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30
루니아 아덴(2)
검사란 작자들은 기본적으로 패거리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흔히들 검계(劍契)라고 불리는 반쯤 깡패조직인 검사집단들은 대장을 따라 도당을 짜다 어느 순간 스스로를 문파라 자처한다.
60년 전, 검제 가란드가 새로운 검의 시대를 열고 현 당주가 본격적으로 속가무관들을 퍼뜨리면서 아덴은 대륙을 대표하는 검술명가가 되었다.
그러나 아덴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이 검계의 부류로 시작했으니 그 특유의 상명하복과 조직폭력배 같은 품새의 잔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불.”
“예! 각주님!”
루니아의 한 마디에 헐레벌떡 달려와 불을 붙이는 메르카바 아덴 도장의 사범.
일개 사범과 본가 대제자이자 제1각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입지다.
애초에 가디언을 양성하는 본가와 일반인 수련생 중심인 속가무관들의 일개 사범이 격이 같을 리가.
‘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도장의 수련생들은 난데없는 올스타전에 당황을 넘어 황망해 하고 있었다.
본가 직계 대제자이자 제1검각의 각주 ‘검호 루니아 아덴’과 그 오검이 메르카바 아덴 도장에 찾아왔다.
난데없는 방문이었으나 검사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라면 이만한 기회는 없으리라.
그들과 친선대련도 하고 지도를 받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 다음 날.
루니아가 앉은 도장의 싸구려 목제의자는 그녀가 앉은 것만으로 준엄한 왕좌를 연상시켰다.
그 앞에, 매일 닦고 관리한 목재 바닥이라곤 하나 그 앞에 감히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엎드려 있었다.
“아, 아덴류 본가제자 2급검사 아리샤 아덴. 제1각주께 인사드립니다.”
아리샤 아덴.
본가제자, 그것도 검제 가란드 아덴 직계손녀다.
루니아 아덴과 같은 직계제자. 그런 그녀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자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 수밖에.
‘으··· 알바 뛰어야 하는데······.’
하필 미션을 뛰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주말에 이렇게 불려오니 시간도 아깝고, 언니가 무섭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이 여태 클리어해온 미션 기록을 전부 가져오라니······.
“순찰미션, 상인 경호미션, 4급 마물 둥지 토벌미션······ 가당찮군. 카페 도우미 미션은 뭐지?”
“그··· 유니폼 입고 홍보 전단지 돌리는··· 거예요.”
“······지인이었나?”
“유, 유니폼이 예뻐서······.”
“······.”
루니아는 드물게 눈을 감고 침음을 흘렸다.
물론 이 미션들은 학생들에게 우선 배정되는 간단한 미션들이 맞다.
정식 가디언으로 활동하기 전에 일종의 실전적인 훈련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아리샤는 이미 정식 2급 가디언이라는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아리샤 아덴. 본가의 특혜로 내준 가디언증은 이런 데 쓰라고 준 게 아니다. 너는 아덴의 이름에 먹칠을 할 생각이냐.”
“죄, 죄송해요······.”
“이 미션 선정은 하나같이 저급 마물만 상대하지 않나? 마물 토벌만 하면서 영웅놀이나 할 생각이었느냐?”
루니아 아덴은 차가운 시선으로 아리샤를 내려다봤다. 그녀에게 검의 본질을 잊지 말라는 듯, 그 시선이 너무도 무거워 아리샤는 고개를 푹 숙였다.
··················
············
······
아리샤는 힘없이 메르카바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에 탑승했다.
레일을 따라 이동하며 보이는 도시의 전경.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칭송받는 이 도시는 소녀가 꿈꾸던 곳이다.
아리샤는 늘 본가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했다.
약간의 무시와 실망, 그러나 후계자가 아닌 아가씨 대접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
필사적으로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학생 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생활력이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녀는 버는 돈을 족족 의식주에 사용해야 할 정도다.
그래도 퍽 만족스럽다. 여기서 그녀는 사매나 아가씨가 아닌 아리샤로 불린다.
원하던 평범한 생활은 아니지만, 적당히만 하면 그럭저럭 여학생 같은 생활을 보낼 수 있다.
