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47
세계수(4)
“타테스 개새끼 해봐.”
“뭐··· 라고?”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끼칼 부족. 하지만 나는 보았다.
녀석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순간을.
“타테스 개새끼 해보라고.”
“허, 허허··· 그, 무슨 말을······.”
“왜? 나는 타테스 발타자르를 추종하지 않습니다, 이 말 한마디 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데?”
“이, 이봐··· 교양을······.”
“아니, 타테스 발타자르가 개새끼지 그럼 개새끼가 아니야? 어! 왜 못해? 지금 해보라니까?!”
내가 하는 말을 왕국인들은 몰라도 북부인들의 반응은 명확하게 갈려야 했다.
장벽으로 피난을 왔던 북부인들은 당연히 발타자르 싫다고 내려온 이들이고, 남은 이들은 그를 추종하고 굴종했기 때문에 남은 이들이니까.
그는 살아있는 신. 스스로 신이라 군림하며 북부인 다수를 지배하기 시작한 마경의 맹주다.
절반의 발키리들이 그를 인정하고 신으로 떠받들었다. 북부인들은 그가 신임을 안다.
그렇기에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로 그들 사이에서 타테스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
따르지 않는다면 신 시대를 연답시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개새끼고, 따른다면 신 시대의 새로운 신으로 떠받들리는 것이다.
“타테스 발타자르 개새끼 해보라고!! 왜 못해!!”
“으, 으극··· 으으······!”
-채채챙!
일제히 들려지는 도끼와 칼들. 그것은 무언의 자백이었다.
“전부 죽여버려!”
아 망할. 역시나.
가장 먼저 달려드는 도끼든 남자. 그는 끝내 타테스 개새끼를 외치지 못하고 내게 도끼질을 하러 달려들었다.
“흡···!”
그러나 그는 내 목을 치기엔 너무 느렸고, 내 창은 그의 인지보다 훨씬 빠르게 목을 꿰뚫는다.
“섬멸하라.”
그들을 향해 단호하게 내리치는 명령. 한바탕의 소동이 있었지만, 제압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투? 사람하고?”
그러는 사이 본대 쪽에서도 에스텔이 다가왔다. 그녀 옆에는 화란과 아리샤가 있다.
“발타자르파 북부 부족들입니다. 아군으로 위장해서 합류를 시도했어요.”
“······위험했네.”
“아마 비슷한 움직임이 전군 단위로 이뤄지고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괜찮을 것이다. 숫자는 이쪽이 우위니까.
하지만 점점 합류하는 북부인들이 쌓이고 또 지형적으로 불리한 위치가 됐을 때는, 언제 돌변에서 아군에게 도끼질을 할지 모른다.
“어떻게 알아챘어?”
나는 내가 알아낸 방법을 전했다. 에스텔이 피식 웃는다.
“아~ 확실히. 신성모독이니 뭐니 해서 감히 내뱉을 수 없는 말이긴 해. 적한테는 말이지.”
“반드시 먹힌다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한놈한놈 만난 무리 전원에게 강요하면 누군가는 대답 못하겠죠.”
그 순간, 그 무리 전원을 적으로 규정하면 된다.
“원색적인 구분법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잘 먹힐 겁니다.”
“그래, 다른 부대에도 전달해둬야겠어. 전서구가 전해지면 좋겠는데.”
이런 어둠 속이다. 기존의 연락수단이 닿을지는 확실치 않다.
“수고했어. 뒤로 물러나. 이제 선두에는 다른 사람을······.”
“아뇨, 제가 할게요.”
“코린 동생?”
“아리샤하고 화란은 누나가 계속 데리고 있으세요. 선두는 제가 계속 맡습니다.”
선두의 임무는 중앙과는 확연히 다르다. 앞으로도 이런 무리들과 싸워야 할 거고 사람을 죽여야 할 거다.
그 역할은 나의 역할. 사람 죽이는 일은 어지간해선 그녀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
에스텔은 자신도 함께하겠다고 말하려다 멈춰 섰다. 그녀는 이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함부로 나서기 곤란하겠지.
“계속 움직입시다. 아군을 불리는 게 시급해요.”
