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6
철산의 왕(2)
-콰앙! 콰쾅!
성난 오우거가 휘두른 박달나무 몽둥이에 휩쓸리는 숲의 나무들.
사정없이 부서지는 자연. 하늘로 튀어 오르는 녹색의 흔적들을 지켜보자면 자연훼손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한다.
“그놈 참 힘이 장사네.”
트윈 헤드 오우거.
뭐, 기본적으로 머리 둘 달린 샴쌍둥이 오우거다.
보통 샴쌍둥이 기형아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신진대사가 높아 수명이 길지 못하다는데, 샴쌍둥이 마물은 고질라 통뼈라도 드셨는지 보통 마물보다 2배는 강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대가리 하나 늘어난다고 강해진다는 게 말이 되나?
“박달나무 몽둥이라······.”
“맞아본 적 있나?”
숲의 한켠. 나와 함께 엄폐한 하먼 영감이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나를 응시했다. 여기까지 오고도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중등부 때, 선생님께 얼차려 받아서 궁디 좀 맞아봤죠.”
물론 내 키보다 큰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이런, 불성실한 학생이었나 보군.”
“주관적으로는 모범생 부류에 속했다고 보는 데 말입니다.”
내가 뭐 애들을 패고 다녔어, 담배를 피고 다녔어. 성적이 좀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얌전히 잘 다닌 편이다.
“뭐, 좋아. 그래서··· 언제 잡을 건가?”
“조금만 더 힘 좀 빼두죠. 어유, 그놈 참. 장사네 장사야.”
“······.”
하먼 영감은 피식 웃으며 내 선택을 무언으로 긍정했다.
며칠 전, 처음 트윈 헤드 오우거가 서식하는 동굴을 발견했을 때, 멍청하게 돌진할 생각 따윈 없었다.
하먼 영감이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지원으로 온 협회 관련자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면 테스트 당사자인 나를 위해 나서겠지만, 그 순간 내 등급 테스트는 조지는 거지.
일단 트윈 헤드 오우거 주변의 서식지부터 조사했다. 주변에 다른 마물은 없는지, 생태계는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
“분석결과를 보고해봐라, 코린 로크.”
“주변 발자국을 보니 오우거가 롱 하운드와 함께 다닌 흔적이 많이 보이네요. 공존은 확실해 보입니다.”
“롱 하운드는 몇 마리나 있지?”
“세 마리입니다.”
“호오? 오우거의 발자국을 따라다니는 네발짐승의 발자국은 두 마리 다만?”
“한 마리는 암컷이고 임신 중이라서 그렇습니다.”
내 말에 하먼 영감은 씨익 웃었고, 평가하러 온 협회 가디언들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눈치다만, 한 번 설명해 봐라.”
“발자국 외에도 짐승을 질질 끌고 온 자국이 있습니다. 사냥한 짐승을 그 자리에서 다 먹지 않고 끌고 온다는 거죠.”
트윈 헤드 오우거가 롱 하운드들과 공생관계이긴 해도 사냥은 기본적으로 하운드들의 몫이다.
오우거는 외적에 대한 전쟁병기 역할. 다른 마물들에게서 롱 하운드들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오우거도 롱 하운드도 식량을 저장한다는 개념이 있는 놈들은 아니죠. 움직이지 못하는 동족이 있고 대신해서 먹을 것을 구해주는 거겠죠.”
“훌륭하다.”
-삭삭!
협회 직원이 내 평가를 올리는 게 들린다.
“자, 그럼 코린 로크. 너는 준1급 마물인 덜 자란 트윈 헤드 오우거와 3급 마물 롱 하운드들을 어떻게 사냥할 생각이지?”
“일단 오우거와 하운드들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어떻게?”
“우린 인간입니다. 머리를 써야죠.”
놈들에겐 불행이지만, 내가 이 방면에선 나름 프로다.
* * * *
인간이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개발되고 가도가 정비되며 대륙에는 인공물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세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자연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나무들을 벌목하고,
부엽토가 헤쳐져 농지로 개간되어도,
생존 경쟁에 패배한 짐승들이 사라져 가도.
