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1
코린 사위 쟁탈전(3)
왕실의 자산이라고 하면 단순히 세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선입견에서 오는 오해다.
의외로 왕실에 배정되는 예산은 적정수준의 품위유지비용일 뿐, 주 수입원은 아니다.
왕실의 주 수입원은 대를 이어오며 축적해온 사재와 상단에서 온다.
남부 다도해로 뻗어나가는 무역로와 동부의 비단길을 통해 동방과 거래되는 교역로. 여객수의 품종개량으로 가능해진 대륙간의 교역.
이 외에도 왕실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도시개발에 맞춰 약간의 선제 부동산 투기나 한창 오르내리는 상단의 채권과 은행업 등 ‘왕실’이라는 절대적 신뢰성에 기반을 둔 여러 사업들이 많다.
요 십수 년 간은 왕실의 제1왕녀가 신교단의 성녀가 되면서 교단까지 끼어 사업 규모가 나날이 확장됐다.
향후 불거질 제1왕녀와 제2왕녀간의 왕위계승 다툼 같은 불안요소를 제외하면, 적어도 다비드 국왕 대에서 왕실의 사업이 뭉개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국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의 여지 없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추세에──
“폐하! 막달라 상단의 무역함대가 발이 묶였습니다! 저쪽에선 행정절차의 문제라고는 하는데, 날마다 보관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왕도로 이어지는 식량 수입처가 봉쇄됐습니다! 듀나레프 상단입니다! 듀나레프 상단이 식량공급을 중단했습니다!”
“요하네 상단주가 배신했습니다! 제멋대로 파산신청을 하고 교역로에 실을 물건들을 경매에 내놨습니다!”
“신도시 개발에 법정부가 태클을 걸었습니다! 개발일정이 무기한 연장된다고 합니다!”
“············.”
다비드 국왕은 나날이 전해지는 소식에 미간을 찌푸렸다.
노골적이다.
노골적이다 못해 적대적이다.
듀나레프에 의한 경제공격은 처음부터 스트레이트로 후려치더니 이젠 대마법 폭격을 하는 수준이다.
“망할 감자 중독자들이······.”
이러한 경제공격의 이유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최근 코린 로크에 대한 국혼 추진이겠지.
마르드 공작은 코린 로크에 대해 그닥 호의적이지 않다 들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이야.
“폐하··· 마르드 공작이 접견을 청했습니다.”
“······들라하라!”
선빵 갈겨놓고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민단 말이지?
오냐,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다비드는 마르드 공작의 접견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접견실 너머 웅장한 대문을 통해 위풍당당한 기세로 들어오는 물빛머리 사내.
그는 왕도 최고의 기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왕궁을 스리슬쩍 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양식도 디자인도 너무 휘황찬란하군요. 이거 조만간 보수가 필요하겠습니다. 저희 남부의 기술자들을 내드리죠.”
“됐네. 남부의 낡은 방식은 필요 없어. 유행에 쫓아오지 못하는 옛것들이지.”
“클래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폐하.”
“그걸 구식이라고 하네, 공작.”
“”······.””
이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지위에 있을 두 남자는 표정 없는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응시했다.
“그보다 이번에 돈 좀 썼군. 대체 얼마나 쓴 건가?”
“금화 5억장 정도 썼지요. 아직 절반도 못 태웠습니다.”
“······.”
다비드 국왕은 전에 없이 사나운 기세로 공작을 노려봤다.
왕가와 듀나레프는 대대로 협력하는 관계다.
듀나레프가 왕가의 기둥을 지탱하고, 왕가는 남부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듀나레프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는 엘 라스 왕국이 대륙의 패권국가로 성장하기 전부터 맺어온 밀약이다.
“자넨 왕가를 공격했어. 진정 해보자는 건가?”
“폐하, 먼저 벌집을 쑤신 건 폐하십니다.”
“내가 뭘!”
“코린 로크. 아시잖습니까.”
“자넨··· 반대하는 입장이라 들었는데?”
“지금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마르드 공작은 다비드 국왕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우리 마리가 코가놈을 당당히 차버린 뒤에야 차례가 오는 거지요. 결코 우리 마리가 두 번째가 될 순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우리 딸들은 자네 딸이 할 거 다하고 남으면 알아서 해라?”
“말을 그리 받아들이신다면 그렇지요.”
“공작···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군.”
두 남자··· 아니, 두 아버지는 눈빛을 교환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이를 지켜보던 사무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속내를 삼켰다.
