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9
코린 사위 쟁탈전(1)
“총각. 우리 손녀 한 번 안 만나볼텨?”
“아유, 어르신. 운동하시다 말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나는 어르신들에게 꽤 좋은 인상을 받는 편이다.
“내가 아까워서 그래. 자네처럼 참하고 건실한 친구가 아직까지도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봤누.”
“흐허허, 그러게요. 인기가 없어서.”
“이게 다 자네 주변에 서성이는 불여시들 때문이야.”
“엑? 누구요?”
“자넨 여자도 조심해야 하지만 남자도 조심해야 해. 여기 친구들 눈빛이 심상치가 않어.”
“흐허허허···! 어르신도 참. 여유로우신 모양인데 한 세트 더 하시죠!”
“내 말 명심해! 자네는 양난(兩難)의 상이야! 이 상을 극복하려면 눈가에 점부터 빼야 해!”
“관상가 할배 아니시랄까봐 참. 저 그런 거 안 믿어요.”
“남자와 여자로 인해 필히 화를 당할 상이라니깐! 자네는 양기가 넘쳐 크나큰 음기로 눌러야 해!”
“그래서 선무당인 손녀를 소개시켜준다고요? 크흐허허허···!”
지구에서도 여기저기 소개는 받았는데, 어째 이상하게 연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 관상가 영감님이 분명 나보고 주변에 연애운이 넘친다고 하던데··· 하여간 점쟁이들은 믿을 게 못 돼.
아무튼 그건 아르한의 세계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네, 루니아를 안게.”
검제 그 양반도 이상하게 날 마음에 들어했다. 근데 이건 내 무인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마음에 들어한 거 같고.
“나 롤란 백작가의 가주 되는 사람일세. 코린 경. 자네, 내 딸과 만나보지 않겠나?”
사교계에서 술 한 잔 걸쳤던 백작가 아저씨도.
“고향에 혼기가 찬 여동생이 있다. 너라면 믿고 맡길만하다.”
전회차 주력 남성파티였던 베아재커 선배도.
“우리 아이들하고 혼인해도 괜찮아요. 당신이라면 자격이 있지요.”
“너. 내 27대손하고 배꼽 좀 맞출래? 무기 공짜로 만들어줄게.”
북방의 그 아지매나 난쟁이 아저씨들도.
이상하게 나 어른들한테 사랑받는 타입이란 말이지.
하여간 사람이 착하게 살면 이러저러한 복이 오는 모양이다.
“아니다. 그냥 둘 다 데려가게. 차기 국왕 하시게.”
그래도 이건 쫌······.
“전하··· 농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이 아닐세, 남작. 아니, 이제 특급 가디언이니 작위를 좀 올려야겠군. 백작. 그래, 백작 하시겠나? 변경 하나 맡아주면 후작위도 괜찮고.”
“······.”
작위가 무슨 엿가락도 아니고 그렇게 줄 수 있는 거였어요? 아니, 그야 전 회차에서도 박시후한테 후작위를 수여하긴 했는데······.
그동안 내게 혼사를 전달한 이는 있었어도 다비드 국왕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전 회차에서도 미르암 왕녀에게 청혼하려고 상당한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둘 다하고 결혼하라고?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어허, 사위. 이러지 말게. 우리 사이에 무슨. 아버님이라 부르게.”
우리 사이가 뭔데?! 국왕 페하, 댁하고 얼굴 마주한 건 이번이 두 번째거든요?!”
“아니, 전하··· 보통은 딸 중 한 명하고 혼인을 권하지 않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좀 했었네.”
고민을 왜 해요? 아니, 어느 아버지가 딸들을 한 남자한테 준다고 그래? 그걸 왜 고민해?
“에스텔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네를 많이 연모하더군. 최근에 집에 돌아오더니 자네 아니면 결혼 안 할 거라고 선포했네.”
“어···.”
에스텔 누나는··· 그럴 수 있지. 그 무대뽀 성격에 그럴 수도 있──
“무엇보다 ‘주님의 계시’가 내려왔다더군. 자신은 반드시 코린 로크와 결혼해야 한다는.”
“크흡···!”
아주 그냥 제대로 악용하고 계시는구만! 이게 사이비 교주가 아니고 뭐야!
“주님의 뜻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
아뇨, 아버님··· 그걸 정말 믿으세요? 신앙심 너무 투철하신 거 아냐? 댁네 따님은 불신의 끝판왕을 넘어서 아예 새 종교를 만들려고 하세요.
성당에 잠입한 신천X 같은 존재라고.
“그럼 에스텔 성녀님 이야기만 하시면······.”
“오랜 증오였다.”
“······.”
다비드 국왕은 그 화두를 꺼내자 침통한 표정이었다.
“국익을 위해 딸아이의 분노를, 증오를 외면했고 끝내 그런 사달을 내고 말았다.”
