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83
외전 지구(6)
16년 전, 에서 귀환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러시아를 제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제재 아래 침몰해가는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무엇보다 힘 있는 자가 힘과 권력을 가지는 게 당연시되는 러시아였기에 그는 지극히 러시아인답게 행동했을 뿐이다.
강자는 무엇을 해도 괜찮다. 호로비츠는 약자인 러시아 정부를 기꺼이 전복시켰다.
한때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서방세계를 정복해볼까 했지만, 귀환자들은 러시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서방 각지의 국가들··· 심지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도 있었고,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자니 중국과 한국, 일본도 만만찮다.
굳이 진출할 필요가 있을까?
러시아 내에만 있으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데.
그는 현실에 안주했다.
세계는 그가 뛰놀기엔 너무 넓고 크다.
자국 내에서라면 그는 무적의 도끼전사요, 견제할 이가 없는 차르였으니.
스물 세살.
사치와 향락에 젖은 청년은 전임 대통령을 흉내냈다.
힘을 과시하고, 적당히 외부를 자극하고, 선전과 선동으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한다.
마신 박시린 같은 랭킹외를 제외한다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나름 랭킹 3위의 초강자였으니까.
그렇게 12년.
대한마도제국 대총통 박시린이 사라졌다.
그들이 개발한 차원문을 통해.
“저거다!”
차원문.
이계로 향할 수 있는 차원문의 발견에 호로비츠는 쾌재를 불렀다.
러시아에서 온갖 여자들을 섭렵하고 사치를 부렸지만, 시간이 날 때면 자꾸만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마리에, 아리샤, 화란, 에린 다누아나 에스텔에 이르기까지.
그 아름다움은 여인들. 지구의 여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상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가진 여신들!
물론 그 세계에서 호로비츠가 작업을 걸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강함에 자신 있었고 올라가는 명성을 누리며 우쭐해 있었다.
마리에는 유폐됐다지만, 다른 이들은 충분히 자신이 꼬셔볼 만 했다.
-어··· 시후 씨를 연애대상으로 본 적은 없는데요··· 우리 좋은 친구 사이로만 지내요. 죄송해요.
-너 술냄새 나. 좀 씻고다녀.
-시후군? 으음··· 여유로운 모양이구나. 일만번 도끼질부터 다시 시작하렴.
-시후 후배? 후배는 연애를 하려면 일단 여자의 마음부터 배려하는 법을 배워. 솔직히 후배 하는 꼬라지를 보면··· 남성혐오가 생길 지경이거든.
다 까였다.
메인 히로인들은 게임에서처럼 선물하기 버튼을 누르고 호감도 상승 대화문을 선택한다고 연인이 되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호로비츠는 제 힘을 과시하며 남성주의적 마초이즘을 당당히 떠벌리던 사내였다. 힘 좀 쎄다고 연인이 되어줄 리가 없다. 딱히 무력이 아쉬운 이들도 아니었고.
하여튼,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놓친 건 아쉽기 마련이다. 하물며 모든 사치와 향락을 누린 권력자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차원문 개발을 시도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 너무 무모했던 걸까.
러시아는 가장 먼저 차원문을 개발, 상용화했으며 1차 정벌군을 보낼 수 있었다.
-너무 무모합니다, 차르!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간이 너무 불안정해서 시간축 고정도 제대로 안 됐습니다!
-소규모 정찰대는 어찌어찌 성공했어도 이런 대규모 이동은···!
멍청한 학자들의 계집애 같은 불평이 있었지만, 마더 러시아의 상남자는 그깟 쫌스러운 위험에 겁 먹지 않는다.
그는 전부 죽을지도 모르는 차원문에 8천 명의 러시아군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결과는?
“뭐? 시베리아 주둔군이 전멸해?”
차원문으로 진입한 군대라면 이해한다. 이세계는 현대 지구에 비하면 낙후됐지만, 1급이니 준특급이니 하는 강자들이 상당히 존재했으니.
하지만 왜 뜬금없이 차원문을 지키고 있던 주둔군이 궤멸한단 말인가?
“차르···! 위성의 관측영상을 확인해주십시오!”
그 영상을 보자마자 호로비츠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창이 날아닥치고 있다.
섬광처럼 빛을 뿜어내는 광창이 전차던, 헬기던, 전투기던 관계없이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이 창을 그는 알고 있다.
“빛의 창··· 아라드와?”
타테스 발타자르가 왔다고?
오싹, 호로비츠는 마신 등장 이후 처음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광창의 주인 타테스 발타자르.
