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4
종말의 예언(2)
“허참······.”
전 회차에서 나와 박시후는 ‘게임’에 비하면 꿀이란 꿀은 죄 빨았다.
제대로 퀘스트 절차도 안 밟고 히든피스를 얻었으며, 치트 레벨업 수준으로 레벨링을 하여 이지하게 클리어한 편이다.
엑스트라로 빙의해 맨몸으로 창질 죽어라 하긴 했지만, 박시후가 먹여주는 영약 달달하게 챙기니 내 성장 난이도가 엄청 수월했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강해졌고, 다른 이들의 인정도 받았으며, 초고화력 초고성능 파티를 완성했지만··· 그래도 한계란 게 있었다.
가령 재력.
플레이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끽해야 금화 수만 장이다.
엔드 컨텐츠로 분류되는 흐레스벨그 등의 여객수 육성에 소모되는 금화가 족히 일만 오천 장 이상.
가디언즈 사무소 설립비용이나 직속 용병단 고용비용까지 생각하면 2~3만 골드는 벌어야 이게 해결된다.
물론 플레이어 자신과 파티원의 무장, 아이템 비용은 제한 금액이다.
“코린, 이달 청구서 왔더라. 예산이 너무 많이 남았네. 그래서 사기진작 차원에서 서커스하고 셰프들하고 바디케어 전문가들 불렀어. 나랑 같이 마사지 받으러 가자~”
흐레스벨그 3마리.
최고급 와이번 56마리.
주요단원 십수 명과 예하 워스카이 용병단 300명 및 아덴 검사들 300여명, 전 마탑 출신 노예 400명··· 왕국 최고의 장인들만 모아 풀세트 완비.
식량 및 소모품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상품만.
“코~린~도옹새애앵! 새 예언문을 전국 각지의 성당에 배포하고 있어. 군수품 준비도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고! 구교 애들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 꺄하하!”
에스텔. 지온 교단의 성녀.
본래라면 구교와 합심해 왕국을 혼란스럽게 해야할 주체가 지금은 성녀에 의해 대숙청을 당했다.
교황과 추기경들이 갈려나가고 남아있는 건 성녀의 기적만을 믿는 무지한 신자들뿐.
그리고 성녀는 자신이 독점하게 된 신망을 200% 활용하고 있다.
본래라면 제루엠의 종말의 예언들이 실현되며 왕국이 혼란에 휩싸였고, 제루엠의 입지를 확장시켰을 것이다. 이는 당연히 총력전인 최종전에서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거짓 예언에 맞서 거짓 예언으로 받아친 에스텔 덕에 민중의 혼란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태양’이라는 구원자를 향해.
에스텔이 말하는 새로운 태양은··· 말할 것도 없이 나다.
이 누나, 진심이다. 진심으로 날 신으로 만들어 추앙하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리라!」
「에스텔 성녀전하. 종말에서 구원을 말하다!」
「새로운 태양은 대체 누구인가!」
지온 교단과 언론에 의해 적극적으로 퍼나르는 성녀의 예언은 온 왕국으로 퍼지고 있었다.
즉, 종말이라는 절망적인 예언이 구원이라는 희망으로 마무리 된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예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선동과 날조가 먹혀들 줄이야.
“이거 이지 수준이 아닌데.”
듀나레프의 말도 안 되는 재력··· 거기에 절대적 권위를 가진 성녀까지······.
이쯤되면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닐까?
“그럼 북부 조사단의 구성을 발표하겠다!”
왕궁의 사열장. 군대의 출정식을 연상케 하는 행사장 단열 위에서 다비드 국왕이 직접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급이 안 맞는 일이다. 명목상으론 기상청의 기후샘플 조사였으니.
아직까지 왕국 상층부는 계속되는 겨울을 일시적인 이상기후로 보고 있었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냥 날씨가 좀 미쳐 돌아가는구나 싶겠지.
“본 조사단은 현 시국의 이상기후의 근원과 성녀 에스텔의 예언에 대한 진상을 살피는 바. 막중한 임무를 짊어졌음이다.”
여기서 성녀의 예언이 추가된다.
신과 연결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직접 신과 대화해 결론을 내렸다는데 누가 태클을 걸겠는가?
“성녀는 이번 일의 근원이 북부와 연관되어 있다 예언하였다. 하여 이번 조사대의 규모를 늘리고 유사시 원정군이 출정할 것이니 전군은 월동 준비를 하라.”
물론 자신들의 ‘종말의 예언’을 왜곡한 성녀에 대해 태클을 거는 구교도 있었지만, 에스텔은 시종일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들었음. 진짜임.’
‘아 주님한테 들었다니깐?’
‘너 내 말 못 믿어? 나 성녀인데?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왜 이리 말이 많아?’