세상에는 여전히 인간을 위협하는 마(魔)의 존재들이 위풍당당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 숲의 지배자도 바로 그 하나.
오가는 인간이 적은 숲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는 트윈 헤드 오우거에게 이 숲은 자신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컹! 컹컹!
사냥개들이 잡아 온 사냥감은 오늘도 만족스럽다.
큼직한 사슴들은 폭군뿐만 아니라 사냥개들 또한 포식하고도 남기에.
마지막 남은 사슴의 다리를 물어 질질 끌고 가는 사냥개들. 폭군은 산책하듯 여유롭게 안개 낀 숲속을 걸었다.
성체가 아님에도 신장이 4m에 이르는 오우거는 능숙하게 숲길을 파헤치며 사냥개들의 선두에 선다.
숲의 지배자라고는 하나 활동하는 범위는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다. 안개 낀 숲속에서도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컹! 커컹!
이변을 눈치챈 건 사냥개들이었다. 그들은 보금자리에 침입한 낯선 냄새를 맡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게, 보금자리에는 새끼를 밴 암컷이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숲의 지배자가 된 이후로 누구도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기에 생긴 통한의 방심이다.
“그르···!”
오우거가 사냥개들에게 명령한다. 마음이 급했던 사냥개들이 다급하게 둥지를 살폈다.
없다.
새끼를 배어 거동이 불편할 암컷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컹! 컹컹!
동료가 울부짖는다. 암컷의 흔적을 찾은 듯 그가 있는 곳에는 질질 끌려간 흔적이 있었다.
언젠가 자신들이 사냥감을 끌고 온 흔적일 수도 있으나 냄새가 다르다.
침입자가 암컷을 끌고 갔다.
-카오오오오오오···!
-아오오오오오오···!
사냥개들이 사납게 포효한다. 동료가, 무리의 암컷이, 새끼가 납치됐음을 깨닫고 순수한 짐승의 분노를 표출한다.
숲의 지배자와 그 하수인이 내지르는 분노는 온 숲을 떨게 했다.
-컹! 커컹!
-컹컹컹!
분노로 일그러진 두 수컷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재촉한다. 쫓아야 한다. 암컷을 구하러 가야 한다.
그 당연한 물음을 오우거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자연의 혹독한 삶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공생관계에서는 의무와 권리가 평행하다.
상황이 발생하면 대응한다. 이 당연한 명제로 숲의 주인들이 움직인다.
사냥개들이 암컷의 냄새를 쫓아 달리고 오우거가 그 뒤를 따른다.
희미한 박무가 낀 숲을 주파하는 두 사냥개. 냄새를 맡고 추적함과 동시에 달리는 건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컹!
숲을 달리는 눈동자가 교차한다. 암컷의 냄새가 점점 짙어진다. 더불어 암컷을 끌고 간 침입자의 냄새도 말이다.
언제나 대로다.
숲에서 그들을 뿌리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고 자란 숲의 지리는 그들의 안마당. 동시에 마물로서 강인한 네 다리는 부엽토로 이루어진 지면을 파헤치고 억센 나무줄기들을 뛰어넘는다.
이제 어리석은 침입자는 숲의 지배자들을 건드린 응분의 대가를 치르리라.
-꺼엉······.
“······!!”
“······!!”
추적의 끝. 그들이 목격한 건 구슬픈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 암컷.
“컹!”
“끼잉··· 끼이이······.”
엎드린 채 신음만 내는 암컷. 보다 못한 수컷 중 한 마리가 암컷을 향해 달린다. 암컷이 밴 새끼의 아비 되는 자다.
“컹! 컹컹!”
콧잔등을 비비며 배우자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수컷. 암컷을 부축하며 빠져나가려던 찰나······.
-찰칵!
암컷의 몸을 움직인 그때, 무언가가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며 줄기를 꼬아 만든 로프 따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동시에··· 숲에 방치된 것처럼 버려졌던 묵직한 통나무가 솟구친다.