설사 잘못된 무리가 합류하더라도 감히 공격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져야 한다.
그 뒤로는 수시로 떨어진 무리와 마주쳤다.
이미 참혹하게 죽어나간 시체 무리도 있었고, 마수들과 전투를 벌이던 병사 무리, 북부인 무리, 물론 그 중에는 아군도 있었고 적도 있었다.
“적이다! 쓸어버려!”
적들의 비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열 번을 만나면 두 번쯤?
진지하게 공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교란과 첩보를 위해 합류하려는 무리들이 대부분이다.
“큭···! 죽여라!”
게다가 적의 포진이나 정보에 대해서 물을 때면 북부인답게 시종일관 대답을 거부했고.
그들에게는 용감하게 죽는 것이 낙원으로 가는 것이고, 실재하는 신을 마주쳤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쩔까요?”
“깔끔하게 목을 잘라.”
나는 단호하게 그들을 죽였다. 사람 목숨이 귀하긴 하지만 이런 데서 적아군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휴머니스트는 아니다.
적에 대한 자비는 아군에 대한 배신인 법.
“하지만 이놈들도 끈질기군요. 아주 목숨을 내놓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죽은 뒤에 자신을 위한 세계가 있다 믿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게 틀리진 않았다. 발타자르가 다시금 신의 시대를 열면 기존의 낙원 티르 나 노그나 발할라 같은 영적 세계가 그에 의해 재편될 것이다.
신들의 힘에 대해선 잘 몰라도 죽은 자들의 영혼을 보장할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있다.
덕분에 우리의 적은 목숨을 걸고 특공을 걸어오니.
‘벌써부터 피로가 쌓이는군.’
죽은 뒤의 세상을 기대하며 현생의 목숨을 던지다니 참 거시기한 놈들이다.
“뭐, 세상 구하겠다고 목숨 거는 나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그리고 갈림길이 등장했다.
커다란 뿌리를 중심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길. 우리는 갑작스레 늘어난 뿌리들을 보고 멈춰섰다.
“코린 경! 전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선두 병사가 고한 말에 우리는 곧장 경계하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후우··· 또 적은 아니었으면 하는데.”
그림자 마수든 발타자르의 군대건 전투는 피로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부디 눈앞의 상대가 적이 아니길 빌었고.
“어엇? 코린?”
“코린 학생?”
익숙한 목소리였다.
* * * *
전방의 무리는 조제핀 여사와 크라넬, 유엘이 속한 북부인과 왕국군의 혼성무리였다.
“한 잔 드시죠.”
“아, 감사합니다.”
조제핀 여사의 무리를 만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중, 그녀가 건넨 간이 홍차를 마신다.
원정군에 원체 마법사 비율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을 피우고 조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교수님 쪽 상황은 어땠습니까?”
“혼란이었죠. 특히 발타자르의 수하들이 위장하고 있었거든요.”
“교수님 쪽도··· 어떻게 구분하셨어요?”
“외웠습니다.”
“예?”
“이번 원정에 참여하는 북부인 족장과 부족장들은 전원 얼굴을 외워뒀습니다. 모르는 얼굴만 있다면 적인 셈이죠.”
“······.”
그게 가능해? 내 의문에 조제핀은 안경을 슥 치켜세울 뿐이다.
나 같은 녀석보다 훨씬 지적인 사람이니 그녀가 확신한다면 그게 맞는 것일 테지. 나는 그녀가 품은 무리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이사장님은 어떻게 됐죠?”
“스승님은 마리에와 함께 다른 뿌리를 공략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한동안 그렇게 이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온 세상이 빛을 잃어 시간감각이 궤리되었지만, 일단은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했고, 천막을 다 세우면 불침번을 서며 하룻밤을 지낼 것이다.
“코린 도오옹새애애애애앵!”
“아 쫌! 고음 울리지 말아요.”
에스텔 저 누나는 대체 언제쯤이면 안 들러붙을지.
“힝~ 코린 동생이 차가워······.”
“그나저나 무슨 일입니까?”
“내 천막에서 밥이나 먹자고.”
“······.”
내가 묘한 시선을 보내자 에스텔은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누가 보면 내가 음흉한 생각으로 그러는 줄 알겠네.”