좀 함축하긴 했지만, 대충 저런 양아치 같으나 대답으로 돌려주긴 했다. 그 결과──
“코린 로크 남작에게 이번 조사단의 권한을 수여하며 조사단 구성은 자율에 맡긴다. 에스텔 하닷사 엘 라스 성녀에게 신성 원정군을 구성할 권한을 수여한다.”
나는 이상기후를 조사하는 조사단으로, 동시에 유사시를 대비한 원정군을 움직일 권한까지 가지게 되었다. 원정군 자체는 에스텔 권한이지만, 다 짝짜꿍하는 거니 별다를 게 없다.
“슬슬 시작이군.”
“네 뜻대로 됐구나.”
스승님은 싱긋 웃으며 내 옆에 자리했다.
조사단 인원은 제1차만 800명. 하지만 그 800명의 구성원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에린 스승님, 조제핀 여사, 마리에, 화란, 아리샤··· 그리고 나.
특급 전력만 여섯. 거기에 나머지 794명 전원이 기사와 마법사로 이루어져있다.
“이 정도면 전쟁을 해도 되겠습니다.”
조제핀 여사는 이 말도 안 되는 구성에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대부분은 협회장 권한으로 데려온 예비 가디언들. 거기에 300명이 노예 마법사들이라 공식적인 조사단 인원은 500명입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건가요?”
“바로 그렇지요.”
각 지역에서 우후죽순으로 발발할 전쟁을 대비해 예비 가디언들을 배치했고 나머지는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을 모조리 긁어모은 셈이다.
이 800명의 기사와 마법사라는 군단급 화력의 조사단원들을 데리고······.
[서브 퀘스트 : 영락한 여전사들]※ 난이도 : S
※ 기한 : 4월 31일.
“북부 장벽. 첫 진출지는 그곳입니다.”
원작의 내용상 붕괴하여 파멸해야 할 곳.
반수 이상이 죽어나가 끝내 도피한 끝에 플레이어에게 다다를 북방의 여전사들.
타테스 발타자르에 항거하는 그녀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줄 장벽을 수호해야 한다.
* * * *
겨울방학이 시작하고 나서부터 예비 2학년 라시드는 오랜만에 부자간의 협업에 나섰다.
“읍··· 으읍! 읍!”
암살일족 하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기사도의 길을 걸으려던 자신이 그 수장과 함께하는 아이러니라니.
납치, 뒷조사, 암살, 시설파괴.
타고난 어둠의 일족인 하신 일족에게는 밥 먹듯이 해내는 일들이다.
라시드는 자신이 입학하고나서부터 기사의 모범이라 할만한 선배에게 이런 부탁을 받은 것이 못내 꺼림칙했다.
그런 자신에게 코린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결과가 모든 걸 정당화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근데 세상에는 씹새끼들이 너무 많거든.」
「본인 이야깁니까?」
「젠장!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도 알아! 안다고!」
어쨌든 그가 제 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리고 거액의 금화를 지불해 의뢰한 일들이 지금 결과를 내려고 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제발! 제발 그만해애애애!!
비명이 울리는 지하실. 라시드는 자신이 꿈꾸던 기사도와 점점 멀어지는 일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수집한 자료들을 보며 그렇게 잘못된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씹새끼들이네, 이거.”
생각보다 진실이 충격적이다. 너무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사람이 담담해진다는 걸 라시드는 이제 알았다.
“후우~ 생각보다 질긴 놈이군.”
철로 된 지하실 문을 삐걱거리며 열고 나오는 아버지 시난 이브 살만 무스탈리.
그의 얼굴에는 익숙한 향내와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일이 잘 안 되십니까?”
“괴이한 신념을 가진 놈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지. 하지만 그것도 곧 끝나.”
“서두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듣자하니 원정군 구성에 착수하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빠르군. 못해도 몇 달은 걸릴 사안일 텐데, 고용주의 정치적 역량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야.”
그거··· 다 여자들 덕일 겁니다, 라고 라시드는 덧붙이지 않았다.
그는 존경할 만한 기사이긴 했다.
제 기사도의 멘토로 삼아도 과분할 정도로 그는 타고나기를 선한 영웅이다. 하지만······.
‘여자들이 너무 많아.’
딱히 여색을 밝히는 건 아닐진대, 그의 주변에는 여인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비범한 존재들로만.
이번 사태의 준비도 그는 최소 5월에서야 결실을 볼 것이라 예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5월이 뭔가?
듀나레프라는 무진장의 재력과 아덴의 무력,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녀의 거짓 예언까지.
그 난잡한 여자관계가 시너지를 발휘해 모든 일을 초고속으로 이지하게 해결해버렸다.
거의 인과를 비튼 수준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무슨 반동이 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에휴······.”
“뭐냐, 아들아.”
“아뇨. 세상에는··· 팔다리가 찢겨도 부족할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그리 평한단 말이냐.”
“죄라면 죄지요.”
존경하는 선배이긴 하나, 라시드는 그가 맞이할 엔딩이 심히 걱정됐다.
