈을 보았나! 이 노구의 검 한번 보겠다고 천금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이 수두룩 하거늘.”
“그나저나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놈. 노구의 제안은 당돌하게 거부한 주제에 뻔뻔하구나.”
“에리우 카사르 이사장님이 당신을 만나면 한번 이야기해보라 하더군요.”
에리우 카사르. 지금은 죽었다고 알려진 전 메르카바 이사장의 이름이 언급되자 노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에리우 카사르인가. 젊었을 적부터 몇 번인가 보았지. 최근에 죽었댔나?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가란드는 그리운 추억이라는 듯 과거를 떠올렸다. 코린이 집중한 것은 마지막 한 마디다.
“무슨 소리예요?”
에리우 카사르는 에린 다누아가 봉인된 동안 아카데미를 운영하기 위해 움직이던 룬 인형이었다.
코린은 물론 그녀가 죽은 게 아니란 걸 알지만, 에리우 카사르가 에린이라는 걸 모르는 가란드가 어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 고매한 창술사가 마탑 나부랭이들한테 죽었다고? 그럴 리가 없지.”
“······그래요?”
“소년, 뭔가 알고 있군?”
“노코멘트. 하지만··· 영감님이 나한테 뭔가 가르쳐줄 거라 믿으시던 모양이던데요.”
“흐흐, 과연, 타고난 선생인가. 에리우 카사르에게는 큰 가르침을 받았다. 그 제자에게 갚는 것도 이치에 맞겠지.”
검제는 제 손을 펼쳐 보이며 그리운 듯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예순을 바라보는 노회한 몸. 그의 경지라면 능히 백을 넘을 것이며 여전히 강건한 몸이지만··· 젊은 적에 비교한다면 비교조차 못 할 육신이었다.
“검의 길을 걸은 이래, 해소되지 않는 힘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검술명가 아덴의 적자로 태어나 타고난 재능과 힘을 단련해왔다.
오직 힘만을 추구하며 근육을, 힘을 키웠고 탐욕스럽게 영약을 섭취하며 오러를 불려나갔다.
“부모, 형제, 지위, 권력, 재산···!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오직 힘만을 추구했고 오직 힘에만 도취되었다.”
“서부에서 날뛰던 광우를 맞딱뜨렸을 때가 떠오르는군. 그놈은 꽤 컸지. 집채만한 놈이 달려들기에 한번 맨몸으로 받아보았다. 그대로 던졌지. 가볍기 짝이 없었어.”
“당대에 나에 대적할 자는 없었고, 나의 힘은 역사에 남을만큼 거대했다. 혹자는 나를 신이라 부를 정도였지.”
괴력난신.
인간의 것이 아닌 듯, 너무나 거대하고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 당대의 젊은 검사는 감히 그것을 자칭할 만한 자격이 되었다.
그는 광오하게 선언했다.
“베어낸 마물의 총계가 십만! 평생 지켜낸 땅이 지평선 너머! 구한 인간은 능히 백만!”
“나야말로 대력지존! 나야말로 천하제일! 무적의 강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네의 스승을 만난 것이다.”
검제는 검을 들었다. 햇빛의 광채를 반사하며 고고하게 빛나는 검에 홀린듯. 아리샤와 닯은 극도의 집중 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한땀한땀 재구축한다.
그 충격적인 날의 기억을, 무(武)를 심상에 재현하는 것이다.
“그자는 약자였다. 아카데미의 이사장이라기에 기대했으나 그 육신에 담긴 힘은 데리고 다니는 대마녀의 털끝자락에도 미치지 못했지.”
그것은 당연했다. 당시 에리우 카사르의 몸은 룬석으로 제조된 인형이었으니. 최소한의 오러와 마력만으로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패했다. 어떤 강검을 내리쳐도 닿지 못했고, 지상을 덮을만한 오러를 내뿜어도 흔들지 못했다.”
“진짜를 만난 것이다.”
