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41
휴식(2)
장벽도시.
북부와 맞닿은 겨울의 중심지는,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펑펑 내리고 있는 눈들로 수북하게 쌓인다.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만큼, 금방금방 치워지고 있지만, 그것도 딱 대로변까지.
주로 가는 길을 넘어 조금만 외진 곳으로 가면 점프한 강아지가 푹! 하고 꺼질 정도로 쌓인 눈들이 보인다.
“이야~ 이 정도면 이글루를 만들어도 되겠는데.”
꽝꽝 언 건 아니지만, 철원 이후로 이런 한파를 목격하니 감회가 새롭다.
“뭐해?”
“어우 깜짝이야.”
갑작스레 뒤에서 들린 목소리. 수녀복 차림의 화란이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눈사람이나 만들어볼까 해서.”
“눈사람?”
그게 뭐냐며 갸웃거리는 화. 화가 모른다는 건··· 란도 모른다는 건가?
“둘 다 눈사람이 뭔지 몰라?”
“······응.”
란에게서 대답을 들은 듯 대신 끄덕이는 화.
“어렸을 때. 아파서. 못 놀았대.”
“아···.”
란의 어린 시절은 병상에 누워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는 나날이었다. 화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아시다시피.
제대로 된 생활이라는 걸 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
“괜찮아. 지금부터 하나하나 해나가면 돼.”
눈사람도··· 친구를 사귀고, 인연을 쌓고 그렇게 하나하나 차곡차곡 해나가면 된다.
그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화란의, 모두의 미래를 위해.
“일단 눈사람부터 시작해볼까?”
“응.”
나는 가지고 있는 장갑을 화란에게 건넸다. 그녀의 조막만한 손에는 내가 쓰는 장갑은 좀 컸지만.
“눈을 뭉쳐서 굴리는 거야. 그럼 점점 커질 거야.”
“······너는?”
장갑을 내게 주면 너는 어쩌냐는, 그런 시선.
“이 오빠는 남자라서 괜찮아요.”
“······자.”
장갑 하나를 건네오는 화. 한쪽씩 쓰자는 의미 같다. 이 귀여운 호의를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자자, 공사 시작합시다!”
“이상한 말 하지 마.”
눈을 눈밭에 굴린다. 화는 이것이 굉장히 생소한지 몇 번인가 나를 물끄러미 보다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처음에는 주먹만 했던 눈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눈밭의 눈을 머금고 커져갔다.
“커졌다······.”
그것이 못내 놀라운지 눈을 크게 드는 화. 그 모습이 귀엽다.
주먹질 한 번으로 전방의 눈밭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녀석이, 굴리던 눈덩이가 커지는 것에 놀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 녀석도 결국 제 나이대의 소녀일 뿐이다.
‘미안하네.’
그렇기에 그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전쟁에, 살육전에 아이들의 도움을 바라는 어른 같아서.
이런 말을 하면 너도 나랑 동갑이잖아, 라며 타박하겠지만.
실제론 아저씨란 말이지.
“자, 너무 힘주지 말고 살살. 그래, 그렇게.”
점차 커져가는 눈덩이는 어느새 화란의 몸통까지 닿고 있다.
“자, 여기에다가······.”
좀 더 작은 눈덩이를 들어 얹힌다. 나뭇가지와 당근, 단추 몇 개를 꽂아 어엿한 눈사람 완성.
“사람? 눈 사람? 눈사람이야.”
눈사람이 무엇인지 모르던 아이는 완성된 눈사람을 보고 입을 뻥긋거린다. 나도 오랜만에 만든 눈사람을 보고 괜히 뿌듯해졌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야.”
“······동갑이잖아.”
“그런 게 있엄마.”
눈사람은 만들었으니 슬슬 제대로 한 번 시동 걸어볼까?
“두 사람. 뭐 만들고 싶은 거 있어?”
“만들고 싶은 거?”
“그래, 집이라던가 더 큰 눈사람이라던가.”
눈은 많으니까.
철원에서의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어느날, 사단장이 심심했는지, 눈 공예품 대회를 열었었지.
