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70
외전 장인어른’들’. 따님’들’을 제게 주십시오! (6)
아리샤의 충격고백으로 소피아 씨는 뒤집어졌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기정사실이라는 게 참 그렇다.
이미 했는데 어쩌싈?
아, 내가 책임진다니까?
“으극, 으그그극···!”
이빨이 부서져라 악물며 나를 노려보는 소피아 씨를 보며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저, 진짜 쓰레기 같은데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코린 씨, 이런 말이 있어요. 니가 선택한 하렘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니······.”
하여튼, 소피아 씨가 부들부들했지만, 아덴 가문은 경사라도 난 분위기다.
애초에 내 중혼에 반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으니 과연, 강자존이 지배하는 가문이랄까.
-지이잉!
그리고 예정된 시간. 아덴 가문의 자택으로 공간이 열린다.
“안녕하십니까, 다들 계셨군요.”
조제핀 클라라. 그녀가 나를 맞이하러 왔다.
“오오, 조제핀 교수님.”
“조제핀 교수님이시군.”
동부의 검사들··· 특히 기사급 검사들은 저마다 조제핀을 아는체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가 메르카바 아카데미에서 교수직을 맡은 지도 어느새 80년.
기사로서 의무적으로 아카데미에 다녀왔던 동부의 검사들은 어떤 형태로든 조제핀의 제자였던 셈이다.
“클라라 교수님······.”
나를 노려보며 부들거리던 소피아 씨가 조제핀 여사에게 인사했다. 뭔가··· 호칭이 다르다?
“사나. 오랜만입니다.”
“네······.”
음··· 그래, 소피아 씨도 조제핀 여사의 제자일 수도 있지.
“코린 학생을 데리러 왔습니다만··· 이야기는 잘 풀린 건가요?”
“······.”
소피아 씨는 치를 떨면서도 차마 부정은 못했다. 그녀는 탄식 섞인 한숨을 하면서 읊조렸다.
“이미 기정사실을 만들어둔 작자인데, 제가 어쩌겠습니까.”
“예? 기정사실이요?”
그게 당최 무슨 소리냐는 조제핀. 어음··· 구, 굳이 말해야 하나요?
“저자가 제 딸을··· 흐윽···!”
자초지종을 듣는 조제핀 여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홱! 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선이 날카로웠다.
“도, 도와주십쇼. 마눌님들.”
“저런~ 아직 식은 올리지 않았다만?”
“아, 저 잠시 볼일 좀······.”
조제핀 여사가 또각도각 하이힐 밟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데도 루니아와 아리샤는 시선을 피했다.
그래··· 댁들도 전부 조제핀 여사의 제자였었지.
“코린 학생.”
“넵··· 교수님.”
“전 지금까지 코린 학생이 대단한 자제력과 인내심을 가진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설마 결혼도 전에······.”
“조제핀 교수님. 사실 아리샤가 먼저──”
“남자가 변명하는 거 아닙니다!”
“옙······.”
조제핀 여사는 짝! 하고 말채찍으로 허공을 두드리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이런 놈에게 에린을 시집보내야 한다니······.”
스승님을 엄마처럼 여긴다면서요······ 왜 딸 시집 보내는 엄마처럼 구신담.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어요. 하여간 당신 하는 짓이라면 뭐든 오냐오냐하는 것도 문젭니다.”
“크흠··· 이게 다 같이 잘 되자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조금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일은 틀어졌다.
원만하게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 안 했어.
“다음 행선지는······.”
“후우···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허가 받을 겁니까?”
“아뇨, 아뇨. 제가 아무리 그래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죠.”
루니아하고 아리샤가 부추겨서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막 나가는 놈 아닙니다.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후우······.”
조제핀은 이 화상을 어찌하나 싶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다가 이내 새로이 공간도약 마법진을 펼쳤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날 데리고 가는 거였으니까.
“코린 씨, 바로 출발하시게요?”
슬쩍 다가오는 아리샤.
“어. 다른 분들한테도 소식을 전해야지.”
“그럼 다음에 뵙는 건··· 왕도에서 뵙게 되려나요?”
“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코린 학생. 마법진 위에 서세요.”
조제핀 여사의 재촉에 그녀가 새긴 마법진 위에 선다. 루니아와 아리샤··· 그리고 불만 가득한 얼굴이지만 소피아 장모님도 나를 배웅했다.
“금방 다녀올게, 마누라들!”
피식 웃는 두 사람. 소피아 장모님의 표정이 썩어들어갔지만, 나중에 손주손녀 데려가면 풀어지시겠지.
