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
마리에 듀나레프(3)
정사대로라면 1막 후반부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와의 조우 이후 마리에는 룸메이트를 습격하고 폭주한다.
전 회차에서는 해당 사건 직후 마리에와 이자벨이 있는 기숙사 밑에서 대기했기 때문에 빠르게 대처했지만, 박시후가 의도적으로 놓쳤었지.
전 회차의 멤버는 박시후, 나, 드루이드 유엘과 용병 도론, 골렘술사 크라넬 5인 파티.
히든피스나 게임 지식이 있는 박시후와 나는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고, 초반 강캐라던 아리샤 없이도 마리에를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학년 파티 전원이 실질적인 전투불능 상태다.
정말 슬프게도 그 원인이 나라는 점이다. 빨라도 3주 뒤에나 벌어질 거라 생각했던 사건이 이렇게 빨리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나.
시급하다. 1분이라도 빨리 파티 멤버를 소집해야 했다.
아리샤는 힘들다. 팔괘 합장으로 뼈를 으스러뜨렸으니 뛰는 것도 힘들 터.
골렘술사인 크라넬도 중요한 골렘의 코어가 부서졌으니 수리 전까진 없는 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한정적인 활동이 가능한 건 드루이드 유엘과 용병 도론 워스카이.
화란도 생각해봤지만, 가능성은 둘째치고 화란이 끼게 될 경우 상황이 어떻게 치달을지 예상할 수 없다.
흡혈귀로 각성한 마리에를 상대하다 화란의 금계가 풀려버리면 그 순간 배드엔딩 확정이니.
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안녕.”
체단실 끝방. 혼자서 훈련 중이었던 도론을 힐끗 쳐다보고는 제 할 일에 집중했다.
-쉬익···! 파파팍!
눈길 한 번 주고 조작한 검들로 사납게 표적을 베어 버린다. 눈짓으로 살피니 내가 고장 낸 세 개의 마검들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코린 로크.”
“음··· 이름을 알려준 적은 없는데.”
“실력 있는 녀석들 이름 정도는 외워두고 있어.”
헌팅 그라운드에서의 격돌이 인상적이었던 걸까. 도론은 따로 내 이름을 알아본 모양이다.
“고용의뢰야, 용병.”
“선금 50%. 없으면 담보도 가능해.”
그 말을 기다렸다. 도서관에서 세반시아 듀크를 성불시키면서 얻은 소울 더스트를 내놓는다.
“······이건?”
“담보. 특급 소울 더스트. 전투로 인한 영체손실도 없는 완벽한 순도 100%짜리야.”
“고용주께선 뭘 원하시는지?”
바로 태도를 바꾸는 도론. 이해가 빨라서 좋다.
“사람 한 명을 찾을 거야. 나와 널 포함한 파티가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
“난이도는?”
“특급.”
“미쳤군.”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혀를 차는 도론. 그러나 거절의 말은 없다.
“승산 없는 싸움은 애초에 끼지 않는 게 용병의 철칙이야.”
“겁나면 안전하게 어검만 사용해도 좋아.”
“두 자루밖에 안 남은 건 알 텐데?”
그래, 안다. 내가 부쉈으니까. 남은 마검은 특수기능도 없는 일반 마검과 한정적인 내리찍기 공격만 가능한 중철검뿐.
“견제 및 서브딜러 역할만 해줘도 충분해. 용병한테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
도론 워스카이와 파티를 맺는 건 쉽다. 돈만 주면 되니까.
하지만 그는 용병이다. ‘돈값’ 이상으로 부리려 들면 반드시 페널티가 돌아온다. 녀석을 합리적으로 부리려면 선을 정해둘 수밖에 없다.
“좋아, 보수는 금화 20장. 지불능력이 없다면······.”
“담보 팔아서라도 줄 테니까 걱정 마.”
“바람직한 고용주님이군.”
도론은 내게 이 이상 묻지 않았다. 그 특급은 누군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없다.
딱 시키는 일만 하고 나머진 궁금해하지 않는 게 용병의 미덕이라나.
2시간 뒤, 헌팅 그라운드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음 타겟을 찾았다.
* * * *
게임 속에서 NPC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대개 고정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특정 NPC를 찾을 때, 헤매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이 된 이세계에서는 나름의 이유를 가진다.
예를 들면 아벨로른의 드루이드 유엘. 그녀는 일과시간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낸다.
종이극혐! 자연좋아! 를 외치는 드루이드가 종이로 가득한 도서관에 틀어박힌 이유는 하나다.
“제가 협력해줬으면 한다고요?”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줘.”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옅은 녹색머리가 특징적인 소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당연한 질문을 해왔다.
자연의 기운을 읽어내는 그녀는 내 오러와 마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걸 알았으니까.
약해빠진 내가 다짜고짜 협력을 요구하니 우스웠겠지. 그것도 특급을 제압하자는 파티로 말이다.
“오검 문자.”
“!!!”
“너희들의 전통문자지? 아벨로른이 마물의 침공으로 불탄 뒤론 실전됐겠지만.”
“당신··· 어떻게?!”