“컹?”
솟아오르는 통나무. 그와 연결된 다른 통나무가 관성처럼 떨어지기 시작한다. 암컷을 질질 끌고 가던 수컷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고──
-퍽!
날아온 통나무에 안면부가 통째로 날아갔다.
“컹! 컹컹!”
자신들에게까지 날아오는 통나무를 회피한 사냥개. 폭증한 경계심과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민감한 귀가 포착한다.
-사아악!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는 무언가. 사냥개가 앞으로 뒹굴자 조금 전만 해도 사냥개가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나무 말뚝들이 떨어져 박혔다.
“컹! 컹컹!”
저 말뚝에 머리부터 척추까지 꿰뚫렸을 걸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러나 떨어지는 말뚝은 그게 끝이 아니다.
마치 사냥개를 쫓듯 나뭇가지에 설치되어 있던 말뚝들이 우수수 낙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팍! 파파팍!
추적이 아닌 생존을 위해 허겁지겁 달리는 사냥개들. 그들을 쫓듯 말뚝들이 낙하한다.
“크르···!”
그러나 아무런 스퍼트 자세도 없이 내달린 사냥개의 속도는 시속 70km에 육박한다. 낙하하는 말뚝들보다도 빨리 앞서나간 끝에 배후의 안전을 확인하는 사냥개.
······말뚝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으르렁거리던 입가가 안도로 느슨해졌다. 자신의 배 밑에 깔린 무언가가 빛나는 걸 눈치챘을 땐 늦었다.
『 ᚲ 』 ─ 케나즈.
ᚲ ᚲ ᚲ ᚲ ᚲ ᚲ ᚲ ᚲ ᚲ ᚲ ᚲ ᚲ
아니, 눈치챘다 한들 뭐가 달라졌을까? 바닥을 덮은 불길은 시속 70km 따위로 벗어나기엔 너무 넓고 빼곡하다.
-화르륵!
지면에서 치솟는 불길에 집어 삼켜진 사냥개의 운명은 더 볼 필요가 없다.
-쿵! 쿵! 쿵!
숲의 지배자. 사냥개들의 주인인 트윈 헤드 오우거가 도착했을 땐, 이미 사냥개들이 일망타진된 뒤였다.
사냥개 부부는 통나무에 사이좋게 갈려 나갔고, 한 마리는 말뚝을 피하다 숲에 번지고 있는 불길에 휘말려 타죽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 개의 머리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포효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폭군의 포효.
그 모습이야말로 숲의 지배자. 그러나 슬픔에 젖을 시간 따위 주지 않는다. 그가 무심코 밟은 올가미가 또 다른 함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통나무 트랩.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오우거의 넓은 시야가 날아드는 함정을 눈치 챈다.
-부웅!
쌍두의 거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몽둥이를 쥔 오른팔을 휘둘렀다.
-콰앙!
박달나무 몽둥이에 아작이 난 채 요란하게 치솟는 통나무.
그 외에도 아직 발동하지 않았던 함정들이 여럿 있었으나 트윈 헤드 오우거 특유의 넓은 시야각과 괴력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폭군은 알지 못한다. 사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걸.
* * * *
이 숲의 지배자인 트윈 헤드 오우거 또한 타고난 사냥꾼.
눈썰미가 좋은 1번 머리. 냄새를 잘 맡는 2번 머리가 합심하여 사냥개들의 복수에 나섰으니 사냥감의 흔적을 쫓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흔적이 너무 많아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발자국도, 냄새도 무엇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놈이다. 이런 놈에게 사냥개들이 당했다니.
물론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우거를 저지하려는 듯 온갖 함정들이 가는 길목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윈 헤드 오우거는 성체도 아니면서 준1급 마물. 사냥개 정도나 잡을 법한 함정 따위는 제가 휘두르는 거대한 박달나무 몽둥이로 모조리 휩쓸어버릴 수 있다.