그는 을 플레이 하면서 단 두 번 만나볼 수 있는 존재다.
첫번째는 2학년 에피소드 종막. .
수확제의 마지막 날, 그림자 마수들과 함께 아카데미를 침공하는 아카데미 붕괴 에피소드에서 낙원의 여왕 에린 다누아를 살해할 때.
그리고 북부 야인토벌과 무한뱀 미르함, 서리거인전, 세 개의 샘 전투를 클리어하고서야 비로소 타테스 발타자르를 마주하게 된다.
호로비츠는 자신이 처음 발타자르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너. 그냥 보내줄 테니까 가라.
에린 다누아와 공투를 하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강함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 그렇게 판단하고 만전을 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압도적인 패배. 에린의 심장에 창이 꽂히는 순간, 호로비츠는 자신 따윈 걸림돌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하··· 그나마 나은 놈이 이 정도인가.
영문을 알 수는 없지만, 타테스는 그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1년 뒤, 최후의 결전에서 그는──
-쯧.
가볍게 쏘아낸 광창을 막아내지 못하고 사망했다. 광창 공략을 위해 적창 게 데르그를 가져왔음에도 손에 익지 않은 창은 미끄러져서 제 심장을 꿰뚫는 광창을 스치지도 못했다.
-말도 안 돼! 가을 수확제 때와는 달라! 계율도 두 개나 공략했어! 저게 대폭 약화된 거라고? 저런 걸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세간에는 타테스와 사흘밤낮을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처럼 말했지만, 호로비츠는 타테스의 수염 한자락도 잘라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차원문을 통해 저쪽에서 흘러들어온 누군가가 광창을 사용했다.
틀림없다.
타테스 발타자르다.
그가 차원문을 타고 귀환한 것이다.
“쏴버려!”
“차, 차르?”
트라우마를 자극당해 발작하는 호로비츠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여비서. 그녀는 언제나 광오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그가 이처럼 겁에 질린 표정을 처음 보았다.
“핵! 핵을 쏘라고! 그놈은 절대 접근하게 두면 안 돼! 전부 쏴버려!”
거의 광적인 악바리와 함께 핵발사 버튼을 눌렀다.
대마신용 극초음속 핵미사일 아방가르드Ⅱ
그 파멸의 종말병기가 시베리아 설원을 향해 일제히 쏘아졌다.
* * * *
-항복하라!
수천의 총구와 수백의 포구. 수십 대의 헬기들이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채 이쪽을 노려본다.
차원문 돌입과 동시에 러시아의 차원문을 박살낸 창술사는 그저 자신에게 향해지는 화력의 총합을 장난감 보듯이 응시하고 있다.
오만하긴.
러시아 장교 보리소프는 이계에서 넘어왔을 이세계인을 어리석다 여겼다.
박시후 사태로 인간을 초월한 개인은 다수 있었으나 그들 대부분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마신 박시린을 제외하고 결국 군대에 의해 제압될 수 있는 일개 개인.
호로비츠를 비롯한 하이랭커가 사태 초기 손쉽게 정권을 잡았던 건 어디까지나 대응능력이 떨어졌던 탓이다.
허나, 박시후 사태 이후 16년. 군대는 초인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전략을 정립했고, 그들이 가진 한계를 아주 잘 알았다.
‘좀 강한 모양인데, 그래봤자야. 이제 더이상 개인이 군대를 이길 순 없어.’
마신을 제외한 십강 중 한명 인도의 마하 칼리가 바로 그러했다.
그는 90레벨대의 최강의 3인 중 한명에 속했지만, 중국이 약해진 틈을 타 서중국을 침공했다가 집단군 단위의 화력세례를 맞고 녹아죽지 않았던가.
개인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만용을 부리다 뒈진 것이다.
-항복하라! 항복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압도적 화력은 개인을 쓸어내린다. 그 교과서적인 정석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
-다 죽어간다더니 이런데 쓸 군대는 있었나보네.
빛나는 저 창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고작 창 한 자루다. 수많은 총구가 철컥거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향한다.
-죽여버려!
명령이 떨이지기 수십 만 발의 총알 일제히 쏘아졌다.
7.62mm 탄망으로도 산사태를 일으킬 거 같은 일제소사.
지휘관은 자신이 첫 이세계인 사살의 전과를 올리겠다며 껄껄 거렸다.
『 ᛇ 』 ── 에이와즈
첫 번째 탄막이 도달하기 전, 손가락이 허공을 그었다.
방어의 룬.
룬술사가 새긴 방어의 문자는 수십 만 탄막을 가로막는 방패가 되었다.
