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31
야인들(2)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멈춘 코린 앞에 십수 명의 여전사들이 나타났다.
특유의 방패와 창. 날갯깃 장신구를 단 여전사들. 코린은 그들이 신들의 대전사라 불리는 발키리들임을 곧장 알아챘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진 주신의 여전사들.
발할라로 이어지는 540개의 문들을 열 권한이 있는 전사들의 지휘관. 총 합해 열일곱 명이니 열일곱 개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길게 늘어선 그녀들 중에 한명이 앞으로 나섰다.
2.5m에 이르는 거구의 여인. 매머드의 두개골도 단박에 깨뜨릴 만큼 거대한 워해머를 든 그녀는 ‘강인한 자’ 스루드.
천둥의 신 토르의 딸이자 발키리 최강의 힘을 가진 자다.
“감히 브륀힐트를 보겠다고?”
스루드의 음성이 공기를 압박하며 짓눌렀다. 마치 대기가 묵직한 쇳덩이가 된 것처럼.
코린은 스루드가 가진 힘을 알았다. 천둥의 신 토르가 남긴 망치도 휘두를 수 있는 괴력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담담한 얼굴을 했다.
“그래, 대장끼리 얼굴 보고 말로 해결하자고.”
“필멸의 신분으로 방자하기 그지없군. 네가 그녀를 뵈려거든 우선 나를 쓰러뜨려라. 내 뒤의 자매들도 쓰러뜨려라. 그래야만 신들의 종말 이후 마지막 신성을 간직한 방패처녀의 수장을 알현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이라기보단 주신의 저주 아니었나?”
“네놈···!”
“브륀힐트의 ‘불의 장벽’에 도전하겠다.”
“······!!”
일그러지는 표정들. 코린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 * * *
발키리들의 수장 브륀힐트에게는 오랜 시간 풀리지 않은 저주가 있었다.
과거 주신의 명령을 어긴 그녀에게 주신은 꺼지지 않는 불의 장벽에 둘러싸여 영원한 잠에 들게 했다.
이 불의 장벽을 통과하여 잠든 그녀의 사슬갑옷을 벗겨야만 저주가 풀리는데··· 문제는 저주를 건 주체인 주신이 종말의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이다.
신화의 종말.
주신의 죽음과 함께 브륀힐트에게 걸린 저주도 풀렸다. 반만.
신들이 스러지고 브륀힐트는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저주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불의 장벽을 통과하고 브륀힐트의 갑옷을 벗기는 자만이 저주를 풀리라.」
그 예언 탓에 얼마나 많은 자유민들이 신의 불에 도전했는가.
거대한 곰가죽을 뒤집어쓴 하프거인도, 가장 지혜로운 자라 불리던 주술사도, 가장 많은 결투에서 승리한 대전사도.
저 브륀힐트의 갑옷을 지키는 신의 불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게 된 그것을 저 남자가 도전하겠다고?
“그래··· ‘불의 장벽’을 통과하겠다고요?”
신이 내린 저주에 의해 영원한 처녀성을 지닌 발키리들의 수장 브륀힐트. 그 앞에 코린 로크가 섰다.
“제가 장벽을 통과하면, 당신은 제 소유가 됩니까?”
그 방자한 물음에 은의 미녀는 공허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주신의 불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그 순간, 브륀힐트를 중심으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신의 저주가 남긴 잔재. 모든 남자를 불태우는 불. 그런 것은 신화 속 설화에 불가하다 칭얼거릴 무신론자들조차 신을 경배할··· 그런 불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솓아오르는 불길.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눈을 녹이고 녹아내린 물을 증발시키는 불기둥.
누구도 뛰어넘지 못하며, 누구도 통과하지 못하며,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주신 오딘의 저주.
‘어떤 강자도 저 불을 견디지 못했다.’
‘어떤 용사도 저 불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제는 자매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남은 신의 잔재. 브륀힐트를 길을 달리한 자매 중에는 저 주신의 저주에 반발한 자매도 있었으니.
발키리들은 자신들의 힘으론 벗어나게 할 수 없었던 저 저주를 증오했다.
“신의 불이라.”
누구도 넘지 못한 불을 향해 코린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멍청한··· 죽을 거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 불이다!”
코린 로크. 그가 대단한 용력을 지닌 전사임을 안다. 하지만 숱한 시대를 넘어서며 그에 비견하는 전사가 없었을까?
수많은 전사들이 저 불에 도전했고, 발키리들의 수장을 차지하고자 했다.
허나, 그 누구도 저 불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제 명령을 어긴 방패처녀에게 누구보다도 가혹했던 주신의 저주가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이따위 불로는 날 태울 수 없어.”
그러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불의 장벽을 파고드는 코린.
그가 비명을 지르며 재가 되리라 모두가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뭐···!”
“이럴 수가!”
경악하는 야인들. 코린 로크 그가 불의 장벽을 기어코 넘어선 것이다.