베는 건 어디까지나 ‘마족’이면 된다. 대련을 빙자한 살인 연습 같은 건 안 해도 괜찮다.
본가에서의 생활은 호화스러웠을지언정 피비린내 나는 혹독함을 강요했기에. 아리샤는 이 낭만 넘치는 캠퍼스 생활을 실컷 만끽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무도(武道)에 한없이 진지한 사람을 보면 경외하면서도 질색하게 된다.
언니처럼.
‘그곳’에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한 걸음 내딛어버리는 이들이 꺼림직한 것이다.
빠져버리면 심연의 끝까지 끌려가 익사할 것 같은 검은 바다가 두려운 것이다.
검술연습 같은 건 싫다. 굳은살이 박인다.
미션은 안전하고 약한 마족을 쓰러뜨리는 거면 족하다. 충분히 먹고 산다.
땀내 나는 무인들의 살벌한 세계가 싫다. 해변의 고급 휴양지에서 유유히 청춘을 즐기고 싶다.
결국 아리샤 아덴은, 지극히 평범한 10대 소녀인 것이다.
『잊지 마라, 아리샤. 네 본질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노망난 할부지.”
드물게 험악한 말을 토해내면서.
턱을 괴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 모습은 사형대로 향하는 죄수처럼 짙고 무거웠다.
* * * *
중간고사 기간이다.
가디언 아카데미라고 하면 뭔가 싸우고 거창하게 대련이나 하면서 시험평가를 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 학교. 학술평가에 대해서도 꽤나 진지하다.
“아··· 시험공부 하나도 안 했는데······.”
시험 10분 전, 예거는 뒤늦은 후회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게 도서관 가서 공부하자고 했잖아······.”
“아니! 벼락치기는 내 실력이 아니야! 시험은 평소 실력대로 보는 거라고!”
“······.”
라크는 그런 예거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내게 시선을 보낸다.
“넌 공부 좀 했냐?”
“후후······.”
“응?”
미안하지만, 라크. 넌 나의 진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
“후후후···, 후하하하하!”
“왜 또 지랄인데······.”
“불쌍한 중생들. 시험공부라는 하찮은 것에 매몰된 이 시대의 어린 양들이여.”
“앤 또 뭐래냐?”
“그냥 평소처럼 지랄병 도진 거겠지.”
“애가 성격은 좋은데······.”
“후하하하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이 녀석들은 모르는 진실이 있다.
나는 이 시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다.
전 회차에서 이미 한 번씩 푼 문제들. 그 기억을 되돌아가면 고득점은 식은 죽 먹기!
“루라라 교수입니다. 기초연금학 중간고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배부된 시험지에 이름과 학번을 적고──”
아, 성적이 너무 좋으면 주목을 받아버리니까, 한 90점 정도로 만족할까?
···············
·········
······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어.
왜지? 한 번씩 풀었던 문제들인데, 어째서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지?
전 회차에서도 풀었던······.
“아.”
못 풀었었지.
정답을 애초에 모른다. 풀어본 적도 없고 점수가 나오고 오답풀이도 안 했다. 왜? 어차피 틀렸는데 봐서 뭐하냐고.
당연히 전 회차에서 푼 문제든, 지금 보는 문제든 정답을 모른다.
미분적분 배울 때, 자느라 바빴던 내가 고등학교로 회귀한들 미분적분을 풀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조때따.”
아울베어의 쓸개즙을 짜서 만드는 포션이 뭔지는 경험적으로다가 아는데, 몇 방울을 넣고 어떤 걸 섞어야 하는지는?
몰라. 은화 다섯 장 주고 사면 되지, 그걸 왜 직접 만듬?
기사는 응급약만 현장에서 만들 줄 알면 된다고··· 실전적인 것만 익혔지, 학술적인 지식은······.
“오러의 운용 수업 페르막 교수임다. 다들 컨닝하더라도 들키지는 맙시다.”
「X모션의 관성수치는 Y라고 했을 때, 85 Z를 구현하려면 Y(o)의 값은 어느 정도 필요한가?」
어··· 마른 흙바닥이 반 발자국 정도 꺼뜨릴 정도?
구체적인 수치요? 어··· 몰라요. 그냥 감으로 하면 되지, 그걸 왜 일일이 계산한담?