‘어··· 그러니까 지금, 사윗감 채간 것도 아니고 혼약 제의했다고 이 난리를 피웠다고?’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엘 라스 왕국의 굳건한 동맹이 남자 한 명 때문에 깨지게 생겼다?
“우리 장녀는 성녀야! 차녀는 귀족파벌을 이끄는 수장이지!”
“우리 마리는 특급 마법사입니다!”
“협회에 뒷돈 먹여서 승급한 주제에!”
“능력이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지요!”
“자네 정말 해보자는 건가!”
“상대나 되시겠습니까?”
“이 사람이!”
“폐하! 죽여보시옵소서!”
“어어 자네 지금 선 넘었어!”
점점 유치해지는 두 사람. 사무관이 눈을 게슴츠레하고 뜨고 있을 때였다.
“어찌 노구를 놔두고 코린 로크에 대해 운운하시는가?”
접견실의 한구석. 대체 언제 나타난 건지 한 노인이 다가왔다.
화려한 왕궁에선 입구도 통과하지 못할 허름한 차림의 야인. 그러나 다비드 국왕도 마르드 공작도 이 노인을 잘 알고 있다.
“검제······.”
“가란드 아덴.”
“오랜만이오. 노구가 불현듯 찾아왔는데, 차나 한 잔 대접해주시게. 폐하, 공작.”
너무나 불손한 태도였지만, 한 시대의 정점이자 특급 기사 검제는 이래도 된다.
“듣자하니 요즘 내 손녀사위에 대해 왈가왈부하신다고.”
“코린 경이 왜 검제 그대의 손녀사위요?”
다비드 국왕의 당연한 질문에 검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리 정했으니까.”
“······.”
엘 라스 왕국의 왕권은 결코 약하지 않다. 패권국가의 정점인 왕의 권력이 약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검제는 듀나레프와는 다른 의미로 언터쳐블이다.
검제 가란드 아덴.
역사상 최강의 기사로 손꼽히는 초인.
전설이자 신화 그 자체인 저자의 영향력은 은퇴한 지금도 절대적이다.
당장 그가 한 마디만 내걸면 동부의 모든 무투파 가문들이 들고 일어서겠지.
“공작, 자식놈이 군마 사업과 도장 사업의 자금줄이 막혔다고 성화더군. 아는 게 있소?”
“글쎄, 푼돈 쓴 데를 일일이 기억하고 다니진 않아서.”
“한심한 놈. 돈 따위에 연연하더니 한 방 먹는군. 지켜야 할 게 많다는 건 약점이 많아지기도 하는 법이건만.”
검제는 자식이 벌이는 사업들이 줄창 도산 위기에 빠졌음에도 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래, 그는 원래 그런 이다. 가문의 흥망 따위엔 관심 없다. 그의 숙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위대한 검사의 탄생이니.
“하지만 당했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넘어갈 수 없다면?”
“보복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지켜보던 사무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덴 가문.
동부의 패자이자 국경선의 수호자.
그들은 척박한 동부에서 살아가지만, 그에 비례하여 군사력을 키운 집단이다.
숱한 마물들을 사냥하며 얻는 부산물, 야만인들의 침략에 맞서는 변경백으로서 키워낸 군사력은 왕국 제일이다.
그런 그들이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면 왕국이 분열된다. 아니, 이미 분열됐나?
왕국의 중심인 엘 라스 왕실.
거대한 부를 소유한 듀나레프 공작가.
왕국 최대의 무력을 소지한 검술명가 아덴.
이 셋이 부딪친다.
왕국 역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대격변인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이 모든 게 남자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사무관은 정신이 아연해졌다.
* * * *
「듀나레프. 왕실 상단 적대적 인수! 왕국 경제는 풍전등화!」
「아덴가. 남부와 왕도 영지선에 병력 배치! 왕국 역사 이래 대규모 영지전이 개시되나? 왕국안보의 행방은?」
「왕국 재무부. 듀나레프 자산에 대한 압수수색 발부! 강도 높은 세무조사 실행? 비자금 1억 골드 발견!」
이, 이게 뭐시당가······.
뭐지?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협회장이 됨으로써 보고하고 왕도의 호텔에서 지내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니, 듀나레프가 왜 왕실과 아덴을 경제제재를 해?
아덴은 왜 사병들을 전진배치시켜?
왕실은 왜 이 시국에 대규모 세무조사를 하지?
나는 신문의 결말부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으며 파르르 떨었다.