사단 전체가 참가하는 꽤 큰 대회였다. 우승에게는 무려 4박 5일 휴가증···!
다들 눈 돌아가서 별의별 걸 다 만들었었지. 개중에는 눈으로 자주포를 만드는 놈들도 있었다.
미친놈들··· 휴가 얻겠다고 케이나인을 만들다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별의별 인간군상을 만난 곳이었다.
“집.”
“집?”
“란이··· 집 만들어보고 싶데.”
“어려울 거 없지.”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오랜만에 하는 눈 놀이는 향수를 자극했다.
·········
······
···
눈이 워낙 많다 보니 뭘 만들어도 된다 싶었지만, 내가 만든 건 눈굴이었다.
정확히는 이글루를 만들려다 실패한 것이지만, 어쨌든 예전에 일본 유학생 친구와 캠핑을 간 적이 있었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눈굴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컵라면 끓여 먹곤 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지?”
이글루··· 비슷한 눈굴. 일단 나뭇가지로 긁어서 벽돌 모양을 내긴 했다. 흠흠, 이 정도면 뭐······.
“들어가보자!”
먹을 걸 안 챙겨온 게 아쉽지만, 그것 좀 있다가 하면 되겠지.
우리 둘은 급조 이글루에 기어 들어갔다.
쭈그려 앉아야 할 정도로 층고가 낮고 비좁긴 했지만, 뭐, 캠핑이라고 치면 나름 아늑하다.
“흐흐, 어때? 반평집이야.”
“······좁아.”
“그래도 뭐, 하룻밤 자기에는 충분해.”
에스텔과는 이보다도 더 비좁은 눈굴에서 잤었다. 살짝 거시기하고 므훗한 상황이긴 했지만.
“······안 돼.”
“뭐가?”
“여기서 자면··· 안 돼.”
그야 진짜로 자려고 만든 건 아니지. 좋은 숙소 내버려두고 여기서 왜 자.
“황새가 못 들어와······.”
“황새?”
갑자기 웬 황새? 물어보려던 찰나 입구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코린! 여기서 뭐해?”
“마리에 선배.”
그렇게 외진 곳은 아니라 그런가. 금방 찾았네.
나는 화란과 함께 밖으로 기어나왔다.
“선배 마침 잘 왔어.”
“어?”
“마법 좀 빌립시다. 눈사람도 만들고 저택도 만들고 하죠.”
“눈사람? 흐음~ 뭘 하나 싶었더니.”
마리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사람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좋아. 덕구야, 너도 나와봐.
-컹!
마리에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덕구. 복실복실한 털이 따뜻해 보여서 눈을 만져 차가워진 손을 넣으려는데, 칵! 하고 손등을 내리친다.
“아니, 이눔이?”
-컹! (치우쇼)
“이런 불효자식! 너 임마! 이럼 다음 달 용돈 없어!”
-커커컹! 커컹! (응다음주용돈금화이천장)
이놈이?! 애비도 안 입고 다니는 명품 티셔츠를 입고 다녀서 돈 귀한 줄 모르네!
나는 마리에에게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마리에 선배! 이놈 용돈 끊어버려요!”
“어, 음··· 그 돈 끊으면 얘는 뭐 쓰고 다니라고?”
“지가 알아서 하겠지!”
“아니, 그래도··· 간식 사먹을 돈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간식? 간시이익? 용돈으로 가게를 통째로 사게 생겼구만!”
“그래두···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알뜰하게 쓰는 애한테 왜 그래?”
“얼마··· 되지도 않는 돈?”
2천 골드가? 20억이?
마리에와 이런 부분에서 충돌할 줄이야! 이게 양육방식의 차이?
“어쨌든, 나도 눈사람 만들어볼래. 엄청 크고 멋진 걸로!”
“······.”
나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신이 나서 눈밭으로 폴짝폴짝 뛰는 마리에를 말릴 수 없었다.
“얼어라~”
마리에는 육체능력이 굉장하지만, 그렇다고 육체파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덕구라는 지치지 않는 굴삭기와 마법이 있다.
