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50
남자의 삶(1)
공간 도약은 작중에서는 플레이어가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게 해주는, 일종의 편의주의적인 마법의 종류였다.
이 마법의 대가인 조제핀 클라라를 아군으로 기용시 메테오 등의 거대마법 지원을 받을 수 있기도 했고.
하지만 이 마법 자체가 조제핀 여사만의 전매특허라 하면 그것은 아니다.
공간마법은 어디까지나 마법의 한 종류였다.
100년 전, 마녀혁명 당시 조제핀의 공간마법의 끔찍한 피해를 입은 마탑이 강철군도 전체에 공간마법 왜곡역장을 필 때까지만 해도 마탑의 주요 학파이기도 했다.
공간마법의 단점은 단순하다.
가성비가 떨어진다.
일단 한 사람을 도약시키는데 드는 마력만 해도 어지간한 고위마법 수준인데, 이것조차 도약하는 거리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마력이 소모된다.
조제핀의 특성 거대마력 같은 나면서부터 대마법사가 될 운명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마법사들에겐 엄두도 내지 못할 마법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대규모··· 그것도 수천 명 단위의 집단을 도약시키려면 조제핀이 나서도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번 원정군에 속한 마법사의 비율은 굉장히 높다는 점이다.
마탑의 노예 마법사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고, 가디언 협회 각 지부를 장악한 내가 최소한의 전력만 남기고 모조리 원정군에 합류시켰으니 원정군은 그 비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마법사 비율이 높았다.
현재 미르암과 그 군에 속한 마법사는 98명.
조제핀 여사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한 마법사 전원이 마력 배터리 역할을 하며 집단 도약을 준비한다 쳐도 한 사람당 2~30명 정도.
즉, 최대로 잡아도 3천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만을 도약시킬 수 있었다.
그럼 나머지 3천 명은?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기사와 마법사 등의 고급 인력 위주로. 그리고 병사 중에서도 징집병과 부상병을 제외한 정예병이 우선되겠군요.”
“그래. 사실상 이번 원정의 핵심은 그들이니까.”
이해는 된다.
이미 부상을 입은 시점에서 부상병들은 전쟁에 도움이 안 된다.
장비가 부실한 징집병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마령에게 대적할 만한 병장구가 충분치 않다.
전략적으로 그것은 옳은 선택이다.
부정은 안 한다. 부정은.
“다 죽을 거예요.”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미르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 책망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듯.
“제가 어떤 대답을 내릴지 알고 있죠?”
“알아. 그러니까······.”
미르암은 돌연 내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작은 두 손이 두 배는 클법한 내 손을 덮었다.
“부탁해. 이번만은 내 의견을 따라줘.”
그녀는 나를 이해시키거나 납득시킬 수 없다는 걸 안다는 듯, 그저 호소했다.
“음······.”
조금 망설여진다. 미르가 내게 이렇게까지 간절히 부탁했던 건 아마 전생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복수를 도와. 이번 한 번만 눈 감으라고. 그럼 난 네게 모든 걸 줄 수 있어.」
아내와 아이. 얼굴도 모르는 마인들. 누굴 선택해야 할지는 너무나 명확한 상황에서 나는 단호하게 선택했다.
“미안. 그건 좀 안 되겠네요.”
“······넌 빌어먹을 놈이야.”
“아이고, 우리 공주님 화나셨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많이 다른가. 그녀는 순전히 날 걱정하기 때문에 이러는 거니까.
남자로선 행복한 고민이다.
“내 삶의 태도를 관철할 거예요.”
세계를 구한다.
이 커다란 업을 짊어졌을 때, 이 목숨 정도는 얼마든지 걸기로 했다.
‘현대인의 감성치곤 너무 로맨티스트란 말이지.’
조금은 효율이느니 합리적이니 하는 선택을 해도 될 텐데, 이상하게 나는 그게 안 된다.
“너 진짜 왜 그 모양인데······.”
“그러게요. 음··· 뭐,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나는 내 삶의 태도를 관철할 것이다.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도.
“가오 상하잖아요.”
* * * *
만 명이 넘는 군대는 사실상 와해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전멸의 기준인 20%의 손실을 진즉 넘었고, 부상자들도 버려야 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그들이 붕괴하고 도주하지 않는 건, 그나마 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뭉치는 것이야말로 생존할 확률이 높다고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소문이 흘렀다.
-지휘부의 연락장교인 친구가 있는데, 지금 지휘부에서 공간도약을 준비 중이래!
-기사와 마법사들만 빠진다고?
-씨발, 그럼 우린 다 죽으란 소리야?
망령들과 싸우며 난전 속에서도 지휘부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다.
마법사들을 막사로 집결시키고 공간도약에 대한 리스크와 계산을 명령했다.
현장에서 이런 분위기가, 정보가 흘러가지 않을 수가 없다.
“대장님! 그게 사실입니까! 저희들을 버리고 지휘부만 도망친다는 게 사실이냔 말입니까!”
“물러나라! 헛소문에 휘둘리지 마라! 자리를 지켜!”