난 내 자식들한테는 하렘 같은 거 용납할 생각이 없으니 손주 세대는 편안하실 겁니다. 암.
곧이어 마법진이 작동함과 동시에 허수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
조제핀의 초장거리 공간도약을 통해 도착한 곳은 초목이 우거진 동방의 한 마을이었다.
에서는 올 일이 없는 동방 황제국의 시골마을.
이곳에 화와 란의 본가가 있다.
“먼저 가 있다고 했죠?”
“네, 소식을 전했더니 강씨 가문의 대주가 귀향을 제안했기에.”
자신이 데려다주었다고 말하는 조제핀. 메르카바 아카데미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흐레스벨그를 타고 거진 한 달은 비행해야 한다.
공간도약이 가능한 텔레포터가 있다는 건 이렇게나 편하다.
“강유화 양이었죠.”
“네.”
화란. 정확히는 강란의 아버지 강유는 에린 스승님의 분신체였던 에리우 카사르와 인연이 있었다.
듣기로는 동방의 보라매 아카데미와의 협업 중 동방 마법학과 개발에 큰 도움을 주었다나.
참고로 보라매 아카데미도 150년쯤 과거로 돌아가면 초대 학장이 스승님이었다는 모양이다.
희대의 천재 영환술사였던 강유가 마지막으로 딸을 부탁했던 것이 스승님이었고, 스승님이 편지를 받자마자 조제핀 여사와 함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야성 사태’라는 참극이 벌어진 뒤였다.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을 강시로 만든다는 희대의 술법.
그로 인해 생강시가 된 란은 부적에 의해 제어되는 마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나 강유의 등 뒤에서 월야성 사태를 일으키고 사욕으로 화란을 부리던 강륜이 모든 죄를 강유에게 뒤집어 씌웠다.
강유는 사형당했고, 강륜은 화를 후로 승화시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지만, 스승님과 조제핀 여사가 낚아채가면서 무산되고 말았지.
이후로는 동서 아카데미 간의 친목회였던 페스티벌 사건으로 이어진다.
페스티벌을 이용해 진법을 설치하고, 란의 인격을 완전히 소멸시킨 뒤, 화를 후로 승화시킨다.
뭐, 이 사건의 결과는 아시는대로.
그 뒤로 보라매 아카데미는 한바탕 뒤집어졌다는 모양이다.
아카데미의 수석교수였던 강륜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벌인데다, 비록 속았다고는 하나 학생회장이었던 강유화와 2학년 수석이었던 사진혁이 이에 동조했으니까.
그래도 이 일은 비밀리에 처리되어 큰 소요는 없었고, 강륜 본인도 마탑의 성녀 습격 사건 때, 에스텔 손에 뚝배기가 깨졌으니.
하여튼, 나쁜 놈들은 죄 죽고 남아있는 사람은 란의 사촌누이인 강유화와 화를 원수처럼 여겼던 사진혁뿐이었다.
쉬쉬하면서 넘겼으니 죽은 강륜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강유화와 사진혁은 무죄방면되었다는 모양이다.
유화 양은 학생회장직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이만하면 해피엔딩이지.
그리고 오늘.
우리는 화와 란의 고향마을에 방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의 고향은 아니다.
강유의 사택과 재산 대부분은 화란이 월야성에서 폭주하면서 몰수당했다고 하니까.
고로 우리가 방문한 곳은 강씨 가문의 대주가 사는 집. 이른바 본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촌언니하고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네요.”
“란도 화도 착한 아이들이니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곧이어 도착한 강씨 가문의 본가.
마리에처럼 말도 안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지역 유지라는 강씨 가문은 그 사택도 상당했다.
사극에서 볼 법한 정승의 기와집을 쭉 늘어뜨린 듯한 느낌일까?
하지만 우리는 저택의 대문 앞에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기다란 벽돌 기와집 사이사이마다 무장한 병사들이 쫙 깔려 있었던 탓이다.
“코린 학생.”
“······네, 사병이란 느낌은 아니죠.”
도검수를 비롯해 충실하게 무장한 병사들만 수백 명이었다. 걔중에는 기사급인 무사들과 술법사들도 보인다.
“웬놈이냐!”
“멈춰라!”
접근하는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병사들. 조제핀 여사가 나섰다.
“서쪽 대륙의 메르카바 대학사(아카데미)에서 찾아온 조제핀 클라라 수석학장입니다. 우리 학생의 친척 되시는 강유화 양을 찾아 방문하게 됐습니다.”