“육합창. 그 신창(神槍)에는 내가 모르는 이치(理)가 담겨 있었다.”
그 뒤로 검제 가란드 아덴의 일대기는 변모한다.
더 강력한 힘을 휘두르기 위해 내리치던 베기도, 더 많은 용량의 오러를 품기 위한 영약도 포기했다.
오직 검을 수련했다.
그때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그리고 끝내. 근육은 쇠락하고, 오러는 지상을 뒤덮지 못하던 그때.”
내리친다.
검을.
산들바람이 부는 것처럼 가벼운 일검이었다. 그러나──
“아아···.”
“으아아아······.”
“······.”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변을 깨닫는다. 여파로 인해 울리는 대기의 진공이 피부에 와닿았다.
구름이, 하늘이, 세상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검(劍)은 하늘(天)에 닿았으니. 이리하여 나의 천검(天劍)이 완성되었다.”
하늘은 벤다. 그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엿가락 구부리듯 태연하게 해낸 그가 코린에게 검끝을 겨눴다.
“너의 창에는 어떤 ‘이치’를 담을 테냐. 삶을 걸어서 다다를 ‘영역’은 무엇이냐.”
“······.”
코린은 네 개의 영역을 알고 있다.
검귀(劍鬼)의 천수무쌍(千手武雙).
반경 1km 내 모든 것을 절삭하는 우주검.
아리샤 아덴의 무궁(無窮) 영역돌파.
거리의 한계를 무시하는 순간이동의 검.
에린 다누아의 무간(無間).
사이의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 신창.
가란드 아덴의 천참(天斬)
하늘조차 베는 신검의 영역.
그들의 검은, 창은 무엇이 다르기에 영역조차 벗어난 무언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답은 하나. 궁극이다.”
“궁극?”
“오직 하나. 한 가지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목표로 하는 심상을, 영역을, 이치를 담아라. 심(心) 기(氣) 체(體)를 합(合)하고 상(想) 역(域) 리(理)를 합치할 때, 궁극에 도달한다.”
“······겁나 모호한 설명이시네요. 알기 쉽게 안 돼요?”
“네놈 정도 경지에 있는 놈이 쉬운 대답을 원하느냐? 이는 배우는 게 아니라 깨우치는 것이다.”
배우는 게 아니라 깨우친다.
에린에게서도 들었던 말이다. 코린은 그 답을 찾아야 함을 깨달았다.
“나와 한 판 붙어보지 않을 거라면 좋다. 모처럼 영역을 보는 놈이 있기에 흥미를 가졌으나 아직 덜 여문 놈이었군. 그 잘난 태양이나 한번 보여보거라.”
“······원하신다면.”
코린은 그가 원하는대로 태양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마력이 세상을 채우며 기어코 태양의 구체가 구현된다.
작은 태양.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그 거대한 태양을 앞에 두고 가란드 아덴은 혀를 끌끌 거렸다.
“태양인가. 언제 한번 베어보고 싶었지.”
그가 검을 내리쳤다. 다음 순간.
“흐허억···!”
“세, 세상에···!”
태양이 반으로 갈라졌다.
“테스트는 여기까지다. 평가는 협회장 네놈이 알아서 하거라.”
가란드 아덴은 이를 끝으로 등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떠오른 듯 말하는 것이다.
“두 손녀를 안고 싶거든 궁극을 완성하여 가져와라. 그럼 내 루니아와 아리샤의 혼사를 추진하지. 아덴 정도는 주마.”
“······댁들은 다들 결혼관이 어떻게 된 것 같습니다.”
“껄껄껄···! 영웅은 호색이다! 품에 가득 채우고도 넘쳐날 만큼 이성을 탐하는 것은 강자의 자격이자 의무이지!”
사라지는 가란드 아덴. 그 뒤로 아리샤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흐, 흐으··· 코린 씨, 하실 거예요?”