지휘부가 자신들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끝없는 망자의 파도에 매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전염됐다.
사흘 내내 횃불에 의존해 전투를 벌여야 했던 그들의 피로감도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씨발!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살고 싶은 병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태양 덕에 외부의 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진영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우릴 내보내줘! 우리도 살고 싶다고! 너희들만 도망칠 생각이냐!”
기어코 한 병사가 칼을 뽑았다. 그는 자신이 상관에게 덤벼든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패닉에 빠진 병사가 칼을 상관에게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엇?”
붙잡히는 병사의 손목. 그는 자신을 가로막은 이에게 눈을 부라렸고, 동공이 크게 확대됐다.
“코, 코린 경······.”
그는 자신의 팔을 붙잡을 이가 코린 로크라는 것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하며 시선을 내렸다.
숱한 불신 속에서도 코린 로크는 특별하다.
그는 끝없는 망자에 매몰된 자신들을 위해 태양과 함께 찾아온 기사였다.
코린 로크는 믿을 수 있다.
숱한 싸움에서 사람을 구해온 그는, 분명 우리들의 영웅일 테니까.
“잠깐 진정하고, 무기를 내려놔요.”
“으, 으··· 죄, 죄송······.”
“그래줄 거죠?”
“네, 네네······.”
그는 다그치지 않는다. 하극상을 일으키려던 병사의 손을 붙잡고 조곤하게 부탁했다.
“지나가겠습니다.”
그가 앞으로 걷자 무리가 갈라진다. 혼돈과 공포에 휩싸였던 군인들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건 확실히 진귀한 표현이었다.
그 갈라진 길을 걷는 코린. 그를 왕녀가 뒤따른다.
대륙에서 가장 귀한 여성도 이 순간만큼은 코린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주의를 사로잡는 기사.
신기한 일이다.
고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을 뿐인데, 모두가 그를 본다.
누구 한 명 일개 기사인 그를 타박하지도, 막아서지도 않았다.
그가 가진 영향력이나 힘을 넘어서··· 코린 로크에게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종교의 통합을 이끌어낸 성녀도,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공녀도, 괴물로 비하 받는 마인이나 한때 적이었던 표독스러운 왕녀도.
분명 하나의 재능이긴 했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재능.
믿고 따르게 만드는 재능.
그건 비단 여인들만이 아니라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따라볼 가치를 있게 하는 인망.
그는 기꺼이 사람들 앞에 선다.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재능을 무의식적으로 흘리며.
“아아~ 거 칼라틴 영감님하고 아름다우신 따님들. 확성마법 좀 부탁드릴게요.”
능글맞은 그의 부탁에 마법사 칼라틴은 헛웃음을 흘리며 확성마법을 전개했고, 그의 딸들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모습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영상으로 투시했다.
“현재 지휘본부에서는 집단 공간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다른 부대를 향해 공간도약을 할 것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모두’가 갈 수는 없습니다.”
-······!
-씨발 소문이 사실이었어!
-기사와 마법사들부터 먼저 도망칠 거야!
-우린 버려질 거라고!
당연한 반응이었다.
병사들 본인부터가 자신들의 가치를 안다.
이 전쟁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기사와 마법사들이다.
일개 병사나 부상자들 따위, 그들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들은 결국 사람의 자식이기에, 자신의 삶이 걸린 두려움에 쉬이 굴복한다. 어디까지고 이기적일 수 있었다.
그래, 모두가 그렇게 이기적이라면, 자신도 기꺼이 그럴 수 있으리라.
“나는 여기에 남습니다.”
“”???””
그 선언에 다들 당황한다.
코린 로크는 이 자리에서, 어쩌면 원정군 전체에서도 가장 귀중한 전력이다.
그는 태양을 다루며 수만의 군대를 홀로 가로막고 수많은 결투를 통해 수천 마인들을 지켜냈다.
그는 북부의 장벽으로 진출해 수십 만 야인들을 설득시키고 거인과 마물의 군대를 격퇴했다.
특급 기사.
이 시대의 아이콘.
검제 가란드의 뒤를 잇는 당대 최강자.
그를 잘 아는 자도, 잘 알지 못하는 자도 모두가 안다.
그가 이 원정군에서 가지는 위치와 상징성을.
그리고 비단 그런 것을 벗어나더라도 그는 귀족이었다. 차기 왕녀들의 부군이었다. 현 국왕과 공작이, 검제가 제 사위로 데려가질 못해 안달인 사내였다.
이 전쟁이 끝나면 가장 귀한 권좌에 앉을 남자. 그런 남자가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하다.
병사 수백, 수천 명보다 그 한 명이 더 가치 있다. 그걸 은연 중에 인정할 정도로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강대한 존재다.
그런데 남겠다고?
그 공언만으로 흥분으로 가득차던 군중이 기적처럼 가라앉았다.
“공간도약으로 데려갈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 2~3천명쯤은 데리고 갈 수 있다더군요.”
코린은 솔직하게 정보를 공유했다. 숨기지 않았다. 냉정하게, 후한이 남지 않도록··· 모두에게 선택지를 주기 위해.