그는 미르암의 음모와 증오에 대한 질책도, 분노도, 경악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아버지로서 실패했음을 담담히 고백했다.
“정치도, 마법의 수학도··· 하다못해 왕족의 사교활동조차도 마인들을 증오하는데 쏟아부었던 가여운 아이네. 그 평생의 분노를··· 나는 풀어주지 못했어.”
그러곤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자네였네. 자네가 풀었어. 자네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으려던 그 아이를 멈췄네.”
그는 왕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허리까지 숙이며 내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 누가 단신으로 군대를 막아서고, 그 누가 숱한 대전사들을 상대로 결투를 벌이겠나. 그 누가 왕족의 분노를 무릅 쓰고 무고한 이들을 지키겠나.”
“그대의 헌신을, 용기를 내 어찌 외면하겠는가. 어찌 갚겠는가.”
“그 아이를 바꾼 그대라면··· 내 믿고 맡길 수 있어. 아니, 그 아이는 오직 자네에게만 맡길 수 있네.”
그는 진심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제 두 딸을 내게 맡기고 싶어했다.
“코린 경. 실패한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부디 받아주겠는가?”
“······죄송합니다.”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다비드 국왕은 비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인가? 일국의 왕녀들을 동시에 아내로 맞이할 수 있거늘.”
“그건······.”
나는 내 사정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다비드 국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부의 그 감자꾼들 때문이가? 돈 대신 감자를 화폐로 쓰는 꼴통들 때문에?”
“전하?”
“동부의 칼잡이들 때문인가! 부디 그 야만의 땅을 밟을 생각은 하지 말게. 말보다 칼이 앞서는 깡패들이네!”
전하? 저기··· 지금 왕가의 가장 강력한 동맹 둘을 엿먹이셨는데요?
“이런 비통한 일이 있나! 내 사위가 그런 간악한 것들의 유혹에 홀려 있다니···!”
“사위 아닙니──”
“잘 생각하게, 사위. 돈이나 무력보다 권력이 더 낫네. 자네가 왕좌에 앉아 호령할 만마를 상상해보시게. 아니다, 아니야. 이런 건 직접 체험해봐야지. 올라오시게. 왕좌에 한 번 앉아봐! 늘 짜릿해! 늘 새로워! 높은 곳이 최고야!!”
전하! 체통을 지켜 주십시오!!
* * * *
“호외요! 호외! 국왕전하께서 코린 로크 남작에게 국혼을 제안하셨답니다!”
“무려 성녀님와 2왕녀님 모두! 이런 씨발 부러워 죽겠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던가.
왕궁에서 다비드 국왕에게 들은 제안은 다음날 조간신문에 퍼지기 시작했다.
21세기 기사와 다르게 한치의 필터링도 없는 기사내용을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이, 이게 대체······.”
국혼이 어디 애들 장난인가? 이게 이렇게 퍼져도 돼?
“축하드립니다, 협회장님! 아니, 부마 전하···!”
협회 관련 일로 보고를 위해 같이 왔던 레딕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니, 오햅니다.”
“예? 그게 다 거짓이라는······.”
“그, 그건 아닌데······.”
“부마 전하! 이 레딕 조르지아! 부마 전하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환장하겄네.”
온 왕도··· 아니, 온 대륙에 소문이 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이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 * * *
남부의 중심지 듀나레프 저택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부지를 자랑한다.
어지간한 마을 수준의 정원을 지나치려면 마차를 타서 10분은 달려야 하고, 마공학으로 설치된 자동승강장이 없다면 옥상까지 4,378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듀나레프 저택의 백미는 바로 사계절의 꽃들이 상시 피어있는 운동장 크기의 온실이었는데, 전담 마법사와 정원사가 붙어 관리되는 이 온실은 엘렌시아 공작부인이 애용하는 다실로도 사용됐다.
공작부인은 이곳에서 얼음을 동동 띄운 옥수수 수염차를 마시고 찐감자를 우아하게 베어먹으며 각 지역의 신문들을 즐겨봤는데, 오늘 아침도 평소와 다를바 없는 일상이었다.
신문의 1면에 대서특필된 그 기사만 읽지 않았더라면.
-꾸기기깃!
꽈드득 소리를 내며 우겨지는 조간신문. 그녀를 시중들던 시녀들이 기겁하며 공작부인의 분노에 고개를 조아렸다.
“내, 내가 지금··· 뭘 본 걸까아?”
스스로도 보고 눈이 의심됐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그러나 진위여부에 앞서 끓어오르는 것은 분노였다.
“부, 부인··· 무슨 일이 있소?”
가족과 함께 온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마르드 공작은 갑자기 분노로 일그러진 엘렌시아 공작부인의 눈치를 봤다.
“당신! 밖에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예요!”