“어? 그래, 해야지.”
코린은 더욱 강해져야 한다. 검제 가란드보다도, 스승이신 에린 다누아보다도.
그가 끝에 추구하는 것은 결국 최악의 적 타테스 발타자르이기에.
창에 이치를 담는 것이 그를 쓰러뜨리기 위한 조건이라면··· 반드시 담아내야 한다.
“흐흠··· 그, 그러시구나. 그래서 할부지한테··· 허락 맡으시려구··· 으음~ 나, 나쁘지 않아.”
“아리샤?”
“응원할게요! 화이팅!”
“어··· 그, 그래.”
코린은 정말 아덴가가 무섭다.
저 집안에서 정상인은 며느리인 소피아 말곤 없는 것 같다.
* * * *
공식적으로 코린 로크가 특급 가디언이 되었다.
정확히는 화란, 마리에도 특급이 되었고 아리샤는 준특급으로 평가받았다.
아리샤는 아무래도 힘의 규모가 다른 이들보다 떨어지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인 특급 가디언이 셋이나 등장했다. 이는 굉장한 파문이 될 것이지만, 그보다 더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이제부터 제가 중앙 가디언 협회의 협회장입니다. 불만 있으신 분?”
“······.”
“······.”
누구 하나 반론하는 이가 없다. 당연한 것이다.
협회장의 직위계승은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레딕 협회장 본인부터가 남부 농림수산부 고위간부로 이전했고, 그가 보여준 태양이 비록 검제의 칼에 잘렸을지언정, 그 파괴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하다못해 중앙정계에서 태클이라도 걸려왔으면 명분이라도 있을진데, 이 새 협회장은 남부 듀나레프와 서부 지온교단의 성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양반이다.
무력, 권력, 재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데,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년인들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인정 못하겠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있긴 있었다. 객기 부리는 놈이.
그는 레딕 다음 협회장을 노리던 간부로 웬 굴러온 놈이 협회장 자리를 차지하자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쪽은 누구신지?”
“제1급 기사 게일 보그만이다! 나는 협회에 30년을 충성했어!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개뼉다구가 갑자기 협회장이라고? 인정할 것 같으냐!”
“왜요? 뭐가 그리 불만이시기에?”
“강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 말고 네게 뭐가 있지?
“돈, 권력, 인맥?”
“크으···!”
게일은 말문이 막혔다.
신교단과 듀나레프가 지지하는 협회장이었다. 심지어 전임 협회장과 주요 간부들도 뭘 얼마나 쳐드셨는지, 열여덟 살 애송이의 협회장 취임을 반대하지 않는다.
너무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반대자가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왕실이라도 뭐라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그쪽에서도 축하한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하, 하지만··· 실적도 없는 협회장이······.”
그 말을 하려다 게일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신입 협회장이 실적이 많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이 너무 굵직했다.
철산의 왕, 성녀 구출, 마운드 토벌 사건. 하나 같이 보통 일들이 아니지 않았나.
수백 명의 가디언들이 달라붙어서 해결해야할 일들은 이 남자는 소수의 일원들만 데리고 해냈다.
누구도 이 남자가 특급, 협회의 역사상 손꼽히는 가디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이번에 남부 지부장에 마리에 듀나레프가, 서부 지부장에는 화란이 된 거 아시죠?”
알다마다.
특급이 되자마자 그 권한을 이용해 남부, 서부, 중앙의 지부장 자리를 꿰찼다.
서류 한 장. 서류 한 장을 던져놓고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입다물게 한 것은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으니.
그리고 실질적으로 동부를 관리하는 지부도 아덴의 검호 루니아가 꿰차고 있으니 노스킹덤과 맞닿아 사실상 한직인 북부를 제외하면 협회 전체를 순식간에 장악해버린 셈이다.
이곳에 있는 원로 간부들이 감히 코린 로크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협회장 권한으로 명령합니다. 각 지부당 400명씩 차출해서 대기시키라고 해요.”