중간중간 날카로운 말뚝들에 박히거나 밟고는 했지만, 그따위 것은 오우거의 두꺼운 가죽에 생채기만 냈을 뿐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첫날 오우거는 사냥감을 찾아내지 못했다.
흔적은 분명 있는데, 집요하게 쫓고 있건만 어째선지 다다르지 못한다. 아슬아슬하게 닿을 것 같으면서 닿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야영 중에, 놈은 오우거를 기습했다.
『 ᚺ ᚻ 』 ─ 하글라즈
두 머리 중 하나가 깨어있지 않았다면 반응하지 못할 공격.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에 트윈 헤드 오우거의 나머지 머리도 깨어났다.
우박은 별거 없었다. 그냥 작은 우박 덩어리 몇 개가 오우거에게 떨어진 것뿐.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격이다.
하지만 숙면을 방해받은 것에 짜증이 난 것은 사실. 오우거는 주변의 나무들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 뒤로도 이런 방해공작은 연속이다.
잠들려 치면 귀신같이 우박이 떨어졌다. 몇 번 당해보고 별거 아니라고 무시할라치면 불을 머금은 돌덩어리가 날아와 주변을 태운다.
새벽 중에 추격전을 벌이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사냥감은 애매한 흔적만을 보여줄 뿐,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째.
깨닫는다. 사냥당하고 있다, 고.
오우거의 몸 여기저기가 룬 마법과 네이쳐 트랩에 의해 상처 입고, 며칠 동안 잠들지 못한 오우거는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었다.
화상과 찰과상으로 가득한 상처를 안고 쩔뚝거리며 주변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게 오우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
사냥하는 자로서의 위치가 역전되고, 사냥감으로 전락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비통함과 분노만이 남았다.
“안녕.”
사흘째의 오후. 사냥꾼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아암~ 너 하나 잡자고 이게 뭔 고생이냐. 얼른 끝내자.”
그렇게 집요하게 괴롭히고서 얄미운 소리를 하며 대치하는 사냥꾼.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우거가 포효를 내지른다.
코린 또한 짐승처럼 자세를 낮춘다.
양자는 총소리를 기다리는 스프린터처럼 숙명의 시간을 공유했다.
1초.
오우거가 달린다.
코린이 달린다.
거구의 오우거를 향해 돌풍처럼 질주하던 창술사가 기세를 살려 크게 도약했다.
공중으로 도약하는 몸.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이런 크나큰 허점을 노출한 사냥꾼을 향해 오우거가 입꼬리를 비튼다.
놈이 착지하는 순간, 2m에 이르는 박달나무 몽둥이로 저 작은 몸을 후려치리라. 그러나 오우거의 흉계는 상상으로 그쳐야 했다.
괴산오의(壞山奧義),
이타불요(二打不要) 굉격타(宏擊打)
공중으로 도약한 창병이 투창을 감행한다.
이야말로 창의 원전. 본래의 사용법. 맨손의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일격이다.
-과아아아아아아아앙!!
공기를 가르며 창이 덮쳐온다.
오우거가 무심코 몽둥이를 들어낸 순간, 두 장병기가 부딪치고··· 사흘 내내 여기저기를 때려 부수던 몽둥이에 균열이 일어났다.
-꽝!
위에서부터 사라진 박달나무 몽둥이. 이해할 수 없는 폭풍이 지나가고 오른쪽 어깨 상반신이 날아갔다.
“크와아아아아?!”
가공할 투창을 하고서 착지한 창병이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달린다. 고통에 질린 오우거였으나 두 머리의 시야각은 넓다.
달려드는 코린을 향해 거대한 팔을 뻗었으나 이미 그는 오우거의 품 안으로 뛰어든 다음이다.
팔괘(八掛) 혼원두((混元抖)
-꽈직!
오우거의 명치를 꿰뚫는 장타. 압축된 전신의 내력이 단전에서 격탕하여 방출된다.
이야말로 팔괘의 삼대절기. 내부에 전해진 충격이 오우거의 내장을 헤집었다.
-쿵!