“1년 전쯤에 아벨로른 숲의 대화재를 들어본 적이 있고, 그 숲의 드루이드가 구태여 메르카바 아카데미에 왔으니까.”
나머진 추리하기 나름이라고 덧붙이자 유엘은 찝찝한 표정으로 납득했다.
하필 1인 전승으로 내려오는 전통문자에 나무를 잘라 만든다는 이유로 종이를 극혐하던 원시부족.
마을을 습격한 마물들에 의해 선대 드루이드가 사망하고 벽화로 남겨두었던 문자들도 모조리 소실해버린 것이다.
아벨로른 숲의 드루이드 유엘이 메르카바 아카데미에 온 것도 온갖 지식이 잠들어있는 메르카바 대도서관이라면 오검 문자에 대한 것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겠지.
“관련 서적을 읽은 적이 있어.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똑똑, 머리를 두드리며 씨익 웃는다.
“이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지.”
“영악한 사람······.”
유엘이 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 눈가를 찌푸린다.
“ ᚑ (온). 이거로 증명이 될까 싶은데?”
말과 함께 적은 오검 문자에 유엘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수첩에 필기했다.
자연을 벗 삼는 드루이드 일족이 종이수첩을 사용하는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알 수 있으리라.
참고로 내가 읽은 책 제목은 『탐험가 포르알머의 오지 탐험기』라는 80년 전 서적이다.
이교도의 문화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구교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남아있는 책은 이 대도서관이 유일하지.
게임상에서는 유엘과의 호감도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찾아내는 책이라서 유엘 혼자 이걸 찾으려면 고생 꽤 해야 할 거다.
“더······.”
한 문자라도 더 알아내야 한다는 듯 유엘의 표정에 필사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서두르지 마. 이번 일이 끝나면 전부 알려준다.”
“약속··· 하신 거예요.”
“그래, 많은 건 바라지 않아. 위험한 일은 내가 다할 거니까 뒤에서 도와주기나 해.”
“······.”
유엘과 약속을 잡고 도서관을 나온다.
서브 딜러와 서포터는 구했다. 이제 남은 건 적당한 머릿수 채우기. 1페이즈를 견디기 위한 최소조건이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어··· 내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체단실 단련멤버 2인조. 최근엔 크라넬 루든까지 살살 꼬시고 있는 올빼미들이 내 앞에서 질린 표정을 했다.
3급 기사 예거 힌츠페터.
5급 마법사 라크 버그만.
전 회차의 인연. 시나리오에서 단편적인 악당으로 등장하는 엑스트라들.
“파티를 구하고 있어. 어렵고, 보수도 적고, 매우 위험하고, 강력한 특급 마족을 상대로 죽을 수도 있지만. 성공할 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지.”
“············.”
“············.”
더벅머리 안경잡이 소년과 전형적인 불량아 스타일의 깍두기 머리 소년은 시선을 교차했다.
효율충특.
승산이니 효율이니 따지면서 여기서 어떻게 해야 자기한테 이득 될지 계산기 뚜드리고 있음.
상남자특.
“그거 존나 병신 같은 생각인데······.”
“당장 하자.”
그딴 거 안 따짐.
이게 인류가 남극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 * * *
약속한 시간, 이제 해도 저물어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야심한 시각의 숲속은 한 치 앞도 재기 힘든 심연이었다.
“정말 이 숲에 있다고?”
“마리에 선배가?”
저마다 무장을 하고 나온 예거, 라크, 도론, 유엘.
“고용주. 목표는 알겠는데, 어떻게 찾을 거지?”
다섯 명으로 이 숲을 다 뒤지려면 몇 년은 걸릴 거다. 그런 당연한 말을 구태여 하지 않았다.
“찾을 필요 없어. 물어보면 돼. 그렇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요?”
말을 섞는 건 이번이 두 번째. 나에 대해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드루이드는 고풍스러운 고목 지팡이를 바닥에 대고 눈을 감았다.
“정령들이시여.”
세간에서는 숲의 힘을 부린다고 표현되는 드루이드지만, 그들에게 이건 마력을 소모한 마법의 일종 따위가 아니다.
자연에서 나고 자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온 숲의 수호자들. 그들의 진정성은 한 마디 부탁만으로 숲을 움직인다.
밤중에 요동치는 숲. 환호성이 섞인 라크와 예거의 반응을 볼 때, 수많은 정령들이 유엘에게 호응하고 있는 거겠지.
“네, 부탁드려요. 그녀를 찾아주세요. 저희를 그녀에게 인도해주세요.”
게임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전 회차에서는 그 성능을 듬뿍 만끽했다.
숲의 정령들은 대부분이 하급정령. 전투에 도움은 안 되지만, 그 압도적인 물량은 탐색에 있어 ‘절대’라고 할 수 있는 성능이다.
숲이라는 지형에 한정해서 드루이드는 만능에 가까운 존재. 유엘을 서포터로 합류시킨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숲에서라면 그 누구도 드루이드의 탐색을 피할 수 없으니까.
“찾았어요. 숲의 깊은 곳··· 마물들이 서식하는 장소에 그녀가 있어요.”
