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8
북부 장벽(4)
도시의 중심부. 임시라곤 하나 마법사 30명이 달라붙어 건축한 숙소에 코린 가디언즈 멤버들이 묵고 있다.
낮의 고된 노동 끝에 간신히 찾아온 식사와 티타임의 여유. 아리샤는 왕도 블렌딩의 고급 홍차를 만끽하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는다.
“장벽의 가벽이 갑자기 떨어지는 거예요. 보수한다고 이것저것 덧댄 게 덜 박혔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하마터면 사람이 크게 다칠 뻔 했는데──”
요컨대 제가 활약하여 다칠 뻔한 사람을 구했다, 정도의 자랑할 법한 이야깃거리다.
그녀의 대화 상대는 맞은편에 앉아서 삶은 감자를 집어먹고 있는 마리에.
그녀는 어째선가 수면이 흔들리는 찻잔을 멍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찻잔의 수면이 흔들리는 이유는 그녀의 손이 달달 떨리고 있는 탓이다.
“마리에 선배?”
“······.”
아까부터 이야기에 집중을 못한다. 평소라면 그렇구나! 하고 잘했네! 칭찬해줬을 상냥한 선배가 말이다.
“선배? 선배!”
“어? 어? 어?!”
화들짝 놀라며 반응하는 마리에. 아리샤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뭔가 정신이 없어 보여요.”
“어, 어어··· 그, 그게 말이지.”
낮에 우연찮게 듣고 만 화란과 조제핀의 대화. 마리에는 그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임신? 화란이? 아니,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 화란이다. 란은 둘째 치고 화가? 했다고? 정말로?
잘못 들은 거겠지. 잘못 들은 거야해. 그럴 리가 없다구.
마리에가 깨질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아리샤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을 무렵.
-끼익!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화란의 무뚝뚝한 얼굴이 보였다.
“화란 씨! 야간 작업은 끝나셨나요?”
“응.”
아리샤의 말에 평소대로 짧게 대답하는 화. 마리에는 침을 꿀꺽 삼키며 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밥. 먹었어?”
“네, 배식시간이 정해져서 먼저 먹어버렸네요.”
“응. 나는 그냥 잘래··· 아니다.”
드물게도 의견을 바꾸는 화.
“콩··· 있어?”
“코, 콩은 왜?”
“아기··· 아니, 몸에 좋대.”
“······!”
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하고 제 귀를 의심하는 마리에.
현실을 계속 부정하는 그녀에게 수상쩍은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콩!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웬 통 하나가 데구르르 구른다.
“화란 씨. 뭘 떨어뜨렸──”
아리샤가 그녀를 불러세우며 떨어진 무언가를 불러세웠다. 떨어진 것을 주워 주려던 아리샤는··· 저도 모르게 그것의 정체에 눈이 간다.
“응? 분유?”
왜? 하는 마음의 외침을 억누르면서 아리샤는 슬쩍 화란을 올려다봤다.
“저··· 화란 씨? 이건?”
“분유. 앞에서 샀어.”
“어··· 혹시 고아들 중에 아기가 있었나요?”
“아니?”
그럼 왜···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화가 사시나무 떨리듯 달달 떨고 있는 마리에에게 다가갔다.
“마리에.”
“어? 어어?”
“혹시 젖 나와?”
“어?”
그 뜬금없는 질문에 두 사람의 동공이 정지했다.
“그, 그건 왜?”
틀렸다. 여기선 안 나온다고 대답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질문과 지금까지 쌓아둔 의심에 마리에는 혀가 꼬여버렸다.
“······그냥. 분유보단 모유가 더 좋다고 해서. 너, 많이 나올 거 같으니까.”
“어? 어? 어? 아니······.”
그게 왜 필요해? 왜 필요한데!
마리에의 시선에 화는 묘한 간격으로 ‘안 나오려나?’하곤 돌아섰다.
“음··· 어······.”
아리샤도 이제는 눈치챌 수밖에 없다.
“······.”
“······.”
화란이 사라진 거실.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며 기나긴 침묵을 이어나갔다.
* * * *
“후우~ 이쪽은 다 됐다.”
에린 다누아는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고결함과 끈기. 성실함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도시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꾸준히, 쉬지 않고 성벽과 이곳저곳에 룬을 새겼다. 무려 십만 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룬이었다.
“코린 보고 싶다~”
요 며칠 바쁘게 움직이며 에린은 코린을 보러 가지도 못했다.
이 도시에서 룬을 다루는 술사는 그와 자신뿐인데, 코린은 태양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마물 둥지 토벌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여유가 남지 않는 코린을 대신해 장벽 곳곳에 룬을 새겨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 중이다.
‘슬슬 그녀들도 올 때가 됐고.’
가장 이상적인 건 에린이 그녀들과 먼저 접촉하는 것이다. 노스킹덤의 반 타테스 부족들과 장벽의 왕국군이 부딪치더라도 최소한의 충돌로 끝내야 하기에.