·········
······
···
“후아암~ 시험 끝났냐?”
“······예거 넌 그럴 줄 알았다. 코린 넌?”
“불태웠어.”
“???”
“하얗게··· 불태웠어.”
“도서관에서 공부하자니까······.”
“하하하! 동지!”
“등신아, 그래도 코린은 공부할 시간에 체단실에서 훈련했어.”
“마! 기사는 원래 자기 이름하고 성만 쓸 줄 알면 되는 거야!”
“무식한 기사 놈들······.”
흠. 망했군.
아 괜찮아. 기사는 원래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되는 거야. 사회 나가서 이런 거 다 쓸모없어.
고딩 때 배운 수학 사회 나가서 쓸 줄 알아?
대학에서 배운 전공 나중에 직업으로 삼을 거 같냐고! 정치외교학과 나와서 개그맨하고 그러는 거지!
다 쓸데없는 공부야!
* * * *
필기시험에서 아마 90% 확률로 평균점 이하를 기록했지만, 아직 실기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
메르카바 아카데미가 의외로 학술적인 곳에서도 진지한 가디언 아카데미지만 그 본질은 잊지 않았기에 가장 큰 점수는 여기서 나온다.
아카데미 부지 중심부. 일명 페스티벌 회장.
커다란 야구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회장은 운동회, 공연, 축제 등 각종 행사에도 이용되지만 이렇게 중간고사의 실전적인 대련장이 되기도 하지.
중간고사의 하이라이트. 게임상에서도 가벼운 이벤트로 플레이할 수 있는 학부고사는 필기시험에서 폭락한 학점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중간고사는 기사학부 교수 또는 외부에서 초빙된 임시교관들로 구성된다.
그들을 상대로 자신의 솜씨를 보여주며 평가담당 교수들의 평점을 받는 거다.
‘명목상 5급 기사이니 교관 수준도 그리 높진 않겠지. 기대치도 낮을 거고. 고득점 확정이다!’
학생이 교관을 쓰러뜨리면 가산점이 붙었지 아마? 폭망해버린 평점을 1점이라도 올릴 기회다.
굳은 다짐으로 B팀으로 배정된 수험표를 꽉 쥐고 회장의 중심으로 걸어가는데, 관객석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울려왔다.
“1학년들 힘내라!”
“짜식들아, 내 월 생활비 다 털었다!”
시험이 끝난 2학년과 3학년··· 심지어 몇몇 4학년들까지 관객석에 착석해 있었다. 3학년까지는 그렇다 쳐도 4학년들··· 취직 안 하냐?
어쨌든 원래 싸움 구경만큼 신나는 게 없는 법이지.
아, 저기 3학년 네임드가 있다. 암상인 네네.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도박을 권장하며 판돈을 거두는 NPC로 자주 나오는 학생이다.
“코리이이이인~!”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보내니 마리에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다. 당연히 그 대상은 나다.
“힘내! 응원할게에에···!”
주변에는 마리에와 어울려 다니는 2학년들이 보인다. 흡혈귀 각성 이후로도 주변인들과는 큰 문제 없이 잘 다니는 걸 보니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뭐, 뭐야, 너······.”
“마리에 선배하고 친해?”
“응?”
예거와 라크가 경악 어린 시선을 내게 보내왔다.
“이익···!”
“말도 안 돼··· 동지라고 믿었는데!”
피눈물을 흘리는 어린 것들을 뒤로하고 먼저 시작되는 A팀의 중간고사를 기다린다.
일개 학년 중간고사인 만큼, 회장의 특수기능은 사용하지 않지만 커다란 무대는 그 자체만으로 학생들을 압도했다.
“A팀은 도론 워스카이! 그리고 아리샤 아덴! 그리고─────”
앞으로 나서는 학생은 A팀 총 15명. 시간사정상 이렇게 한꺼번에 하는 게 관례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의 관심이 강렬하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강함은 둘째 치고 1학년 중에서 도론과 아리샤는 엄청난 명성을 자랑했으니까.
도론 워스카이.
워스카이 용병단의 부단장 출신으로 변경의 땅에서 마족을 사냥한 스페셜리스트. 어지간한 고학년들은 그의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기 워스카이 용병단장이 확실시되는 강자다.