-방어마법인가!
-제법 막는군! 하지만 그 정도 하는 마법사는 널렸어!
다음으로 155mm 포탄과 공격헬기의 공대지 미사일이 퍼부어졌다.
룬의 장벽이 쪼개지고 으스러진다. 저것이 모두 박살나는 순간이 놈의 최후다!
허나, 룬술사 코린 로크는 벽에 기댄 채 차원문 주둔 러시아군의 MRE를 까고 있었다.
“아니, 시발 2022년 생산? 한국군도 이따위는 아니겠다!”
노르망디에 쓰였던 미군 수통을 들고 다니던 코린도 이것에는 경악했다. 최소한 유통기한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그런 여유와는 별개로 방어의 룬은 점차 깨지고 있다. 어지간한 지역 초토화 수준의 화력을 얻어맞고 있음에도 깨지지 않는 자신의 룬 실력을 칭찬해야 할까?
‘신왕이 되고나서 룬도 덩달아 강화된 느낌이긴 해.’
설마 얼치기 룬술사인 자신의 룬으로 여기까지 방어가 될 줄이야.
“MRE는 못 먹을 물건이고··· 저걸 다 죽여버릴 수도 없으니······.”
코린은 광창을 들었다. 이 주변에 대충 파악한 것만 5천 명이 넘는다. 피해없이 죽이려면 적당히 적당히 해야한다.
“니들이 뭔 죄냐. 다 끌려온 놈들이니.”
그는 징병제 출신의 애환을 러시아 군인들에게도 투영하고 있었다.
“아라드와.”
자동, 필중, 필천의 창. 광창이 그의 의지에 응하여 빛을 내뿜는다.
광명의 다난 타테스 발타자르를 쓰러뜨리고 손에 넣은 이 광창은 코린 로크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태양 클라우 솔라스를 쫓아내고 자신만 쓰라는 듯 적극적으로 그의 명령에 따를 정도다.
“사람 안 죽게 적당히. 총은 박살내고 전차는 포신만 잘라내. 헬기는··· 무장하고 엔진만 날려버려서 폭사하는 일만 막아.”
운 좋으면 살겠지.
다음 순간, 광창이 날았다.
빛의 창 아라드와. 그 속도는 실로 빛 그 자체.
아라드와는 주인의 넘치는 마력을 받고 정해진 명령을 어김없이 해낸다.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전차가 잘려나갔다.
궤도가 산산조각난 장갑차들은 설원 한복판에 파묻혔다.
병사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가운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헬기 조종수들은 입을 벌린 채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카각!
인지를 넘어선 속도의 무언가가 헬기 편대에 날아든다. 조종사들이 인지한 건 머리 위로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사실 뿐이다.
-뭐, 뭐야 씨발!
-추락한다!
그들이 인지하기로 0.8초. 그 사이에 16대의 공격헬기 모두가 추락한다.
박시후 사태 이후로 시작된 봉건제.
초인을 대통령으로, 차르로, 대총통으로 모셔야 했던 파괴된 민주주의 속에서.
인류는 기어코 초인과 군대의 대칭을 역전시켰다.
결국 개인은 군대를, 국가를 이길 수 없노라고.
그러나 현재.
인류사 굴욕의 시대가 도래한다.
지구 국가들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였다.
* * * *
우크라이나 패전 이후로 러시아는 자국의 경제를 등한시하며 군대 재건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귀환자들을 상대로 하는 대 초인 전투는 러시아가 미국 다음이라 할만했다.
그들은 잘 훈련되지는 않았지만, 숫자는 봐줄 만 했고, 레드팀 특유의 인명경시사상은 병사들을 기꺼이 사지로 내몰았다.
일만의 병사가 모두 죽더라도 박시후 한 명을 잡으면 이쪽이 이득이라는 논리다.
상대를 굴복시킨다면 그 외에 잃는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 병사든, 장비든, 경제든··· 어쨌든 마지막에 성과를 달성하고 이겼다고 정신승리하면 되니까.
하지만 자신들의 차원문 너머에서 나타난 기사를 상대로 러시아는 연전연패했다.
코린 로크는 부동이었고, 그에게 쏟아지는 모든 화력은 그를 상처 입히지 못했으며 빛의 창을 어디에서든 나타나 손살같이 러시아군을 무력화시켰다.
그와중에 죽은 이들이 파괴된 전투기에서 탈출을 못한 조종사나 아군의 오사로 죽어나간 보병들이 고작이었다는 게 공포였다.