“저건 얼리고, 저거는 압축하고··· 덕구야, 벽돌 좀 쌓아봐.”
누구는 손장갑 끼고 데굴데굴 굴려서 눈사람을 만드는데, 마리에는 공간째로 눈을 얼려 얼음벽돌을 만든다든지 압축된 눈덩이를 굴려 키운다든지··· 아예 손도 대지 않고 눈사람과 장식물을 제조했다.
마리에가 만드는 눈사람은 꽝꽝 얼어붙은 8등신 조각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거··· 눈사람 맞지?
“후우~ 여기에다 주변 기온을 더 낮추고 물을 뿌려서 데코를 하면······.”
아··· 이래서 플레이어는 마법사를 해야 하는 건가.
기사 나부랭이는 칼질, 창질 하는 무식한 놈들이라 저런 짓은 흉내 낼 수도 없다.
박시후! 네 선택이 옳았어! 나도 마법 배울걸!
“다 됐다! 봐봐, 코린! 잘 만들었지!”
아예 눈을 얼려 만든 계단까지 타고 공사현장을 방불케 하는 눈동상 건축현장. 싱글싱글 웃는 마리에가 척! 하고 제 결과물을 자랑한다.
“잘 만들었네요.”
“······.”
너도 뭐라 한 마디 하는 게 어떠냐며 시선을 돌리니 화란의 눈동자 색이 파랗게 물들어 있다.
“란이니?”
“오빠, 저 시려워요.”
대뜸 시렵다고 말하니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법도 하다. 한쪽 손에는 장갑 없이 눈사람을 굴렸으니.
“이리 줘봐.”
나는 란의 벌겋게 부르튼 손을 잡아 호호 입김을 불어넣고 양손으로 비볐다. 추위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만, 한여름에도 손부채질이 절실한 법이다.
“헤헤, 간지러워요.”
“훨씬 낫지?”
“네에~”
슬쩍 어딘가로 시선을 굴리는 란. 그녀는 이내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이번엔 제가 해드릴게요, 오빠.”
“괜찮은데.”
“사양 마시구요.”
란은 부득불 내 손을 붙잡더니 호오호오 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차갑게 언 손등에 가라앉는 온기. 전보다 훨씬 낫긴 하다.
“코, 코린···!”
나와 란이 서로의 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데, 마리에가 헐레벌떡 내려왔다.
“나, 나도 시려! 손 불어줘!”
“아니, 선배··· 얼음 속성 마법사잖아요. 냉기 내성 있지 않아요?”
내가 더위를 못 느끼듯 마리에도 추위를 못 느끼지 않나?
“그, 그러치······.”
“내버려둬요, 오빠. 마법으로 만들어서 눈에는 손 하나 대지 않았는걸요.”
“이익···!”
힐깃거리며 입꼬리를 비트는 란과 바들바들 떠는 마리에. 뭔가 중재를 해야겠다고 느낀 순간──
“커엉!”
-퍽!
어디선가 날아든 눈뭉치가 얼굴을 강타했다.
“코, 코린?”
“오빠, 괜찮아요?”
충격에 철푸덕 쓰러진 나를 걱정하는 두 사람. 나는 날 강타한 눈뭉치를 보고 경악했다.
“이, 이거 뭐야··· 그냥 눈이··· 아닌데?”
돌 넣었어? 이런 미친···. 나는 내게 돌이 든 눈뭉치를 던지고 희희덕거리는 불효자식을 쳐다봤다.
-컹컹!
“이, 이노무쉑히···!
-컹커컹!
“너 죽었어! 오늘 된장 바르자!”
-크라롸롸롸롸롸!! (선을 넘는군, 생물학적 애비!)
“말 예쁘게 안 해?! 어어? 너 이 색히! 손모양 착하게 고쳐라! 오해받는다!”
눈뭉치를 들고 놈을 쫓는다. 날 약 올린 녀석은 이번에는 더욱 커다란 돌멩이에 눈을 뭉쳤다.
“임마! 그거 빚나가면 사람 다쳐! 놔 임마!”