무릎을 꿇는 트윈 헤드 오우거. 내부에서 터진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마물이 두 개의 입에서 피를 철철 쏟아냈다.
“뭐야··· 기껏 오러 코어 꽉꽉 채워놨더니···, 써볼 기회도 없었잖아.”
1급도 못 되는 준1급 따위는 고작 이 정도인가.
요 며칠 동안 오러란 오러는 모두 코어에 집속시키며 결전을 준비하던 코린은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
메르카바 아카데미의 지하 실험동.
온갖 실험대상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마법학부 교수들이 마탑의 러브콜을 거부하고 아카데미에 재직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올해로 근속연수 15년 차인 골드미스 데이나 교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한 화장과 조금 더 짙은 향수를 뿌렸다.
그 말인즉슨, 계속된 야근으로 피부 트러블과 씻지 못해 생긴 체향이 더 심해졌다는 의미다.
“데이나 교수님.”
“어머, 마리에 학생 왔어요?”
요 며칠 계속 조교수로서 실험을 도와주고 있는 마리에는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쌩쌩한 상태로 그녀의 실험을 도왔다.
‘와··· 피부 짱짱한 거 봐. 젊음인가······.’
데이나 교수의 피부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마법사이기에 남들보다도 훨씬 젊어 보인다.
하지만 눈앞의 진짜배기 아기 피부를 앞에 두자면 감히 나란히 서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뽀얗고 탱탱한 피부 하며 꾹 누르면 찹쌀떡처럼 손가락을 감쌀 것 같은 부드러움까지!
한창때, 소녀의 싱그러움을 듬뿍 머금은 마리에였지만, 의문이 드는 건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조건으로 철야를 했다는 것이다.
“마리에 학생··· 요 며칠 저를 많이 도와주지 않았어요?”
“으응~ 그렇죠?”
스스로도 자각은 하고 있다. 실험에 자원하긴 했어도 가르치는 학생을 사흘 넘게 야근을 시키는 건 가르치는 자로서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하지만 마리에는 놀라울 정도로 짱짱한 체력을 과시하며 데이나 교수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눈가에 기미 정도는 질 법도 한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쌩쌩하다.
‘흡혈귀라서 그런가?’
최근에 흡혈귀로 각성해버린 마리에는 마법학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녀가 안전하고 충분히 이성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달려든 마법학부 교수들이 몇이던가.
보통 흡혈귀들은 창백한 피부와 햇빛에도 약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마리에의 경우 흡혈귀 중에서 백 년 이상 묵은 장로급 흡혈귀라는 결론을 내렸다.
흡혈귀도 군주급 바로 다음인 장로급이 규격 외··· 즉, 측정이 불가한 특급인데, 도대체 전설로 치닫는 ‘군주급 흡혈귀’는 얼마나 강력한 존재일까?
학자로서 숱한 의문과 탐구심을 자극받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리에 학생. ‘철산의 왕’ 실험에 필요한 마물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아, 네. 잘 격리된 상태예요.”
“마리에 학생 덕분에 보다 상세한 실험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딩글 반도의 마저와 특급 흡혈귀라니··· 엄청난 마학적 진보가 이뤄질 거라고요.”
“하하······.”
드물게 어색한 미소를 짓는 마리에. 데이나는 순간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아아,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물론 마리에 학생이 흡혈귀로 각성한 건 불운한 일이지요. 암요. 제가 실수했네요.”
“아뇨, 괜찮아요.”
“마리에 학생?”
“제가 흡혈귀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예요.”
“으응?”
“맞다! 마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걸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으음··· 그런 잡일까지 마리에 학생이 할 필요는 없는데요.”
“아뇨! 제가 가는 편이 그나마 안전하니까요!”
“끄응······.”
데이나 교수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마물들의 밥을 주다가 크게 다친 직원의 위로금과 치료비, 정신적 보상까지 물어낸 게 그저께 일이다.
안 그래도 실험을 위해 킹 타이런트나 훼룡 같은 1급 마물들까지 매입한 탓에 예산이 타이트해졌는데 또 중상자가 나온다?