「이 모든 게 코린 로크의 사위 쟁탈 때문! 코린 로크! 희대의 영웅인가? 망조의 짐승인가?」
“나, 나 때문이라고? 이게? 왜? 내가 뭘? 뭘 했다고?”
다비드 국왕의 국혼 제의 때부터 뭔가 싸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르드 공작이 왕실과 아덴을 적대하기 시작하더니 왕실, 아덴, 듀나레프의 삼파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왕국이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아니!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할 판국에 이게 뭔 지랄인데! 이게 왜 나 때문인데!”
난 억울해! 억울하다고!
이제 곧 시작될 재앙에 대비해야 할 이 시기에 왕국이 분열되어선 안 된다. 그것도 하필이면 나 때문에?
“절대 안 되지··· 절대 안 돼!”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 * * *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만남을 경험하고 있었다.
“······.”
“······.”
“······.”
왕궁 깊숙한 곳의 밀실. 내 앞에 이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세 남자가 있다.
다비드 국왕.
마르드 공작.
검제 가란드.
왕국이 실시간으로 분열되고 있는 가운데, 사정사정해서 한자리에 모인 세 사람이다.
문제의 중심이 나인 것도 있고, 내가 명색이 공식적인 특급 기사에 가디언 협회장인 덕에 어찌어찌 세 사람을 한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저··· 아버님들.”
“아버님은 무슨. 장인어른이라 부르시게.”
“누가 네 아버님이야.”
“이 노구는 할아버님이라 부르게.”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제각각 대답하는 세 사람. 누구 한 명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처지인지라 조심스러워진다.
“다들 자리에 걸음하시게 한 건 다름이 아닙니다······.”
나는 정말로 이 사태가 믿기지 않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진짜로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최근 왕국의 소요사태에 대해··· 부디 진정하시고······.”
“코린 사위.”
“아, 옙! 국왕폐하.”
“길게 말할 것 없네. 자네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선택하면 되는 일일세.”
“······제가요?”
다비드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입장만 명확하게 한다면 추하게 그 말을 뒤집을 만큼 배알이 없진 않겠지.”
“아니, 전하······.”
“간단하네. 우리 장녀 에스텔 하닷사 엘 라스와 차녀 미르암 엘리사벳 엘 라스. 두 사람 모두 처로 맞이하고 내 아이들과 공동국왕이 되어 만인의 지존이 되는 걸세.”
“왕위? 그런 속세의 멍에가 무에 그리 대단한가? 우리 같은 무인들은 먹고 먹고 먹어치워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면 그만. 코린 로크, 내 손녀딸의 처녀를 취하고 더 강한 혈통을 남기는 거다.”
“쳇···. 권력? 무력? 그거 다 돈으로 살 수 있다. 게다가 마탑이 무너진 지금은 우리 듀나레프가 마도의 중심이지. 우리 마리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감자가 생겨.”
세 아버님들은 각자 제 사위가 되는 것의 이점을 말했다.
권력과 왕실이냐.
무력과 아덴이냐.
재력과 듀나레프냐.
어느 쪽을 취하든 그 과실은 너무나 달콤했다. 아마 플레이어가 온다 해도 이런 과실은 취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안 합니다.”
확실한 건 이 혼담에 나는 응하지 않을 거란 것이다.
“흐음?”
“어째서인가?”
“······.”
내 단호한 대답에 세 사람은 저마다의 반응을 보였다.
“왜지? 무려 두 왕녀들과 동시에 혼인할 수 있는데? 차기 왕위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너는 타고난 무인이다. 노구의 손녀딸들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어. 너희들이 함께한다면 더 높은 경지에도, 더 굉장한 후계도 낳을 수도 있을 텐데?”
“내 딸이지만 마리는 어디 가서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신부감이다. 듀나레프의 부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
그래, 그들의 말대로다.
에스텔과 미르암, 아리샤, 루니아, 마리에··· 그녀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녀들의 미모뿐 아니라 이에 딸려올 재산, 권력, 재력까지.
“돈과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흥···! 내 앞에서 거짓을 고하지 말게. 그것들에 관심 없는 이는 이 세상에 없어.”
“더 큰 가치가 있으니까요.”
“······더 큰 가치?”
세 사람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세계를 구해야죠.”
내 말에 세 사람이 침묵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직 모른다.
“곧 세상이 위기에 빠질 겁니다.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너무 많은 것들을 잃을 수도 있어요.”