“사, 사백 명 말입니까? 그런 천여 명이 넘는데요?”
“협회 총력의 사분지 일입니다! 그 많은 가디언들을 대체 어디에······.”
“다~ 깊은 뜻이 있습니다.”
“지부가 반발할 겁니다······.”
“이야~ 우연이네요. 마리에, 화란, 루니아. 전부 우리 가디언즈 출신인데. 다 내 친구들이네. 그쪽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
“······.”
간부들은 이 신임 협회장의 의도를 당최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만한 가디언들이 모이면 나라도 뒤엎을 수 있었다.
설마 반란? 아니, 그럴 리가. 왕위계승권자인 성녀가 협회장에게 구애를 하는 건 유명한 일이다.
‘이게 되겠소?’
‘될 리가! 천이백명이나 되는 가디언들이 활동을 멈추면 돈이 얼만데!’
‘지부 별로 반발이 있을 거요. 총동원령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맞다. 저 1년 뒤에 협회장 관둡니다. 퇴임 사직서도 미리 왕실에 제출할 거예요. 내가 퇴임할 때, 적당한 사람 골라서 후임 맡길 건데, 다들 잘 부탁할게요?”
“······.”
“······예?”
“별건 아니고. 처신 잘하시라고.”
내 다음 후임 맡고 싶으면.
“···············.”
회의실이 적막에 휩싸였다.
* * * *
동부, 서부, 남부, 중앙을 사실상 장악했다. 이제 남은 건 이 겨울의 끝. 다가올 신화대전에 대비하는 것뿐.
1년 뒤에 그만둔다고 사직서까지 제출할 테니, 다들 내 다음 자리를 노리려면 열심히들 하겠지.
필요에 의해 협회장 자리를 꿰차긴 했지만, 어차피 내겐 협회를 관리할 시간 따위 없다. 얼른 할 것만 하고 다음 사람한테 넘겨주는 게 낫지.
가라로 협회장이 되긴 했으나 절차상 왕실에 인사를 올리고 공식적인 허가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아~ 자네도 하는 일이 하나 같이 요란하군.”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전하.”
미르암의 마운드 토벌과 그를 가로막는 내 반역. 면책권 사용에 이어 이제는 협회장 자리까지 꿰찬 날 보며 다비드 국왕은 삼년은 늙은 듯 한숨을 쉬었다.
“첫째 딸로부터 대략의 이야기는 들었다. 믿기 힘들지만··· 그 아이가 ‘주님의 계시’를 거짓으로 말할 리는 없으니······.”
“하하······.”
에스텔이 그쪽으로 말했었군.
요즘 다난 우상화 작업에 착수한 에스텔은 내외부로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교황과 추기경들을 대거 숙청하고 스스로 유일무이한 교단의 대리인으로 서서 교리까지 건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이 말씀하심. 내가 들었음.’으로 넘겨버리고 있다나.
하기사 신과 직접 연결된 기적의 아이가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고 믿을 수밖에.
일신교의 맹점은 이렇게 신의 계시를 사칭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는 것이다. ‘응그거다 신의 뜻임’ 이러면 그만이니.
“거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린 그에 대비해야 합니다.”
“미르암은··· 그 일환인가?”
“송구스럽지만, 2왕녀님이 그들 편에 섰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자네 덕에 발을 뺀 것일 테지. 그 아이의 증오가··· 그렇게까지.”
다비드 국왕은 한숨을 쉬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로크 남작··· 아니, 이제 협회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편히 하명하십시오.”
“자네, 내 딸들 중 한 명과 혼인할 생각 없나?”
“······예?”
다, 다들 왜 이래? 보통 장인어른들이 반대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마르드 공작 같은 반응이 정상 아니야?
“아니다. 그냥 둘 다 데려가게. 차기 국왕 하시게.”
“전하?!”
진짜 왜들 그래? 나만 정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