-······컹.
사람 다친다는 말에 입을 삐쭉거리며 돌을 빼는 덕구. 동시에 내가 던진 눈뭉치가 녀석의 안면에 적중! 파악! 하고 눈이 비산됐다.
“흐흐흐···.”
-크르릉······.
이것은 아비로써 응당 해야 할 훈계. 오늘 가장의 위엄을 되찾는다.
-콰콱!
-파파팍!
쏟아지는 눈덩이들. 덕구나 나쯤 되면 눈싸움도 전쟁이다.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가는 눈싸움은 확전을 불러일으켰다.
“어, 코린 씨, 여기서 뭐··· 푸학!”
“뭐야뭐야? 코린 동생이 지고 있어? 기다려! 누나가 지금 갈게!”
“우, 우리 덕구 괴롭히지 마세요!”
“······뭐? 저쪽을 돕자고? 으음, 그래야 균형이 맞는다고? 화도 참 이상한 곳을 신경 쓰네.”
“저놈들이 비겁하게 쪽수로 밀어붙인다! 아군 되든대로 다 데려와!”
-콰악!
-억?
-뭐, 뭐니, 이게?!
어디선가 날아오는 대규모 눈덩이들. 염동력?
“도론?”
건물의 지붕. 눈들을 염력으로 조종하는 도론이 있었다.
“미안, 고용주. 마리에 선배님이 큰돈을 주셨거든.”
“네놈···!”
그 허리띠에 찰랑거리는 금화 주머니는 무엇이냐!
“하지만 우리에겐 슈퍼 이족보행골렘이 있다! 크라넬! 유에에에엘···!”
-아악! 사장님, 미쳤어요?!
-집어넣어! 도로 집어넣어!
“와아~ 애들아, 저기 기사님들이 눈싸움 해!”
“우리도 같이 하자!”
우리들 하는 꼴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장벽도시의 아이들도, 북부인 아이들도 어느샌가 이 대전쟁의 훌륭한 병사로 참전했다.
한겨울. 장벽도시에서 벌어진 일대 전쟁은 온종일 도시를 떠들썩하게 했다.
* * * *
“하아~ 우리 제자님도 참,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는구나.”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에린은 그들을 흐뭇하게 응시했다. 조제핀은 사고가 날까 두려운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이제 성인인데, 조금은 성장했으면 하는군요.”
“뭘 어떠니. 아이들이잖아.”
“······.”
에린은 저 아이들이 전장에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저렇게 해맑고 즐거이 뛰놀 수 있는 아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슬픈 싸움에 동원된다는 것이.
이제 곧 세계의 명운을 결정지을 전쟁이 다가온다. 누군가는 죽고, 다치겠지. 그런 전쟁을 아이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현실이 슬펐다.
“80년 전··· 내가 타테스를 확실히 끝냈더라면······.”
이런 슬픈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에린은 그것이 못내 슬프고 죄스러웠다.
“그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코린이?”
“네, 아마 그는··· 자신을 어른이라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니까요.”
에린과 조제핀은 코린 그가 미래에서 왔음을 안다.
그가 숱한 전력을 쌓고 어른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런 그가 선의로,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지키고 희생함도 알았다.
그는 에린과 동류다.
아이들이 웃는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어른.
“하지만 그와의 싸움에는 어른아이를 구분할 수 없어요. 이 세계의 일원인 이상 누구에게나 의무가 있지요.”
그렇기에 모두가 함께할 수밖에 없다. 누구 하나 빠질 수 없는, 세대와 신분을 초월한 의무가 이 자리에 있었다.
“그래도··· 교사로서······ 저는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 생각입니다. 특히 화란 학생은······.”
“네가 누군가를 편애하다니··· 희한한 일이네.”
“그럴 수밖에요.”
에린은 조제핀의 단호한 태도에 의아함을 가졌다. 학생을 두루두루 살피는 참교사인 그녀가 누구 하나를 유독 아끼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에린··· 당신에게는 말해야겠습니다.”
“클라라?”
“화란 학생은··· 코린 학생의 아이를 가졌어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