“아니에요?”
“반만?”
“······춥잖아. 내 천막이 따뜻할 거야.”
거 목적이 있었네.
“좋아요.”
“허··· 지, 진짜?”
“어차피 천막 수도 부족하잖아요. 같이 지내죠.”
“응응! 따라와!”
나는 어둑한 군영을 오가며 에스텔의 천막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호화롭군요.”
“일단은 왕녀에 성녀니까.”
원정군이라곤 해도 간부와 병사의 천막이 다르듯, 군의 총지휘관이자 상징적인 존재인 에스텔의 천막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큼직한 늑대가죽을 깐 바닥부터 오리털을 잔뜩 집어넣은 두꺼운 이불. 하다못해 물을 채운 세숫대야마저 금덩이로 만들었다.
“실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왕족이란 건 어디서든 구분되어야 하는 거거든. 코린 동생도 익숙해져야 할 거야.”
“뭐··· 마냥 낯선 건 아닌데요.”
전 회차에서도 박시후와 한 천막을 쓴 적이 많다.
온갖 마법에 통달한 녀석은 야외에서도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냈고, 인벤토리 덕에 별 부족한 것 없이 지냈다.
어찌보면 리얼 네이티브로 야외활동을 하는 건 이번 회차가 처음인 셈이다.
호화로운 천막이지만, 그렇다고 음식까지 호화로운 건 아니었다.
감자와 말린 고기를 베이스로 한 비상식량. 그것을 몇 가지 재료와 함께 넣어 푹 삶는 전형적인 전투 스튜.
그것을 먹으면서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상담했다.
“이번 싸움, 어떻게 진행될 거 같아?”
“글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샘을 공략하는 우리와 그것을 저지하는 발타자르의 군문이 되겠죠.”
“뭔가 의문이 있는 거 같네.”
“저는 지금까지 제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회귀하고나서 많은 걸 준비해왔다.
마리에를 구하고, 화란에 대한 음모를 깨뜨리고, 마탑과 구교단을 무너뜨리며 북부인들마저 일부 흡수했다.
지난 3년 간 내가 해온 일들은 훌륭했다. 전 회차의 박시후와 이루었던 것보다도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큰 그림이 어디서부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적의 그림에 흡수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만 해도 그래요. 저는 발타자르에게 그만한 힘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세계수는 둘째 쳐도 이 빛이 없는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한참 벗어났죠.”
스승님 때부터, 장벽도시에서 서리거인의 후퇴까지.
지금 큰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건 과연 나일까? 아니면 우리가 타테스의 그림 안에 들어온 걸까.
고민에 빠진 나를 보며 에스텔은 피식 웃었다.
“동생도 의미 없는 고민을 할 때가 있구나?”
“예? ······헙!”
스튜를 뜨던 수저를 대뜸 내 입 안에 넣는 에스텔. 그녀는 요망한 눈웃음을 지으며 입안에 들어온 수저를 반시계 방향으로 굴린다.
스튜의 눅진한 맛이 온 입안에 퍼지며 마치 혓바닥처럼 내 혀에 장난을 쳐왔다.
“크흠···!”
“고민하지 마.”
“으브읍?”
“동생은 여기까지 우리 모두를 잘 이끌어왔어. 타협도 하고, 술수도 부리고 때론 정공법으로 돌파하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게, 네 노력의 증거야.
“······.”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참 고평가해준다. 내가 보여준 것과는 별개로 사람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진데.
나라는 사람이 그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나를 믿고 의지해주는 것이다.
“이러면··· 해낼 수밖에 없네요.”
“응. 동생은 모두를 구할 거야. 세계를 구할 거야. 난 그거 믿어.”
참나. 이 사람도 참 별종이다.
나 하나만 믿고 평생 믿어오던 신앙을 저버리고, 교황 뚝배기를 까고, 기어코 종교대통합까지 이룬 여자다.
솔직히 차세대 신의 자리는 나와 자신의 차지라며 꼬셔올 때는 좀 무섭긴 한데, 같은 편이면 이렇게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자요. 아마 밤중에도 소란스럽겠지만, 지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두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잘까~”
또또또 놀린다. 이 사람은 지겹지도 않나. 연상의 여유를 부리며 틈만 나면 놀리려 한다.