“당장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마리에, 아리샤, 루니아, 미르암, 에스텔. 모두 매력 넘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만약의 경우. 남겨질 사람들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내가 죽는다면?
혹은 타테스와 동귀어진해야 한다면?
망설일 수도 있겠지. 두려워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남겨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무책임하게 지금 누군가와 맺어질 수 없다. 그 최악의 경험은 3년 전, 회귀하기 전으로 충분하다.
“부탁드립니다, 어르신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분열할 게 아니라 힘을 합치고 대비해야 해요.”
“대체 그게 무슨······.”
“다비드 국왕 폐하. 폐하께선 제게 약조하신 게 있지요. 면책권 외에도 그 어떤 것이든 제가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들어주신다고.”
“······그래, 그랬지.”
“왕가의 주인이 약속한 바를 이행해주십시오. 국혼 제안을 취소해주시고 분쟁을 멈춰주세요.”
나는 국왕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공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듀나레프 공작 각하. 듀나레프는 제게 갚을 수 없는 빚이 있지요. 각하의 후계자, 당신이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빚졌습니다.”
“······인정한다. 듀나레프는 네게 생명의 은원을 빚졌다.”
“그 빚, 지금 갚아주시죠. 당장 왕실과 아덴에 대한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원상복귀하세요.”
“······.”
“검제 가란드 아덴.”
“이 노구는 네게 빚진 것이 없다만?”
“강자와의 싸움을 고대하시죠? 당신이 끓어오를 만한 자들과의 생사결 말입니다.”
“현 시대에 너 말고는 없어 보인다만?”
“있습니다. 그만한 괴물들이. 오늘부로 동부에 틀어박혀 있으시죠.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길 겁니다.”
“흐음······.”
세 사람을 설득할 재료는 이게 다다.
제발 이성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
아니, 애초에 이 양반들이 이성적이었으면 지금 내 혼사 문제로 이 지랄이 나진 않았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일단 세상 좀 구하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지금부터는,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대비해야 할 일들. 부탁해야 할 일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성과들로 왕국의 실세들을 설득한다.
회의를 빙자한 설득은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 * * *
“후아······.”
졸지에 사위 쟁탈전의 중심에 서서 왕국의 실세들을 설득하고 차후에 있을 일들을 설명해가며 깊은 대화를 나눴다.
회의실에서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궐련까지 피워가며 몇 날 며칠을 지세운 결과.
“어떻게든 됐다······.”
듀나레프는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아덴은 사병들을 철군시켰으며, 왕실은 세무조사를 취소했다.
셋 다 어떻게든 봉합한 느낌이다. 물론 이것도 임시방편이라 언제 봉합이 찢어질지 모르지만······.
어쨌든 어찌어찌 넘어가고 왕궁 중심가의 호텔방으로 귀환 중이다.
“벌써 25일인가.”
12월 25일.
사실상 마지막 휴가나 다름없는데, 태반을 요상한 일에 휘말려 보내고 말았다.
내일부턴 마리에나 화란도 귀환할 테고, 루니아와 아리샤도 준비를 마칠 것이다.
곧 파이널 페이즈가 시작되고, 서리거인과 구교가 준동하며 최종전의 개막이 시작된다. 그때까진 추이를 지켜보며 무(武)를 단련할 생각이다.
-철컥!
“자자. 하루만 푹 자자······.”
그래도 오늘 하루는 푹 쉬어야겠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장난 아니야──
─────
“읏···?!”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자욱한 연기와 달짝지근한 향기. 노골적일 정도의 미혹향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왔어?”
콱! 하고 내 손을 붙잡는 여인의 손. 그녀를 인식한 순간, 맥없이 끌려가 침대 위에 던져졌다.
힘을 빼긴 했지만, 날 깔아 눕힌 붉은빛의 요사한 시선이 나를 내려다봤다.
“오랜만이야, 경.”
“오랜만입니다, 왕녀님······.”
미르암 제2왕녀. 그녀의 암적색 눈빛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약은··· 안 통한다는 거 아실 텐데요?”
“알아. 하지만··· 약간의 약과 분위기가 좀 필요했거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
모를 리가.
본래라면 아카데미 붕괴 사건 이후, 나즈레아를 정화한 뒤,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내게··· 그녀가 접근했다.
「경, 쓸쓸해 보이네. 내가··· 위로해줄까?」
12월 25일.
3년 전.
전 회차.
그녀가 나를 덮치고,
우리의 아이가 잉태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