예산이 비명을 지르는 건 고사하고 실험 안전성에서 부적격 판단을 받아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부, 부탁할게요.”
“네에~”
마리에는 예산과의 싸움을 적절하게 이용해 마물들에게 줄 식량을 챙겨갔다.
-꽤액! 꽥!
-꽥꽥!!
실험동 지하 2층 한구석. 큼직한 복도에서도 들리는 괴성.
4급 마물인 팽보어들이 좁은 우리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단체로 불협화음을 발산했다.
최근 번식기 덕에 늘어난 팽보어들을 대량으로 포획했다더니, 데이나 교수가 욕심을 부려 죄 매입해버렸다.
단가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족히 수백 마리에 달하는 4급 마물들을 한 큐에 질러버리는 걸 보면 마법사들의 금전 감각에 대한 회의감이 들 법도 하지만, 별생각이 없는 마리에였다.
-꽤액애액!?
-꽤애애애?
-꽤애······
-꽤···
-끼잉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으면 격하게 괴성을 지르던 짐승들의 하울링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마리에의 어여쁜 하얀 단화가 석재 바닥을 밟는 소리를 낼 때마다 그 변화는 눈에 띄었다.
-철컹!
족히 수백 마리의 팽보어들을 몰아넣은 철창에 조막만 한 손이 닿는다. 그러자 숨 막히는 침묵이 시작됐다.
············
············
············
사납기 짝이 없는 팽보어들이었지만, 마리에가 접근하자 어쩔 줄 몰라하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떤 팽보어는 낑낑거리며 제 동족의 엉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숨어버릴 정도.
-철컹!
평범한 직원이었다면 창살 너머에서 먹이를 뿌렸겠지만, 마리에는 위험천만하게도 철창을 열어 우리 안에 들어갔다.
우리 바깥에서 먹이를 던지던 직원의 팔도 냅다 달려들어 물어뜯었던 팽보어들이 마리에가 들어서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멈춰버린다.
“밥 먹자.”
마리에의 목소리, 시선, 체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기에 압도된 팽보어들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녀 앞에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달달 떨고 있는 팽보어들에게 닭고기 덩어리를 주면서 작은 돌도 한 개씩 넣는 마리에. 먹이와 섞인 그 돌들은 직원들이 준 게 아니다.
-잘그락잘그락!
그녀 앞에서 허겁지겁 닭고기를 먹어치우던 팽보어가 돌까지 씹어버린 순간이었다.
-콰득!
-끼?!
마리에가 귀신처럼 팽보어의 엄니를 낚아챘다. 제 조막만 한 손보다 곱절은 큰 엄니를 잡은 채 놀라운 괴력으로 끌어올리는 마리에.
팽보어는 버둥거리며 허공에서 허우적거렸지만, 400kg에 육박하는 무게로는 제 엄니를 붙잡은 마리에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으득! 으드득!
상상을 초월하는 악력에 날카로운 엄니가 금이 간다.
“이상하다.”
싱그러운 물빛 머리 소녀의 황금안이 서서히 붉게 물든다.
짐승들은 본능적인 육감으로 소녀의 탈을 쓴 맹수의 귀기를 피부로 느낀다.
-꽤액······.
-끼이이······.
붙잡힌 것은 동족 한 마리뿐인데, 모든 팽보어들이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한다.
지켜보는 그들도 그러할진대, 마리에에게 엄니를 붙잡힌 채 들어 올려진 팽보어는 이제 실금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니.”
바들바들 떨리는 뒷다리를 통해 축축 떨어지는 샛노란 액체. 웅덩이를 형성한 꾸리꾸리한 냄새에도 분뇨 냄새에 익숙한 농장 소녀는 개의치 않는다.
“돌은 씹지 말고. 통째로 삼키라고.”
이제는 완전하게 물든 시뻘건 흉안이 팽보어들을 짓누른다.
수백 마리의 팽보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제 앞에 놓인 돌덩이를 허겁지겁 삼켰다.