퍽! 하고 구겨진 신문지 덩어리에서 있어선 안 되는 소리가 마르드 공작을 강타했다.
부인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모습은 결혼하고 20년 동안 처음 보기에 마르드 공작은 바들바들 떨며 두려운 심정으로 구겨진 신문을 펼쳤다.
“으응? 이건 어제자 왕도 신문 아니오?”
신문을 본 마르드 공작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됐다.
「국왕 폐하. 코린 경에게 국혼 제안. 무려 두 왕녀님 모두!」
제목만 보아도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즉, 다비드 국왕이 두 왕녀 모두를 코린 로크에게 시집보내겠다 한 게 아닌가?
“아니,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야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가 법적으로 허용된 세상이긴 하지만, 세간은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이 동부 신문도 보시라고요!”
이번에 건넨 건 어제자 동부 석간신문이었다. 그곳에도 충격적인 헤드라인이 눈에 확 띄었다.
「검제 가란드 아덴, “코린은 내 손녀딸들 줄 것. 국왕은 가로챌 생각 말라”.」
검제가? 가란드 아덴이?
“그 늙은이, 노망 났나?”
“단단히 미친 것이지요!”
엘렌시아 공작부인은 옥수수 수염차가 담겨있던 컵을 단박에 깨뜨렸다.
산산조각난 유리컵 조각들이 비산했으나 전 고위기사의 육신에는 스크래치 하나 내지 못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에요!”
“엑? 나, 나말이오?”
“당신이 코린 사위를 자꾸 구박하고 배척하니까! 우리 사위가 딴 데로 샌 거 아닌가요!”
“이, 이게 내 탓? 암만 봐도 여기저기 꼬리 치고 다니는 그놈 탓 아니오?!”
“당신이 좀 더 상냥하게 대해주고,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우리 사위다! 표시하고 다녔으면 이것들이 감히 내 사위를 탐낼 일도 없었겠죠!”
엘렌시아 공작부인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분노를 표출했다.
“우리 듀나레프 가문이 무시당한 거예요. 국왕과 검제. 그것들이 우리 대 듀나레프 가문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거예요!”
자고로 사위사랑은 장모라던가. 이미 장녀의 사윗감으로 코린을 점찍어둔 엘렌시아 공작부인은 제 사위를 빼앗으려는 간악한 시도를 용서할 수 없었다.
‘뭐지? 나만 지금 이상한가?’
일국의 왕녀들을 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겠다는 다비드 국왕이나, 그런 국왕에게 손녀딸들 줄 것이라 끼어들지 말라 경고하는 검제.
혼사는커녕 약혼도 안한 외간 사내를 사위랍시고 빼앗겼다 주장하는 제 부인.
‘나만 그놈 맘에 안 들어? 나만 정상적인 아버지야? 내가 이상한 거야? 어? 내가 이상한 거냐고!’
미쳤다. 뭔가 단단히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당신!”
“어, 어···! 부인! 왜 그러시오?”
“지금 당장 내 사위 도로 찾아와요! 내 사위 못 잃어!”
“어어···?”
반문은 내뱉지도 못했다.
그렇게 마르드 공작은 등 떠밀려 왕도로 향하는 흐레스벨그에 탑승했다.
그런데 공작을 따라나선 식솔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마리에 아가씨의 부군을 노리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난 그놈 마리에 남편으로 인정한 적 없어!’
듀나레프 와이번 라이더 대장 베르그가 투지를 불태우고······.
“이런이런. 하룻강아지들이 감자 무서운 줄 모르는군요. 왕도에서 활동 중인 첩자들을 움직였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왕당파 산하 귀족들의 치부를 백주대낮에 밝힐 수 있지요.”
‘우리도 왕당파거든? 우리가 왕당파거든?!’
폴 집사장은 자폭에 가까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코린 남작님 전담의 비자금을 사용하여 왕도와 동부에 대한 경제공격을 시작하지요. 가볍게 100만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듀나레프의 위용을 보이기에는 조금 부족하긴 합니다만.”
‘어, 언제 그런 비상금을 책정했지?’
메르카바 듀나레프 상회 지부장 볼턴 남작은 마르드 공작도 모르는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자, 자네들··· 일단 진정하게. 이게 다 오해일 수도 있지 않나.”
“아···! 그럴 수도 있군요. 죄송합니다, 주제 넘었습니다!”
“하긴 마르드 공작님께서 이런 일을 좌시할 리가 없지요.”
“공작각하께서 코린 도련님을 놈들의 마수에서 멋들어지게 구출하실 겁니다!”
공작은 이제 당황스러워졌다.
부인이야 그렇다 치고 얘들은 또 언제부터 이렇게 그를 흠모했지? 뭔가···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
‘이러다 진짜 그놈을 사위로 맞이해야 하는거 아니야?’
공작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