클라우 솔라스의 절대적인 능력. 모든 열기와 화기에 대한 내성. 신의 불조차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천 년간 그 어떤 남자도 넘지 못한 불을 통과한, 믿기지 않는 광경에 모두가 얼이 빠졌을 때, 코린은 브륀힐트와 마주하고 있었다.
은발의 아름다운 방패처녀. 반짝이는 사슬갑옷은 코린이 응당 벗기고 취할 과실이다.
“제안할 게 있는데요.”
그러나 코린은 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신의 저주조차 넘어선 결과물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제안했다.
“당분간 제 말 좀 따라주실래요? 겸사겸사 당신들도 구해줄게요.”
“······.”
신기한 청년이다.
브륀힐트는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주신께서 허하신 대로 제 갑옷을 벗기고 제게 명령하면 그만인 것을요.”
그것이 정당한 신화이고 용사의 권리였다. 발키리라느니 신의 대전사라느니 하지만, 그녀들 또한 결국 신화의 전리품이다.
주신께선 위대한 용사에게 발키리의 수장을 내어주시겠다 예언하셨고 그녀는 응당 이에 따라야 했다.
“너무 낡았다. 올드한 신화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죠. 요즘은 잠든 여자한테 키스하면 잡혀가요.”
이를 코린은 피식 웃으며 거부했다.
“원하는 게 뭐죠?”
“윈윈.”
그는 브륀힐트를 존중하며 정당한 제안을 해온다.
“북부인들을 장벽으로 받아주죠. 대신 그들도 이 전쟁에 참전하는 겁니다.”
“당신은··· 노스킹덤의 상황을 알고 있나요?”
“발타자르라고 불청객이 한 명 깽판 치고 있을 텐데. 그 양반이 내 사형되시는 양반이라. 그 양반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좀 쎄게 왔어요.”
“······.”
브륀힐트의 시선이 코린이 쥔 창으로 향했다. 그러곤 무언가를 납득한 듯했다.
예언의 자매 스쿨드가 예언한 발키리들의 운명을 바꿀 ‘창을 든 남자’. 그것은 어쩌면 코린 로크일지도 모르겠다고.
“저와 협력해주시겠습니까?”
“······어째서죠?”
“네?”
“당신들은 오랜 시간 자유민들을 야인들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배척했어요. 자유민들 또한 오랜 세월 당신들을 약탈했지요.”
헌데 왜 우리들에게 손을 내미느냐, 뭐 그런 의문이었다.
“음··· 뭐, 별다른 이유는 없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가 돌려줄 건 하나밖에 없다.
“사람 덜 죽는 게 제일 베스트죠. 사람 목숨이 제일 비싸니까요.”
그는 언제나 한 가지만을 바라왔다.
해피엔딩.
* * * *
협정은 극적으로 체결되었다.
노스킹덤의 자유민 23만 명을 장벽 너머로 수용하는 대신 싸울 수 있는 전사들은 장벽의 병력으로 활용한다.
물론 반발하는 이들도 많았다.
당장 북부인들이 우리들을 믿지 못하겠다며 아우성을 쳤고, 장벽도시의 경비대원들이나 나를 따라온 가디언들도 우려를 표했다.
직접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날 미친놈 보듯이 보더라니까.
북부인들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발키리들이 설득했고, 나는 이 도시의 몇 안 되는 귀족으로서 강권했다.
“유사시 저희들도 책임을 질 겁니다.”
그리고 나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이어야지.
역사 속 위인 조제핀 여사나 듀나레프 공작가의 후계자. 아덴명가의 차기 당주 후보와 성녀 에스텔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뭐, 야만인들을 장벽으로 들였다고 칼빵 맞을 일은 없을 거다.
“괜찮은 건가요?”
브륀힐트가 물었다.
“뭐가요?”
“이건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일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보다 높은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나중에 문제가 될 겁니다.”
“뭐··· 결과가 좋으면 다 유야무야 넘어갈 겁니다.”
플레이어는 초인이다. 주인공이고 세상의 중심이다.
그런 플레이어라도 제 본신의 무력만 믿고 막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에선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치 문제, 단합 문제, 인종이나 뿌리 깊은 차별 문제. 하여간 이놈의 세계는 지구하고 다를 게 없다.
“사람이 착하게 사니까 도와줄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 보이더군요.”
브륀힐트는 이 소요를 진정시킨 내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그보다 발키리들을 잘 배치해주세요. 야인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그녀들뿐이니.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진 서로 협력하자고요.”
브륀힐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려는 그 순간.
────꽈앙!!
우리가 서 있던 장벽이 무너져내렸다.
* * * *
“이런 젠장······.”
장벽이 무너져 내리며 자욱하게 퍼진 먼지 속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일어섰다.
“브륀힐트님. 무사하십니까?”
“이 정도에 당하진 않아요. 하지만······.”