저 이계의 무언가는 너무나 자비로울 정도로 이쪽을 봐주고 있다고, 보병들조차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끔찍할 정도로 밀어넣은 보병들이 무기를 잃고, 전차와 장갑차들은 무자비하게 절단됐으며, 헬기와 전투기들은 연이어 추락한다.
저항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쏟아지는 폭탄세례조차 저 괴물의 한 발자국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폭음과 먼지로 뒤덮인 시베리아 설원. 광창 아라드와의 위성사진을 목격한 차르가 트라우마로 발작한 것은 전투 시작후 8시간 째였고, 6개 사단이 궤멸한 뒤였다.
-전군 후퇴!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라!
겁에 질린 열일곱살 러시아 소년군을 융단폭격세례로부터 지켜주던 그때.
어느덧 달빛이 설원을 비추는 가운데, 저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코린은 제 시야에 들어온 마하 27의 무언가를 보고 ICBM임을 직감했다.
“자국에 핵을 쏴?”
대마신 전투를 대비해 제조된 극초음속 핵미사일은 그대로 코린 로크에게 직격했다.
밤이 밝혀지며, 굉음이 폭음에 삼켜진다.
설원의 눈밭을 날려버리는 압도적 열기. 십수 발의 3메가톤급 핵미사일들이 이뤄낸 끔찍한 충격파는 순식간에 지상을 녹여버렸다.
마하 27의 충격. 직접적인 폭발의 열기와 충격파. 거기에 생명체를 오염시키는 방사능까지.
찰나지만, 코린은 시력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사방을 뒤덮는 붉은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방금까지 어깨를 두드려주던 소년병이 형체 없이 사라졌음을 보고서야 코린은 러시아가 자국군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내했음을 느낀다.
“미친 새끼들.”
아무리 못 이길 것 같아도 그렇지, 자국 병사들을 향해 핵 미사일 세례를 퍼붓는단 말인가?
녹아버릴 병사들은? 주변 도시들은? 낙진으로 인한 피해는?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패닉에 휩싸인 건가? 아니, 그만큼 인명을 경시하는 지도자가 있는 건가?
항복이나 협상을 하느니 차라리 자국에 핵 샤워를 시키겠다고? 그런 미친놈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됐단 말인가.
코린은 제 몸을 살핀다.
모든 열기에 내성을 가지는 태양 클라우 솔라스의 개념이 핵폭발의 열기마저 막아냈다. 삿된 것을 정화하는 힘 또한 몸속에 스며드는 방사능을 삽시간에 소멸시켰다.
그를 상처입힌 건 충격의 여파로 생긴 파동 정도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미하다.
인간의 격을 넘어 신격을 획득한 그에게 인류사의 화기는 그 효과가 크게 반감된다. 괜히 신들이 불로불사를 자처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쓰러뜨리려면 동등한 격에서, 오러와 마력을 머금은 보물과 초인의 힘으로 맞서야만 한다.
고이델 민족의 영웅들은 그러한 강자였기에 신들을 거꾸러뜨리는 게 가능했다.
“옷이 다 타버렸잖아······.”
그는 제게 주어진 마나난 막 리르와 루의 보물창고를 연다.
아공간에 숨겨진 이 창고는 신왕에 종속된 그만의 인벤토리. 코린은 잡다한 생필품을 그곳에 넣었었다.
보물창고에서 같은 옷을 꺼내 입는다. 코린은 방금까지 울먹이며 엄마를 찾던 러시아 소년병을 기억한다.
“불쌍한 놈들.”
적당히 무력시위를 하고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지켜야 할 선을 규정해주고 그를 넘으면 징벌하겠다 경고할 생각이었다.
코린 로크도 결국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타고 자란 소시민이었기에, 국민에게 선출된 지도자의 권위를 손상시킬 필욘 없다 여겼다.
하지만 2036년의 세계는··· 적어도 러시아는 그러한 온정을 배풀 가치도 없는 모양이다.
신왕이 걷는다.
태양과 광명이 함께 포착된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향해 다가오는 이계의 신을, 그들은 막지 못한다.
-차르! 차르! 태양입니다! 시베리아 설원을···! 태양이 녹이고 있습니다!
-으아아아악! 뭐야, 이게! 비행단 전멸! 편대가 3초도 안 돼서 추락하고 있다고!
-이상전자기장 발생! 레이더 먹통! 접근한 부대는 모두 통신이 두절됐다! 저 태양이 전자기파를 차단하고 있다!
-저 특수구조체가 미사일을 잡아먹고 있다! 핵도 안 통해! 어떤 화력도 저것에 탄착조차 못하고 있다고!
“차르! 차르께서 나서셔야 합니다!”