“클라라, 이쪽 지역은 다 했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줄래?”
“······.”
“클라라?”
“아··· 예! 뭐, 뭐라고 하셨죠?”
에린은 어딘가 정신이 없어보이는 조제핀을 위해 잠시 멈춰섰다.
“무슨 일 있니?”
“아··· 아뇨! 아닙니다!”
평소답지 않게 리액션이 과하다. 에린은 100년 가까이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그 궤리를 단숨에 꿰뚫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구나.”
“으으······.”
역시··· 그녀를 속일 수는 없었나. 조제핀은 제 어머니나 다름없는 에린의 인자한 시선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말해보렴. 내 식견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니.”
아뇨··· 당신이 알면 안 될 거 같은데요··· 라고 조제핀은 말하지 못했다.
“그··· 당신의 친구로서냐···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냐··· 그런 고민입니다.”
에린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응원하는 입장으로서 당장이라도 정보를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제핀은 코린과 화란의 선생님이다. 두 사람의 민감한 관계를 허락도 없이 말하는 건 도덕성에 어긋났다.
“신기한 고민이네. 그럼 후자를 택하렴.”
“어··· 그래도 괜찮은가요?”
“그럼. 우리는 아이들의 선생이란다. 아이들에게 최선인 선택을 해야할 의무가 있어.”
그렇게 말하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에린. 그 미소를 보면 볼수록 조제핀은 괴로워졌다.
* * * *
왕국의 변경. 북부는 본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자갈밭, 수시로 침공해오는 야만족들과 범람하는 마의 존재들.
그 혹독한 환경의 미개척지에 사람을 들이민 것은 엘 라스 왕국이다.
왕국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속된 말로 고기방패를 세운 것이다.
허나, 지원금과 인력을 들이민들 북방의 평정은 고된 일이었다.
급기야 노스킹덤이라 불리는 야만족들의 연합체까지 나타나면서 왕국의 북부는 지지부진한 진출과 출혈 끝에 장벽이라는 것을 세우며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왕국은 북부를 방치했고, 방치된 북부에서는 마(魔)가 싹텄다.
웅혼한 서리발.
삭풍의 칼날발톱.
위대한 곰.
북부 장벽 너머에서 오랜시간 악명을 떨쳐온 3대 마수.
비록 좌천되어 이곳 변방의 한직을 구르고 있는 비욘이지만, 그 3대 마수란 것들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는 들어 알고 있다.
선임 경비원이 이번 해에는 미뤄선 안 된다며 사정하는 통에 장벽 근처의 마물 둥지를 토벌할 적에 멀찍이서 목격했던 것이다.
-쿠오오오오오오오···!
「대, 대장님. 놈입니다! 웅혼한 서리발이에요!」
「도망쳐야 합니다!」
출정을 나올 때만 해도 비욘은 만약 그 3대 마수를 목격하게 되면 제 손으로 베어버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용이었음을 그는 웅혼한 서리발을 보고 한눈엘 알아챘다.
저것은, 괴물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허둥지둥 도망쳤던 것이다.
-크오오오오오오!
하지만 그 괴물이, 경악스러운 3대 마수가.
“전위조 버텨. 마법사조 순차적으로 화력집중한다.”
“너무 무리할 필요없다! 적당히 상대하다 빠져!”
사냥당하고 있다.
샤낭감이 아닌 사냥꾼이, 압도적인 전력을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사냥당하고 있었다.
“3대 마수도 다구리엔 장사 없지.”
거대한 몸집으로 모든 것을 짓밟던 워 맘모스 웅혼한 서리발도──
싸리눈의 휘날리는 설원에서 하얀 털가죽으로 위장하며 인간을 사냥하던 삭풍의 칼날발톱도──
“그우어어어어···!”
“코린 경, 조심하십──”
-콱!
“우어?”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하프거인들조차 찢어발기던 위대한 곰조차.
“가죽 안 상하게 살살 칠게.”
“우어?”
-콰득!
자신의 강력함을 믿고 영역을 나누며 자리를 지키던 괴물들이 압도적인 힘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 * * *
장벽 주변의 네임드 솎아내기는 손쉽게 끝이 났다.
‘몬스터 웨이브’에 합류해 왕국을 엉망진창으로 할퀼 예정이었던 북부 마물 삼대 네임드.
그들은 본디 필드보스격으로 완성된 최종육성 파티로도 난해한 상대다.
하지만 그것도 수백 명의 기사와 마법사 사단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이걸로 위험한 놈들은 다 정리했네.”
눈덮힌 들판을 가득 매운 마물의 사체들. 흘러내린 내장마저 차갑게 식어 비린내가 올라왔다.
【전쟁기수】
– 당신은 전장의 상징이 됩니다. 모든 전쟁에서 가장 빛나는 기수이며, 쓰러져선 안 되는 중심입니다.