반면 아리샤는 실력보다는 그 뒤에 존재하는 후광이 컸다.
시대를 풍미한 최강의 특급 기사, 검제 가란드. 그 손녀임은 둘째 치고 검술명가 아덴의 명성은 드높기 짝이 없다.
어지간한 도시에는 그들의 속가무관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공격적인 확장세를 취하고 있고, 군대에 대마물 검진과 검술을 가르칠 교관을 파견한다.
엘 라스 왕국이 아덴 가에 매년 지불하는 훈련지도 비용만 금화 수만 장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알만하다.
검제 가란드 이후 루니아 아덴이라는 여걸도 등장했으니 그 명성은 하늘을 찌르겠지.
당장 메르카바 아카데미 기사학부 중 아덴 류를 익힌 기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검술명가의 손녀인 아리샤 아덴. 좋으나 싫으나 모두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 이번 시험을 위해 특별히 초빙된 분들은 바로바로 검술명가 아덴의 정예! 제1검각의 오검(五劍) 분들입니다!”
A팀 15명의 상대로 올라온 건 다섯 명의 검사들이었다.
제니, 시린, 리나, 밀리아, 메이.
루니아 아덴 직속 검사들. 실질적으로 그녀가 상시 데리고 다니는 파티 멤버들이다.
루니아 아덴이 메르카바 시티에 방문한 이유. 곧 정식으로 교관으로 취임할 그녀가 꽤 빠르게 움직인 셈이다.
이 이벤트에서 루니아가 아리샤를 뭉개버리고 아리샤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검술에 매진한다는······ 응?
“루니아는 어디 있지?”
“야, 루니아 님이 니 친구냐.”
안 보인다. 회장에 올라온 교관들은 오검뿐이다. 뭐지?
-땡!
여기저기서 루니아 아덴을 찾는 사이, 중간고사 실기가 시작됐다.
“덮쳐!”
비록 전원이 2급 기사라고는 하나 이쪽에도 2급 기사가 둘, 숫자는 세 배나 된다.
누군가가 내린 결정은 적절했고, A팀 학생들은 오검을 향해 일제히 덤벼들었다.
“가볍게 갈까요?”
“학생이니까.”
“어검술사를 조심해요. 저 친구는 강해요.”
다섯 명의 여검사들은 검진을 짜며 오러를 끌어올렸다. 온다, 아덴류 검사들 특유의 집단검진.
다섯 명의 검사들이 일제히 오러가 실린 검을 지면에 흩날렸다. 같은 검술을 공유하는 다섯 검사가 날린 합쳐진 거대한 검기다.
가벼운 제1파. 하지만 학생 레벨에선 재난이나 마찬가지겠지.
-콰앙!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검진의 공격대상은 학생들이 아니다. 회장의 바닥을 내리친 검기가 요란하게 지면을 흔들고 막대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우악!”
“앞이 안 보여!”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시야부터 가린다. 노련하다. 등급 이전에 경험에서 우러나는 대응이다.
“크악!”
“뭐, 뭐야!”
등급은 둘째치고 경험이 적은 학생들의 대응이 늦다.
나라면 일단 회장의 끝까지 물러나 진형을 다시 짜거나 먼지부터 날릴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쯧.”
보다 못한 도론이 마검들을 동시에 조작했다.
염동력에 의해 맹렬하게 회전하는 마검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먼지를 걷어낸다. 그 순간··· 먼지를 파고들고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음?!”
오검 중 한 명 환영검 밀리아. 그녀가 도론에게서 마검이 흩어지자마자 곧장 그를 향해 달려든 거다.
-카앙!
밀리아의 두 자루 시미터와 도론의 예비검이 부딪쳤다. 도론도 상당한 실력자니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당장 마검이 모두 돌아오기까지는 불리하다.
“도론 씨!”
“아가씨 상대는 저예요.”
“으읏?!”
먼지를 파고들고 뛰쳐나온 또 한 명. 고속검 제니. 그녀는 기다란 장도로 아리샤의 참마검을 압박했다.
“으, 마, 마크인가요?”
“뭐, 학생 열댓 명쯤이야··· 셋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무엇보다 아가씨도 제대로 평가를 해둬야 하고.