“내, 내가?”
군 참모회의장. 믿기지 않는 영상을 확인한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 사람에게 향한다.
방법은 하나뿐.
러시아 최강전력.
인간의 몸을 초월한 초인.
당대 러시아군을 돌파하고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머리통을 쪼갠 도끼전사.
그는 자신에게 향해지는 기대 앞에서 황당함을 느꼈다.
내가? 왜?
저 괴물을 나보고 어쩌라고?
핵도 통하지 않는 괴물이다. 아니, 자신이라면 핵을 쏘기 전에 퍼부은 화력만으로 진작 뒈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자신이 나서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는 외교현장에서도 과시적으로 들고 다니던 거대 양날도끼를 보았다.
저걸 마지막으로 휘둘러 본 게 언제였더라? 애인에게 자랑할 때, 수영장을 반토막 냈을 때였나.
그는 핑곗거리를 찾으며 일어서다가 뒤뚱거리는 자신의 하반신을 보았다.
16년. 안락과 사치에 젖어든 16년은 전사를 살찐 돼지로 만들어놓기 충분한 시간이다.
언제 이렇게··· 살이 찐 거지? 산도 가르던 강대한 육체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이런 비루한 몸뚱이로··· 저런 괴물을 상대하라고?
“나, 나는 못······.”
러시아 차르의 황위를 놓아서라도 불가한 일이다. 해외도피까지 생각하며 당장의 핑계거리를 읊으려던 그때──
-쾅!
크렘린궁의 지붕을 박살내며 무언가가 떨어졌다.
“후~ 이거 문화재로 아는데 좀 아깝긴 해.”
코린 로크.
그가 호로비츠 앞에 강림했다.
창술사의 시선이 비루한 돼지에게로 향한다.
“오러량이 가장 많기에 바로 찾아왔는데······ 뭐야, 너?”
코린은 스마트폰으로 보았던 강대한 도끼전사를 찾아왔다. 헌데, 눈앞에 보이는 건 웬 돼지다.
“무, 무례하다! 나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
그의 말은 끝을 보지 못했다. 가볍게 후려친 발차기가 그를 크렘린 궁의 외벽까지 날려버렸다.
코린은 벽을 박살내며 튕겨나간 호로비츠 앞까지 달려와 창을 내질렀다.
“도끼 들고 있잖냐. 휘둘러 봐.”
그 찰나의 순간, 본능적으로 손에 쥔 도끼. 그는 용케 그것으로 코린의 창을 막았다. 그의 육신이 창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푹 꺼진다.
“끄으으으···!”
“하······.”
형편없다. 막는 것조차도.
가볍게 힘만으로 휘두른 일격조차 견디지 못해서 바닥에 꺼지는 수준이라니.
“박시린 그 녀석은 전보다도 더 마법이 날카로워졌었는데 말이지.”
16년간 스스로를 방치해온 것을 과연 전사라 부를 수 있을까.
코린은 지구인의 나태함과 게으름에 실망하며 창에 검은 기운을 피어내기 시작했다.
“더 볼 것도 없겠어.”
찰나. 호로비츠가 인지하지 못하는 검은 영역. 그 안에서 그는 단 일격의 창조차 막지 못하고 심장을 관통 당했다.
“핵만 안 쐈어도 지위는 유지했을 것을.”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사람 목숨을 뭐라 생각하는지.
2036년 5월.
아르드리 코린 로크.
그는 러시아 제국 15개 사단을 궤멸시켰으며, 차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격살했다.
그가 스스로의 의지로 죽인 유일한 전사자였으며 그가 압도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러시아 사령부는 전의를 상실, 무조건 항복을 외쳤다.
「전세계에 고한다.」
단 하루 만에 러시아 제국을 항복시킨 그가 모든 해외 언론기자들 앞에서 선포했다.
때마침 서중국에서 혈신 리차오가 죽고, 일본 정부가 파견한 모든 박시후들이 박살났으며, 미국 펜타곤이 점령당한 소식이 사실로 확인되던 시점이었다.
「차원문 개발을 중지하고 이세계에 대한 야욕을 멈춰라. 그래도 뭐··· 해보고 싶으면 해봐.」
이계에서 박시후들이 귀환했다.
그들의 힘은 하나 같이 초인적이었고, 인류사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세계는 그들의 힘을 인정하고 더러는 대통령으로, 더러는 차르로, 더러는 총통으로 떠받들었으니.
그렇다면······.
눈앞의 신들에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태양신의 광오한 미소 앞에 기자들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외전 에피소드 4
지구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