“그러죠, 뭐.”
“어?”
그래서 넘어가 줬다. 조금··· 고맙기도 했고.
“꺄악?!”
에스텔을 공주니처럼 끌어안아 침대로 그대로 향했다.
“히긱···, 흐긱···!”
부드러운 비단 이불보에 그녀를 놓을 때까지 에스텔은 경직한 자세를 풀지 못했다.
“그럼······.”
진짜? 진짜로? 라는 표정을 지으며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에스텔. 누나의 여유랍시고 날 놀리는 사람이지만, 막상 들이대면 바로 쫄아버린단 말이지.
“코, 코린 동생?”
“쉿······.”
나는 그녀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오빠라고 불러.”
“······!”
“손만 잡고 잘 테니까.”
바들바들 떠는 에스텔. 거봐. 이렇게 쫄거면서.
굳어버린 에스텔의 침대 위로 함께 눕는다. 이 누나는 참교육이 좀 필요해.
그렇게 한 시간쯤 놀리다가 적당히 천막을 나왔다. 후~ 잘 참았다.
* * * *
밤중에도 전투는 계속됐다.
그림자 마수들은 시간과 관계없이 몰려들었고, 아군을 위잔한 북부인 무리가 접근하다 격퇴당하기도 했다.
진짜 아군이 합류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편제를 재편성하는 과정도 있었지만, 큰 위험은 없었다.
숫자의 힘.
군대의 힘.
하나의 목적을 두고 모인 이 원정군은 누적될 피로와 피해를 숫자라는 힘으로 커버하고 있다.
본래의 분열과 혼란 대신 하나로 모인 힘은 그만큼 강대했다.
하긴, 기사와 마법사가 이 정도나 모이면, 뭘 못할까.
“자, 다들 기상! 아침이다!”
꽹가리가 울리고 병사와 병사들이 서로를 깨운다. 하지만 이 아침에 쉽게 익숙해지는 이들은 드물었다.
-으으··· 아직도 새까만데······.
-정말 아침이 맞아?
시간상으로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시간감각이 왜곡되는 기분이 들었지만, 시계는 정확하다.
“하늘은 이용 못 하나?”
“흐레스벨그가 보이긴 했어. 하지만 접근하면 나무 뿌리가 옭아매려 하던데.”
“보급 투하는 가능할 거 같아. 내가 모닥불로 신호를 만들었거든. 이걸로 신호를 대신하면──”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던가. 세상의 빛이 사라진다는 일대사건에도 어떻게든 적응하려 애썼다.
“그나저나 많이 어둡군.”
“멍청아, 빛이 사라졌다잖아. 당연히 어둡지.”
“아니, 그게··· 뭔가 뚜껑이 씌워진 것 같은······.”
무시할 수 없는 병사의 말. 설마 하고 은창에 태양의 룬을 새겼다.
“어, 코린 경?”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해명보다 행동이다. 창을 든 나는 하늘을 향해 힘껏 던졌고, 태양빛을 뿜어내던 은창은 하늘로 비상하다······.
-콰직!
무언가에 꽂혔다. 그리고 여전히 빛나는 은창이 꽂힌 ‘나무표면’을 드러낸다.
“마법사단! 하늘을 밝혀!!”
다급하게 쏘아지는 발광 마법. 마력 소모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사용하지 않던 그것이 일제히 쏘아진다.
“어?”
“저게······.”
거대한 얼굴이 드러난다.
거인이라기엔 너무나 이질적인 목각인형과도 같은 건조한 목재표면.
그렇다고 아니라기엔 너무나 거대한 손이 이쪽을 향해 뻗는다.
“1.2km······.”
한 마법사가 마법으로 측량한 크기. 과연, 하늘을 덮을 정도로 거대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가.
“당했군. 밤 사이에 소란스러웠던 건 저걸 숨기기 위해서였나.”
거인왕 발로르의 60배 이상의 크기. 확실히 생물체가 가질 수 있는 크기는 아니다.
위그드라실 위커맨.
1.2km의 거인이 주먹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