“양문 강씨 가문의 대주 강유화는 대역죄인 강란을 숨겨둔 혐의로 구금 중에 있다! 물럿거라!”
응? 이게 뭔 소리야?
대역죄인? 이제 와서? 그거 진상 다 알려준 지가 언젠데?
당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웬 인기척이 접근했다.
“좀 늦었네.”
특유의 덜그럭 거리는 의족 소리를 내며 다가온 회색머리 청년.
“사진혁?”
사진혁. 그가 우리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일단 장소를 옮기자고. 일이 복잡하게 됐어.”
* * * *
현재로부터 2주 전.
“고향이다······.”
‘······.’
4년 만의 귀환.
란은 조제핀과 함께 본가로 귀향했다.
“그럼 란 학생. 저는 이만 메르카바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네, 이사장님! 2주 뒤에 오시는 거죠?”
“예, 코린 학생도 지금쯤이면 듀나레프 공작가에 도착했을 겁니다.”
듀나레프 다음에는 아덴 가문이다. 예정대로라면 2주 뒤에 란의 본가인 강씨 가문에도 혼인허가를 받으러 올 것이다.
“헤헤··· 오빠가 우리 가문에 혼인허가를 받으러 온다니······.”
‘들뜨지 마. 바람둥이야.’
“화도 참. 어쩔 수 없잖아.”
‘흥···.’
란은 제 어린 여동생을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화 학생, 란 학생. 두 사람 다 몸조심하세요.”
“네~ 교수님! 화도 조심히 돌아가시래요!”
‘내가 언제.’
조제핀이 다시 한 번 공간도약으로 사라진 뒤, 란은 귀향을 기뻐하며 저택의 대문으로 향했다.
“와~ 정말 다 그대로다. 저기 꽃나무도, 저자거리도 다 그대로야.”
사촌언니인 유화와 인사를 나누고 나면 함께 마을이라도 돌아다녀 봐야겠다.
란은 어렸을 때는 뛰어놀 수 없었던 거리를 신나서 뛰어다니다 문득 제 자매가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 화. 너한테는 좋은 기억이 없었을 텐데.”
‘······괜찮아.’
란에게 이곳은 고향이다.
병든 몸으로 마차를 타고 창문 바깥만을 바라봤던, 친척이 사는 본가.
비록 대부분의 인생을 병상 위에서 보냈다지만, 사촌언니가 자신을 등에 업고 마을을 구경시켜주던 소중한 추억이 남아있었다.
강란이라는 소녀에게는, 너무나 적고 짧은 기억이었으나··· 그렇기에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화란에게 이곳은 좋지 않은 기억만을 상기시키는 장소였다.
비록 조종당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녀는 이 나라에서 참극을 일으켰다.
고향은 그녀를 배척했으며, 저택의 주인인 강륜은 자신을 이용만 하던 악한이었다.
괴물, 살인자, 도구로 이용당하던 화란은 머나먼 서쪽 대륙의 메르카바에 도달하고서야 기댈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고향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괜찮아. 란이 좋다면.’
“이제 괜찮을 거야, 화. 그 사건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니까.”
강륜은 은밀히 처리되었지만, 그가 일으킨 사건들은 낱낱이 공개되었다.
원흉으로 모함받았던 란의 친부 강유는 살아있는 사람을 강시로 만든 죄 때문에 복권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진짜 죄인이 강륜이라는 건 밝혀졌다.
“이제부턴 좋은 기억만 쌓아가는 거야. 모두와 함께.”
‘······응.’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제 몸을 강탈한 마족 소녀는 어느새 한 몸을 공유하는 자매가 되었다.
란과 화는 오래도록 해묵은 관계를 깨끗이 청산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 소년이 선택의 중요성을 말해주며 믿어준 덕이다.
“엣헴! 이리오너라!”
란의 목소리에 대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라, 란 아씨?”
“어? 말숙 아줌마?”
“세상에··· 정말로 돌아오셨군요?”
그녀는 가문에서 일하던 하인이었다. 연구와 일로 바쁜 강유 대신 란의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주던 이였고.
“어서 들어오세요, 란 아씨! 유화 아씨께서 기다리고 계셔요!”
“헤헤, 그래요?”
말숙은 하던 대로 란을 엎으려 자세를 낮췄다.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던 그녀가 이동할 때면 늘 엎어주던 것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란이 말짱하게 걸어다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어?”