‘찢기겠지?’
뭐로 흥한 자, 뭐로 망하리라, 그런 말이 떠오르는 라시드였다.
* * * *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엘 라스 왕국은 지역별로 그 특색이 명료하다.
동방과 이어진 무역로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동부.
드넓은 대평야와 풍부한 자원으로 부유한 남부.
종교의 성지로 우뚝선 서부나 문화와 행정의 중심인 왕도.
대륙의 지역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특색이 있지만, 북부라고 한다면 일단 두 가지 의미로 분류된다.
첫째는 엘 라스 왕국의 북부.
왕두 중심부로부터 분류상 북부로 분류되었으나 몇 가지 이유로 인구수가 적은 척박한 땅.
예로부터 ‘장벽’을 제외하면 왕국이 손을 놓다시피한 지역이라 중앙행정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독립성 덕에 장벽의 끝자락에는 강철군도의 마탑이라 불리는 마법의 성지가 존재했으니 이 지역에는 그나마 이런 것 외에는 할 게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척박한 땅인 이유도 있지만, 건국 시기부터 숱하게 왕국을 괴롭혀온 야만부족들이 침공해오기 때문이다.
왕국은 수시로 저 북부의 야만인들을 토벌하려 애썼으나 예로부터 척박한 땅에 기거하는 이들을 몰아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결국 왕국은 노스킹덤을 아우르는 거대한 장벽을 세워 그들의 진출을 막아서는 것으로 봉합했다.
자, 이렇게 왕국의 시점에서 본 북부가 결론났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미의 북부는 무엇인가. 여기서부터는 대분류에 속한다.
왕국이 세운 장벽 너머.
대륙만큼이나 광대한 혹한의 대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저주받은 땅에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언니, 전서구가 도착했어요.”
“줘보렴, 힐드.”
설산의 눈밭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백발의 여인은 그녀가 전한 전서구를 읽었다.
[미스트가 저지 중. 서리거인 등장. 자매 중 이탈자 발생. 한계에 봉착.]제 자매가 전한 소식은 암울했다.
니플헤임. 신화종말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진 신화의 흔적들.
본래라면 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어야 할 그 마경이 한 남자에 의해 부활하고 있다.
타테스 발타자르.
그 남자의 목적은···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언니··· 우리가 정말 막아야 할까요?”
“힐드······.”
“그렇잖아요. 그가 성공한다면··· 우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어요. 이대로 지내봤자 영락한 채 결국 사라질 거예요. 그러니까 창의 자매들도··· 올룬도, 알비트도 그자의 편에······.”
「창을 든 사내가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실 거예요.」
자매들을 반으로 갈라서게 만든 운명을 읽는 자매가 한 예언. 그 예언 탓에 절반의 자매들이 발타자르의 전처녀가 되었다.
그렇기에 백발의 여인은 제 자매들을 이해했다.
신들의 몰락 이후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영락해버린 자신들에게 새로운 전장을 부여해줄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허나, 이는 지금의 세상을 저버린다는 걸 의미했다.
“힐드. 저 작은 개울만 넘으면 그곳에 게론과 아이들의 마을이 있어. 그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이를 받아준 집안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그 마을 너머의 숲에는 숲지기들의 마을이 있지. 자연을 가꾸고 정령들과 소통하며 혹독한 겨울을 나는데 도움을 주는 아이들이야.”
“언니···.”
“그뿐만이니? 또 있단다. 오랜 거인의 혈통을 이었으면서도 때때로 사냥한 고기를 나눠주던 하프거인들도 있지.”
백발의 여인, 브륀힐트는 천년의 세월 동안 보았던 이 땅의 역사를 떠올렸다. 신들을 보좌하고 최후의 전쟁에 참전했어야 할 사명을 지닌 자신들이 다시금 살아야 할 이유.
“그들은 갈 곳이 없어. 우리들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할 거야.”
곧 마수와 거인들이 내려올 것이다. 겨울의 주인이 강림할 것이며 세상이 흔들릴 것이다.
브륀힐트는 그 세상의 풍파 속에서 휩쓸릴 북부의 주민들을 살리고 싶었다.
“우리는··· 그때 죽었어야 했어요. 영광스럽게 죽을 기회를 놓쳤어요.”
“나도 안단다.”
너무 오래 살았다.
너무 오래···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신들을 위해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이하지 못한 여전사들은 이렇게 영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저희가 최후까지 싸운다 해도··· 결국 모두 죽을 거예요. 살아남으려면······.”
“우리들을 가로막는 왕국의 장벽을 넘어야만 하겠지.”
“그들이 저들을 받아줄 리가 없어요. 저들 눈에 우리들은 모두 야인들일 테니까.”
“······.”
그녀 또한 이를 알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필요하다면··· 자매들과 부족들을 모아 저 장벽을 무너뜨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