주변을 살피는 브륀힐트. 장벽이 무너져내리면서 함께 떨어져 나간 병사나 북부인들이 여기저기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내, 내 다리···!”
“도, 돌에 깔렸어! 누가 도와줘!”
기사나 마법사들이야 제 한 몸 정도는 건사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참담한 피해를 당했다.
대체 뭘로 장벽을 무너뜨린 거지, 싶었는데, 그 증거가 코앞에 있다.
“······바위?”
산의 중심부를 통째로 파낸 것 같은 거대한 바위. 그것이 장벽으로 날려져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런 걸 대체 누가 던진 거지?’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무너지지 않은 장벽 위로 뛰어오르자 누군가가 다가온다.
“코린. 괜찮아?”
장벽이 무너지는 걸 보고 나를 걱정한 화란이었다.
“나는 괜찮아. 그보다 깔린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좀 구해줘.”
“······알았어.”
화란을 내려보낸 뒤 장벽 너머를 본다.
“벌써 왔나.”
23만의 북부인들을 목격했을 때도 장관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세상의 종말을 연상케 했다.
-카악! 카아악!
-구워어어어어!
창공을 가득 뒤덮은 괴졸들. 지상을 울리는 발소리와 풍파를 일으키는 괴성.
십수만··· 아니, 숫자를 세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끔찍한 물량이 장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문제는 방금 장벽을 무너뜨린 것들이 누구냐는 건데······ 그 범인은 너무나도 뻔히 보였다.
“거, 거인······.”
“거인이다! 거인들이야!”
지평선 너머. 저마다 커다란 바위를 짊어진 채, 장벽을 향해 걸어오는 수십의 거인들.
“어째서······.”
거인 부활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거인을 부활시킬 마탑을 박살 냈으니까. 그 지식은 끝내 발타자르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텐데.
“또, 또 바위를 던진다!”
“도망쳐!”
수십 마리의 거인들이 일제히 바위를 들어 올렸다. 저것들이 모두 장벽을 강타한다면··· 장벽도시는 멸망한다!
“조제핀 교수님!”
호를 그리는 바윗덩어리들. 이에 맞서듯 조제핀 여사가 마법을 발현했다.
바윗덩어리들이 그리는 포물선을 계산. 낙하지점에 정확히 허수공간을 펼친다.
대전쟁 파트 최강의 대마녀 조제핀 클라라가 전개한 허수공간은 바윗덩어리들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오오···!”
“공간의 마녀!”
환호하는 경비대원들. 하지만 여기서 끝날 게 아니다.
‘바위는 소진시켰지만, 추가타가 있을 수도 있어. 게다가 거인 자체도 장벽으로 막아내기 버겁다.’
원작에서도 등장하면 필히 중간보스급 피통을 채우고 나오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해치우려면 대화력의 마법이나 필살기술 정도는 돼야 한다. 다행히 이것을 충족시키는 최강화력이 내 손안에 있지.
“태양구현.”
클라우 솔라스의 태양구현화. 이 거대한 힘은 틀림없이 세계최강의 화력이다.
“절반 정도는 태워줬으면 하거든.”
겸사겸사 저 끝없는 마물들의 파도도 날려버리면 더 좋고.
“코린 경의 태양이다!”
“좋아! 저것만 있으면 거인도···!”
모두의 기대가 나를 향한다. 그들의 희망이 내게 전해질 때마다 【전쟁기수】는 나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 희망을 집속시켜 거인들에게 태양을 떨구려던 그 순간.
“저길 봐! 저게 대체 뭐지!?”
태양 클라우 솔라스에 의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하늘. 태양이 드러난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 커다란 ‘늑대’.
“어?”
저 늑대를 물론 나는 안다. 전 회차 최종전. 발타자르의 수하 황금늑대 렌과 론이 받아들이는 종말의 마수.
해를 먹는 늑대 스콜.
달을 먹는 늑대 하티.
다시 말해.
태양의 힘을 재현하는 클라우 솔라스의──
-콰직!
──천적.
“태양이······.”
“······먹혔어.”
믿기지 않는 현실 속. 태양을 잃자 더더욱 냉혹한 한파가 들이닥친다. 이 한파는··· 결코 정상적인 게 아니었다.
“설마.”
지평선 너머의 끝자락. 거인들의 뒤로 믿기지 않는 거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흡사 설산으로 착각할 만큼 웅혼한 존재. 일찍이 클라우 솔라스를 얻기 위해 드루이드의 비경을 찾았을 때 마주한··· 스카이 타이탄에 필적하는 거인.
“······서리거인.”
타테스 발타자르에 협력하여 세상을 멸망시키려 드는, 이 기나긴 겨울의 원흉.
본래라면 시체의 세상인 나스트론드에서 겨울을 해결하러 온 플레이어를 맞이해야 할 서리거인이 지금 장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
대비는 충분했다.
미래를 알기에 많은 걸 비틀었다.
그리고 이 비틀림은.
꼭 내게 유리하게만 작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