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86
외전 박시린(3)
“아자씨 누구에여?”
코린은 보자마자 직감했다.
루비빛 눈동자. 특유의 야성적인 이목구비······.
시기상으로 이렇게 클 수가 있나? 하지만 본능이 말하고 있다.
아이는 자신의 딸이다.
씨발.
내뱉지 않은 욕설에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흠칫 거리는 아이. 코린은 최대한 표정을 유하게 풀며 아이의 눈높이를 맞췄다.
“엄마 친구야. 아저씨 이름은 코린 로크··· 코린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 꼬마 아가씨는 이름이 뭐니?”
“하연이요. 박하연.”
“그래. 혹시 엄마는 어디 계시니?”
그러자 손가락으로 언덕 위 별장 건물을 가리키는 아이.
에린의 신력을 쫓아 찾아온 섬에서 예상치 못한 자신의 아이를 만났다.
이 지구에서 코린의 아이를 품고 있었을 여자는 한명 뿐.
“······오빠.”
“어.”
박시린.
모래사장을 향해 허겁지겁 뛰어온 그녀는 코린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 에린이 있다. 그녀는 자초지종을 파악한지 오래. 그저 제 남편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줄 뿐이다.
“······.”
코린은 그를 아는 이라면 더없이 놀랄 만큼 차갑게 제 아이의 엄마를 바라봤다.
그 무언의 시선을 시린은 그저 떨면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
“어, 어떻··· 게······.”
상대의 시선을 차마 마주하지 못한다.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책망이 두려웠고,
그 입가에서 흘러나올 부정이 두려웠다.
아이를 빌미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저열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우리 하연이마저 부정하면 어쩌지?
오빠가 하연이를 부정하면··· 자신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그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빠진다.
“개버릇 남 못 준다고, 지구에서도 화려하게 저지르셨구만.”
책망하는 듯한 말에 흠칫 어깨를 떤다.
그래, 지구에서도 그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 사람을 죽였고, 잔혹하게 굴었다.
핑곗거리는 있다.
나쁜 놈들 아닌가.
탐욕으로 다른 이들을 기꺼이 죽이던 놈들이다.
죄없는 이들을 죽였다며 책망받았을 때 이후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최소한의 효율’을 추구했다.
게임 세상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도 아무나 막 죽일 정도로 막나가지는 않았다.
통일을 위해, 자국의 방어를 위해, 정당방위라는 기치 아래 명분을 가지려 애썼다.
그건 분명 나중에 그와 재회했을 때를 대비한 나름의 보험이었고.
하지만 이 사람에게 그런 핑계가 통할까?
근본부터 선량한 사람이다. 사람 죽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호인이며 선인.
악인이라 할지라도 용납하지 않을지 모른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싸이코처럼 막 죽인 건 아니니까.”
“하아······.”
다행히도 그는 그런 것까지 부정하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순간이었다. 그녀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쥐는 커다란 손.
턱을 움켜쥔 채, 코린이 시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렇다고 니가 내게 한 짓들이 정당화되지 않아.”
아이의 엄마를 바라보는, 오랜 시간 자신을 지켜주었던 형의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의 시선에 담긴 건 불신과 증오.
아아··· 역시 난······.
오빠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더이상 그때의 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코린은 붙잡고 있던 시린을 거칠게 놓으면서 겁을 집어먹은 하연을 바라봤다.
“내 아이지?”
“어, 으, 응······.”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식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뻤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내가 데려간다.”
“어?”
순간, 시린은 자신이 잘못 들었는가 싶었다.
하연이를? 그럼··· 나는?
“설마 너 같은 미친년도 같이 데려갈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 아니, 나는··· 난······.”
코린이 하연을 향해 다가갔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은 어린 아이는 멀뚱멀뚱 다가오는 제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어?”
하연이에게 코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 오빠···!”
시린이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 안 돼. 하연이는··· 내 딸은··· 데려가지 마··· 부탁이야······.”
“넌 내게 부탁을 할 주제가 못 될 텐데.”
차갑게 응수하며 시린을 뿌리치고 하연에게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내, 내 딸은 못 데려가!”
무형의 공간에서 생성된 거대한 에테르 덩어리가 그를 덮쳤다. 순식간에 모래사장을 튕기는 신형. 그는 곧장 자세를 잡아 일어섰고, 자신을 날려버린 박시린을 응시했다.
“흐음······.”
어떤 발현의 단계 없이 최상급 마법 수준의 위력. 과연, 끝내 달성한 고속영창은 이전보다 발전해 있다.
“막을 셈이냐.”