마물이 서식하는 장소라··· 이유는 대충 감이 온다. 하지만 그거론 부족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테지.
나는 믿는다. 근거는 충분했고 그렇기에 목숨이 위험한 사지(死地)에 구태여 머리를 들이밀었다.
-끼에에에에에──!
숲에 울리는 서늘한 하울링. 헌팅 그라운드에 서식하는 마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요동치고 있었다.
“······.”
“야, 이거······.”
예거도 눈치챈 듯 답지 않게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제 추측이 맞냐는 듯 물어보듯이.
“······정령들이 두려워하고 있어요.”
“마물이라고 별반 다를 거 없는 것 같은데.”
“도론은 이런 경우를 본 적 있어?”
“몇 번은. 맹수들이 공포에 빠지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지.”
-최상위 포식자의 등장.
숲의 생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었던 마물들조차 두려워하며 곡소리를 낼 정도로 강대한 존재의 침입.
두렵겠지. 공포스러울 것이다. 단순한 강자에 대한 무력함이나 두려움 같은 게 아니다.
특급이라 분류되는 규격 외 등급의 마족이 뿜어내는 귀기는 용종의 ‘피어’와 비슷한 분류에 속했으니까.
-저벅저벅!
-저벅저벅!
점차 가까워질수록 비명소리가 잦아든다. 공포에서 무력감으로, 무력감에서 복종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질서의 정리.
이제는 나뭇잎을 밟는 소리만이 남은 숲속에서 우리는 보았다.
-꾸륵! 꾸르걱!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모인 공터. 그 안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소녀가 있다.
평소 단정하게 빗질한 물빛 머리카락은 선혈로 더렵혀지고, 유구한 미소는 굳어버린 피딱지로 가득하다.
-끄륵, 끄르륵···!
제 덩치의 반의 반도 안 될 작은 소녀에게 목덜미를 물리고도 저항조차 못 하는 아울 베어.
두터운 목과 가죽을 뚫고 들어온 송곳니가 만들어낸 통로로 일방적인 수혈이 계속된다.
죽을 때까지 피를 빨린다는 걸 알면서도 아울 베어도, 주변의 마물들도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특급의 귀기에 짓눌려 야수성을 억제당하는 짐승들은 한 끼 식삿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라크가 뒷걸음질 쳤다.
“히익······.”
“크르···!”
무심코 흘린 라크의 목소리에 홱! 하고 고개를 돌리는 흡혈귀.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빛 눈동자는 요사하게 찢어진 동공으로 변모해 있었다.
흡혈귀.
마물들의 왕.
최강의 마인 중 하나.
“전투태세. 유엘, 라크 후방으로. 도론, 예거 한 발자국 뒤에서 보조만. 전위는 내가 맡는다.”
“······.”
후방에서 마력이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 아마 정령과 라크의 유령기사가 소환되는 거겠지.
제2계율 구속에 의해 령을 인지하지 못하는 나완 무관한 일이다. 중요한 건──
「제3계율
마리에 듀나레프 : 관련도 C
백업 : 스테이터스 50% 상승」
오러 – { 하(1,480 +740) }
마력 – { 최하(920 +460) }
근력 : 26 +13
민첩 : 26 +13
체력 : 26 +13
오러 : 26 +13
마력 : 26 +13
【끈질긴 전사의 재생】
전투지속 중에 일정 HP 이하로 떨어지면 HP 회복력이 대폭 증가한다.
+회복력이 50% 상승한다
『나는 세계를 구한다.』
– 마리에 듀나레프를 살해 또는 구원하여 세계를 구하는 일보를 걸으십시오.
[제1계율 『나는 선한 이의 불행을 좌시하지 않는다』와 충돌합니다.] [마리에 듀나레프를 구원하십시오. 히어로 코린 로크. 행운을 빕니다.]마리에의 운명. 그녀가 이 세계에 끼칠 영향.
아마 이번 1막의 사건성이 아닌 후일에 있을 ‘세계에 끼치는 영향’을 감안한 백업 수치.
거기에 물리 존재를 향한 50% 추가 대미지까지 더하면, 지금 순간에 한정해 내 피지컬은 2급 기사 턱걸이 수준은 된다.
“쿠워어어어어어──!!”
“꽤에에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마물들. 아울베어부터 맷 보어, 혼랫 등 마리에의 귀기에 짓눌려있던 야수성이 우리들을 향해 터져 나왔다.
“그래, 짐승은 짐승. 누가 더 약한지는 쉽게 알아본다는 거지.”
등 뒤의 특급 마수와 끽해야 2급 나부랭이인 우리들. 누구를 적대해야 할지는 고를 필요도 없다.
흡혈귀 마리에 듀나레프 보스전의 첫 페이즈는 마리에에 의해 권속화된 마물, 마령과의 전초전. 이 전초전에서 승리하고 2페이즈까지 관통해야 한다.
[메인 퀘스트 : 마리에 듀나레프]※ 난이도 : S
전력은 전 회차의 반 토막 수준. 그래도──
“전투개시.”
이긴다.
모든 역경과 고난을 넘어 승리라는 결과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