“현재 우리들을 다 합치면 6천 3백명이라더군요. 잘해도 절반만 데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부상자들부터 수송할 겁니다.”
부상자의 숫자는 약 천백 하고도 스무 명. 남는 자리는 넉넉히 잡아도 이천여명.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살고 싶은 사람, 도망치고 싶은 사람은 도약을 준비 중인 마법사들 앞에 서십시오.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뜻하는 대로 하세요.”
병사들은 당황스러웠다.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남는다면, 싸우려고 한다면 적어도 기사들은 남겨야 하지 않는가? 최대한 많은 병력을 남겨둬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그래도 되는 겁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코린은 손을 든 기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는 못 갈 겁니다. 인원이 차면 제비뽑기라도 하죠. 거기서 탈락하면 재수 없는 거니까 그냥 받아들여요.”
“······주요전력이 빠지면, 남은 이들은 모두 죽을 텐데요.”
“나는 남을 거니까 어떻게든 됩니다.”
또다.
그는 모두에게 도주를 허용했으면서도 자신은 남는다고 한다.
이제 겨우 성년이 된 청년이, 이상할 정도로 희생을 자처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자극했다.
“젠장,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정말 혼자서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존심이 상한다.
자신들은 살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고 폭동을 일으키려 했는데, 저 새파랗게 젊은 놈은 남겠다고 한다.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한 병사가 물었다. 코린은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고.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지극히 심플한 논리였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에 태연하게 나서며 그는 뺨을 긁적이며 쑥스러운 듯 말한다.
“음··· 뭐, 누군가는 해야 하거든요. 망할 샘을 먹어치우든 터뜨리든, 그래야 이 커다란 나무가 자라는 걸 막을 수 있어요.”
가볍게 목표를 말하고──
“세계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웬 놈팽이가 빛을 앗아가고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걸 막아야겠죠.”
담담히 호소했다. 거기에 강요는 없었다.
“커다란 흐름이 우리 주변을 휩쓸 때, 우리가 원컨 원치 않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다치니까. 그럼 그냥 속 편하게 내가 하렵니다. 그러니까──”
그가 자극하는 건 단지 하나다.
“싸울 용기 없는 녀석들은 꼬리 내리고 냅다 도망쳐. 난 싸울 거고, 겁쟁이는 방해만 되니까.”
자극한다.
이제 겨우 성년이 된 애새끼가, 힘 좀 가졌다고 어른들을 겁쟁이로 매도한다.
니들 정말로 튈 거냐? 나도 싸우는데?
“남자가 삶을 걸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명예. 멋. 가오.
그런 원초적인 것을 자극하며 청년은 한껏 겁쟁이들을 비웃는다. 겁쟁이가 될 예정인 사내들을 떠나 보낸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대개 사내들은 둘로 갈리는 법이다.
“아, 젠장. 애새끼가 싸운다는데 어른이 튈 수도 없고······.”
“좀 강하다고 유세야. 이쪽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기사라고.”
“그래, 까짓 꺼 목숨 걸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아, 사내들이란.
조금 이빨 좀 까주고 솔선수범하고 감성을 자극하면 금방 이렇게 된다.
항상 전투를 앞에 두고 지휘관이 일장연설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끊임없는 위험. 무사히 귀환할 수 없음.
성공 시 명예와 영광.
“효율충특. 쪽팔리게 지 목숨만 중요함.”
유사 이래 사내들은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
“상남자특. 그딴 거 안 따짐.”
아마 그 병은 영영 낫지 않을 것이다.
* * * *
태양이 꺼졌다.
밤이 찾아오고 밤은 망자들의 시간이다.
그들은 두려웠다.
자신들의 등 뒤에 있는 존재. 망자들을 잡아먹고 찢어발기는 사악한 용이.
살아 숨쉬던 것들이 죽어 떨어진 망자의 땅. 그곳에서 안식도 찾지 못하고 악룡에 의해 밟히고 찢어지고, 태워지고, 잡아 먹히는 순환이 그들을 미치게 했다.
-GRrrrrrrr──
용이 입김을 내쉰다. 그것의 눈에서 광기가 솟아난다. 망자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도망쳐야 해.
도망치는 거야.
살아있는 것들이 있어.
그것들을 잡아먹자. 쓰러뜨리고 몸을 차지하자.
그리고 이 망할 샘을 벗어나는 거야.
망자들이 필사적인 이유.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산자들을 공격하는 이유.
그들은 태양이 꺼진 살아있는 것들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
너무나 많고 많아서 전략이라는 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망자의 파도. 그를 앞에 두고.
“기사들.”
무리에서 창을 든 기사가 앞선다. 그는 망자들의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의 반응을 보고 닥쳐올 파도를 느낄 뿐.
그가 보는 것은 망자의 파도 너머. 어둠 속에 녹아든 사악한 악룡의 시선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을 따르는 4천 하고도 삼백 오십삼명을 뒤로 하며.
“검과 창을 들고 전열을 갖춰라.”
은창을 든 기사는 태양의 열기를 뿜는 창을 보란 듯이 번쩍 들어 선언했다.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