“으, 으으······.”
스스로 선공을 가했으면서도 시린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를 마주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굴었다.
“네 패악질이 가능했던 이유는 네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 같은 힘의 논리야. 네가 나보다 약하다면 넌 내게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어.”
“오, 오빠··· 나는······.”
그녀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무색하게 코린은 아공간의 보물창고에서 은창을 꺼냈다.
“이전의 나를 생각하면 오산이야.”
육합창(六合槍)
괴산오의(壞山奧義).
파공성과 함께 쏘아지는 은창. 스치는 속도만으로 모래폭풍을 일으키는 창의 직격이 그녀를 향한다.
그에 대응해 손짓으로 전개되는 절대방벽. 마력을 머금은 공기의 벽이 단층을 만들어 창의 직선방향을 막아선다.
-콰가가각!
공간을 찢는 투창의 오의. 이 기술을 시린은 너무나 잘 안다.
‘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하지만, 단순한 만큼 파훼도 쉬워!’
순수한 파괴력에 올인한 투창. 그 위력은 대단하지만, 공격의 방향성을 조정하는 약간의 간섭만으로──
-콰앙!
허공으로 튕기는 은창. 공격방향이 비틀린 창이 엉뚱한 허공으로 향하던 그때, 코린이 읊조린다.
“오라.”
튕겨나가던 은창이 허공에서 멈춘다. 회귀의 룬이 새겨진 은창은 곧장 주인에게로 돌아오려 한다.
그 틈을 시린은 놓치지 않는다.
98명의 박시후들이 잃어버린 플레이어로서의 권능.
그것을 오리지널 마법으로 개화시킨 그녀는 제 소환수를 꺼내들었다.
본래라면 테이머 클래스가 육성해야 할 신수들을 그녀는 손짓으로 부리며 돌격시켰다.
“브란과 스콜랑인가. 오랜 전우를 만나 반갑지만······.”
두 번째 창을 꺼내는 코린. 불길할 정도로 시뻘건 창을 보자 시린이 당황했다.
“게 데르그?”
수호의 황창 게 비더가 아닌 짐승사냥의 적창 게 데르그란 사실에 시린은 새삼 그가 이전 회차의 코린이 아님을 깨달았다.
수호대상의 지킬 때, 스테이터스를 상승시키는 마법의 황창··· 그것은 플레이어이자 파티의 핵심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창이다.
이제 그는 시린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
코린을 상대로 망설이면서도 주인의 명령을 따라 달려드는 전설의 맹견 브란과 스콜랑. 그들은 코린을 덮치려는 순간 창에 스쳐지나가며 저주를 받았다.
“크릉···!”
“커흥!”
짐승사냥의 저주.
둔화된 두 사냥개를 무시하고 곧장 시린을 향해 달린다.
“이전의 내가 아니다!”
내리치는 적창. 시린은 황창이 아닌 적창을 보고 이를 악물며 마법을 쏘았다.
최상급 화염마법. 특급 클래스의 기사가 접근하기도 전에 발현되는 대화력이 그를 덮친다.
그리고 그게 너무나 큰 실책이라는 사실을 시린은 깨달았다.
“클라우 솔라스···!”
열기에 대한 절대내성. 오하드 브레스를 쓰러뜨리고 그것을 코린이 사용했었다.
마력의 한계로 집속조차 제대로 못 했지만, 그 절대내성만으로 무지막지한 성능.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화염을 뚫고 시린에게 도달한 그는 뛰어든 기세 그대로 하이킥을 날렸다.
“커흑···!”
꼴사납게 모래사장을 구른다. 그녀의 얼굴과 몸이 모래로 가득 더럽혀지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여유롭게 응시하는 코린.
“싸우는 자로서의 재능은 내가 나았었지. 넌 전사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당하는 건 코린이었다. 당연했다. 코린은 한번도 그녀를 적대한 적이 없으니까.
“지금까지는 너를 지키기 위해, 너를 적이라 인식도 못했을 때, 기습 당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정진정명 정면승부다.”
그의 안에 오러 코어가 맹렬히 회전한다. 마신인 그녀조차도 압도당할 만큼 광오한 에너지.
“수라?”
육합창의 마지막 합. 그 폭발적인 힘과 속도와 함께──
“그러니까.”
검푸른 짐승이 웃는다. 다음 순간, 시린의 시야에서 그가 사라졌다.
“거리낌 없이 널 죽일 수 있어.”
목소리가 들린 건 후방. 핏발 선 눈으로 돌아봤을 땐 이미 늦었다.
-팡!