– 전장에서 주목받습니다. 아군의 선망에 따라 능력치가 변화합니다.
– 당신이 쓰러질 경우 모든 아군이 심리불안에 빠집니다.
※당신에 대한 주목도가 60%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그래, 슬슬 대규모 전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때가 됐지.
내가 북부 마수 사냥에 직접 나선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생생한 전장에서 주목되는 플레이어는 그들의 선망과 희망을 짊어지고 강해진다.
전쟁기수는 그러한 특성이었고, 구현되지 않은 버프인 계율을 제외하면 손꼽히는 버프형 특성이었다.
‘내가 활약하면 할수록 더욱 능력치를 얻는단 말이지.’
위대한 곰을 일대일, 힘 싸움으로 때려눕히자 주목도가 20%나 올랐다. 박시후 녀석이 대규모 전쟁에서 눈에 띄는 짓을 구태여 한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겠지.
“보스.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지.”
다가오는 도론. 저 녀석이 물어볼 거야 뻔하지.
“털가죽 쓸만한 것들은 방한장비로 가공하게 나누라고 해. 나머진 알아서 분배하고.”
“우리 고용주는 아랫것들을 잘 챙겨서 좋다니까.”
“위대한 곰과 삭풍의 칼날발톱 부산물은 남겨둬. 그건 쓸데가 있으니까.”
“워 맘모스 웅혼한 서리발은?”
“구워먹든 삶아 먹든 알아서 해.”
오늘 사냥한 마물만 삼천 마리가 넘었다. 그 부산물을 정리하면 상당할 테지.
하지만 이렇게 부산물 챙기는 것도 지금뿐이다. 본격적인 웨이브가 시작되면 장벽 바깥으론 나가지도 못할 테니.
“보스는 먼저 들어가. 뒷정리는 우리가 하지.”
윗사람의 특권으로 잡일은 부하들에게 맡겨두고 장벽 안으로 들어왔다.
“후~ 지치는군.”
태양을 유지하기를 거진 일주일. 마물 사냥까지 나섰다.
이제 남은 건 그녀들과 접촉하는 것뿐. 그때까진 쉬어야겠어.
비틀거리며 도착한 숙소. 가디언즈 사무소의 호화로운 침대와 비교하면 침대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딱딱한 목재 프레임 위에서.
“······.”
곧바로 잠이 들었다.
깊고, 깊은 잠에 들었다.
* * * *
요 며칠 간 화와 란은 조제핀의 조언에 따라 육아에 대한 공부를 했다.
아기가 딸랑거리며 가지고 놀 장난감, 아기가 소화시킬 수 있는 음식.
분유보다는 모유가 더 좋다. 구할 수 있다면 젖먹이 유모를 구하는 게 좋고 가장 좋은 건 엄마가 직접 물려주는 것이 베스트란 것도.
「우리 가슴에서 젖이 많이 나올까?」
두 사람은 제 가슴에서 아이가 충분히 먹을만큼 모유가 나올지 걱정했다.
또래와 비교할 때, 화란의 육체성장은 그리 더딘 것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비교대상이 마리에나 아리샤다.
특히 마리에의 그것은 이게 사람인지 젖소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라 무심코 짜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으니.
두 사람의 상식 선에선 가슴이 크면 젖도 많이 나올 것이다, 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었다.
「준비는 완벽해. 오늘밤이야.」
“응.”
아기를 위한 준비는 마쳤다. 이제 아기만 생기면 된다.
이곳이 황새 서식지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화란은 요 며칠 사이 마리에나 아리샤가 황새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걸 확인했다.
바보들.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칠 텐데.
이렇게 완벽한 상황이 대체 어디 있을까? 화와 란은 아기를 물어다 줄 황새가 있는 것도 모르는 연적들을 비웃었다.
-삐그덕!
나무계단의 발판을 밟으며 성큼성큼 올라가는 화란.
그간 화란은 몇 번이고 코린의 손을 꼬옥 붙잡고 하룻밤을 보내었다.
그 의미를 코린도 알 테니 오늘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겠지.
오늘밤, 황새들이 서식하는 이 도시에서······.
「꼬옥 손잡고 자는 거야.」
“응.”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황새가 예쁜 아기님을 물어다주리라.
-철컥!
평소라면 문이라도 두드렸겠지만, 긴장한 탓인지 화는 곧장 문을 열고 코린의 방에 들어섰다.
“코린. 오늘도──”
문을 들어서자마자 맞은 편 창문. 바깥에서부터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려던 갈색머리가 한 명.
“······컹?”
그리고 또 맞은편. 잠들어 있는 코린을 어깨에 들쳐맨 붉은 대형견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정지해버린 물빛머리가 한 명.
“······.”
“······.”
“······.”
야밤.
모두가 잠든 시각.
한 남자의 방에 남몰래 찾아온 세 범죄자들이 어색하게 서로를 응시한다.
“컹.”
덕구는 아주 명료하게 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거 개판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