제니의 말에 아리샤는 분한 듯 그녀를 밀어냈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소드 레슬링으로 압박하는 척하더니 가볍게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자세가 너무 쉽게 무너져요. 아가씨.”
“윽!”
-콰직!
검집으로 내리찍는 공격을 굴러서 회피하는 아리샤. 그녀가 자세를 잡아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제니.
-오오~
-역시 오검. 아덴의 정예다워.
-저거 봐. 아리샤 아덴과 도론 워스카이 빼고는 다들 맥없이 픽픽 쓰러지잖아.
-쯧쯧, 거기서는 살을 내주더라도 카운터를 먹였어야지!
관중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리샤와 도론을 향한다.
1학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네임드들. 그들이 같은 등급의 기사들을 상대로 펼치는 검무는 학생 레벨에선 보기 힘들 정도로 화려했으니까.
“······.”
-으악!
-빨라!
-어떻게 좀 해봐!
반면 세 여검사와 13명의 A팀 학생 쪽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평점을 매기고 있는 교수들을 위해 봐주면서 상대하고 있는데도 픽픽 쓰러진다. 저대로면 1~2분 내로 전멸할 거다.
“도론은··· 이기겠군.”
“와라, 화령검. 중철검.”
“읏···!”
먼지를 날려버리던 마검들이 회수됐다.
두 자루 시미터로 도론을 압박하던 밀리아는 이제 다섯 자루의 마검들에 역으로 압박당하고 있다.
저대로면 머지않아 이길 것이다.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도론은 오검에 뒤지지 않으니.
-카앙!
“큭···!”
반면 반대 측에서는 아리샤가 무릎을 꿇고 식은땀을 흘리며 밀쳐지고 있다. 검과 검이 맞겨루는 초근접전 상황에서 제니의 칼날이 턱밑까지 닿기 직전이다.
“연습부족이라고 했잖아, 멍청아.”
내 예상대로 제니는 소드 레슬링으로 아리샤를 손쉽게 제압했다. 10cm 간격의 초근접전에서는 어떻게 상대방의 검을 치워내느냐의 싸움.
아리샤는 그 초근접전에서의 감각적인 체득과 이론적 이해가 부족하다.
“역시 연습 부족이에요. 아가씨. 이래서야 가란드 님이나 루니아 님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해요.”
“으윽···!”
-까앙! 까캉!
연습용 비살상 처리를 한 칼날끼리 부딪치는데도 살벌한 쇳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두 사람의 검격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뜻했다.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검제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건가요?”
“나, 난······!”
제니의 고속검은 거의 괴롭힘에 가까운 압박이다. 제압하려면 금방 할 수 있을 텐데도 시간을 끌고 있다.
‘지시를 받았나?’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루니아의 역할. 지금은 제니가 하고 있다. 그녀가 루니아에게 지시라도 받은 걸까?
“이 정도라면 졸업할 필요도 없겠어요. 차라리 자퇴하고 본가에서 철저하게 훈련을 받는 게 낫겠죠!”
“시, 싫어···!”
순간이지만 볼 수 있었다. 아리샤의 동공이 마름모꼴로 변했다는 걸.
보려는 거냐? 영역을.
경계안이 열리고 차원의 틈을, 정지된 세상을 보려는 그 순간··· 아리샤의 몸이 겁에 질린 것처럼 굳어버렸다.
-퍼억!
제니의 검에 얻어맞은 아리샤가 회장을 몇 바퀴나 구른다. 비살상 처리를 했다지만, 2급 기사의 완력으로 휘두른 검. 아리샤는 다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인가.”
눈을 떠도, 아리샤는 영역을 직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A팀 실기시험은 교관팀의 압승. 도론이 밀리아를 쓰러뜨리는 쾌거를 이뤘지만, 남은 사검 앞에서는 바로 항복해버렸다.
그들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 내가 속한 B팀 차례. B팀에서 아는 얼굴은 예거와 라크 정도다.
15명의 B팀 학생들을 상대할 교관은······.
“아니······.”
“건강했나? 코린 로크.”
루니아 아덴.
그녀가 홀로 회장 위에 올라섰다.
저기요?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