가볍게 공기를 가르는 창날. 그것이 허공에 심어둔 빙결폭뢰와 부딪쳤다.
-콰드득!
공간 째로 얼리며 창의 일격을 막는 빙결마법.
“보험 들어두는 건 여전한데.”
다음 순간, 코린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마법이 빛을 발한다.
모두가 폭뢰 마법들. 접근전에 약한 마법사가 전사의 접근과 동시에 터뜨리는 전술이다.
그 수십 개의 마법이 발현되려는 바로 그 순간.
무간회천(無間廻天) 난창(亂槍).
초 단위에 수십 번. 오로지 속도만을 높인 신속의 창이 마법의 발현 전에 마력이 모이는 근원을 깨뜨린다.
“큭···!”
마법이 파훼됨과 동시에 공간을 도약한다.
공간마법만큼은 마스터할 수 없었던 그녀였지만, 단거리 도약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일단 거리를 벌린 뒤에──
빛의 창이 쏘아졌다.
타테스 발타자르의, 필중, 필천, 필살의 창. 그것을 자신을 향해 쏘았다.
“그렇게까지···!”
내 아이를 데려가려는 거야?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때와는 입장조차 바뀌었다.
서로를 향했던 우정과 전우애조차 일방적인 집착과 증오로 변해버렸는가.
우리는 서로를 위해 모든 걸 걸어왔었는데.
왜 나만··· 왜 나만 선택받지 못해서······.
아니, 그 이유는 너무나 명료하다.
선인과 악인은 공존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해도 그이의 영역은 악한 것을 허용치 않는다.
끝내 자신이 용납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시린은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잘못됨을 앎에도 집착과 망집이 사단을 일으켰다.
잘못된 건 자신이다. 따져볼 것도 없이 너무 명확해서, 그저 서럽고 슬프다.
차라리 저 창에 꿰뚫린다면··· 오빠가 조금은 날 용서해줄까?
어차피 죽으려던 삶이었다. 끝장난 인생이었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이상 나아가지 않으려던 참이었다.
차라리··· 차라리 이대로 죽어준다면.
조금은 동정받을 수 있을──
-엄마!
귓가에 들려온 작은 목소리.
정신을 차린 순간, 빛의 창이 날아들고 있었다.
정확히 심장을 노리는 그 창에··· 죽는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시린은 자신의 안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생존의지를 발견했다.
본능과도 같은 마법의 발현.
날아드는 창을 공간 째로 박제한다.
그가 타테스 발타자르와의 격전에서 창을 막은 방법. 이 수단은 틀림없이 유효하다.
빛의 창 아라드와는 허수공간조차 꿰뚫어 기어코 필중을 달성한다.
게임에서는 탱커의 전력 방어기로 버티는 게 고작.
파티도 아닌 일대일 상황에서라면 게 데르그로 압도적 기교를 펼쳐 신속의 창을 막아서거나──
창이 헤맬 공간을 무한히 늘려가 영영 공간에 박제한다.
“허억··· 허억···!”
그녀로서도 버거운 무한 계열의 거대마법. 기어코 빛의 창을 저지한 대마법사를 보며 코린은 피식 웃었다.
“센스가 늘었네.”
“나는··· 괜찮아. 썅년이니까··· 빌어먹을 년이니까······.”
지금도 맹렬히 사랑한다. 그를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죽어도 된다 여길 정도로.
하지만 이제 그녀는 명문 여대생 박시린도, 플레이어 박시후도, 대총통 박시린도 아니다.
그저 하연 엄마 박시린.
그토록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었던 그녀에게 싹든 모성애가 스스로 끝장내야 했을 삶을 살게 했다.
“하연는 안 돼··· 하연이만큼은 안 돼, 오빠. 하연이를 데려가려 하면······.”
용납할 수 없다.
그녀의 눈이 번뜩이며 체내의 마력회로가 맹렬히 가속한다.
지금까지의 공방은 장난이었던 것처럼, 공간을··· 동해안 일대를 짓누르는 거대마력이 억눌렸던 구속을 파괴하고 해방됐다.
신(神)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신강림(魔神降臨)》
요동치는 바다. 섬의 지각이 흔들린다.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마력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천재지변을 일으켰다.
저것이 마신.
계율로 약화됐다고는 하나 그 타테스 발타자르조차 압도하던 거대한 힘의 덩어리.
이에 맞서──
항성의 힘이 재현된다.
닿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삼키고 태우는 열기가 대기 중의 수분, 산소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크기를 불려나갔다.
마법의 신과 태양의 신이 격돌했다.
그리고 끝내.
마신이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