“이제 괜찮아. 저 완전 건강해졌어요.”
보란듯이 자리를 박차는 란. 가벼운 뜀박질이었으나 수직으로 50m까지 올라갔다 착지하는 그녀를 보며 말숙은 아연실색했다.
“유화 언니는? 얼른 보고 싶다~”
재작년의 사건 뒤로 근 2년 반만에 만나는 사촌언니였다.
폴짝폴짝 과거의 병세는 조금도 없이 뛴 그녀는 이내 대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유화 언니!”
“란?”
짙은 검은머리카락에 차분한 도사복을 입은 미녀. 자세히 살펴보면 란과도 닮은 구석이 많은 그녀는 제 사촌누이의 방문에 반색했다.
“왔구나. 그래, 어서 자리에 앉으렴.”
검주(劍主) 강유화. 강륜이 사망한 현재, 강씨 가문의 대주이자 란의 혼인을 허락해줄 수 있는 가문의 웃어른이었다.
············
·········
······
“진심이니?”
“응, 진심이에요.”
유화는 혼인 허락을 받고 싶다며 방문의지를 밝혔을 때, 그 대상을 쉬이 짐작했다.
코린 로크.
강륜의 추악한 진실을 밝히고, 온몸을 바쳐 화와 란을 구한 소년.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화를 쓰다듬어주던 그 소년을 기억한다.
선의와, 용기와, 정의로 행동하던··· 선량한 사람.
제가 화란이었어도 분명 그 남자에게 반했으리라.
하지만 걱정도 됐다.
란은 홀몸이 아니다.
그 안에는 마의 인격인 화 또한 존재했다.
물론 그녀가 강륜 숙부가 모함했던 것처럼 사악하지 않으며 란의 몸을 억지로 빼앗은 것도 아니란 걸 알지만.
따지고 보면 두 여인이 한 남편은 공유하는 셈이 되지 않는가?
그래도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어차피 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누구를 남편으로 맞이하던 운명 공동체인 화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둘 모두 한 남자를 연모한다? 이런 우연과 의견의 합치가 언제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코린 로크에게 두 사람을 시집보내는 건 필연적인 선택. 문제는 고향으로 귀향한 란이 밝힌 사실이었다.
“······너 말고도 부인이 여섯 명 더 있다고?”
“아직은 아니지만. 응, 우리까지 포함하면 총 일곱 명이에요.”
“······.”
일부다처제가 낯선 건 아니다.
대귀족이나 황실 등에서 후처를 두는 일은 그럭저럭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일곱? 일곱이나 부인을 맞이하려는 남자에게 제 사촌동생을 시집보내야 한다고?
“라, 란···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안돼요.”
칼 같은 거절이었다.
산뜻한 미소는 기억 속 사촌 동생과 같을진대, 거절에서 풍겨 나오는 한기는 낯설 정도로 차가웠다.
“전, 오빠가 아니면 안 되니까.”
“그, 그래도 말이야. 화, 화는? 화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
협상의 여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란 대신 화를 부르는 유화.
그에 대답하듯 머릿결 안쪽과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간 그녀는 부드러운 웃는 상에서 무뚝뚝한 인상으로 변해갔다.
“······안녕.”
“화(火)구나······.”
한때는 원망하고 증오하던 이. 하지만 이제는 그녀에게 죄가 없음을 안다.
그래서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만이 남은 아이였다.
“너는 괜찮니?”
“············.”
화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괜찮지는 않았다. 불만도 많았다. 독점욕도 있었다. 그녀가 허용하는 선은 딱 제 자매까지였다.
“안 괜찮으면··· 코린이 아파.”
그날을 떠올릿다. 새파랗게 질려 파르르 떨리던 그를.
“코린이 아픈 건 싫어.”
충격에 한 발자국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사랑을 자각하지 못했던 과거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다치면. 마음이 아파.」
참말이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코린이 아프면 나도 아파.”
그가 아픈 모습을 보며 제 심장이 욱신거렸다.
마음이 아팠다.
“······.”
한뼘도 움직이지 않는 표정 속에서 느껴지는 절절함에 유화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아이는, 사랑을 하고 있구나.
그것이 너무나 와닿도록 느껴져서.
“어쩔 수 없지요.”
그녀는 이 혼인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고마워.”
그렇게 코린이 도착하기도 전, 이미 혼인 허가를 맡아버린 화란에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대역죄인 강란은 들으라!”
그녀가 도착한 지 일주일 뒤.
황실에서 군대와 함께 화란을 압송하러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